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82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고요의 정체 ● 어느 한 순간. 쨍!하고 깨어질 것 같은 팽팽한 고요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폭풍 같은 과거의 상흔을 지닌 바다는 지나치게 평안하고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면은 기막히게 막막하다. 모두 현실이 아니다. 눈앞에 벌어진 풍경의 전모는 그러하다. ● 김진아는 선택과 통제, 그리고 접근 각도를 통해 주어진 소재를 성형成形해 낸다. 바다(혹은 물), 나무, 벽처럼 보이는 소재(이후 편이에 의해 그 소재의 원제로 표기한다)는 작가에 의해 가장 특징적인 특성에 따라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들은 일종의 제작된 사물로 자체 외의 또 다른 어떤 것이 된다. 그것들은 때론 매우 불합리해 보이는 과감성까지 수반하며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한 화면 속에서 다중투시와 교란된 시점에 의한 부분적 왜곡,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수법 - 어떤 물건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그 물건으로부터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여 물체끼리의 기이한 만남을 현출시키는 기법. 원래 '환경의 변화'를 뜻하는 말로서, 이 방법으로 보는 사람의 감각의 심층부에 주는 강한 충격 효과를 노리는 것 - 등이 어우러져 비현실적 상상과 무의식의 환상적인 흐름을 그려낸다.
김진아는 왜 비논리적 공간을 제시하는가. 김진아가 그려낸 풍경들은 단순하면서 동시에 미묘하다. 화면의 구성은 냉철한 이성으로 엄격하게 멈춘 채 한정짓고 있지만, 규칙을 무시한 물성은 우수憂愁나 우울한 감정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복합적이며 까다롭다. 한정짓는 공간으로 인해 형태는 묘사보다는 생략되거나 거꾸로 과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화면은 암시적으로 변하고, 관심의 초점은 그려진 대상보다도 표현한 사람에 있으며,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작가가 의도한 상징을 풀어보게끔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아의 그림은 '뜻 그림', 즉 '생각의 그림'이다. 김진아의 그림 앞에서 우리가 멈추어 서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예술적 표현으로 이루어진, 바로 그 '생각' 앞에 멈추어 서 있는 것이다.
김진아는 형태를 만들고 채색을 칠하는 데 모두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 냈다. '생각'을 보여주는 방식은 침착한 절제를 이루는 가운데 기운의 흐름과 같이 순리적이다. 동시에 단호하게 자기정체성을 보여준다. 화면의 구도나 묘사는 감각적이면서 섬세하다. 형태는 재해석되어 단순하고 생략되어 있다. 붓의 흔적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표현을 보여준다. 메마른 선과 젖은 선은 그 쓰임이 반드시 다르고, 흔들리거나 힘이 없는 듯 약하게 처리한 부분도 상喪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색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담淡하게 수없이 쌓아올린 바다의 표면은 사실적 묘사를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단단하게 구축된 밀도로 말하고자 하는 감정을 충실히 드러낸다. 나무의 가지와 같은 선들은 강렬하고도 규칙적으로 커다란 면을 채워 넣는 경우도 있거니와, 여백 자체만 남겨놓아 공허한 우울을 고요한 공간으로 새롭게 보여준다. ● 그러나 김진아의 느린 고요들은 위로를 필요치 않는다. 막아서고 있는 벽면은 다른 관점에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갖혀진 방에서 유기적 나뭇가지들이 새로운 공간과 능동적인 소통을 벌이려 하고 있다. 침묵하고 있는 바다, 아니 물은 생물학적 자연이 아닌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스러운 자아의 변이된 모습으로 마치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자기만의 슬픔을 겪어낸 후의 모습이다.
김진아의 풍경들은 어느 한 순간 멈추어 서 있다. 그 멈추어 있는 어느 한 순간은 바로 감정에서 수반되는 결정적 순간이다. 김진아는 인간 감정의 다양한 포즈 가운데 아주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해 내고, 그것을 옮기고 있다. 여기서 절묘한 타이밍이란 다름 아닌 감정이 미묘한 변화를 느끼는 찰나를 말한다. 어느 한 순간. 김진아는 이 어느 한 순간을 마치 사진을 찍을 때 셔터를 누르는 순간처럼 대상을 둘러싼 시간적인 감각과 공간감, 위치, 거리, 명암 등을 자신만의 고요하고 느린 호흡으로 잡아내고 있다.
김진아의 느린 고요들은 자기방어적이다. 사실과 벗어난 공간은 일상의 우리가 쉽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과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고요나 침잠 따위를 섣부른 짐작으로 다가서기엔 김진아의 그것은 너무도 이미 안정되었다. 화면의 미묘한 변화들, 동작들은 공기의 찰라와 같고 들숨과 날숨처럼 자연스럽다. 잘려나간 물의 경계로 시선을 정지하게하고, 겹겹이 감싸며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은 나뭇가지의 형태들은 다양한 변화와 변이를 야기시킨다. 또 거꾸로 장애를 완전히 제거하고 벽면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관람자는 여기서 오히려 더 당황하게 된다. 제시된 화면의 거대한 장치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아무 것도 발견하거나 찾아낼 수 없다. 무언가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그 막막한 벽 앞에서 완전히 상실되면서 내가 바라보는 것이 맞는 것인지, 본다는 것에 대한 확실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김진아의 느린 고요의 미에서는 즉각적,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극적, 능동적으로 발산, 표출하는 양상이 아니라 간접적, 소극적으로 내면화되어 수렴·응축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점은 현실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고통의 요소를 초월한 무심과 유사하다. 김진아의 고요는 정서의 가라앉음과 깊은 심연을 이야기하며, 인간 본질의 우울을 이야기한다. 김진아가 던져주는 이러한 제시는 막연한 불확실성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의 편린들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김진아의 느린 고요의 정체에 동의하고 만다. ■ 김최은영
Vol.20110824f | 김진아展 / KIMJINAH / 金鎭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