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82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금_10:30am~06:30pm / 토_12:00am~06:00pm / 일요일, 월요일 휴관
갤러리 차 GALLERY CHA 서울 종로구 통의동 35-97번지 Tel. +82.2.730.1700 www.gallerycha.com
주관성으로부터의 탈피 그리고 반(半)주관화 ● 예술에 있어 존재의 근원에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세계 즉, 일상적 세계를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실현되곤 한다. 소위 주관주의적인 예술이라 불리는 이러한 예술적 욕망은 자유로운 정신의 구성물 속에서 대리 실재를 찾으려고 애쓰는 중에 일상의 실재가 충분히 정신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강지현의 최근 작업도 이러한 거부의 맥락과 밀접히 맞닿아 있다.
강지현 작가는 꽃과 식물의 색감과 형태를 있는 그대로, 혹은 보편적으로 표현되는 화사하고 여린 이미지로 드러내기를 거부한다. 꽃과 식물이 가질법한 원색과 파스텔 톤의 색이 사라지고 먹의 농담으로만 표현되며 더불어 과장되게 확대된 형태는 대상물들로부터 본래의 모습과 정반대인 화사한 생명력을 제거한 상태이다. 하지만 생명력과 관계된 일반적 요소를 제외한 강지현의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더욱 강력한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점을 확인하는데 있어서 「flower-flowing」과 「Bouquet」연작 이전의 작업과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연작 이전의 작업에서는 돌과 식물이 함께 구성되었고 모든 식물들은 대부분 황색으로 표현되어왔다. 작가에게 황색은 식물이 생성되는 순간의 새싹의 연노랑과 시드는 순간의 말라버린 잎과 줄기의 어두운 황색, 곧 생성과 소멸의 순간이 공존하는 색이었다. 하지만 이 황색의 식물들을 그린 작업들은 생명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설득할 수 있었으나,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영원한 생명력을 담아내는 것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어쩌면 이는 돌 속에 식물이 구성되었다는 점으로부터 기인하는 한계로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식물을 품고 생명력을 보호하는 안정적인 공간으로서 돌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식물 자체의 생명력이 돌에 의해서만 보장, 보호되는 듯한 인상을 남기었다. 작가는 식물 스스로의 생명력을 강화하기 위해 돌로부터 독립된, 식물의 외적 특징을 제외한 식물의 모습 그 자체의 표현에 집중하는 작업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이번 전시의 주요작인 「flower-flowing」과 「Bouquet」연작에서 식물, 특히 꽃의 형상은 더욱 확대되고 묶음으로 구성되었다. 꽃잎과 꽃잎 사이, 암술과 수술의 조화, 틈과 틈에서 작가는 생명의 흐름을 발견하고 이를 극대화하여 관객에게 선보인다. 화폭에서 생명의 흐름은 물의 흐름처럼 잔잔한 물결로 퍼지는 것처럼, 바람이 불어 흩날리는 것처럼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적으로 퍼져나간다. 소재 본래의 색감과 작가가 부여했던 의미적 색감이 사라진 꽃은 더 이상 그림의 소재가 아닌, 진지하고 객관적인 하나의 객체가 되어 관객에게 다가온다. 이전 작업과 비교하여 변화를 준 또 하나의 점은 식물을 다발로 구성한 것이다. 사실 식물 다발의 뜻을 가진 프랑스어 부케(bouquet)는 결혼식에서 신부를 모든 악령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어쩌면 우리가 장식적 의미로만 받아들이는 부케를 인간의 무한한 생명력을 염원하는 상징물이라는 본뜻으로서 환기시켜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연원에서 「Bouquet」연작에서의 식물과 꽃을 엮어 만든 다발 형상은 더욱 객체화 되어 마치 새로운 생명체의 형상으로서 보이기도 하고 혹은 신체 장기의 일부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강지현 작가는 꽃과 식물에 대한 '낯설게 보기'를 통해 사고의 환기를 일으키고 색감과 구성의 장치를 통해 더욱 집중되고 강력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생성과 소멸, 그리고 생명력은 사실상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대상의 본질을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일차적으로 일상적 세계와의 연관성을 거부하며 작가가 선정한 주관적인 요소를 적용한 뒤 이를 작업으로 옮겼다. 하지만 작가가 선정한 주관적인 요소마저 제거된 최근작에 더 수긍이 가는 것은 어쩌면 존재 자체의 근원에 대한 문제는 그 표현의 대상이 일상적 세계와는 낯설고 작가의 태도로부터 가장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으로 보이는 위치에 놓임으로써 해명될 수 있는 것인데 「flower-flowing」과 「Bouquet」이 바로 그 지점 가까이에 위치한 것 같기 때문이다. ■ 박우진
Vol.20110825e | 강지현展 / KANGJEEHYEON / 姜智賢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