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가 없어지는 덩어리

함미혜展 / HAMMEEHYE / 咸美慧 / painting   2011_0705 ▶ 2011_0711

함미혜_현기증 I'm dizzy_장지에 수묵채색_193×130cm_2011

초대일시 / 2011_0705_화요일_06:00pm

후원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관람시간 / 10:30am~06:00pm

서울대학교 우석홀 WOOSUK HALL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 56-1번지 서울대학교 종합교육연구단지(220동) B1 Tel. +82.2.880.7480

그런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운, 그것을 꺼내 보기. ● "거기", "당신의 덩어리", "그런 것" ● "내가 –을 하도록 해 줘." (목적어가 생략된 채) ● "구멍 안에서 노는 중" (역시 목적어가 생략된 채) ●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함미혜 작업의 제목들이 야릇한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계단을 내려와 마련된 반 지하 같은 공간이나 붉은 빛의 커튼, 소파, 욕조가 놓인 숙박시설을 연상시키는 폐쇄된 공간은 그러한 상상을 더욱 자극한다. 또한 먹 색 사이사이를 비집고 스며 올라오는 듯 한 네온 색 조각들은 화려하지만 비밀스런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렇듯 함미혜 작업의 특정 요소들은 관람자가 '그런 쪽'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해 보이지만, 그 외에 흐트러진 단서들 중 작업의 핵심을 파악하기에 확실한 것은 없다. 가능성은 세 가지; 작가 스스로가 핵심 찌르기를 두려워하고 있거나; 혹은 교묘히 피해가고 있거나; 혹은, 핵심이 없거나.

함미혜_거기, 당신의 덩어리 Somewhat Somewhere_장지에 수묵채색_193×130cm_2011

함미혜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형태는 외피가 벗겨지고 혈관이 노출된 듯한 신체, 또는 그러한 신체의 일부처럼 보이는 형상이다. 이러한 비 정형적 덩어리들, 어느 부위인지 알 수 없는 절단된 부분들은 서로 엉키고 뒤죽박죽이 되어 또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적어도 신체는)성숙한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데에서 오는 쾌감의 어지러운 향처럼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을 점진적으로 띄면서 섞였다가 풀어지고, 하나가 될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따로 찢어져 신음하는, 하나가 둘로 갈라지는 과정 같기도 하다. 비교적 알아볼 만한 모양을 한 덩어리들 외에 핵심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단서들은 그런 모든 행위 이후에 남는 부스러기, 또는 찌꺼기의 모습을 하고 소란스럽게 그 주변을 배회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미 에너지를 소진한 뒤에 '남겨진 것들'에 대한 것이고,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함미혜의 그림은 억눌린 욕망에 대한 분출이라기 보다는 (어떤 경험을 통해서건)해소된 쾌감의 부산물들을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함미혜_Playing in the hole_장지에 수묵채색_260×193cm_2010

이러한 재확인 과정에 있어서 함미혜는 대상을 단순 명료한 형태로 기록하거나 그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는 쪽 보다는 빗자루의 지푸라기나 종이 조각을 구겨 으스러진 부분으로 화판을 쳐 대는, 무의식적 움직임을 향한 노력을 그 수단으로 택한다. 다소 모순적이여 보이는 '무의식적 움직임을 향한' 행위는 함미혜가 오랜 시간 동안 길들여져 애써 통제하지 않아도 관성적으로 정리된 선이 나가는 상황을 다시 통제 하고 싶어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몸이 가는 대로 두고 싶어하는 머리와는 다르게, 몸은 이미 생각 없이도 정제되고 교육된 정도(正道)의 선을 긋고 있는 이 지점은 어떤 경험을 앞두고, 또는 경험 도중이나 그 이후에 함미혜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상황들과 닮아 있다. 몸이 원하는 대로 하자고 생각하지만, 몸은 이미 의례 있어야 할 위치와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찾고 그것을 지키고자 힘쓰는 것. 거기서 오는 충돌이 자꾸만 핵심이라 생각되는 무언가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한다. 이 방해물들이 무엇인지 꺼내서 확인함으로써 통제하고 싶은 것, 그것이 이러한 재확인 과정의 목적이다.

함미혜_마음 속에 가끔 그런 것들이_장지에 수묵채색_각 53×45.5cm_2011
함미혜_마음 속에 가끔 그런 것들이_장지에 수묵채색_각 53×45.5cm_2011

막다른 분홍색 길에 놓인 벤치에서 끈적거리는 소용돌이로 엉켜버린 덩어리를 쥐고 앉아있는 그림 속 모습은 함미혜 자신의 모습으로 보인다. 불안정한 어떤 것,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확인하고 싶은, 확인하는 과정에서조차 자꾸만 변해서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헷갈리는 덩어리들은 어느새 그 자체가 움직이는 몸이 되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뜨면 보일 것 같고 분명히 무언가 느껴진다는 확신이 서지만, 눈을 감아버리고, 믿으려 하지 않고, 설사 있다고 해도 들키기 싫은 것. 그런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꺼내기 힘든, 뚜렷이 뭐다 할 핵심이 없는 "감정" 이라 불리는 것들이 함미혜가 끊임없이 관찰하는 대상이자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일 것이다. ■ 전인미

Vol.20110705c | 함미혜展 / HAMMEEHYE / 咸美慧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