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901_목요일_06:00pm
후원 / 갤러리 무이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주말_11:00am~08:00pm
갤러리 무이 GALLERY MUI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무이빌딩 1층 Tel. +82.2.587.6123 cafe.naver.com/gallarymui.cafe
양가감정-소화되지 않는 마음 ● 1. 매일의 뉴스는 인류종말의 예고편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주고, 늘 오가는 길에서는 쉬이 놓칠 만 한 작은 변화들이 느껴진다. 길을 걷다 직접 마주쳤다 해서 나와 상관 있는 것도 아니며, 모니터를 통해 본 것에 불과하다 하여 전혀 상관없는 일도 아닐 테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울컥하며 박차고 뛰쳐나가 정의로울 것 같은 잣대를 들고 무언가 저지르기에는 체크해야 할 항목들이 너무 많다. 참여와 관조의 기준을 가를 수 없는 불편한 지점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등하게 된다. 아무리 냉정하게 바라보려 해도 아래로부터 치솟는 연민과 불안은 감출 길이 없다.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직접 더했던 일은 몇 해 전 있었던 미국산 쇠고기수입 반대시위 현장이었다.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 때문도 아니었고,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을 위한 일도 아니었다. 당시 나는 환경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유사환경운동을 조금씩 하고 있었다. 광우병 파동이라 불린 일련의 사건은 내가 고민하던 문제의 핵심을 관통할 만한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관심은 밖으로 뻗어있고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본다 한들 그 많은 풍경이 더 이상 타인의 일들로만 여겨질 수 없게 되었다. ● 언제라도 사건들은 꾸준하게 전해지고, 게시판은 뜨겁다. 손에 쥔 단말기 여기저기서도 각자의 사연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사안이 사건으로 변해,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불쾌 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어떤 식으로든 충돌이 인다는 것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테니 조금은 안심해 둘만도 하다.
2.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건 속 장면들이 기억에 쌓일수록 생각은 침출수(沈出水) 처럼 솟는다. 종잡을 수 없이 넘쳐나는 생각들은 운 좋으면 어딘가 보기 좋게 기록되기도, 혹은 무관심하게 방치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이 무의식의 왼편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남은 감정은 밥알에 섞인 모래처럼 껄끄럽다. 여기가 나의 작업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 여러 층위의 일들은 공/사(公/私) 여부에 상관없이 모두 화면으로 수렴되며 모종의 움직임을 자아낸다. 캔버스 위를 두서없이 가득 메워 놓은 기표들은 작업이 끝나고 나면 처음의 맥락을 상실한다. 계기가 되었던 몇 가지 장면들은 작업이 진행되며 서로 섞이고 사라져, 완성에 다가설 때 쯤이면 처음의 사건은 저만치 달아나고 모호한 흔적들만 남겨진다. 재현에 관한 의지가 꺾일 때면 물감을 두껍게 얹거나 긁거나 뿌리며 감정실린 움직임을 이어가고 화면은 상징이나 기호 보다 행위의 기록으로 먼저 말을 하려 든다. ● 사방/전후 구분 없이 흩뿌려 놓은 형상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모호해진 사건 뒤로는 엉성한 태피스트리의 씨실, 날실 같은 감정들이 얼기설기 엮여 쉬이 소화되지 않고 체기(滯氣) 가득하다.
솟구치는 생각들을 메모하듯 옮겨 그린 드로잉들 역시 나란히 정돈시켜 매끄러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낱장을 한데 엮어 어떻게든 편집하려 들려 해도 자라나는 생각과 감정들은 가눌 곳이 없다. 그려내고 나면,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화면위로 터져버린 그것들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자리잡아 다시금 제 멋대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정성을 다해 그려보지만 종국엔 무책임하게 흩 뿌려놓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잘 다듬어진 '한 권의 풍경'이란 처음부터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3. 제멋대로 해석돼 채워진 화면에는 정제되지 않은 등가의 감정들이 난무한다. 시끄러운 그림 속 풍경처럼 개발과 성장/ 충돌과 몰락 속에 하루하루 동참하며 살고 있지만, 개인의 감정이란 더 이상 존중 받기 힘들다. 심지어 스스로의 마음에서도 말이다. 다양해진 방법으로 능숙하게 사람을 사귀고 관계를 쌓아보려 애쓰면서도 정작 마음속 감정의 형태는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만들어놓은 몇 가지 분류항 중 한 가지를 골라 그것이 진심인양 믿고 지나간다. 감정의 비약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 쉴 새 없이 흘려버린 사연과 장면들은 며칠 밤만 자고 나면 다시금 방향을 잃고 모순되게 발효된다. 쉬이 소화되지 못한 앙금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야 만다. 나의 마음이 진정 어떠했는지, 무슨 모양을 가지고 있는지 정성 들여 찬찬히 만져 보길 조심스레 권해본다. ■ 윤석원
Vol.20110905i | 윤석원展 / YOONSUKONE / 尹碩沅 / painting.draw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