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62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1층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함축과 은유로 관조되는 인간의 삶 ●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의 동기와 단서를 유발하는 것은 실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일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포착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형태, 혹은 색채 등 다양한 조형적 수단을 통해 표현되어 화면을 구축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함과 불특정함이 어쩌면 회화라는 형식이 지닌 장점이자 특질일 것이다. 그것은 보는 이의 상상과 해석에 따라 무한한 증식과 변주를 이루어 내는 유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허인숙의 작업은 다양한 이미지들로 점철되어진 복합적인 화면이 특징이다.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이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을 지시하고 있지 않음이 여실하다. 구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복합적인 화면의 구조는 그것이 고전적인 구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 형태와 색채 등 복합적인 요소들의 대비와 충돌을 통해 불특정한 감상을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화면은 합리성을 전제로 한 것이거나 특정한 원칙이나 규율에 따른 것이 아니라 분방하고 다변적인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작가의 작업을 견인하는 가장 근본적인 조형요소인 셈이다.
작가의 화면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들은 현실과 이상, 관념과 실재 등 다양한 요소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비와 충돌, 역설과 모순의 구조를 통해 작가의 내면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일상의 평범함과 그 평범함 속에서 포착된 사유와 사색들이지만 이러한 변환의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시각적 자극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대비가 단순한 가시적 이미지의 정형화된 가치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변환과 도치의 설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작가는 기성의 이미지들이 지니고 있는 고착화된 내용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화면에 자리 잡게 함으로써 내밀한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면 속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은 분방하고 불규칙하며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시각과 감성을 자극하여 또 다른 공명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함축과 은유, 그리고 대비와 충돌을 통한 암시의 상황 설정은 어쩌면 풍자와 해학의 은밀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작가는 일상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표현하고 이와 대비되는 돌발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이를 관조하는 자신의 사유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과장되고 수식되어진 것이 아니라 즉발 적이고 순간적이며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음이 여실하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아마 탐욕과 욕망 등의 세속적 가치는 물론 생사의 심각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포괄하고 있다고 읽혀진다. 작가의 화면에 나타나는 신성의 종교적 이미지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러한 이야기를 견인하는 수단이자 도구이며, 현실계의 현란한 색채 표현 역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목적이 아니라 이면의 음습함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인 셈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은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차가움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화면은 은근하고 잔잔한,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성으로 이들을 수렴해 내고 있음이 역력하다. 현실을 직시하고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에 민감하게 작용하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온유한 것이다. 또 은유와 함축을 통한 풍자와 해학으로 일상을 관찰하지만 그 자신이 시비에 듦을 경계하며 한 걸음 물러난 관조의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화면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토기의 이미지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많은 생명체 중 여리고 유약한 토끼를 선택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또 여린 토끼를 강한 금속성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풍자와 역설의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토끼는 작가가 설정한 다양한 모순과 충돌의 공간에 자리함으로써 작가의 사유를 대변하고 있다. 그것은 주도적으로 상황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수동적이며 소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참여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의 견해를 지니고 있는 의미 있는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작가가 외부 세계의 다양한 상황을 바라보는 사유와 사색의 구체적인 모양일 것이다.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작위적인 채움이 합리라는 이름의 현실적 가치라면, 비움은 그러한 가치에서 벗어난 형이상학적인 것으로의 접근이다. 작가의 작업은 분명 일상에서 비롯된 다양한 단상들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것이다. 일견 분방하고 다양한 내용들을 포괄하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귀결은 어쩌면 비움으로써 오히려 더욱 충만해지는 오묘한 설정이 아닐까 여겨진다. 역설과 풍자, 대비와 충돌의 화면은 결국 특정한 가치를 드러내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병치시킴으로써 공명을 더욱 증폭 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절실해지고,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강렬해지는 비움의 미학이다. 일상에 기초하지만 일상의 상투적인 가치에서 벗어나고, 세속적인 것을 표현하지만 그것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주관적 가치를 드러내는 작가의 화면은 어쩌면 허허로운 공(空)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에 대한 애잔한 시각,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로병사를 비롯한 다양한 사연들을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관조함으로써 얻어지는 명상 같은 시각과 사유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의 작업이 단순히 이미지의 규정된 의미로만 읽히지 않고 다양한 사유를 유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특질일 것이다. ■ 김상철
Vol.20110629j | 허인숙展 / HUHINSOOK / 許仁塾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