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국민체육진흥공단_매일경제
관람료 성인, 대학생_9,000원(단체 7,000원) 청소년(13-18세)_7,000원(단체 5,000원) / 어린이(4-12세)_5,000원(단체 3,000원) * 단체 : 20인 이상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소마미술관 SOMAMUSEUM 서울 송파구 방이동 88-2번지 제1~6전시실 Tel. +82.2.425.1077 www.somamuseum.org
"Wenn Ihr alle meine Multiples habt, dann habt Ihr mich ganz. 너희 모두가 나의 멀티플을 가진다면, 너희는 나를 온전히 가진 것과 같다." (요셉 보이스) 요셉 보이스(1921-1986)는 전후 유럽미술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며 그의 삶과 예술이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어 오늘날 여전히 '보이스'라는 작가는 복잡한 인물로 남아있다. 그의 신화, 과거 독일의 트라우마, 현대 사회와 정치적 이슈들은 전후 유럽의 주요작가인 그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작품들에 대한 평가에 언제나 따라다니는 것들이다. 2차원 내지 3차원 오브제를 에디션으로 남기는 것은 유럽의 멀티플 방식이었는데, 1930년대에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작품 69점을 박스 안에 미니어처 사이즈로 모아놓았던 것이 선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보이스는 멀티플을 통해 좀 더 광범위하게 자신의 작품이 순환되기를 원했다. 에디션이 붙은 작은 오브제, 대량 생산된 엽서들, 펠트, 나무, 유리병, 캔, 악기, 레코드, 필름, 비디오, 퍼포먼스에 연계된 오디오 테입과 같은 레디메이드 오브제 등은 그의 일대기와 아이콘에 대한 암시적 상징물들이다. 보이스가 꿀벌이나 토끼 피, 펠트와 지방과 같이 범상치 않은 재료들을 작품에 사용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중 비행기 추락사고 등에서 얻은 부상으로 시작된 치유와 탄생 개념, 그리고 그가 주장한 사회적 조각 이론에도 닿아 있다. 그의 사회적 조각이론은 혼돈 속 비결정적 상태의 사물에 조각과정을 통해서 질서를 부여하는 개념이었다. '모든 사람이 아티스트이다'라는 보이스의 주장이 그의 조각이론의 출발점이 된다. 과정으로서의 조각이론은 유동적인 것으로, 화학반응, 발효, 부식, 증발 속에서 변화해간다. "만물은 가변 상태 안에 있다"라는 그의 주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확대된 예술개념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신체 뿐 아니라 죽거나 살아있는 동물을 작품 속에 끌어들여 상처를 치유하려는 보이스의 퍼포먼스는 내면의 전쟁을 계속 치르고 있는 그를 신화 속 인물로 전설화시키는데 한 몫하고 있다.
신화 ●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던 보이스는 19세에 독일 공군에 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영국 포로가 되었다가 패전 후인 1947년에 독일로 돌아왔다. 국가 사회주의와 홀로코스트로 어려운 시기를 겪던 서독에서 보이스 작품의 뿌리인 "상처"는 그의 과거와 나치 체제의 타부에 맞서 애도하는 개념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60년대 반전 성명 속에서 개인의 창작과 환경적 책임을 지지했던 그는 60년대 초 많은 퍼포먼스를 통해 대중의 참여를 독려하고 의식과 상징을 공유하고자 했다. 보이스 작품에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와 병원(응급실)을 상징하는 표식과 맞물려 치유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그의 작업에서 중심은 '행동(Actions)'이었으며, 가르치는 일, 대중 상대의 토론과 퍼포먼스가 포함된다. 반복되는 주제는 사회적, 정치적인 이슈이며 녹색당의 창립 멤버로 생태계 연관 운동을 전개해 독일 정계에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조직의 경제에 대하여 제3의 방법으로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는데, 동독에서 생산된 물품의 종이 백 위에는 Guten Einkauf(Good Shopping, 잘 샀음)라고 씌어져 있으며 이는 미술시장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 제1전시실은 보이스라는 인물과 그의 작업관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로 구성된다. 2차대전 참전 중 얻은 화상의 흔적은 작가에게 이후 일생을 두고 줄곧 지속되는 치유행위의 근거가 된다.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추락한 크림반도에서 타타르인(Tartars)에 의해 펠트와 지방으로 치유된 경험은 보이스의 재료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그에게 있어서 펠트는 보호, 보온의 특성을 지닌 재료였으며, 액체와 고체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는 지방은 혼돈과 영혼의 초월적 상태를 내포하고 있어서 에너지 즉 열의 상태에 따라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재료였다. 이렇듯 그의 신화는 구원, 신비주의, 종교적 의식과 맥락을 같이 하는데, 보이스의 작업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만화 패널을 공간 양쪽에 배열하고 쇼 케이스를 통해 작가의 드로잉 노트와 자료들을 소개함으로써 보이스의 내면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펠트와 토끼: 치유와 탄생 ● 제2전시실의 중심은 보이스의 펠트 양복이다. 보이스는 예술에 있어서 엘리트주의에 반기를 들며 1960년대부터 멀티플 작업을 했는데, 이 작품이 가장 유명한 멀티플일 것이다. 퍼포먼스 「Action and Dead Mouse/Isolation Unit」(1970)에서 이 양복을 입었는데, 펠트의 보온성은 '영적인 따스함 혹은 진화의 시작' 개념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예술에 있어서 그 치유력과 사회적 기능을 믿었던 보이스의 철학은 이렇듯 작품의 소재에도 반영된다. 1950년대부터 줄곧 펠트, 지방, 동(copper)과 같은 재료를 절연체, 전달체, 전도체, 변환체의 개념에서 작품에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고고학, 지형학, 인류학, 동물학, 신화, 역사, 본능, 의학, 에너지, 소통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보호 혹은 방어적 개념의 펠트로 제작된 이 양복은 평범한 양복이 아니라 겸손한 재료로 만들어진 현대적 갑옷이라 할 수 있다. 긍휼의 대상인 인간의 육체(존재)가 제외된 빈 껍데기 같지만 그럼에도 이 양복 안에는 영적인 힘이 내재되어 있다. 이 양복은 단순한 양복이 아니며, 보이스에게 아트는 美(beauty)가 아니라 소통이자 자유에 관한 창조(creativity)임을 말해준다. ● 제4전시실은 토끼방으로 꾸며진다. 보이스의 작품에서 토끼는 드로잉이나 판화에도 등장하고 토끼 피가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퍼포먼스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구체적 내용은 작품에 따라 틀리지만 토끼는 생물학과 성별(양 이론), 동물의 직관력과 지능, 대지, 부활, 구원 등을 나타낸다. 전쟁은 보이스에게 자신의 신체,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퍼포먼스 영상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에서 보이스는 죽은 토끼를 안고 3시간 동안 들리지 않는 속삭임으로 토끼에게 자신의 드로잉들을 설명한다. 작은 창문을 통해서만 보여진 샤머니즘적 퍼포먼스에서 그는 치유와 연금술을 상징하는 꿀과 금박으로 얼굴을 감싸고 자신을 토끼와 동일시하고 있다. 토끼는 굴 속에서 태어나 지상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보이스에게는 탄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퍼포먼스에 대해 "완고한 이성주의로 무장한 인간보다 토끼가 더 잘 이해한다... 나는 토끼에게 그림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그저 흝어 보는 일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는 순수한 정신, 정확한 해석에 연연하지 않는 정신은 모든 이에게 있다며 "모든 사람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198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는 '7천 그루의 떡갈나무' 퍼포먼스를 펼쳤는데, 현무암 돌덩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7천 그루의 떡갈나무가 심어지는 것에 따라 조금씩 돌을 치우는 액션이었다. 이는 환경보호와 예술의 결합을 통해 지구의 사막화를 막기 위한 상징적 투쟁으로 해석되며, 예술가로서 파괴의 재건에 개입하고자 한 그의 신념을 잘 보여주었다. 이 퍼포먼스는 이번 전시에서 현무암 돌덩이에 토끼가 그려진 판화와 영상을 통해 선보여진다.
FLUXUS 퍼포먼스 ● "Wer nicht denken will, fliegt raus. 사고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지구를 떠나거라." (요셉 보이스) 1945년 이후 현대미술의 흐름이 미국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며 1960년대 초 뉴욕과 유럽, 특히 뒤셀도르프에서 '기존의 예술, 문화 및 제도에 대해 불신하는 反예술적, 反문화적 그룹, 플럭서스가 탄생한다. 이들은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운동의 지나친 형식주의에 대한 반발이었고 반항적 전위예술로서 예술과 삶의 통합을 지향하고 행위예술을 통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였다. 플럭서스 멤버로서 보이스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성되는 다수의 이벤트와 퍼포먼스를 펼쳤다. ● 플럭서스 오브제는 은유의 기능 대신 퍼포먼스나 멀티플의 일부로서 그 순간의 유쾌하거나 불손할 목적의 소품으로 존재한다. 보이스는 음향의 대체 개념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피아노 같은 악기를 플럭서스 퍼포먼스에서 부수거나 발로 차는 등 비음악적 방식으로 이용했다. 조지 마치우나스(George Maciunas)가 다다에 영향 받은 구상 시(詩)개념을 발전시켰고 보이스는 그로부터 자신만의 음악을 파생시켰다. 그는 피아노를 작품 속에서 은유적 오브제로 이용했고 그랜드 피아노를 종종 펠트로 감싸기도 했는데, 이는 고급의 상징인 그랜드 피아노를 곤궁의 상징인 펠트로 감싸 사운드(소통)를 죽이고 침묵케 함으로써 오히려 거대한 잠재력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외형적으로 부정적인 상태이나 피아노가 내면의 에너지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긍정으로 바꾸어 놓는 작업이었고 이는 치유(창작)와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영상 「코요테 III」(1984)는 코요테의 괴성을 모방하는 보이스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백남준의 공동 퍼포먼스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는 않았지만 「코요테,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나를 좋아 한다」(1973)는 에너지 촉매작용의 상징인 펠트를 뒤집어 쓴 보이스가 미국 인디언이 숭배 대상으로 삼았지만 미국인들에 의해 멸종된 코요테와 3일간 뉴욕의 한 화랑에서 동고동락한 퍼포먼스였다. 이렇게 코요테를 소재로 삼아 자연적이며 원시적인 것에서 생명을 구한 보이스의 토템적 신념은 문명이 자연과 공생해야 할 필연적 관계임을 시사하고 있으며 환경보호에 적극적인 사회적 행동가로서의 그의 행보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그의 활동을 전시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박윤정
■ 소마미술관_SOMA 2004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은 88 서울올림픽의 문화적 성과를 재조명하기 위하여 세계 제5대 조각공원 가운데 하나인 약 1,500,000㎡ 녹지의 올림픽공원 안에 연면적 10,191㎡에 지상 2층의 서울올림픽미술관을 개관하였습니다. 2006년 봄, 자연과 공존하는 소통의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미션과 비전으로 서울올림픽미술관을 소마미술관(SOMA_Seoul Olympic Museum of Art)으로 개칭하여 재개관하였습니다. 소마미술관은 올림픽조각공원 안에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과 국제야외조각초대전에 참가한 66개국 155명의 작품을 포함하여 현재는 유수한 작가들의 현대조각 작품 219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마미술관은 국내외 미술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현대미술의 담론과 비평적 쟁점을 담아내기 위하여 다양한 장르의 동시대 미술작품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를 정기적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 안에 국내 최초로 드로잉센터를 설립하여 새로운 개념의 드로잉 아카이브를 구축함과 동시에 청년작가 육성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학계 연계, 사회봉사 및 다양한 성인,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현대인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회문화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열린 문화공간입니다.
Vol.20110616k | 요셉 보이스展 / Joseph Beuys / installation.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