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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82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연갤러리 Yeon Gallery 제주도 제주시 이도2동 680-4번지 Tel. +82.64.757.4477 blog.naver.com/yeon5577
『조기섭』展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찰나의 순간 ● 조기섭의 화면은 기억 속에 잠긴 온갖 이미지를 저장해 둔 지층들 같다. 아득한 유년 시간과 풍화 속에서 녹아내리고 부식되고 마모되어 빛바랜 세월의 입김과 흔적이 의식 아래 잠겨 아득한 형상들로 나타내어진다. 그 형상은 작가를 눈물 흘리게도 했으며 일상 속에서 매 순간 그의 존재를 알려오는 대상으로서 꽉 차여있게도 하였다. 그것을 가시화하는 작가의 시선을 통하여 우리는 '만들어진 환상, 조작되어진 풍경, 움직이지만 멈추어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 일상의 풍경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 자리한 시각적․ 촉각적 이미지와 겹쳐져 다가온다. 작가는 유년의 기억 속에 자리한 풍경들 중 특히 바람의 느낌과 노을의 색채에서 독특한 추상성을 발견하고 이를 촉각적이며 동시에 시각적인 '공감각적' 시각 안에서 숙성시키고 발효시킨다. 무엇인가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현상이 묘한 지점의 어떤 것으로 변화한다. 작가는 한국적인 전통을 씨줄 삼고 현대적인 당대성을 날줄 삼아 매혹적인 창조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그림은 작가의 신체와 시간이 화면이라는 공간에서 삶의 자취로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 작가는 자신의 화면, 공간에 유년의 기억이나 지난 생의 추억과 이런 저런 생각들을 그림의 재료들로 번안하고 이를 충실하게 기록했다고 한다. 그 조각조각들은 시간과 기억의 편린들을 머금고 있는 단위들이다. 현재가 감각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과거는 오직 기억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기억의 형태로 가슴 속에 저장된 제주의 풍경이 작가의 작품 구석구석에 숨겨놓은 환상의 원천이 된다. 이것이 조기섭의 작품이다.
조기섭은 자신이 화폭 앞에서 '타인에 의한 일탈'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타인에 의해 변화되어지는 고향의 풍경, 그들의 필요에 따라 재수정어 되어 일탈이 번복되는 풍경들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희망한다.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닌 일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제주의 거친 풍광과 그 안을 살아가는 생명 있는 것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라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작가는 그 소리를 화폭에 토해내듯 다시 펼쳐 낸다. 화산섬 제주의 자연이란 더 이상 유유자적(悠悠自適)의 대상이 아니다. 타인에 의해 자본화되어지고 있는 땅, 자본화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동물들... 「황금이 되고 싶은 말'과 「부엉이 탈」, 「뽕짝」, 「망부석」, 「토끼부인」등에서 나타나는 동물들은 더 이상 동물원의 주인공들이 아닌 것이다. 생태적인 습성의 동물적 본능을 넘어선 21세기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화려한 실리성, 이성적인 습성을 다채로운 아크릭컬러를 통하여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변형된 캔버스(Shaped canvas)'의 모습으로도 다가옴에 주목해 본다. 전 회화사에 걸쳐 사용된 캔버스 형태가 전통적으로 편평한 직사각형이긴 했지만 다른 형태들 이를테면 정사각형이나 다이아몬드 형, 원형 혹은 십자가형 등도 이용되어 왔다. 중세 고딕의 회화에서부터 큐비스트, 잭슨폴록, 바넷뉴먼 등과 같은 현대작가에게까지 변형된 캔버스는 작가들에게 여러 가지로 활용되었다. 회화의 장(field)속의 비정형적인 형태가 바로 그 회화의 장을 지배하는 패턴의 기능까지 수행한다. 바로 이점에서 조기섭은 캔버스라는 형태와 회화 속의 이미지가 서로 일치하도록 하는 장치를 원형캔버스를 통해 하는 것이다. 평면위의 형상은 이론적으로 비물질화 된 순수한 시각작용의 대상인데 반해 캔버스는 엄연한 3차원의 물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순수성과 물질성을 한 곳에 집약시키는 시선을 통해 조기섭은 무엇보다 객관적인 회화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제주의 풍경은 작가에게 큰 바람의 길목에 자리한 섬, 화용암 분출에 의해서 형성된 돌의 땅, 그 기슭을 밤낮으로 부딪치는 파도의 아우성이 어우러져 대자연의 웅대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그런 자연이다. 작가는 그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화면에 표상해 그리고 있다. 사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그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삶의 풍경, 그 흔적으로 생성된 현무암의 듬성듬성한 성김의 표현은 때로는 세밀한 터치로 작은 생명의 얼개를 잡아내고 때로는 싸리비로 내리친 것처럼 바람의 위세를 표현해 낸다.
이상에서 보듯 조기섭의 작품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와 그 자연에서 발견한 순리적인 순환 그리고 그것을 다시 화폭에 표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완성된다. 작가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제주의 자연은 그에게 이러한 노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작가는 이를 겸허한 태도로 수용하려 한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도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하고 자연적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조기섭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시대에 대한 치열한 성찰의 태도를 동시에 견지하고 있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강민영
Vol.20110822b | 조기섭展 / CHOKISUB / 曺基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