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62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8:00pm
텔레비전12갤러리(현 TV12 갤러리) TELEVISION 12 GALLERY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0-12번지 2층 Tel. +82.2.3143.1210 www.television12.co.kr
특정 장소(a place)에서 벌어진(take place) 환영(phantom)과 환영(welcome) ● 장소는 시간이라는 주제와 상호간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 쌍생아의 주제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 재질에서부터 특정 지역의 문화적 토대, 역사적 지층이 이 장소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서구미술에서 장소가 큰 주제로 자리잡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일차적으로 모든 장소는 그것이 인위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변화한다는 속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즉, 장소란 불변과 반대의 속성을 지닌다. 진실이란 불변하는 것이고, 이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본질(timeless essence)'은 신적인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장소는 언젠가 덧없이 허물어지며 언젠가 사라질 허무(nothingness)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신의 영속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 인간적 산물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주지와 같이 근대 이전에는 하나의 도시가 형성되기까지 아주 각고한 노력과 수세대의 기획이 성쇠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이루어졌다. 이에 반해 현대문명은, 이전이었다면 몇 세대의 명운을 건 기획으로 여겼을 공간이나 장소라는 위대한 개념을 쉴새 없이 부수고 가차 없이 재건하기를 거듭하는 소비적 성향에 포섭된지 오래다. 범속한 대상으로써의 장소는 오히려 현대미술의 주제에 더욱 부응하였으며, 아마도 그것은 시간, 공간, 개인적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실마리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박은영 작가의 일관된 주제가 바로 장소에 관한 것이다. 이 장소라는 문제는 정체성이나 육신, 시간, 언어, 물질, 정신 등과 함께 서구 현대미술의 단골 주제가 되었는데 우리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분단된 역사적 상황뿐만 아니라 초고속으로 변모된 경제, 정치, 문화의 양상들이나 삶의 방식을 보더라도 한국 상황에서 장소라는 문제는 역사적 집단 기억에서부터 개인의 내밀한 정체성까지 건드리는 민감한 상황의식을 전제하기에 매우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박은영의 작업을 기술하기 전에 독일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heim)의 유명한 명제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그는 인간이란 '존재의 사유 구속성(Seinsverbundenheit)'을 지닌다는 말을 제시했다. 이는 사유하는 주체인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자라난 토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며, 자라난 토양의 영향 아래 사유의 구조가 지배를 받게끔 되어있다는 뜻이다. 이 말을 상기시키고 특정 예술에 작용시킬 때마다 강력한 동의 의사가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박은영 작가는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고교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80년대 태생을 가리켜 세계적으로 N세대(Net Generation)라고 부르는데 네트워크, 인터넷 등 발전된 컴퓨터를 일상적으로 능숙하게 다루는 세대를 뜻한다. 우리의 경우는 보다 특수해서 사회적 이슈나 정치사회적 관심보다는 개인의 사적 관심에 몰두하기 시작한 첫 번째 세대를 지칭한다. 즉, 외부사회로 자아를 확장시키려고 하기보다 네트워크나 인터넷, 외국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외부세계를 스스로의 자아 속에 응축시킨 글로벌 마인드를 지닌 세대이다. 또한 비교적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내다 90년대 개방적 문화기류의 열린 가능성 속에서 10대를 보냈고 사회적 진출기에는 경제침체 속에 불안한 미래를 목도한 세대들이다. 도드라진 양극화를 피부로 체념하며 '엄친아'나 사회적 '스펙'이라는 계층분리적 천박한 단어들이 일상이 된 세대들이다. ● 박은영 작가의 경우 역시 사유적 공간을 창안하는데 천착해왔다. 이 사유적 공간은 박은영이 우리 사회 양극화를 상징적으로 체현시킨 가능성 있는 시리즈로 기억된다. 미적인 구조와 긴박하게 과장된 선형이 이루는 팽팽한 긴장감의 형식을 둘째로 미루며 안정된 계층의 삶의 양식이 끝없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불온한 한국판 바벨탑을 연상시켰다. 이번 시리즈는 이전 작업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으며 '환영(phantom)과 환영(welcome)'이라는 거시적 용어로 그 내용이 갈무리될 수 있다. 박은영 작가는 서울에서 작업을 지속하다가 개인적 사정에 의해서 거처를 부산이라는 상당히 떨어진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이성적으로 바라볼 때, 문화적 위상에서나 계층적 구조에서나 또 삶의 방식에서나 차이가 거의 존재할 수 없는 곳이 서울과 부산 사이이다.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물론 특수한 계절적 풍토나 지역적 정서의 특수성은 상존하겠지만 사회학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번 작품 연작에서는 작가가 느꼈을 어떤 이질감과 불편한 느낌이 전반적으로 팽배해있다. 박은영 작가는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독립한 채 사적 공간에서 일상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이전 주인들이 살았던 삶의 흔적들을 채집한다. 같은 주소로 발송되는 서로 다른 이름의 우편물이며 아이들이 붙였을 벽의 캐릭터 스티커들, 파손된 생활도구들을 개선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개선된 부박(浮薄)한 처리들처럼 쉽게 지나칠 일상의 편린들은 사실은 생각해보면 심리적으로 상당한 이질감을 증폭시키는 대상들이다. 장소는 한 개인의 인격과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심미적 메커니즘이다. 영어에서도 무언가 '사건이 발생한다'는 의미는 'take place'이다. 사건(event) 자체가 장소(place) 자체를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이다. 인간의 역사(history) 역시나 하나의 분절된 사건(event)이 중층을 이루어 형성된 시간의 집적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역사는 집단의 기억이자 집단의 의미체계라면, 사건은 개인의 기억이자 개인의 의미체계이다. 과거의 주거양상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대대손손의 집적된 의미의 공간이었다면 요즘 세태의 주거공간은 사고 팔며 이동하는 손쉽고도 극도로 버거운, 천박한 가벼움과 실존적 무게감이 교차하는 격전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에서 강조하던 유목주의(nomadism) 역시 전통과 혁신, 가벼움과 무거움, 대상과 존재, 실존과 부재라는 이치관념(二値觀念) 사이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박은영 작가의 이번 작품 시리즈를 바라볼 때 우리사회의 특수한 유목주의에서 비롯된, 그 살풍경(殺風景, tastelessness)이 연상된다. 삶의 문제들에 맞서는 거시적 태도를 유예하면서 소소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적 관심은 자발적 의지라기보다 시대적 분위기라는 거류에 떠밀려온 피동적 순응이었다. 자유나 인권이라는 거창한 수식어의 무비판적 발현에 앞서 관심과 안온함, 진정성이라는 시급한 단어들이 채 피기도 전에 사라진 시대다. ● 박은영 작가는 위에서 상기한 특정 장소에서 생성되는 온갖 문제점을 환영(phantom)으로 인식했고 또 반대로 이 문제점들을 떠안아야 하는 자기 아량과 책임에 대해 환영(welcome)이라는 인사말로 자기 뜻을 분명히 했다. 슬라이드 영사기로 미끄러지며 투사될 채집된 영상들, 자수(刺繡) 작품들과 가옥과 거울, 그리고 안락의자와 화분이 한데 융합된 배리(paralogism)가 연출하는 강렬한 진실성 등은 박은영 작가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들의 고민들을 수긍하게 만들 것이다. ● 끝으로,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의 '궁극 언어(final vocabulary)'에 대해 상기해보자. 궁극 언어란 지금 세계를 바라보는 최상의 가치로서 자기를 변호하고 증명해줄 기제(機制)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고착화된 불변의 것이 아니라 개인 실존의 상황 여하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될 성질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는 자아를 가리켜 아이러니스트(ironist)라고 명명했다. 박은영 작가는 아이러니스트의 덕목을 잘 갖춘 신예 작가이다. 단순한 형식미와 미적 체험의 자기 변명으로도 얼마든지 꽃피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회색 빛깔에 방점을 찍는 채색으로 그치기보다 오히려 시대의 회색의 의미를 풀어내고 해석하려는 아이러니스트다. 박은영 작가는 라이프스타일에 과잉 몰입하다 매몰되고 마는 유미주의자들과 상궤를 달리하는 반항적 아방가르드의 젖을 먹고 있기에 아이러니스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첫 개인전은 앞으로 굴곡지고 깊어질 그의 도정(道程)의 첫걸음이기에 너무나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다. ■ 이진명
아무도 없는 환영사 ● 익명의 타인과 한 평도 채 안 되는 폐쇄된 기계에 올라탄 나는 거울에 반사된 타인을 관찰하며 지상 수 십 미터 위의 어느 공간에 도착했다. 작게 쓰여진 번호 마지막 자리로 두 개의 출입구 중 그 곳을 찾은 나는 몇 개의 숫자를 입력하여 출입에 성공한다. 신을 벗을까 고민할 여지도 없이 나를 맞이하는 습한 기운. 여러 번 덧발라진 듯 한 벽지와 이곳저곳을 메운 도장 흔적들은 더더욱 적극적으로 나를 맞이했다.
옛 주인의 유품들 ● '가구'라는 이름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구실만 겨우 할 것 같아 보이는 빌트인 수납장들- 씽크대, 신발장, 옷장...에는 옛 주인의 유품들이 마치 기념품인 듯 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옷장 한 켠 몇 개의 옷걸이들, 화장대 구석의 미용 소품들, 베란다 바닥의 빗자루, 그리고 생사를 구분하기 힘든 식물화분. 재사용 혹은 재활용이 가능해 보이는 여러 것들이지만 내 머릿 속을 매우 어지럽혀 주었으니 이미 충분히 사용되었다.
적당한 애착 ● 메뚜기 생활을 해야 하는 나에게 이곳 역시 임시 거주용이므로 리모델링과 같은 적극적인 청소와 치장은 너무도 먼나라 얘기다. 눈시울 뜨거울 정도로 애달픈 현실이지만 한나절 인부 몇 명을 고용하여 먼지 털기와 벽지 바르기 정도로 적당한 애착을 보이기로 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소유주를 배려하여, 아니 눈치를 살펴 가능한 한 개성 없고 착한 색과 모양의 종이들을 고른다.
내 물건 들이기 ● 조금 건조해진 틈을 타 내 물건들로 다시 채우기를 시작했다. 위치를 고민할 것 없이 물건들의 자리는 마치 이름표를 단 양 너무도 착하게 정해져있다. 반나절 만에 자리 잡기를 끝낸 나의 그것들은 원래 그 곳이 제자리인 듯 너무도 편히 쉬고 있다. 비슷한 생활수준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보내기를 반복했을 이 공간은 나의 것들이 특별하지도 않겠거니와 불편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확인 사살 ● 달콤함으로 가득 채운 일주일을 지구 저 편에서 보내고 온 나는 태어나고 자랐던, 30년을 밟았던 도시를 지나치고 공항에서 400킬로미터쯤 떨어진 다른 도시로 향했다. 얼마 전 단장을 마친 새 거처로 말이다. 며칠 사이 새로 쌓인 먼지를 닦고, 혹시 모를 불안감에 한 번 더 쓸고 닦는다. 밖으로 난 모든 창을 열어 바깥 공기를 채워보기도 하고 이곳저곳 진한 향의 비누를 풀고 칫솔질도 해준다.
중독된 장소감 ● 매일 드나들던 커피 체인점, 대형 마트,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수 십 걸음 반경에 즐비한 이 도시에 적응하기 가장 두려웠던 것은 '집'이었다. 아직 나에게 물리적 집(house)일 뿐, 나만의 집(home)이 되지 못해서 일까? 30년을 함께 묵은 그 공기가 가장 절실했다. 알 수 없는 누군가들이 몇 년씩 거쳐 간 이 공간도 아직은 나를 받아들이기엔 낯선 것일까?......욕조에 따뜻한 물이라도 받아 사념 없이 몸을 담그고 싶지만 행여 배수구에서 새로운 손님들이 나타날까 두려워 맘을 접는다. 적응 훈련 ● 숨쉬기 운동을 위해 이 공간 구석구석을 다니며 적응 훈련을 하기로 했다. 벌써 이곳의 기운을 머금은 타올을 들고 얼룩들을 찾아 나선다. 새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지옥 같은 훈련. 하지만 숨을 쉬기 위함이다. 첫 번째 거주자는 누구였을까?...... 여러 번 덧발라진 문 모서리가 유독 시야에 강하게 들어온다. 덧 바른지 며칠 새 베어 나온 얼룩들이 존재감을 확인시키려 한다. 닦고 닦을 수 록 그들이 더 보인다. 따뜻한 향기 ● 적응훈련 수십일 경과- 쓸고 닦기의 반복에 지칠 법도 한 시기임에도 나는 그들을 찾아 나선다. 오늘 만난 그들에게선 달콤한 바닐라향인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박하향 같기도 한 향기가 난다. 내가 뿌려댄 수많은 세제들과 락스향은 꼭꼭 숨은 채, 따뜻한 향기들이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배수구 안 마른 거품에서 나는 계피향에 초점이 흐려진다. 마른 거품은 다시 촉촉이 젖어 흐른다. ■ 박은영
Vol.20110623b | 박은영展 / PARKEUNYOUNG / 朴銀英 / installation.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