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706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구자천_김덕기_김동영_김미경_김미옥_김섭_김정희_김현석_김현희 박은숙_박희숙_방효성_방희성_변영혜_송지연_신유라_심정아_연위봉 이경림_이경재_이서미_이석우_이규홍_이영신_이지은_이희진_이효임 오진_우명하_정경미_정해숙_정희석_조혜경_채은미_채창완_천동옥 최순민_최영걸_최찬미_최진아_하명복_한은애_허은영_황진현_홍푸르메
주최 / 아트미션(www.artmission.co.kr)
관람시간 / 월~토 10:30am~06:30pm / 일 12:00pm~06:30pm
갤러리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예술의 New Horizons ● '교감형' 작품 아트미션은 크리스천 미술가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조형이념으로 묶인 단체라기보다는 기독교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가들의 모임으로 친목 성격이 강한 화수회적 모임과는 구별된다. 아트미션은 지금까지 열세번의 정기전을 가졌으며 매년 연말에는 자선전을 개최하면서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고 있다. ● 흔히 종교적 성향을 띤 작품이라 하면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란 선입견을 갖기 쉽다. 왜냐하면 종교적 도상만을 내세우거나 '교감형' 보다는 '주입형'의 태도가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적 예술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술작품의 근간인 조형적 부분을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 아트미션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종교적 예술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로 평가되기를 원한다. 신앙인의 한명으로 하나님이 주재하시는 세상을 바라보고 실어냈다는 뜻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들이 그랬고, 19세기 허드슨 리버스쿨이 그랬듯이 그들은 신앙의 눈으로 본 것을 표현하여 값진 예술적 성과를 성취하였다.
모든 것의 중심에 교회가 있었던 시기에는 예술가가 교회를 위해 일했다면, 현대의 기독작가들은 공동체안에서 예술적 창조력을 발휘한다. 종교개혁 이후 예술이 교회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이유도 있지만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 성경의 취지에도 맞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기독 미술인들의 고민이 생겨났다. 어떻게 기독교 정신과 시대의 문화를 조율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만일 신앙적 부분만 강조하면 문화적으로 뒤쳐질 것이고 반대로 문화적인 부분만 강조하면 심장과도 같은 신앙적 부분이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내력을 갖고 들여다 보아야할 사안이지만 아트미션의 작가들은 내용적으로는 기독교 영성을, 형식적으로는 현대미술의 다양한 수법과 양식을 취한다. 기독교 영성이 예술적으로 구체화하되 오늘날의 문화적 맥락과 보조를 맞추어 거리감을 줄이려는 태도는 바람직해 보인다. ●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대체로 소박하고 잔잔한 편이다. 작품안에는 기본적으로 내적인 평화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감사와 기쁨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획일적인 종교적 도상 대신에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테마들과 참신한 발상으로 이루어져 친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실 이런 시도는 작지만, 의미있는 진전이랄 수 있다.
지배적 담론의 허실 ● 그동안 기독미술은 경건을 앞세운 나머지 이른바 '수도원주의'에 갇혀 있었던 것같다.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발을 묶어놓고 오직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데에 힘써 상대적으로 세상사에는 소홀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시도 자체를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은 기독교가 아직 문화적으로 뒤쳐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기독문화는 세상과 등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처럼 인식되었다.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의 지적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안목은 슬프게도 편협했다. 그들이 공격의 포화를 퍼부은 대상은 언제나 속되고 성적인 것들이었다. 거룩함의 추구에 매달리는 동안 세상은 그들이 우려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우 혼란스럽다. 인종 문제, 심각한 지구환경 문제, 지나친 시장주의, 테러와 전쟁, 등골이 오싹한 각종 범죄 등. 그리스도인들의 '터널식 시각'은 현안문제를 방치하면서 화를 더 키우는 식으로 치달았다. ● 그러나 이 문제와 아울러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의식의 피폐화'일 것이다. 미술의 문제는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각하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사태가 악화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해부용 시체를 찍은 수 폭스(Sue Fox)의 사진에서 우리는 부검단계에서 잘리고 검사된 후 남겨진 시체들과 마주하게 된다. 의사들은 죽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부검을 하지만 수 폭스의 사진에서는 절단되고 파헤쳐진 시체를 미적인 즐거움을 위해 마주하게 된다. 릭 깁슨(Rick Gison)은 진짜 태아를 마치 귀걸이처럼 마네킹의 귀에 걸어놓았으며, 마커스 하비(Marcus Harvey)는 아동 살인죄로 무기징역에 처해진 마리아 힌들리의 대형초상화를 전시하기도 했다.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성모 마리아」는 포르노잡지에서 잘라낸 나체 사진을 콜라주하여 논란을 빚었다.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실제 해골에다 다이아몬드 200억원 어치를 장식해 극도의 허영심을 발휘했다. 인골을 훼손했다는 것도 그렇고 싸구려 키치에 불과한 작품을 「신의 사랑을 위하여」로 부풀린 것은 너무나 유치하고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형상화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바니타스'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본래의 의미를 변질시키려는 견강부회(牽强附會)에 다름 아니다. ● 그런가 하면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게 한다. 세 폭으로 제작된 「십자가책형」에서 그는 인간을 "분노와 고통에 의해 움직이는 살아있는 고기, 부패한 살덩이"(Mattew Kieran)로 묘사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대신 그의 그림에는 동물같은 형상이 나타난다. 왼쪽에 있는 형상은 의인화된 동물로 테이블 위에 웅크린 채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있으며, 두 번째 형상은 새의 몸통에서 갑자기 머리가 튀어나와 천으로 눈을 가리고 고통스러운 듯 입을 벌리고 있으며, 왼쪽에 있는 형상은 소의 몸통에서 뻗어나온 입에서 치열이 다 들어나 보이도록 흉직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두려움과 공포, 소외와 불안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이렇듯 현대미술에서는 죽음과 고통은 있으나 그에 대한 아무런 연민도 없고 기초적인 이해도 없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일말의 감정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전에도 십자가 책형이라는 주제는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다루어져 왔다. 역대 화가들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메시아의 죽음이 인류를 위한 죽음이었으며,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사랑과 헌신에 주목하였다. ● 그러나 근래에는 오히려 죽음 자체를 즐기는 '가학적 쾌락'이 판을 치고 있다. 그것은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레온티온(Leontion)처럼 대학살 현장을 지나면서 '사랑스러운 광경'이라며 섬뜩한 미소를 흘리는 것과 흡사하다. 수천년이 흘렀건만 이런 병리현상이 좀비처럼 되살아나 현대예술에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레온티온이 무수한 시체에서 불온한 쾌락을 얻었듯이 현대작가들은 무섭고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특질들이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거꾸로 사람들은 이들을 특별한 존재로 추앙할 뿐만 아니라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것은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예술이 출현할 때마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것을 '현대예술의 유일한 열쇠'(Mattew Kieran)로 특징짓고자 하는 충동이 조장되며, 사람들은 이것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엽기'와 '충격'을 자신의 브랜드로 삼는 작가들도 있다. 충격은 표현수단의 하나이긴 하나 의미를 결여한 충격은 부질없는 뒷북치기에 불과할 따름이다. ● 과연 이런 현상이 바람직한 걸까. 엽기적 행각이 버젓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악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은 현대예술이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끔찍한 사례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자유 ● 현대미술의 지배적 담론들에는 핵심적인, 그 무엇이 빠져 있다. '자유'의 개념이 그것이다. 현대미술가들은 무엇으로부터 일탈해야 한다는 사고의 말뚝이 단단히 박혀있는 것같다. 종교로부터의 자유, 역사로부터의 자유, 과거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그들은 늘 기존의 것을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일탈'과 '위배'가 궁극의 목적이 된다면 과연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 과연 진정한 자유의 개념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단서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며 자유를 누리라고 명령하셨는데(갈 5:1) 이 말씀은 우리를 얽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풀어주려는 것이다. ● "사랑하라는 명령은 자유를 위한 기초를 제공해준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 이웃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올바른 자유를 누리도록 함과 동시에 이웃에게 유익이 되도록 우리의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은 그 가능성들을 감사하게 활용하며 폭군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그것들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Hans Rookmaaker)
인간 문화의 광대한 전 영역은 역사의 변덕이 빚어낸 임의적인 변종들로 이루어진 장관도 아니고 자율적인 자아가 창조적으로 이룩한 영감적인 파노라마도 아니다. 로크마커에 의하면, 그것은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이로운 지혜와 우리의 임무가 이 세계 안에서 갖는 심오한 의미를 드러내준다. 창조의 개발과정은 생물학적인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책임있는 개발의 과정이자 신실하게 창조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가고 닮아가는 과정이다. ● 만일 진정한 자유인이라면 우리는 세상에 사랑을 공급하고 평화를 주며 소망있는 삶을 보여주는 일에 지금이라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던져 인간을 보살피고 구원하셨듯이, 세상을 섬기는 자세가 자유인에게는 요망된다.
성경에서 그 점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성령의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6장 22절에는 성령의 열매를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로 표현하고 있다. 전공서적에는 나오지 않는 생소한 언급이다. 이것은 목자가 양무리를 몰고가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도자인 성령은 우리를 선도하여 육체의 소욕을 끊고 우리 속에 거룩한 하늘의 소망을 갖게 함으로서 위의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나무가 수맥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듯이 성령을 통해 나아갈 길을 제공받는 것과 같다. ● 아트미션이 주제로 내건 '뉴 호라이즌'이 함축하는 내용은 이런 맥락에서 '자유의 지평'을 활짝 여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나르시스처럼 자기 안에 갇힌 자가 아니라 사랑의 기초위에 서서 자연세계와 인간세계를 정원의 관리자처럼 잘 돌보고 관리하는 입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구절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처럼 "보시기에 좋았더라"란 말씀을 되풀이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 분이 흡족하게 바라본 풍경은 '하나님의 법'이 통치하는 완전한 세상을 가리킨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세상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법'이 통치하는 세상이 아닐까. 현대인들은 실체가 이런 법에 근거해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기 때문에 진정한 근원에서 분리되어 적극적인 목적이나 의도가 없는 우연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마치 은하계의 행성이 궤도에서 튕겨나가 행방이 묘연해진 것과 같다. 창조주가 지으신, 사랑으로 충만한 세상을 물려받은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보존하고 만일 그속에 얼룩지고 손상된 부분이 있다면 닦아내고 치유할 임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이번 전시의 테마 '뉴 호라이즌'에서 우리는 현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예술에 약간의 수정이나 첨부가 아닌,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관점을 일컫는다. 예술의 담론에서 사랑과 진리가 송두리째 뿌리뽑혀나간 상황에서 '뉴 호라이즌'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안이다.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은 유난히 빛나게 마련이다. 그 빛이 있기에 삶에 소망이 심어지고 내일을 꿈꿀 수 있다. 피폐해진 예술계 속에서 아트미션이 청지기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서 유익을 끼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유산을 만들어갈 것을 기대한다. 글을 마치려니 불현듯 정현종의 「섬」이 생각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누군들 그 섬에 가고 싶지 않으랴. ■ 서성록
Vol.20110706h | New Horizons 새로운 지평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