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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809_화요일_06:00pm
후원 / 경기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수원미술전시관
관람시간 / 10:00am~07:00pm / 8월19~21일 휴관
수원시미술전시관 SUWON ART CENTER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송정로 19 Tel. +82.31.243.3647 www.suwonartcenter.org
우울한, 불편한 표정의 자화상 ● 구교수작가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2002년 초여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기찻길 플랫폼에 건조한 표정으로 서있는 두 인물과 건물의 벽 사이에 끼어 얼굴을 내민듯한 개의 모습이 한 화면에 짙은 청회색톤으로 담담하게 표현된 그림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으로 청춘의 열병을 앓고 있던 나의 우울했던 심리와 맞아떨어졌는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런걸 보면 그 작품이 내게 준 인상은 꽤나 강렬했던 것 같다.
작가는 그 이후에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개(dog)"를 작품의 소재이자, 주인공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그가 왜 그토록 "개(dog)"를 고집스럽게 그리고 있는가에 대한 답은, 내가 처음 봤던 작업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세상에 대한 편견이나 상처가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동물을 기르고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꽤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체험이다. 뿐만 아니라, 애완동물은 친구 이상의 관계를 넘어서는 어떤 큰 애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이나 개가 주는 친밀함과 교감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을 키워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와의 깊은 인연이 구교수작가에게도 3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개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친구나 가족같이 특별한 애착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개와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이 누적될수록 그 애정의 깊이는 깊어지게 마련인데, 3번 모두 그들과의 이별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이 작가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게 되었고, 아픈 기억이 작가에게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작품의 주제로 나타나게 된 것 같다. 또한 작가는 스스로를 오래된 물건이나 기억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향의 사람이라고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년시절 개와의 특별했던 추억은 성인이 된 지금에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과의 추억이나 아팠던 기억이 작가 개인의 무의식 세계에 각인되어 지속적으로 작업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 ● 이러한 구교수 작품에 등장하는 개는 어린 시절의 친구인 동시에, 현실세계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자화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미래에 대한 아득함이나 불안함, 또한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는 여러 욕망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비주류작가일 수밖에 없는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이라고도 작가는 고백한다.
2000년대 초반의 작업이 "미래주의(futurism)"의 "시간성(Temporality)"에 대한 관심으로 출발했다면, 이후에는 아크릴물감을 이용해서 좀 더 밝고 명랑하며 산뜻한 색으로 이미지를 구사했다. 또한 이미지 처리에 있어서 단순한 검정의 윤곽선을 그음으로써 팝(pop)적인 작품을 선보인바 있다. 이러한 변화를 거쳐 근작에서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이용해 두꺼운 마티에르를 살려 물성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물질감을 극대화한 "Dog연작시리즈"를 펼쳐내고 있는데, 작품의 소재는 예전과 다름없이 "개"이다. 이러한 구교수작가의2010년 하반기부터 진행된 작업시리즈에서는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풀어내고 있는 듯 보인다. 회화(painting)라는 것이 원래 3차원의 공간의 것을 2차원의 납작한 평면에 그려냄으로써 눈의 망막에 환영(illusion)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시각에 호소하며, 물감덩어리를 이용해 눈속임을 감행하는 것이 회화인 것이다. 그래서 캔버스에 올려진 것이 결국 물감덩어리일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회화의 매력인 셈이다. 구교수작가는 이처럼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동시에, 자신의 자화상을 대리적 자아인 개로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Dog연작시리즈" 전시작품들은 다채로운 색감과 마티에르 표현이라는 것을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이러한 근작들은 회화이면서도 부조적인 층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구교수의 회화적 부조, 부조적 회화는 캔버스에 붓터치로 물감을 얹어낸 화면이다. 작가는 캔버스 표면에 붓을 이용해서 두꺼운 물감을 발라내고 있는데, 이때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작가는 다양한 시점에서 따라 달라지는 화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유화(oil painting)라는 안료가 지닌 물성을 극대화시키면서도, 두꺼운 물감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틈 사이에는 빛과 어우러진 다양한 층위를 생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감덩어리들은 빛과 만나 다양한 음영을 생성하게 되고, 보는 각도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평면적 공간 안에 공간감과 입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이 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장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개들의 종류와 모습은 다양하나, 작품에는 신체의 일부가 대부분 은폐된 이미지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라든지, 커튼 뒤에 반쯤 몸을 숨기며, 소파 밑의 어두운 곳에 얼굴을 감추고 있는 상황들이 그것이다. 또한 어두움 속에 있는 개는,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빛으로 그나마 그 형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숨어 있는 개들의 이미지는 깡통 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기존 작업과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구교수작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에 완전히 안착한 채 살아가지 못해 불안하고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자신의 심리를 개를 통해 표현했으며, 혹은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비주류작가들에 대한 연민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 또한 안경 쓴 개들의 모습의 작품도 몇몇 눈에 띈다. 작가는 눈이 좋지 않아 늘 눈이 피로하다고 하는데, 안경 쓰는 것은 더욱 불편하고 거북스럽다고 한다. 또한 편안한 옷차림을 주로 착용하는 작가입장에서는 넥타이를 매는 것은 고욕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원하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은 법이다. 이처럼 불편하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로 고민하고, 불편해 하는 작가 개인의 모습을 "안경 쓴 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구교수작가는 계속 고민 중이다. 예술과 현실, 예술가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이러한 고민은 평생 지속될지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난제"인 셈이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있을 것이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으며, 어쩌면 죽을 때까지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삶이란 원래가 문제로 가득한 것이므로. 이러한 예술가와 작업, 혹은 불편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구교수는, 예술로 더욱 깊게 몰입함으로써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교수작가 스스로가 그리는 이러한 우울하고 불편한 표정의 개그림들은 어쩌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비주류작가들 전체의 자화상이 아닐까? ■ 고경옥
현재 나는 작품을 구상함에 있어 물감덩어리의 마티에르와 그 마티에르를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다채로운 색감의 변화와 깊이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작업 속에는 붓터치로 인해 생성된 두꺼운 물감 층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입체적 공간들이 생성이 되고 그 공간들의 표면에는 다시 빛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세분화되어 무수히 많은 색감들이 녹아들어간다. 붓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질감의 물감 층은 마치 부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품을 앞면 한 각도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多)시점에서 보이는 다양한 관점을 연구하여 평면공간에서 입체적 시각을 표출해 보는 이로 하여금 좀 더 깊이 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하고 있다. ● 작품에 지속적˙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개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개는 90년대 말부터 꾸준히 나타나는데, 개의 종류는 매번 다르다. 그러나 여기서 작가가 그리는 개의 종류는 상관없다. 개는 다름 아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 자신의 불편한 자화상이며, 늘 불안을 품고 사는 젊은 작가들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이건, 중년의 작가이건 그림을 지속하기 위해 부딪히는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이는 풀어야 할 인생 일대의 숙제와도 같다. 미술계의 중심에서 논의되고 주목 받는 소수의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삶은 늘 이렇게 치열한 생의 한가운데 내던져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택한 작가들에게선 일반인들이 누리는 삶의 안락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삶과 작업을 동시에 누리기엔 아직 우리의 예술계는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상의 삶이 현실인지, 작가로서의 삶이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 모호한 경계에 서서 부유하고만 싶어지는 것이다. ● 시각예술을 창작하는 작가에게 있어서 그들의 언어는 작품 그 자체다. 글쓰기나 대화보다는 그리기를 통한 소통이 작가에게는 쉽고 편하다. 나 역시 작품을 통해 열린 소통을 시도한다. 지금은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갈등하지만, 이 고난을 딛고 언젠가는 나의 꿈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 구교수
Vol.20110809c | 구교수展 / GUGUOSU / 具敎守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