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센텀아트스페이스 Centum Art Space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505번지 센텀호텔 Tel. +82.51.720.8041 www.centumartspace.co.kr
전시를 통해 보는 놀이의 다양한 관점들... ● 인간에게 있어 '놀이'는 가장 원천적인 창작의 단계이다. 언어와 시각적 발달을 거치기 전부터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는 심신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아이는 일과 놀이의 구분이 없기에 놀이를 통해 창작의 기능을 습득하며, 사회의 습관을 익힌다. 성인에게 놀이는 일에서 받는 강박감(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을 전환하고, 새로운 생활의욕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놀이는 근본적으로 아이나 성인 모두에게 놀이 자체가 즐거움과 만족감을주고 어떠한 강제성없이 자발적으로 행해지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듯 인간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워가며, 서서히 현실과 이상을 접목하게 된다. 그렇다면 '놀이'가 가장 원천적인 소통의 수단이라면 노주련, 새람, 조은필 세 작가의 작품속에는 어떠한 '놀이'의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는지 전시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전시장을 들어서면 조은필작가의 온통파랑색의 변형된 타조형상들과 마주하게된다. 파랑이라는 원색이 주는 강렬한 색의 인상이 가시기도 전에 아이의 키보다 훌적 큰 타조들의 크고 재미있는 형상이 보여진다. 파랑색으로 만들어진 동굴속으로 들어온것 같기도 하고, 동화속의 파란방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작가의 의도대로 유머러스하게 변형된 타조의 형상들이다. 변형된 타조들은 합판으로 다서여섯 겹 이상으로 겹겹이 만들어져, 각도를 달리하면 타조의 형상이 사라지고 여려겹의 층만 남게된다. 타조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형상의 사라짐과 반복이 계속된다. 타조의 형상은 있지만, 다시 분열되고 다시 찾는 반복된 행위속에서 우리는 의도가 아닌, 무의식적인 원천적인 창작의 단계인 놀이를 접하게 된다. 온통파랑으로된 놀이터같은 공간을 지나면 반짝이는 벨벳 천으로 만들어진 입방체를 볼수 있다. 입방체는 빨강, 초록, 검정의 원색의 벨벳천으로 만들어 졌으며, 중앙에는 검정의 폭신한 솜으로 둘러진 자그마한 구멍이 나있다. 그리고 입방체와 구멍사이에는 겹겹의 주름들이 잡혀 있다. 주름으로 인해 벨벳천은 자연스럽게 더욱 반짝이는 듯 하다. 주름잡힌 반짝이는 입방체의 쿠션들을보면 주사위 같은 느낌도 들기도하고, 혹은 아이들의 커다란 장난감 대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입방체속의 구멍속에 손을 넣어보고 싶기도 하며, 반짝이고 미끈거리는 큐브들을 만저보기도 한다. 작품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 만지는 것이 아니라고 배워왔던 우리에게 작품들은 오히려 작품을 만져주기를 요구하는듯 하다. 여기에서 노주련의 작품들은 전시라는 시각적 볼거리에 촉각적인 느낌이 더해져 작품을 보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함께하는 놀잇감으로 보여진다. 관람객들은 입방체를 안아보기도 하고, 입방체를 쌓아보기도 하고, 입방체안의 작은 공간속으로 손을 넣어보기도 하고 벨벳천을 만져보고 촉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강제성과 제약없는 전시관람 역시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며, 긍정적이고 자발적으로 행해지므로 이번 전시속에서 느낄수 있는 놀이의 또다른 관점일지도 모른다. 노주련의 반짝이는 입방체를 지나면 새람작가의 강아지형상을 한 말(馬)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가고 있다. 간간히 아기 말 형상도 보인다. 작품은 제목이 '말(馬) 이 말(言)을 만든다'이다. 동물의 '말'(馬)과 동음이의어인 '말'(言)을 연계시킨것이다. 말(言)(馬)만타타워의작품은 5층의 타워속에 사람이 생활하는 모습들을 말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먹고 잠자고, 일하고, 생활하는 소소한 일상들이 말(馬)(馬)만타타워 속에 표현되어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말(言)들속에서 생활하고 또 실체없는 말(言)들에의해 정의내려지기도 한다. 또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言)들속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말(言)들이 모여 나의 보여지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현실을 작가는 말(馬)(馬)만타타워 의 작품에서 보여주는듯하다. 보이는 것 즉 보이는 말(馬)을 통해 보이지않는 것 언어의 말(言)을 풍자한것이다. 또다른 말들은 둥그러니 앞말의 꼬리를 물고 원을 그리고 있다. 과장되게 큰입을 가진 우스꽝스러운 말들의 꼬리를 뒤따라 오는 말의 입에 꼬리를 물린다. 그 꼬리를 입에 물고 다시 자기 꼬리를 뒷 말의 입에 물리고...이런 물고 물리는 말들을 따라가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작품은 어린이들의 동물 놀이터 같은 재미있는 놀이의 공간에서 '언어놀이'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것역시 언어를 이용한 설치전을 통해 느낄수 있는 놀이의 또다른 관점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조은필, 노주련, 새람의 작품들을 살펴보고있으면, 전시가 단순한 시각적 전시가 아닌 작품과 함께 놀고 있는 마치 작품이 놀잇감이되고, 전시장이 놀이터가 되고 관객이 그 놀이터의 주인인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 박성희
Vol.20110907b | The Play-노주련_새람_조은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