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희展 / CHAWONHEE / 車原嬉 / mixed media   2011_0623 ▶ 2011_0714 / 일요일 휴관

차원희_Present_혼합재료_40×15×17cm_2009

초대일시 / 2011_0623_목요일_05:00pm

"SPRING UP!" MENTORING PROJECT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캔 파운데이션 주최,주관 / (사)국제시각예술교류협회 CAN Foundation

세미나 / 2011_0623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스페이스 캔 Space CAN 서울 성북구 성북동 46-26번지 1층 Tel. +82.2.766.7660 www.can-foundation.org

차원희 작가는 2007년도에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소과에 재학 중이다. 작가는 인간 본연의 끝없는 욕망에서 파생되는 소유욕과 그의 이면의 희생을 통해 인간의 모순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그로 인해 반복적으로 소비되어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실상을 작업을 통해 우회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소비사회'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를 통해 사람들은 제품을 사는 것 아니라 기호와 욕망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비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한 원동력이며 나아가 소비주의가 일상의 다양한 측면을 지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내는 욕망에 따라 소비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욕망에 휩싸여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복합적인 존재이다. '욕망'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자발적, 주체적이 아니라는 것과 소비사회를 강화하는 것 이라는 사실이다. 욕망은 자유의지의 발로가 아니며, 남의 욕망을 내 것으로 착각했거나 무의식적으로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 이에 차원희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충족에 초점을 맞추어 탐구해나간다. 또한, 더 나아가 소유하고 애착 했던 것들이 제 기능을 잃고, 쓸모 없는 것들로 취급되어 버려지고 희생되는 것들에 대한 연민을 주제로 설치, 조각, 콜라주, 프린트 기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작업에서는 항상 새롭고 다양한 것에 노출되어 또 다른 새로움에 대해 추구하고자 하는 열정과 욕구를 보이는 현대인의 내면의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새로운 것을 획득했을 때 잠시 느껴지는 만족감과 함께 따라오는 더 큰 허무함과 공허함에 대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외로운 현대인의 이중적인 모습) 작품을 통해 표출한다.

차원희_Untitled_혼합재료_250×130×7cm_2010

차원희 작가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색감이 화려하고 재료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Embedded」은 석고 덩어리와 패턴이 강한 천 조각에 분홍색 나무 의자 형태를 띈다. 이는 여성성과 장식성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여성의 소비 욕망 속에 들어가있는 인간의 자기 과시와 내면적 희생이 작가의 주제와 의미를 전달하기에 도움이 된다. 또한 「Untitled」은 반짝거리는 깨진 유리, 혹은 거울같이 보여지는 재료로 매끄럽고 차가운 느낌과 함께 그 것을 바라봄으로써 화려함 속에 비춰지는 깨어진 모습의 조화가 모순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대조적인 느낌으로 끈적거리며 토해져 나오는 듯한 밧줄은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나르시즘적인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Present」는 선물의 의미로 많이 쓰이는 꽃다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언뜻 보면 시들고 곧 버려질 꽃다발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양한 칼라의 다양한 사이즈의 비즈가 촘촘히 붙여있는 화려함을 볼 수 있다. 이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이면에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쓸쓸함이 역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콜라주 프린트 작업은 조각과 설치에서 나아가 더 뻗어져 나간다는 확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작업으로 작가의 변화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 인간의 상상력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고, 옛 것을 지키는 일은 뒤쳐지는 일이라는 인식이 만연하게 되어 오늘의 새로움은 내일의 쓰레기로 변모하게 되어버린다. 이렇듯 작가는 인간 본연의 끝없는 욕망에서 파생되는 타자화된 희생과 그 희생을 통해 얻는 인간의 욕망의 모순적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반복적으로 소비되어 사라져가는 삶의 파편들에 초점을 맞춘다. ■ 이혜은

차원희_Embedded_혼합재료_60×120×60cm_2011

"타자들의 대화"마주보지 못하는 주체 - Cheesy한 event들 "현대인들은 외면적으로 개개인이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 보이지만, 우리는 결과적으로 내면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얄팍한 현상 속에서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차원희 작가의 초기 작품들의 의미는 본능적인 갈망으로 순수하다. 작품 「Prsesent」(2009)나 초기 「Red Basket」시리즈(2007-2008)처럼 유아기 시절 반짝이는 물체를 반복적으로 기뻐하며 모으던 행위는 실제로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엄마라는 '타자'의 기쁨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새로운 대상을 만들어 돌려줌으로써 타자를 닮아가는 것이며, 주체 속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타자의 욕망이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형성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렇게 작가는 무의식-의식 저편에 잠재된 현대인 각자의 기억 흔적을 건드린 후, 즉각 역전시켜 현재 내안에 자리 잡은 타자를 마주보라고 자극한다. 한편 「Red Basket」 시리즈나 「Present」의 형상은 소중한 듯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불편한 잡동사니로 보이고, 무언가 대상으로서의 유기체라기보다 무작위로 삼켰지만 소화불능의 욕망덩어리로 보이거나 신체 없는 기관들처럼 보인다. 더욱이 선물인 꽃다발은 죽은듯한 검은 잎사귀에 줄기는 손에 쥐지 못할 정도로 가냘프기만 하다.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피폐하게 스며들 그릇된 타자성에 대한 일종의 강렬한 경고이자 서막이다. ● 서두에 인용한 글은 「Intuition Fifteen」(2008)에 대한 작업노트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Cheesy Event」(2007)를 비롯한 「Overflowing Wall」(2007)에서도 읽을 수 있으며, 현대인의 모습으로 적극 반영되고 있다. 'Cheesy Event', 말 그대로 싸구려이벤트는 화려했던 웨딩케이크의 사용가치를 잃은 후의 처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호화스러움 이면에 감추어진 허탈함을 이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질적인 대상을 소유한 만족감 그리고 이면의 존재, 그 채워지지 않는 원초적인 욕망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욕망의 발로가 어디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에게 '무'란 '주어진 본질이 없다'는 것으로 상정했다. 즉 인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만들 수 있는 자유를 가졌으며, 자신과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고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 도래 이후 어떠했는가. '타자'와의 '차이' 개념을 부각하면서 자유의 욕망과 자신만의 주체적 내면을 긍정했지만, '우리'라는 집단성 때문에 타자와의 차이에 대한 경험을 보여주지 못했다. ● 정신분석에서 욕망의 자유는 타자의 욕망이 되는 것에 있지만, 어쩐지 진정한 자유를 찾는 일은 점점 험난해지고 있다. 오히려 산업자본주의 이후 사회적 타자들이 쥐어준 다양한 선택의 자유는 유행적 소비와 사치, 명예와 권력욕, 속물근성 등 그릇된 욕망 속에서 퇴색되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유행을 하나의 경향이자 소비자가 주도한 흐름으로 착각한다. 단지 산업자본이 투입된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스펙터클한 화려함에 현혹됐을 뿐임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타자의 시선' 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쇼핑몰마다 내건 '추천', 'Best', '인기'라는 단어를 신뢰한다. 어쩌면 사치와 명예욕, 과시 같은 충동이 담긴 바스켓은 결코 비워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 작품 「Embedded」(2010)는 이러한 현상을 재치 있게 쌓아올린 채 비판하고 있다. 물질적 소유 감정이 지닌 다양한 모순성에 주목해보면, 좁디좁은 의자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앉은 무거운 소비욕구들과 그 아래 깔려서도 환호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가련하기만 하다. 반면에 그 뒤에 어린 거대한 욕망의 그림자는 위풍당당함이 그저 악몽이다. 작가의 최근작「Ready-made」(2011) 또한 경쾌하고 강렬하게 의도를 전달한다. 낡은 요리잡지에서 얻은 빛바랜 음식 이미지들과 패션잡지 속 여인들이 보여주는 관능적 섹슈얼리티의 절묘한 조화, 과하게 콜라주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부감과 메슥거림이 타자의 시선 아래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과연 이것이 누구나가 소유하고 싶어 하던 그것인가'를 반문한다. 무엇보다 가벼운 듯 묘한 싸구려 느낌을 통해 소비욕망에 대한 향방을 점검하고 마주서서 주체가 되라고 일침을 가하고 있다. ● 현대철학가들의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라는 지적들을 떠올려보자. 사회적 위계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거나 높이 올라가고자하는 속물근성적인 욕망은 물질이나 권력보다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싶은 애정결핍의 다른 말일 뿐이다. 어느새 사회인이 되면서 갖게 된 '선물(present)'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현재의 무리에서 이탈하면 무력한 고립으로 연결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성립된 그릇된 욕망은 자아와 타자를 마주보지 못하게 할 뿐이다. 가장된 조화를 일방적(강박적)으로 추동하는 사회에서 주체 없는 타자로만 존재할 것인지 진중하게 성찰해야한다. 차원희 작가의 과잉으로 점철된 작품들의 줄기와 다리가 왜 지나치게 결핍되어 있는지, 떼어낼 수 없는 흔적처럼 어둡고 진한 그림자로 붙어 있는지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작가가 고민하고 제시하는 그 너머를 지금부터 관조해보자.

차원희_Ready-made_혼합재료_29.5×21cm×12_ 2011

착시에서 눈뜨기, 소통으로 가는 길목 - 없음(Untitled)의 무한함 ● "지금 본인이 욕망하는 것들은 진정 소망하는 것입니까?" 전시장 외벽 가득 채워져 흐르는 폭포와 같은 검은 기름, 그리고 올곧게 비추지 못하는 거울 파편들의 덩어리가 중간을 가로지른다. 「Untitled」(2010)는 이전보다 더욱 추상적이지만 근원적인 질문이 담겨있다. 분출하듯 토해지는 검은 기름, 어쩌면 주체 본연의 욕망일지도 모르는 그것의 흐름은 끝이 없다. 게다가 그 욕망이 어떤 형태로 갖추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화려한 파편 -수많은 타자들의 욕망일 것이 분명한- 덩어리가 중간을 막고 있어도 변형됨이 없고 그 속도조차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이 두 욕망 뒤편에 떡하니 자리 잡은 불투명하게 왜곡된 거대한 거울, 우리는 이 거울 너머를 조용히 응시해야만 한다. ● 라캉(Jaques Lacan)은 『욕망이론』에서 인간의 '나'라는 개념을 거울에서 형성된 자기상에서 발전해온 것이라 보았다. 즉, 거울에 비친 신체의 통일된 모습은 사회관계에서의 타자의 지각상과 겹치기 때문에 거울상의 '나'는 사회적인 '나'로 방향이 전환된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귀속되어야 할 가치를 타자에게 빼앗기는 것은 물론, 통일체로서의 '나'는 타자 속에 흡수되어 그 속에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차원희 작가의 불투명하게 왜곡된 거울은 이러한 부분을 모두 굴절시키고 있다. ● 기존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Uncanny」(2007)가 보여주던 해체되고 억눌린 채 겹겹이 쌓여있는 욕망으로서의 타자, 혹은 「Thousand Examination」(2009)의 만화경 속에서 천 가지 모습으로 끊임없이 관찰되고 직접적으로 표현되던 타자들과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오늘날의 자아란 욕망에 의해 자아화된 타자들로 층층이 둘러싸인 양파적 구조로 되어있다."고 한 것처럼, 작품들이 혼란스런 타자의 욕망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다면 「Untitled」는 '없앰'으로써 오히려 확장됨을 보인다. 다시 말해, 「Untitled」의 거울은 불투명하게 왜곡됨으로써 거울로서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앞서 말한 타자에게 귀속된 '나'를 전복시키고 소거하고 있다. 만약 이때, 소거된 곳에서도 주체가 스스로의 방향을 잃는다면, 그 자리에 어떠한 타자를 대체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타자 담론의 막막한 구름숲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목을 마주하게 된 지금, 우리는 동양으로 돌아와 장자(莊子)의 철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장자는 타자인 세계(物)와 주체(我)의 문제를 "물아일체(物我一體)"로 풀어낸다. 여기에서의 물(物)은 사물이 아닌 대자연을 의미하며 물아일체는 이상향인 대자연의 타자와 자아가 합일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합일로 가는 지점에 대한 예로 「天地」 편에서 '자아의 층상'을 말하길, "제일 바깥의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형(形)이며, 그 안의 층이 성(性)이라면 제일 안쪽이 덕(德)"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융(Carl Gustav Jung)과 비교하면 형은 의식, 성은 개인 무의식, 덕은 집단 무의식과 어느 정도 상응된다. 즉, '형'은 잘못된 자아가 형성되는 곳이자 우리가 곧잘 자아라고 착각하게 되는 타자화된 자아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성'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근원적 자아가 있는 곳이며 이 근원적 자아는 가장 중심이자 자연에 해당하는 '덕'으로 들어가 도(道), 깨달음(禪)을 얻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라캉 또한 "로마 강연"에서 도교의 선(禪)과 타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동양에서의 자연 개념과 라캉의 이상적 타자가 통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때의 라캉의 타자의 욕망은 자연, 그곳에 귀일(歸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다시 처음부터 되새김해 차원희 작가의 작품들을 떠올려오면, 작가가 이미 실재적 자아의 해체 과정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성을 고민하고, 퇴색된 욕망 아래 떼어지지 않는 자아 본연의 흔적을 새겨왔음을 알게 된다. 과잉과 결핍의 부조화를 위태로운 형상으로 만들어내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물론, 단번에 무화시켜 심연 깊숙한 곳으로 던져 파문을 일으킬 줄 안다. 작가는 오브제와 그림자마다 흔적처럼 곳곳에 '형-성-덕'의 모습들을 은연중에 마주 세우고 있다. 유아기적 본능 안에 숨은 미래의 소유욕, 현재의 가벼운 욕망 안에 드리워진 타자의 그림자, 비워내고 없앰으로써 가득채운 근원적 주체로의 희망, 그리고 우리 자신도 마주 세워 들어가야 할 깨달음의 그곳으로 작가는 끈질기게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 결국 현대사회의 욕망과 소유에 대한 이야기는 진정한 '소망'으로 가는 기대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향유자로서 그 길을 때때로 함께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떠한가. 그녀는 지속적으로 소유와 집착으로 점철된 잘못된 세계(타자)를 진지하게 관찰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폐쇄된 자아의 층을 벗겨갈 것이다. 그렇게 가끔 주어진 본질로 가는 과정을 동행하여 들여다본다면, 어쩌면 실체적인 자아의 끝자락이라도 잡을지 모를 일이다. ■ 김혜영

본인은 주로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욕망과 소유의 문제, 페티시즘(fetishism), 나르시시즘 등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유혹이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경험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광고판에 아름답고 날씬한 여배우의 관능적인 느낌을 살린 청바지 광고, 커피숍에 배치되어 있는 잡지책 속에서 섹슈얼리티를 선전하고 있는 패션 아이템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아무런 경비 없이 현대인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 개개인이 느끼는 유혹들은 충동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고들처럼 무의식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오래된 갈망과 동경의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제 작품 중에 Red Basket(빨간 바구니)은 시리즈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인의 유아적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어렸을 적에 저는 물건의 이용가치와 필요성을 알고 사물을 소유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시각적인 충동으로 사물을 소유하는 행위를 반복하였습니다. 이런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옷장 안에 똑같은 옷이 있어도, 비슷한 제품을 필요 이상으로 또 구입하게 되는 반복적인 행동처럼 말입니다. 앞으로 본인은 기존에 연구해 왔던 주제와 연결해 '개인과 사회적 타자들 간에 성립하는 욕망'과 동시에 '그러한 욕망의 공허함으로써 순환적 반복 구조'를 주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 차원희

"SPRING UP!" MENTORING PROJECT 2011 캔파운데이션(CAN Foundation) 기획 및 주최 하에 이루어지는 "Spring Up!" mentoring project 2011은 한국 현대미술의 진취적 발전은 물론, 전문미술인과 신진미술인의 매개를 통한 올바른 비평적 역할 수행과 바람직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기획된 중장기 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신진큐레이터 지원 및 양성을 첫 시작으로 6개월간 진행되었으며, 추천과 공모를 통해 이혜은과 김소연이 선정되었다. 이들은 공식적인 워크숍을 통해 신진작가 차원희와 김승연를 기획하고 그들의 작품세계와 동시대미술을 전개하였다. 6월23일 실시하는 세미나는 전문 비평가, 기획자,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연구내용을 강화한다.

프로젝트 개요 ◎ 제 목 : "Spring up!" 멘토링 프로젝트 2011 차원희 Won Hee Cha 車 原 嬉 ◎ 전체일정 : 2011. 1. 01. – 7. 31. ◎ 장 소 : Space CAN 1층 ◎ 발표형태 : 워크숍, 강좌, 세미나, 전시, 자료집 출간 ◎ 프로그램 : 1차 워크샵: 2011년 3월 16일 14:00 2차 워크샵: 2011년 4월 19일 17:00 초청강연: 2011년 4월 19일 11:00~13:00 세미나: 2011년 6월 23일 15:00

캔파운데이션(CAN Foundation) 기획 및 주최 하에 이루어지는 "Spring Up! Mentoring project"는 한국 현대미술의 진취적 발전은 물론, 전문미술인과 신진미술인의 매개를 통해 올바른 비평적 역할 수행과 바람직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기획된 중장기 프로젝트이다. "Spring Up!"은 일종의 교류 프로젝트로서 후배예술인들은 일정 프로젝트 기간 동안 작가와 비평가, 이론가, 기획자 등 왕성하게 활동중인 선배예술인들과 만나게 된다. 또한 다양한 프로그램 –워크숍, 강좌, 세미나 및 전시, 자료집 발표 등을 통해 여러 계층의 향유자와 만남을 갖고 양질의 담론을 생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서로의 영향 속에서 시너지를 창출하고 다음 행보를 위한 토양을 다지게 된다. 이렇듯 이번 2011 프로젝트는 기획자와 작가를 양성하고 실험적 기획 활성화와 예술인들의 공생 및 자립적 기반을 구현하기 위한 의의에서 출발하고 있다. ● "Spring Up!" mentoring project 2011은 신진큐레이터 지원 및 양성을 첫 시작으로 6개월간 진행되었으며 김혜영(독립큐레이터)과 민은주(캔 파운데이션)는 멘토로서 프로젝트 전반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참여 맨티(프로테제)는 추천과 공모를 통해 이혜은(호두갤러리 2009, 갤러리 EM 2010)과 김소연(성곡미술관 2007~2009)이 선정되었다. 이들은 공식적인 워크숍 진행 아래 신진작가 차원희와 김승연을 기획 발표하고 그들의 작품세계를 체계적으로 전개하였다. 더불어 국내 첫 개인전을 발표하는 작가들은 담당 큐레이터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 여러 향유자와 교유함으로써 앞으로의 창작세계를 조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 이번 프로젝트에 함의된 또 다른 의의는 새로운 인물을 등용하고, 기존과 다른 실험적 구상을 실현함에서 나아가 작금의 미술현장이 잊은 이상적 희망을 상기하기 위함에 있다. '오늘날 미술시장의 급성장과 위축의 부침 속에서 미술계가 간과하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미술계는 넘쳐나는 미술가와 기획자의 실속 없음을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한탄하며 새로운 발전적 대안과 소통을 촉구한다. 그러나 현실 시스템의 면면 - 여러 예술지원기관 및 미술기관과 향유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명성과 성과, 관람객유치 등 각종 수치에 대부분 의지하고 있다. 아마도 미술 안에 수용되는 거의 모든 주체가 어떠한 '가치'로만 소비되는 것이 통상적이고 편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본질적 문제에 접근하여 반성과 진심으로 마주하는 동시대미술의 장들은, 비교적 협소하고 취약하며, 일종의 바람처럼 지난하고 고되기만 한 이상적 존재일지도 모른다. ● 캔 파운데이션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서로 다른 미디어를 사용하는 예술인들이 연구와 관람이라는 형태 속에서 다양한 결과로 융합하고 유익한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어떠한 가치와 수치로만 측정되는 오늘날의 미술현장에서 작지만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소수자들과 이들의 소신 있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는 작은 길목이 되기를 기대한다. ■ 김혜영

Vol.20110623i | 차원희展 / CHAWONHEE / 車原嬉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