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im Blumengarten

안희선展 / AHNHEESUN / 安喜仙 / mixed media   2011_0901 ▶ 2011_0918 / 월요일 휴관

안희선_im Blumengarten (꽃밭에서)_혼합재료, 실크_각 18×14.5cm_2011

초대일시 / 2011_090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진선 GALLERY JINSUN 서울 종로구 팔판동 161번지 Tel. +82.2.723.3340 www.jinsunart.com

포목점을 하시던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천으로 둘러싸여 살았다. 바비인형이 없던 60년대 여자아이들의 중요한 놀이중 하나가 종이로 만든 인형에 종이로 디자인한 옷을 해 입히는 쏙닥질 이었다. 나는 종이옷과 함께 비단천으로도 옷을 해입힐수 있었고 이것은 곧 모든 애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나에게 잘보이는 애들에게 천을 조금 나누어 주곤 했던 일은 별볼일 없던 여자 아이에겐 큰 무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자주 다음 시즌 준비로 모아 놓은 샘플들을 경대위에 놓은채로 외출하시곤 햇다. 그 천을 자르고 싶던 유혹. 견디다못해 속닥질하며 하루종일 놀다. 매를맞기도 여러번. 이제는 아무리 잘라대도 꾸중하실 어머니가 더이상 없다. 나의 작업은 늘 봐 온것같은 천, 꽃 무늬로 이루어진다. 꽃무늬라는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재료이기에 작업에 더욱더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고 그런 기본적인 재료들을 끊임없이, 되풀이 변화시켜 가면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려한다. 가능한한, 가볍고, 유쾌하게, 현란하고 자유분방하게... 평론가 황인의 글처럼 "과앙된 자아가 없으니 이 세계는 그림도 작가도 모두 자유롭다. 봄날이 왔으니 저절로 피는 꽃처럼 오로지 아름다울 뿐이다." ■ 안희선

안희선_im Blumengarten (꽃밭에서)_혼합재료, 실크_각 18×14.5cm_2011

내가 그를 꽃이라고 불렀을 때 그는 꽃이 되어 피었다 ● 어릴 적부터 천에 둘러싸여 자란 안희선이 천의 문양을 소재로 작업을 하는 건 매우 자연스런 행보로 보인다. 천들의 나이는 5년이 채 안 된 것들부터 40년 이상 된 것들까지 다양하다. 더 이상 안희선의 집안은 천에 관련한 사업을 하지 않고 본인 역시 서울을 떠나 20년 가까이 독일에 살고 있다. 그러나 팔다가 남은 많은 천들은 몇 번에 걸쳐 그녀의 작업실로 옮겨져 다양한 조형적인 실험의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 안희선이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할 무렵, 그녀의 동학(同學)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친 미술사조는 개념미술이었다. 그녀 역시 개념미술을 의식하며 작가생활을 지속해왔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때로는 소극적으로 반발하면서. 천의 문양과 개념미술, 이 둘 사이에는 일견(一見)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의 생뚱맞고 기묘한 조합에서부터 안희선의 작업세계는 그 사유의 출발을 하려고 한다. ● 안희선은 여성용 한복의 제작을 위한 옷감으로 여러 문양이 들어있는 실크노방(老紡)과 커튼 천을 주요소재로 사용한다. 천 가운데 배치된 문양의 부분을 따로 잘라내어 그가 택한 적당한 색상의 바탕 천 위에 붙여 나가는 꼴라쥬 방식이 그녀의 작업 프로세스다.

안희선_im Blumengarten (꽃밭에서)_혼합재료, 실크_각 18×14.5cm_2011

비단천 위의 문양들은 프린팅이 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일일이 손바느질로 수를 놓은 것이다. 이 문양들은 서울의 동대문시장 혹은 근처 창신동의 조그만 공장이나 가정집에서 수공업 형태로 제작된 것들이다. 예전부터 동대문 일대에는 싼 노동력에 바느질을 제공하는 여성 공인(工人)들이 많았다. ● 이들 문양들 중의 일부인 꽃과 새의 형태는 한눈에 보아도 조선시대 말기에 맥이 끊어진 민화(民畵)를 상기시킨다. 민화의 주요양식인 목단도(牧丹圖), 화훼도(花卉圖), 조충도(鳥蟲圖), 화조도(花鳥圖), 문자도(文字圖) 등이 형태의 별다른 변형이 없이 그대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어찌하여 민화의 양식과 형태가 40년전 그리고 최근의 옷감 문양에까지 이어져오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동양화의 대표적 화본(畵本)이라 할 수 있는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에서 도움을 얻을 수가 있을 듯하다. ● 우리는 어느덧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에 익숙해져서 '보는 그림'에 익숙해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에 확립된 '그림에 대한 자세'일 뿐이다. 미술사에서 그림이란 보는 것이 아닌 읽는 것으로서의 역사가 훨씬 더 길다. 즉 그림은 일종의 텍스트(Text)이었다는 사실, 혹은 읽는 것과 보는 것이 동일시되는 지점에 그림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안희선_im Blumengarten (꽃밭에서)_혼합재료, 실크_18×14.5cm_2011

개자원화보 속에 나오는 몇 개의 도상들을 조합시키면, 마치 단어의 조합에 의해 문장이 완성되듯 하나의 그림이 완성이 된다. 화가는 굳이 대상을 직접 보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실경(實景)이 아닌 진경(眞景)의 세계인 것, 화가의 나안(裸眼)에 보이는 대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내장된 이상적인 조형에 대한 정보체계가 지시하는 대로 그려진 양식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아는 대로 그린 그림에 다름 아니다. ● 결코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한 적이 없는 동대문 시장 일대의 공인들이 제작하는 문양 역시 마찬가지. 그들이 직접 꽃과 새를 관찰하고 사생을 하여 문양을 디자인한 것은 아니다. 대대로 전해지는 기본적인 도상들 즉, 패턴디자인을 보고 그대로 재현한 것뿐이다.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은 낱낱의 단어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문장이 되고 이것들이 이어져 커다란 서사구조를 이루듯, 이 도상들 역시 조합과 반복을 거쳐 조형적 외연을 넓혀가며 무한하게 의미와 공간의 확장을 꾀한다. ● 개자원화보가 오랫동안 사람들의 미감을 충족시켜 오면서 번식과 조합이 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조형적 형태만이 취사선택되어 책으로 묶어진 것처럼 옷감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문양들도 비슷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민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도상들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한국인의 미적 취향에 선택되면서 생존해왔다고 보아야 한다.

안희선_im Blumengarten (꽃밭에서)_혼합재료, 실크_각 18×14.5cm_2011

종이 위에 그려진 드로잉 혹은 페인팅으로서의 민화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이미 사라졌다. 그런데도 민화의 도상들은 사멸치 않고 옷감 위에서 아직도 자신의 조형적 DNA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 그게 어째서 가능할까. 그건 옷감에 표현된 대상들, 예컨대 꽃이라고 했을 때 그건 실재(實在)의 재현으로서의 꽃이 아닌 관념의 반복으로서의 꽃이기 때문이다. 즉 이데아로서의 꽃, 텍스트로서의 꽃이기 때문이다. 이데아이자 텍스트이기 때문에 시공간을 넘나들며 만유(萬有)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안희선이 채집한 이 꽃들은 민화라는 특정한 조형적 프레임의 공간성과 조선(朝鮮)이라는 제한적인 시간성을 초월하여 우리들의 의식 깊숙한 곳에 개념의 상태로 상존(常存)하다가 조건이 주어졌을 때 천 위에 드러났을 뿐이다. ● 그러기에 이 꽃들은 사생(寫生)으로서의 꽃이 아니라 개념의 현현(顯現)으로서의 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이 지점에서 안희선이 현대미술의 수업기에 강박증처럼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개념미술의 영역과 옷감 위에 구체적으로 수놓은 꽃이라는 문양의 세계가 비로소 화해를 한다. ● 안희선의 따블로에 등장하는 문양 속의 꽃과 새는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킨 채 가만히 바라다보고 있으면 매우 낯익은 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건 데쟈뷰처럼 낯선 낯익음이다. 그건 우리들 의식의 고층(古層)에 숨어 있다가 불쑥불쑥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집요저음(執拗低音 basso ostinato)과 같은 것이다. ● 이런 집요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 낯선 꽃들은, 꽃이라는 오래된 낱말과 오랫동안 우리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존재해왔던 꽃이라는 개념을 단단히 이어주는 장치로서의 꽃, 그리고 하나로 뭉쳐진 낱말과 개념을 가장 적절한 구조적 형태로 표상할 수 있는 꽃이라는 새로운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안희선_im Blumengarten (꽃밭에서)_혼합재료, 실크_각 18×14.5cm_2011

그 적절하고도 반복적인 형태가 옷감 위에 드러날 때 이를 패턴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안희선은 그 패턴들을 이것저것 모아서 하나의 따블로 작품으로 구현한다. 그리고 그 동일한 크기의 따블로 소품들은 독립적인 개체의 작업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모듈처럼 서로 어깨를 맞대고 전시장 전체의 공간으로 확산된다. 전시장 전체가 꽃밭이 되는 하나의 커다란 설치미술 작업으로 보아도 좋다. 관념처럼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조그마한 씨가 꽃을 피우고, 꽃이 꽃밭이 되고, 결국은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전체의식으로까지 확장이 되듯이 부분이 전체를 향해 번식을 한다. ● 안희선의 따블로에 있는 꽃은 그녀가 직접 보고 그린 꽃이 아니다. 이 꽃을 바느질한 공인(工人), 그들 역시 자신이 직접 보고 그린 게 아니다. 처음부터 누구인지도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무연(無緣)의 그들이 그려왔던 사연과 인연들이 꼴라쥬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알지도 못하는 그들 누군가가 같은 꽃으로 무언가를 만들 것이다. 이럴 때 작가라는 개인은 미미해진다. ● 이렇듯 안희선의 꽃 작업에는 개성, 표현, 작품의 완결성 등 작가라는 일인칭의 자의식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과잉된 자아가 없으니 이 세계에서는 그림도 작가도 모두 자유롭다. 봄날이 왔으니 저절로 피는 꽃처럼 오로지 아름다울 뿐이다. ■ 황인

안희선_im Blumengarten (꽃밭에서)_혼합재료, 실크_각 18×14.5cm_2011

Paradise without the Fall of Humankind-New Textile Pictures by Hee-Sun Ahn ● Hee-Sun Ahn turns the textile medium against itself. For the Korean artist, sewing and embroidery are not purposive-rational, housewifely virtues but activities with whose aid she creates art. Sewing and embroidery do not serve to create artifacts suitable for daily use but aesthetic works characterized by their "delight apart from any interest" (Immanuel Kant). In this respect, Rosemarie Trockel dialectically shifted the medium of knitting as early as the 1980s in order to leave the realm of necessity and tread the realm of freedom with the aid of housewifely activities. She defeated with his own weapons a male art critic who had denied women the ability to work creatively and recommended that they cook and knit instead of painting and sculpting. She took him and his recommendation literally and persuasively created art consisting of knitting and oven pictures. ● For Hee-Sun Ahn, both the choice of material as well as the production technique also have an autobiographical component. At home in South Korea, her mother and her aunt were silk merchants. As businesswomen, neither of them had much time for a child who demanded attention. Looking back, the artist's turn to a material that she felt was the cause of emotional deprivation in her childhood is a strategy she pursues in order to repeat in art what this material seemed to deny her in her life: personal acknowledgment and affection. She collected remnants left over after the fabric had been cut and uses them to fashion her works. In doing so, she combines very different materials from bygone times, beautifully patterned curtain and expensive silk fabrics. The one served to make festive clothes such as those we wear for important celebrations, and the other to furnish the homes we want to feel comfortable in. ● Both of them reflect aesthetic preferences in a historic perspective. Their colors, forms, and patterns comprise a kind of archeology in which the stylistic tendencies and preferences of a certain period are preserved. By reassembling things, on the one hand Hee-Sun Ahn directs our gaze to the past and awakens a kind of nostalgic recognition, while on the other she creates a new repertoire of forms and colors by means of the alliances into which her textile set pieces enter. Her choreography circumvents any fashion, as in her montages the artist adheres solely to the laws of her personal preferences. They bring together not only high and low, valuable and inexpensive materials but also ornamental and elaborate with simple motifs, tonal and modulating colors with colors that are dissonant and rich in contrast. The dimensions of each textile picture are approximately the same, and each individual work can be read as part of a larger tableau. ● The theme that holds all of the pictures together is that of a big flower garden. Of a Garden of Eden, a Garden of Paradise, a hortus conclusus without human beings or snake, without temptation and the fall of humankind. But also of a garden lacking hierarchy and vanity. In the world of fashion, every season the new fabrics shout out: I am the most beautiful. Take me. Buy me. In Hee-Sun Ahn's pictorial choreography, the battle of one fabric outdoing another is suspended in a cooperation in which each fabric places its forms and colors in the service of a harmonious whole. It presents nothing less than the aesthetic utopia of a peaceful liaison in which disorder and the tune the artist sang in her childhood have also been resolved. In much the same way the embroidered ornaments and arabesques of expensive silk fabrics nestle against the collection of smooth synthetic and cotton materials, all of the emotional tempests, those of others as well as her own, have come to rest and been pacified in the parades and paradises of fabric. Per aspera ad astra. ■ Michael Stoeber(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Rebecca van Dyck)

Vol.20110902a | 안희선展 / AHNHEESUN / 安喜仙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