전시기간 중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전시기간 / 참여작가 2011_0922 ▶ 2011_0927 / 정기엽展 2011_0929 ▶ 2011_1004 / 이종현_김윤희展 2011_1006 ▶ 2011_1011 / 김미향_이상순展 2011_1013 ▶ 2011_1018 / 김승현_우병진展 2011_1020 ▶ 2011_1025 / 신지혜_김찬주展
주최/기획 /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 휴관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YEONGCHEON ART STUDIO 경북 영천시 교촌동 298-9번지 Tel. +82.54.330.6062 www.yc.go.kr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컵(cup), 용기(container)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나에겐 특히 채움과 비움이라는 하나의 행보를 의미한다. 채운다는 것은 곧 비움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때만이 그 가치를 발하지만,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통로로써 위트임이 그 또한 비울 수 있는 통로임을, 채움과 비움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 김미향
비만사슴과 얼룩말 그리고 자연을 조합한 시리즈는 인간이 일으킨 환경 파괴에 대한 또다른 모순적인 요소를 재구성한 이야기이다.내그림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비만동물들과 앙상한 나무색을 잃어버린 회색의 그림들 이러한 요소들로 지금의 환경문제와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성찰의 필요함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고자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산업사회와 인구증가 물질만능주의의 사회 이런 사회속에서 어쩌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연을 파괴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만을 생각한다면 인류는 곧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오늘날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적인 합리성이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 사회의 모순을 낳았다. 이에 대해 많은 사상가가 서구적 합리성의 위기, 나아가 문명의 위기가 아시아적 사고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철학을 강조하기에 앞서 이성과 합리성의 개념을 새롭게 점검한다. 그는 이성과 합리성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바로 인간중심주의의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합리성의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생태학적 합리성'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에서 생태중심주의 사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인간만의 지구가 아니라 모든 생물이 공존하는 지구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술은 개연적 존재양식을 갖는다는 점에서 언제나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는 예술이 근대 예술사의 자기해체적인 성격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과 재생의 신명나는 표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예술과 생태』저자. 박인문 요약 발췌) ■ 김찬주
시공간에 대한 작가론 요지 ● 예술작품에서 '시간과 공간의 창조'는 창작의 본질에 중요한 관건이다. 시간과 공간을 도상(圖像)으로 물질화시키는 예술가는 심리적 감흥을 통해 우주의 본질과 우주의 심오한 비밀을 통찰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끊임없이 발전하는 시간과 공간관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시대적 관념과 예술가 본인의 심리세계가 상호 작용해 참신한 사상적 관념이 형성되고 나아가서 예술가의 창작에 영향을 주게 된다. 도상 중의 시간과 공간 전달은 시각적인 전달 뿐 아니라 보다 넓게는 문화적 관념의 전달이기도 하다. 창작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결정적이며 또한 매력 있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표현이다.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상이한 도상 중의 상이한 시간과 공간양식이며 이 시간과 공간양식에 응집된 것은 일종의 정신문화이자 우주정신이다. 따라서 도상 중의 상이한 시간과 공간관념을 변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분석하면 우리가 변화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양식에 숨겨진 깊은 매력과 내적 영성을 감상하는데 큰 도움이 됨은 물론 그림에 흐르는 정신적 문화가 변화 하는 역사를 통찰하는데 유익하며 이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옛사람들의 시간과 공간관념은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준다. 한국은 공간보다는 시간을 중시하는 시간과 공간관념을 갖고 있으며 창작활동에 매우 큰 시간과 공간전환의 여유와 자유를 부여한다. 서양사람들은 시간보다는 공간을 중시하는 시간과 공간관념을 갖고 있으며 거시적이거나 미시적 분야에서도 모든 창작을 넓고도 깊게 확장하고자 하는 경향이 크다. 동양과 서양의 시간과 공간관념의 차이 및 예술활동에 대한 관념의 차이는 오늘날 본 작가의 창작에 깊은 의의가 있으며 큰 영향을 미친다. ■ 이상순
도시 풍경-건물 ● 고층빌딩과 자동차는 도시풍경을 나타낼 수 있는 상징중 하나라 생각 한다. 고층빌딩은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도시풍경 이다. 근대가 들어서고 현대화가 되어가면서 낮은 건물들은 사라져 가고 고층빌딩이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빌딩들은 현대사회를 나타내는 상징들 중 하나라 생각한다. 과거에 전통적인 산수화가 당시의 풍경과 가치관을 반영했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 나에게는 빌딩들에 둘러싸여 있는 풍경이 오히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도시풍경 중에서도 건물에 초점을 맞추어 빌딩주변의 풍경을 그린다. 먹을 이용하여 흑백의 대비와 농담으로 현대적 소재의 한국화를 표현한다. 작품은 건물뿐만 아니라 그 주변 풍경, 건물에서 반사되는 또 하나의 풍경을 그린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시라는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버려 의식하지 못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도시가 우리에게 주는 편안함도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자연파괴, 환경오염 등을 생각해본다. 도시에 살아가면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도시가 주는 편안함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층한층 쌓아 건물이 되듯 나의 그림도 건설현장의 건물처럼 층층이 쌓아 올려 그려나간다. 나의 작업은 한곳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 시킬 줄 알며,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미를 부여 한다. ■ 이종현
성녀의 자궁 u t é r u s d e s a i n t e f e m m e ● 풍선을 불며 터질 듯 말 듯한 팽팽함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이완된 평화보다는 긴장된 쾌락. 삐에로 만조니(Pierro Manzoni,1933-1963)는 풍선을 불어 '예술가의 숨'이라 이름 붙였다. 유리를 부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다만, 숨이 날아가 버리고 없어도 형태가 유지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뜨거운 상태의 유리에 대롱으로 숨을 불어 넣어 기포를 만드는 행위를 영어로는 블로잉(blowing), 불어로는 수플라쥬(soufflage)라고 한다. 적당한 우리말로는 '불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늘 쓰고 있는 유리잔, 유리병 등은 원래 이 기법으로 예부터 만들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기'가 숨을 전제로 함을, 즉 수플라쥬와 같은 어근의 수플(souffle)이 입김, 숨결, 기(氣), 영감이란 뜻을 품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쯤에서 생명의 원리로서의 호흡(pneuma)과 구약의 인간창조 신화를 자연스럽게 떠올리지만, 수플라쥬의 빈 공간이 결국 사라진 숨에 대한 기억임도 잊지 않는다. 뜨거운 유리가 녹아있는 가마 속을 처음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에밀레하고픈 충동(에밀레종의 전설처럼 몸을 시주하는 행위)을 느꼈다. 뜨거운 유리의 주홍빛 열기는 이처럼 매혹적이어서 붉게 녹아있는 가마 속 유리를 들여다보며 빠져들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갓 떠낸 붉은 유리가 창백히 식어 점점 투명해져 서랭(徐冷)가마에 넣어질 때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애도를 마친 이후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는 유리는 이미 죽은 것이기에 차가우며, 이런 이유로 나는 유리가 항상 액체 상태를 동경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에밀레하지 않았고, 이글거리는 태양 같은 용해로 앞에서 브라만(Brahman)과 아트만(Atman)을 상상하며 다행히도 아직 살아있음에 안도한다. 그런데, 그런 첫 인상에 이어 뜨거운 가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성스러운 '자궁'처럼 보였다. 그 자궁 속 유리를 떠내어 흙구덩이에 부은 후 숨을 불어 넣으면, 주홍색으로 뜨거운 채 융기한 액체유리는 서서히 식어서 투명하게 죽는 또 하나의 자궁이 된다. 나는 유대의 신을 흉내 내어 보지만 유리에 에어건(air gun)을 찔러 냉각을 재촉할 뿐이다. 이것은 무염수태(無染受胎, immaculate conception)하는 자궁, 기계에서 나온 숨은 흙모래 속 유리를 부풀린 후 빠져나가며, 결국 비어있음은 숨의 부재로 가득하다. '성녀의 자궁(utérus de sainte femme)'은 생기(souffle de vie)로 풍만한 쾌락이자 원초적 '불기'에 대한 추억이다. ■ 정기엽
■ 부대행사 / 정기엽의 사운드퍼포먼스&설치 행사명 / 성스러운 흐름 (Fleuve Sacré) 일시 / 2011. 9. 22 목 오후 5시 / 9. 23 금 ~ 9. 26 월 오후 4시 ~ 6시 장소 /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제1전시실
Vol.20110909c |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4기 입주작가 릴레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