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네오룩_제니스제약 기획 / 이장욱
관람시간 / 11:00am~04:00pm / 일요일 휴관
중국 북경 통조우구 송주앙 신디엔 뤼순 살롱 Tel. +86.13521002357
유럽에서 시작되어 미국 신용등급 쇼크까지 이어지는 경제 위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 미술시장은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세계 미술 마켓에서 미국과 영국을 제치고 1등으로 올라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중국미술의 중심에서 기존 세대와 달리 반항적 기질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작가가 있다. 장쑤성 서주(徐州)출신의 뤼순이다.
70년대 말 시작된 개혁 개방 정책으로 인한 변화는 일반 중국대중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한 것은 90년대 초이다. 그때까지 돈이 있어도 배급표가 없으면 쌀, 고기, 기름 등의 생필품을 마음대로 구입할 수 없었다. 개혁개방의 물결이 시작된 중국 해안 벨트의 길목에 장쑤성이 있다. 상하이, 저장성을 이웃하고 있는 위치에 있어 일찍이 상업이 발달했다. 이곳에서 상인인 아버지와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 사이에 2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개혁 개방과 함께 급속한 산업화의 중심부에서 어린 시절부터 직접 눈으로 녹색의 농촌이 회색의 공장으로, 맑은 샛강은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짙은 검녹색의 폐수가 쌓인 흐르지 않는 악취 가득한 슬러지가 가득한 곳으로 변화했다. 동네에서 가장 큰 그늘을 주었던 나무와 사람소리 가득한 광장과 마을은 사라지고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트럭들 사이로 보이는 폐허와 집 잃은 개들과 고양이로 가득 차 온통 회색의 빛깔이 한눈 가득히 온 세상을 덮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은 이후 부정적 현실보다 낭만적인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학업성적이 좋아 부모의 기대를 한껏 받았지만 이를 뒤로하고 북경영화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진학 후 원명원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미술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함께 사생을 하며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게 된다. 졸업 후 광주(廣州)실험무용예술단을 거쳐 북경CCTV에서 2년을 보낸 후, 98년에 송주앙(宋庄)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원명원에서부터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위에민쥔, 팡리쥔, 리우웨이, 리센팅, 순광후아 등이 원명원을 떠나자, 미술에 전념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들은 미술로 자신은 영화로 시대적 모습을 담고 싶은 생각으로 송주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하지 않았다. 영상을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돈이 필요했다. 이러한 현실과 꾸준히 시간이 있을 때 그려온 작품이 오히려 경제적 이유로 미루고 있던 영화보다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 춘절(春節;우리의 음력설)을 앞두고 수중에 단돈 1원도 없이 시장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한 독일인을 만나게 되어 작품을 미화 2000불에 판매하게 된다. 이 일 이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는 야외에서 직접 사생을 했고, 이후 중국에 불어 닥친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흑백 작품을 하지만 2003년 시작한 "공중의 꽃" 시리즈는 어린 시절 급속한 경제발전이 가져온 마을의 변화를 자신의 작품에 적용한 것이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화가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시리즈를 발전시켜 화려한 꽃이라는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급급해 본질적인 환경 오염과 훼손이라는 녹색을 보지 못하는 중국 사회 현실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 시리즈를 확대해 꽃에서 개구리, 돼지, 고양이 등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2005년 첫 유럽전시를 통해 가능성을 주목 받으며, 금일미술관 관장인 짱즈캉(张子康)의 눈에 띄게 되었다. 당시 금일에서 개인전을 제의 받았지만 작품도 부족했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포기했다. 금일에서 열린 그룹전시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었다. 이때 미루어 졌던 개인전은 2009년에 하게 된다. 당시 조각작품(길이 11미터, 높이 4미터)을 전시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전면의 유리를 깨고 작품을 넣는 등 많은 해프닝 뒤 전시를 오픈하게 되었다. 당시 기획자 겸 비평가인 황두와의 만남은 이후 자신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010년 중국서부국제예술비엔날레에서 Marco Meneguzzo 감독과의 만남은 학술적인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송중앙에 있는 7,000여명의 작가들 중에 맏형에 속하지만 지금도 현대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환경이 파괴되는 문제에 대해 끈임 없이 관심을 가지고 이를 중국 국내에 알리기 위해 여념이 없다. 올 연말에 798SPACE에 있을 문명비판에 대한 주제로 전시될 그룹전시에 참가할 작품에 여념이 없다. 빙하시대(氷河時代)로 명명된 작품은 인간이 스스로의 이름이 쓰여진 미사일(실제는 작가 자신의 이름이 자신의 이익에만 눈먼 인간을 대표해 새겨져 있다.)을 구 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에 빗대어 인간 스스로의 욕심에 북극곰과 성성이로 변해 버린 인간들이 주변환경을 무시하고 경쟁적으로 빗어내는 욕심에 희생되어 버리는 현실을 조각작품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을 조각으로 빚어내고 있다. 비가 없는 북경에 올해 같이 많은 비가 내리고, 지구 곳곳에서 이상기후현상이 일어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더욱 관심이 간다.
정보가 가장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보가 없는 것과 통한다 할 것이다. 매일마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무엇이 올바른 정보인지 고민하다 많은 것을 놓쳐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 신념을 가지고, 신앙이상으로 초지일관하는 자세로 성공보다는 만들어 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항적인 자세로 제 살기 바빠 주위에 무관심해지는 몰개성의 시대에 한 명쯤은 뤼순과 같은 이가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이장욱
Vol.20110829b | 뤼순展 / Lv Shun / 吕顺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