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82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1839 GALLERY 1839 전남 순천시 중앙로 276 순천대 후두둑 B1 Tel. +82.61.742.1839/070.4210.1839 www.art1839.com
근처 ● 시간의 통로를 걸어 가다보면 점점 색은 바래지고 희미한 기억들의 근처에 도달하게 된다. 마치 흑백의 비밀 화원에 온 듯, 낡거나 퇴색된 시간의 지층 위로 수풀은 우거지고 새로운 파도는 밀려온다. 불현 듯, 슬픔도 함께 밀려온다. 과거로부터 떠밀려온 나의 존재와 현재의 불온한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낯선 시선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건넨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연유되어 왔으며, 이제 미래의 어느 길목으로 흘러들어가야 하는가?' ● 어느 뜨거운 여름날, 아름다운 수국과 연꽃이 피어난다. 세월이 쌓이고 쌓여 시간의 순리를 따르고 있는 기와집과 거기 그대로의 자연(바다와 연못 그리고 산)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자아의 역사성'에 대한 고찰의 과정을 담고 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들로부터 자신의 근원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가 보고 듣고 느끼며 발길 닫는 그의 '근처'는 내면의 울타리인 셈이다. 주변의 모든 사물은 생명성을 띤 가치 있는 존재이며 그것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구축하고 확장해나가려는 '근처'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진심으로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 이번 '근처'에 대한 그의 작업은 색감을 배재하였으나 묘하게도 이미지는 더욱 선명하게 각인된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도 햇살은 잔잔하고 바람은 따스하게 불어온다. 햇볕 한 줌, 또는 파도의 촉감이랄지 구름의 방향조차도 그냥 놓치지 않은 작가의 눈과 마주칠 때 무언의 위로를 받는다. 문득, 오래 전의 소중한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시리면서 후끈한 기억이 잊고 있었던 지난날 내 가슴 언저리를 뜨겁게 달구던 날들의 근처를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근처'의 작업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밀물과 썰물로 드나들어야 하며 오롯이 바다 한가운데서 生을 견뎌야 하는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의 지리멸렬한 외로움이랄지, 힘듦이랄지, 그 우울한 모든 현실의 반복 속에서도 묵묵히 참관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집을 짓고 찰나의 숲과 산과 바다를 산책하며 앞으로 불어올 뜻하지 않은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오로지 가슴으로 받아내야 하는지를. ● 거대한 자연과 무수한 삶 속에서 어쩌면 개인의 운명은 사소한 이야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지성배 작가의 '근처'에 대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삶을 응시하는 자세와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작품을 보는 내내 뜨거운 시선이 달아올랐다가 사그라지기를 반복한다.
근처는 모두 자신으로부터 관계 맺는다. 내가 머물고 발길 닿고 손길 가는 모든 곳이 나의 '근처'가 된다. 나로부터 시작된 찰나. 내가 머무는 모든 곳이 내가 소유하는 시간이 되고 삶이 되는 것이다. ● 홍승용 작가의 근처에 대한 작업은 물 속이라는 특정한 공간성을 확보하였다. 이 독자적인 공간성 안에서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작가는 물속의 공간을 생명성을 띤 가치 있는 유토피아로 인식하고 있다. 물속에 존재하는 생명들 틈사이로 내딛는 두 발은 자신의 유토피아에 대한 확립이 이뤄지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물과 작가와의 교감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작가의 마음이 물에 대해 완전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무심한 척 잔잔하게 진동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작가와 우리와의 사이에 물이라는 순수한 매개체가 존재하는 것. 화면 가득 부드러운 초록의 향연이 피어난다. 물속은 마치 꿈결 같다.
모래바닥이라는 순응적 공간에 반짝이며 빛나는 물결들은 '삶의 매 순간들'을 상징한다. 물속의 삶은 한 순간도 같은 생을 산 적 없다. 부유하는 산호초들이 찰나를 유영하고 물은 빛과 반응하여 매번 다른 무늬를 만든다. 작가의 시선은 매 순간을 기억하는 물결의 무늬들을 따라 흐른다. 이때 물고기 한 마리가 삶의 골목 한 귀퉁이를 돌아 나아가고 물속의 세계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는다. 한 발 내딛음으로써 수많은 물결의 파동을 만들고 모래와 부유물들의 흐름을 바꾼다. ● 작가의 시선으로 화면을 보노라면 모래 한 알 빛 한줌, 산초 한 닢 하나의 존재로써 가치를 발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없다. 다 존재함으로써 빛을 발하고 흘러간다. 존재성의 가치에 대한 작가의 부드러운 시선이다. 물을 인식하고 그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그것을 투영하는 과정이다.
물 속의 모래바닥 위에 부유하는 산호, 산초들. 순간, 물결이 반짝하고 물고기의 등 위에 내려앉아 삶의 비늘을 만든다. 잔잔한 파동 하나에도 예민하게 흔들리는 작가의 시선이 아련한 메아리로 와 닿는다. 물속을 부유하는 산호초나 빛을 통해 반사되는 물결의 무늬를 통해서 삶의 무늬를 포착해내는 작가의 시선은 아름답고 진실 되다. 물속을 유토피아로 인식하고 있는 작가가 포착해낸 장면에 애정이 깃들지 아니할 수가 없다. 작가가 파인더로 포착해낸 '근처'에 관한 작업은 물속이라는 '유토피아에서의 삶의 무늬를 새기는 작업'인 것이다. ● 화면 가득 물결의 무늬들이 부유하고, 물의 생명성과 주고받는 작가의 내밀한 호흡이 반복된다. 그 속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근처를 둘러보아라. 그리고 그곳에 당신이 꿈꾸는 인생을 새겨라! 당신이 새긴 삶의 무늬는 어떤 모양인가?" ■ 박시원
Vol.20110825h | 근처-지성배_홍승용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