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기억 Memory of Air

중첩의 방법을 통해 기록되는 시간의 층 ●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인간의 근원적인 공간체험을 "두루뭉수리의 바탕(an element of voluminousness)", "막연한 펑퍼짐한 느낌(a feeling of crude extensity)"이라는 말로 설명한 일이 있다. 이 두루뭉수리의 바탕은 아마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형상이라기보다는 감각적 인상과 기억과 욕망으로 이루어진 어떤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김우창,『풍경과 마음』中) ● 근원적인 공간 체험, 막연한 느낌, 인상과 기억 등은 이혜민의 작업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단어들이다. 그리고 이 표현들을 가능하게 하는 대상은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던 자연이다. 특히 작가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되는 것을 추구하는 동양의 자연관을 기반으로 하는 가운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작업을 해왔다. 식물의 피고 짐, 구름의 움직임, 눈이나 비가 내리는 기후 현상,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대지와 산 속의 오솔길 등이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형상들인데 이처럼 작가의 눈에 비친 자연은 정지된 형태이기 보다는 움직이는 무엇이다. 이혜민의 근작인 '공기의 기억'과 '식물의 초상'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련함 또는 쓸쓸함이라는 정서를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려고 하는데 이는 그녀가 실험해왔던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가능한 것이 된다.

이혜민_공기의 기억_장지 콜라주, 채색, 콩테_61×73cm_2011

이혜민_공기의 기억_장지 콜라주, 채색, 콩테_80×110cm_2011

한편 사전적 의미로 대기를 구성하는 투명한 기체 또는 어떤 자리에 감도는 분위기를 뜻하는 '공기'는 이혜민의 작업에 있어서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는 포괄적인 것이다. 작가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과 그 속의 자연물을 주목하면서 이들 사이에 잔존하는 것을 공기라고 보았다. 하나의 작품 안에 시간과 공기의 여러 층위를 담고자 하는 그녀의 작업은 자연에 대한 자신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과정과도 같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장지를 찢어서 붙이는데 이 조각들끼리 중첩되면서 덮이는 면과 드러나는 면, 그 사이의 여백 등이 남겨지며 다채로운 화면이 구성된다. 이로 인해 형성된 덩어리와 같은 형상들은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한편으로 각각의 재료들이 덧붙여져 형성된 표면은 관람자의 촉각을 자극한다. 이후 작가는 목탄이나 콩테를 이용해 점과 선을 그린 후 흰색 안료인 호분이나 옅은 물감을 올려서 희미하면서도 안개가 낀 듯한 화면을 조성하여 대기와 공기의 느낌을 살리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차분한 어조를 띠고 표면의 모든 점과 선, 그리고 덧붙여진 종이들은 하나의 구체적인 실체와 같은 것으로 통합된다.

이혜민_공기의 기억_장지 콜라주, 채색, 콩테_120×180cm_2011

이혜민_공기의 기억_장지 콜라주, 채색, 목탄_162×390cm_2011

무엇보다 관람자들은 시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자연의 미묘한 변화가 표현되어 신비로움과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그녀의 작품 앞에서 명상과 관조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들은 신체적인 노동을 요하는 작업 과정 속에서 이러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작가의 입장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혜민은 작고 하얀 면의 형상을 이용해 눈이 내리는 느낌, 또는 반딧불의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하였고 흐린 점과 선으로 식물의 연약한 외형과 그것이 지닌 에너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우리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자연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인간이라는 존재가 변화무쌍한 자연의 흐름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 이윤진

이혜민_식물의 초상_장지 콜라주, 채색, 콩테_91×72.5cm_2011

이혜민_식물의 초상_장지 콜라주, 채색_53×45.5cm_2011

Layers of time recorded by overlap ● William James explained human's experience of fundamental space with the expressions of "an element of voluminousness" and "a feeling of crude extensity." This "element of voluminousness" is a mass made of sensational impressions, memories and desires rather than objectively describable physical phenomenon. - (Kim, Woo chang,『Landscape and heart』中) ● Fundamental space experience, feeling of crude extensity, impression and memory are the key words to explain works of Lee, Hye min. The object enabling these expressions is nature, the main theme of numerous works of art. In particular, the artist has focused on the changing appearance of the nature with time, based on oriental point of view on nature, which pursues the harmony between men and nature Her works often show growing and dying plants, floating cloud, meteorological conditions such as raining and snowing, the earth formed for such a long time, trail on the hill, and likewise, in her eyes, the nature is not something stationary but moving. With her recent works titled "Memory of Air" and "Portrait of Plants", Lee, Hye min tries to express dimming or loneliness about the past time and makes it possible with various methods she experimented. ● Meanwhile, a dictionary defines air as a transparent gas that consists of the atmosphere or a mood in a certain place but in her works it comprehensively includes various implications. The author attends to the changing nature with time and the natural objects in it and found something between them which she calls air. Her work intended to include various layers of time and air in a picture is like a process where she stacks her memory one by one. To this end, she tears papers called korean paper into pieces and glues them to the picture and the sides covered or exposed while these pieces are overlapped and the blanks between the pieces demonstrate diverse aspects. The object which seems a mass formed through this process inspires feeling of extensity, that is, makes crude distance. Furthermore, when attached by a variety of materials, its surface stimulates the viewers' tactile sense. Later, she draws some dots and lines with charcoal or conte and then adds whitewash or light-color paint, presenting a faint and misty aspect to materialize the feeling of the atmosphere and air. Her work consequently maintains a quiet tone at large and every dot, line and attached piece are integrated into a concrete substance. ● Most of all, viewers have an opportunity to meditate and contemplate before her work, provoking mystery and imagination through subtle changes in nature with the passage of time They come to empathize with her who says that she happens to have this kind of opportunity during her work requiring physical labor. Moreover, Lee Hye-min creates images of snowing or of glow of a firefly by using white and little faces of papers and describes fragile appearance of plants and their energy with subtle dots and lines. Likewise, it is important that her works of art make us see the nature, sharing the same space and time with us, in different ways. In addition, the elements consisting of her work and overall atmosphere are dimming but the message of the endlessly changing nature and the existence of human being who has to adapt to its flow is distinct. ■ Lee Younjin

Vol.20110622b | 이혜민展 / LEEHYEMIN / 李慧敏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