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ip

서유라展 / SEOYURA / 徐유라 / painting   2011_0616 ▶ 2011_0703

서유라_인간의 내밀한 역사(An Intimate History of Humanity)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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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616_목요일_05: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가나아트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 컨템포러리 GANA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98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심부(深部)로 들어가 책들의 기표(記標)에 가 닿는 도서기행서유라의 "소울 트립Soul Trip"을 깊게 듣는 법 서유라 작가의 회화적 소재는 책이다. 그는 책을 그린다. 2007년 첫 개인전의 주제가 "책을 쌓다"였으니, 최소한으로 잡아도 5년여를 온전히 책을 그리는데 바친 셈이다. 소재주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데, 그럼에도 한결같이 책이라는 소재를 놓지 않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는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사실과 개념적 특징으로 그 의문에 다가설 수 있으리라고 본다.

서유라_여행, 색에 물들다 (Soul Trip)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0

첫째, 책을 그린다는 것은 책의 회화적 재현이라할수있다. 일명 그의 '책 회화'는 책의 외피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책이라는 가시적 물성(오브제로서의 시각적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책을 의식하거나 인지하는 방식은 많은 부분 책의 표지에 달려있다. 실제로 그는 작품의 주제가 되는 어떤 책들에 대해 집요한 그리기를 시도하는데, 대부분 책의 표지다. 책은 출판과 더불어 하나의 얼굴을 갖게 되고 그 얼굴은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기명(記銘)된다. 그러므로 그는 책의 초상을 전신사조(傳神寫照)의 미학으로 재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책의 초상을 그려 그 정신을 전하려는 의지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많은 작품들에서 발견되듯이 그러한 인식의 투영은 몇 몇 책들에 한정될 뿐 재현된 책들의 대부분은 그의 사념에 따라 재구성되고 재탄생된 것들이다. 색이 바뀌고 글이 엉킨 것들. 지워지거나 덧칠해지는 사이에 책들은 그가 구상하는 회화적 구도에 따라 혹은 주제에 따라 새 옷을 입는다. 그러니 그의 회화적 재현은 대상의 가시적 사실성만을 복원하는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재현의 개념은 서유라에게 단지 미학적 형식이면서 트릭에 가까운 무엇으로 해석된다. ● 『여행, 색에 물들다(Soul Trip)』는 이번 전시의 주제 'Soul Trip'을 재현한 것이다. '마음의 여행'이라 해야 할지 '정신의 여행'이라 해야 할지 다소간 모호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여행보다는 'Soul'이 강조되는 것은 그가 재현해 놓은 책의 심리적 무게 때문이다. 그의 장면은 여행지의 이국적 풍경이나 낯선 야생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책과 책등에 명기된 텍스트에 주목한다. 흐트러진 채 쌓여있는 책들이 우리의 복잡다단한 일상과 헝클어진 도시적 삶을 직유법으로 제시한 것이라면, 보랏빛 색조로 물들인 이미지의 잔상은 현실로부터 이탈하지 못하는 그래서 여행이란 것이 부풀어 오른 탈현실적 욕망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낱개의 책들에 새겨진 책제목은 그래서 그런 심리적 기제를 재현하는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그 낱말들은 제목이면서 시행(詩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서유라_Erotic Art_캔버스에 유채_60.6×91cm_2009
서유라_History of Korea_캔버스에 유채_162×97cm_ 2010

소울 트립 / 여행, 色에 물들다 / 대한민국 숨은 여행 찾기 / 소도시 여행의 로망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 // 지구촌 사람들 지구촌 이야기 / 내 마음에 마법을 건 나라 뉴질랜드 / 뉴욕, 아트 인 더 시티 / 런던 프로젝트 / 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 // 탐험지도의 역사 / 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 ● 그렇다면 그가 재현하려는 본심은 무엇일까? 시행처럼 배열해 놓은 텍스트를 다시 살피자. 책의 꼴과 그 꼴에 새겨진 텍스트. 그것은 다름 아닌 기표(記標)가 아닌가!

서유라_A Woman's Life_ 캔버스에 유채_ 130.3×162.2cm_ 2010
서유라_Musical Sotry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0

둘째, 그의 회화가 책의 등과 표지에 주목하는 것은 '책의 기표(signifiant)'를 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쉬르의 기호이론에 따르면 책의 표지는 '소리'에 해당한다. 말은 소리와 그 소리의 의미로 성립되듯이, 책의 표지는 눈으로 듣는 소리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외적 형식이다. 책 디자인에서 가장 어렵고 섬세한 부분이 바로 책의 표지다. 책의 표지는 기표로서 '말'에 해당한다. 앞표지 뒤표지 등(두께를 말하며 세네카 (seneca)라고 함) 그리고 날개에 이르는 각 면의 구성은 색과 글자체, 정보량에 따라 각양각색이 된다. 몇 개의 시안을 고르고 수정하고 다듬어서 한 눈에 책의 소리를 듣도록 유도하는 것이 책 디자인의 목표인 것. 서유라는 이러한 책의 표지가 타전하는 기표를 재현한다. 그러므로 작품의 제목은 결과보다 먼저 제시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남녀심리학』이나 『여왕의 시대』, 『여자생활백서』등 거의 모든 작품들의 제목은 연역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작품 속의 책들은 이러한 주제에 따라 선별적으로 취사선택되어 재구성된다. 그런데 이런 기호적 장치들이 전면화 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작가의 주관적 시선이 매우 강하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화면을 구축한다. 쌓고 펼치고 세우고 꺼내고 뒤집고, 이리저리 이것저것 섞어 놓은 풍경이 주제의 내러티브와 상관하고 있음을 뒤늦게 눈치채는 이유다. ● 작품 『인간의 내밀한 역사』는 시어도어 젤딘(Theodore Zeldin)이 짓고 김태우가 옮긴 동명의 책 『인간의 내밀한 역사-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류의 경험에 관한 기록』에서 따온 것인데, 작품의 주제 컷도 이 책을 전면에 내세운다. 익히 낯설지 않게 보아온 이 책의 표지는 이미 '그 책을 알고 있다'는 전제를 상기시키면서 묘한 시력을 당기고 놓는다. 표지는 반신 누드의 여성과 그 여성의 젖꼭지를 살짝 꼬집듯이 잡고 있는 손의 인상이 사뭇 요기(妖奇)롭게 그려진 회화가 배경이다. 그러니 인상에 콕 박혀서 지워지지 않을 터. 그런데 이 책을 받치고 선 풍경은 '최초의 것들', 'What Life Was Like', '세계사-동아시아와 그리스', '대세계의 역사', '전쟁의 역사', '광기와 우연의 역사', '권력과 탐욕의 역사'와 같은 제목의 책들이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가 내밀한 역사보기라는 작가적 사유를 증언하는 것이라면, 책등의 텍스트는 사유의 증언을 말로써 외치는 소리와 같다. 많은 역사서에서 이렇듯 주관적 선택에 의해 선별된 책들의 텍스트는 작품을 시각적 재현에서 상징재현으로 읽히게 한다. 『영화의 유혹』은 그런 측면에서 심리적 상징이 책의 재현을 넘어선다. 이 작품의 특징은 표지와 책등, 그리고 텍스트가 강조되지 않는단 점이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선명하게 부각될 뿐 많은 책들은 그저 이름 없이 옆으로 밑으로 위로 밀치고 들어가 자신을 숨기고 있다. 우리가 알아 볼 수 있는 텍스트는 단지 몇 개에 불과하다. '여성영화산책'이나 '찰리 채플린', '디지털 시네마', '영화예술', '세계 영화사',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 '뉴미디어 아트', '스타워즈'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책들 사이사이에서 많은 책들은 자신들을 빼곡히 '끼워넣기' 하고 있다. 이 '끼워넣기'의 욕망은 작가의 주관적 시선에서 비롯된다. 영화의 유혹은 어쩌면 아는 것보다 아직 알 수 없는 그 무엇들에서 시작될 테니까.

서유라_Story Book_캔버스에 유채_ 130×130cm_2011

셋째, 책의 회화적 재현은 책의 기표를 재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상징화'를 의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책의 표지는 기표이면서 기의(signifié)가 된다. 말의 소리가 기표였다면 소리의 의미가 기의일 터인데, 서유라는 책의 등과 표지, 혹은 간간히 내비치는 내지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하는 주제의 의미를 함축하고 발산시킨다. 작품이 기의로 읽힐 때 책은 물성이 아닌 상징으로 환유된다. 물성을 강조했다면 집요한 그리기의 극사실적 표현이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야겠지만, 이책 저책을 모두 모아 이렇게 저렇게 배열한 뒤 그리고 지우고 다시 의미를 삽입하는 과정은 책의 소리와 더불어 의미를 생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작품제목이 강조하는 주제에 따라 회화의 주조색이 정해지고 또한 그에 따른 대표이미지와 책이 선별되며, 기표로 읽히는 것과 읽히지 않을 것들을 조절하는 그의 행위는 상징화를 위한 치밀한 계산인 것이다. ● 『Erotic Art』를 보자. 이 작품 속 책들은 붉다. 배경도 핑크 빛이다. 이제 책들은 책이면서 완전한 기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기표는 다시 붉은 소리의 기의로 확산된다. 붉은 책들의 붉은 소리는 색과 상징이며, 이때 색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고 상징은 여성성과 상관한다. 기표와 기의가 만나서 하나의 소리 즉, 외침을 타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침은 각 텍스트가 보여주는 바 '행동성(activity)'이다.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는 여성주의 시선으로 파고 든 제도적 성정체성에 관한 저항적 외침이라면, '여성 미술 사회'는 여성이라는 주체가 또는 여성이 주체가 된 미술이 사회와 어떻게 결절을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한국의 풍속화'나 'The Erotic Korea', '화가는 왜 여자를 그리는가', '성의 미학', '한국의 성', '우리 몸과 미술', '위대한 페미니스트 울스틴 크래프트의 혁명적 생애-세상을 뒤바꾼 열정'은 그 제목만으로도 작품의 에로틱이 왜 여성성을 상징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책들 사이에서 '한국 회화의 이해'라는 책 한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한국 회화의 이해든 세계 미술사든 여성의 주체가 된 미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미술은 그동안 결코 에로틱하지 않았던 것이다. 슬쩍 내 비치는 춘화도는 에로틱의 상징이 아니라 성을 대상화 한 것에 불과하며, 그 대상으로서의 여성은 수동적이고 풍경일 따름이다. 그러니 현대미술가로서 서유라의 '에로틱 아트'는 그것들에 대한 야한 반전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 결과적으로 그의 현대판 '책가도'는 책을 그리되 작가적 상상력으로 화면을 재구성한 것이며, 주제어와 더불어 책의 상징과 의미를 타전하는 회화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책가도는 그의 심부에 쌓아 놓은 서가이자 그 서가의 기표들이 떠올라 수없이 다양한 소리로 외침으로 확산되는 확성기다. 소울 트립은 그런 소리에 끌려 심부로 들어가 책들의 기표에 가 닿는 도서기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종길

Vol.20110616d | 서유라展 / SEOYURA / 徐유라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