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읽는 실내풍경

구을랑展 / KOOULRYANG / 具乙娘 / painting   2011_0903 ▶ 2011_0918 / 9월10일~13일 휴관

구을랑_작가의 방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7×162cm_2010

초대일시 / 2011_0903_토요일_06:00pm

스페이스함은 LexusPRIME社가 지원하는 미술전시공간입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9월10일~13일 휴관

스페이스 함 space HaaM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37-2번지 렉서스빌딩 3층 Tel. +82.2.3475.9126 www.lexusprime.com

마음으로 읽는 실내풍경 ● 풍경은 내 몸의 외부에 존재하는 항상적 세계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결국 한 개인의 심적 프리즘 안에서만 보여지고 다가온다. 따라서 풍경에 대한 체험은 보편적이면서도 지극히 개별적이다. 다들 저마다의 감정과 경험의 자장 안에서 독해한다. 그래서 풍경은 열려진 텍스트다. 그 텍스트를 각자 자신의 내면으로 덧씌워 읽어낸다. 따라서 풍경은 비어있다. 그 풍경을 채우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긴 이들의 해석에 의해 다른 얼굴로 기재된다.

구을랑_window and drawing pap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1×72.7cm

구을랑은 실내 풍경을 그렸다. 밖과 고립되고 유폐된 흐린 공간이다. 마냥 적조하고 차분하다. 인적은 없고 다만 창과 빛, 바닥과 벽, 단독으로 놓인 의자나 작은 사물이 침묵 속에 고요하다. 실내에 놓여진 사물들은 작가 자신의 분신이거나 작가가 발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매개로 위치해있다. 의자와 화분, 작은 장난감 목마, 펼쳐진 책, 자전거가 그것들이다. 그 공간은 분명 누군가가 살고 있고 살았던 자취를 은밀하게 떠올려준다. 익명의 존재를 받아준 의자나 사용했던 기물들이 있고 그 공간을 거닐고 누웠고 앉았었던 이의 자취를 상상하게 한다. 인간이 거주하는 실내공간이 정작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이내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돌변한다. 아니 정령적이라고 할까? 벽과 바닥, 의자와 창, 빛과 그림자가 스스로 살아서 비록 무성이지만 어떤 기미를 간절히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공간이, 사물이 스스로 발화한다. 공간의 그 적막을 조금씩 흔드는 것은 그렇게 바람과 빛, 그림자다. 공간은 비어있지 않고 빛과 공기와 바람 등으로 가득 차있다. 질량과 부피를 갖지 않은 것들이, 물질적인 형상을 지니지 못하는 것들이 역설적으로 아련하고 쓸쓸한 메시지를 너무 가늘게 발성한다.

구을랑_Evening sun_캔버스에 유채_90×72cm_2011
구을랑_한낮의 흔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0×80cm_2011
구을랑_Parking lot at nigh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1×117cm_2011

그 같은 실내풍경을 보여주는 구을랑의 회화는 결국 자신의 내면풍경을 그 실내풍경위에 덧씌우는 작업이다. 따라서 일종의 자화상에 해당하는 풍경이 된 셈이다. 기실 모든 그림은 그 작가의 어떤 내면이 반영되고 불가피하게 그만의 세계를 보는 눈과 마음들이 가필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입장이 좀 더 선명하게 표출되고 그것이 그에 적합한 방법론으로 귀결되어 나오는 그림이 좋은 그림일 것이다. ● 구을랑의 그림은 사실적이고 재현적이지만 그렇다고 구체적인 실내풍경의 묘사가 우선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상이 이루어지고 늘상 접하는 실내풍경을 빌어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을 그리고자 한다. 그것은 보이는 시각적 재료들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번져 나오는 체험의 가시화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들이 은연중 발산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는 그 풍경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문득 감정선을 자극한 것을 실내풍경을 빌어 표현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공간은 다분히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안개처럼 두르고 있다. 그러나 실재하는 실내풍경을 과도하게 왜곡하거나 변형하지는 않는다. 눈 앞에 자리한 실내풍경을 차분히 따라가면서 그것들을 좀 더 단순하고 간결하게 정리했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만으로 간추린 실내풍경이다. 아울러 그렇게 비어 놓는 부분은 빛과 그림자를 강조해서 채워 넣었다. 빛과 그림자가 작가의 내면이나 그 풍경에서 접한 감정을 가시화하는 적극적인 표현언어가 된다. 빛이나 그림자가 사람의 감정과 내면의 상황을 기록하는 문자가 된 셈이다.

구을랑_What are you looking fo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0×117cm_2011

실내풍경을 그린 그림들은 어디선가 들어오는 빛에 의해 구분된다. 날카롭게 각진 부위와 부드럽게 물든, 그림자가 진 부분이 공존한다. 그림자는 실내를 엄습하고, 벽과 바닥을 타고 넘나들거나 의자나 비어있는 캔버스를 삼킨다. 빛과 그림자는 벽과 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구체적인 실내풍경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부분과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 빛이 그린 흡사 추상회화 같은 이미지가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겹치고 흔들린다. 그것은 실내공간을 여러 층위로 분절시키거나 몇 겹의 주름을 잡아준다. 안쪽으로 길게 들어간 원근의 강조와 창문, 빛과 그림자의 떨리는 결들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이 작가의 마음의 깊이와 결이 자아가 중층적으로 포개어진 심리적 잔영에 해당한다. 나로서는 그런 지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 구을랑의 적조한 실내풍경은 비어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간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채워 져있다. 공기와 바람과 빛, 그림자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았던, 살고 있는 누군가의 실존의 무게와 삶의 이력이 먼지처럼 자욱하다.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실내풍경화일 것이다. 덧붙여 그 공간을 읽어나가는 이의 눈과 마음으로 다시 쓰여지고 기록되는 것, 그것이 또한 풍경화일 것이다. 구을랑이 보여주는 이 그림은 새삼 우리에게 공간을 본다는 것, 그것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 박영택

Vol.20110904e | 구을랑展 / KOOULRYANG / 具乙娘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