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뿔 Quadrangular Pyramid

구현모展 / KOOHYUNMO / 具玄謀 / installation.video   2011_0609 ▶ 2011_0701

구현모_Weinglas_비디오_00:07:27_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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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609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05:00pm / 토요일_09:00am~03:00pm

주독일한국문화원 Koreaisches Kulturzentrum Leipziger Platz 3, 10117 Berlin Germany Tel. +49.30.26952.0 germany.korean-culture.org

사각뿔 안에 흐르는 여러 시간들 ● 흐리고 추운 날 구현모의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 처음 본 작품 [번개 집]은 대자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작은 집의 모형 안에 담아놓은 작품으로, 바깥으로부터 안을 보호할 수 있는 토대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경계 없는 자연을 인간의 지각과 인식의 틀 안에 담는 문제, 즉 재현의 문제를 다룬다. 설치 뿐 아니라, 영상, 드로잉 등으로 구현된 그의 작품들은 안과 밖을 넘나들곤 한다. 이러한 넘나듬을 위한 시공간적 차이의 지각은 매우 중요하며, 구현모의 작품 목록은 우리의 습관적인 지각방식을 반성하게 하는 다양한 장치들로 채워진다. 올 6월 독일에 열리는 개인전 제목인 '사각뿔'은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 이래, 가까이는 르네상스 이래, 그리고 결정적으로 근대이래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어온 지각인 시각의 틀거리를 기하학적으로 도식화한 형태를 말한다. 지각 주체의 눈을 꼭짓점으로 하여 전방으로 방사된 구현모의 사각뿔은 시각(vision)과 시각성(visuality)에 내재된 인식론적 틀의 문제를 제기 한다. ● 주체와 객체의 위치가 고정된 원근법은 사각뿔을 정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에 만들어진 인위적이고 역사적인 틀이지, 결코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틀이 아니다. 정적인 회화와 달리, 영상은 시점의 역동성이 강화된다. 구현모의 사각뿔은 동시에 움직이는 사각뿔인 것이다. 그것은 시각적 차이를 활성화시킴으로서 작품을 다양한 시각성들이 작동하는 장으로 변모시킨다. 마틴 제이는 시각과 시각성을 다룬 논문 [모더니티의 시각체제들]에서 르네상스의 공간개념은 기하학적으로 등방(isotropic)이며, 직선적이고 추상적이며 균일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원근법적 시각의 합리화된 3차원 공간이 2차원적 표면 위에 연출될 때, 그 기본적인 장치는 대칭적인 시각 피라미드들 혹은 원추들이라는 관념으로, 이때 그것들의 꼭짓점 중의 하나는 그림에 있어 소실점이나 중심점이고, 다른 하나는 화가나 감상자의 눈이다. 주체를 출발로 하여 소실점으로 연결된 격자적 공간은 정신 속에 존재하는 표상(representation)이다. ● 기하학 화 된 공간을 주파하는 이러한 시점은 고정된 단일한 눈을 전제하며, 외눈박이인 카메라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추상적이고 양적인 공간은 주체 앞에 놓여 진 세계를 축소시킨다. 이러한 축소는 세계의 소유와 지배를 위한 도구적 선(先)조치이다. 마틴 제이는 데카르트적 원근법주의의 인식론 내에서의 주체의 위치, 감상자의 시각적 피라미드에서 그 꼭짓점에 위치한 외눈은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눈, 즉 시간 및 공간적으로 동일한 지점을 차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해당되는 눈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구현모에게도 미디어는 일단 우연히 포착된 듯한 현실의 다양한 질감이나 그것의 중층적 차원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러나 그는 근대의 정적인 사각뿔을 동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서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눈을 우연적인 눈으로 변형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중요한 변수이다. 여기에서 매체는 자신의 물질성, 요컨대 언어로서의 불투명성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의 작품에서 창, 카메라, 반사하는 오브제 같은 미디어는 어떤 내용을 담아 변형 없이 전달하는 투명한 용기가 아니다.

구현모_나무_비디오_00:08:36_2011
구현모_골목_비디오_00:07:28_2011

그것들은 배치와 시점의 선택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형식적 특성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표면 보다는 구조적 차원이 중요하지만, 미디어의 장치가 뼈대 그자체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살 속에 교묘하게 파묻혀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실로 그의 작품은 양자와 혼연일체가 되어 구별 불가능한 지점을 향하며, 그것에 가까이 갈수록 성공적이다. 재현은 '실재 효과'(바르트)를 낳는 어떤 정신적 구조를 전제한다. 줄리언 벨은 [회화란 무엇인가]에서 현대 회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림의 전체 공간이 대상, 사건, 결과가 존재하는 총체성으로서의 장(場)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재현이란 그 안에서 경험이 발생하는 공간 배열, 곧 어떤 형성, 모형, 추상적인 기하학이다. 그 안에서 너와 나와 같은 주체와 이것과 저것과 같은 대상이 존재하며, 그러한 배열 안에서 이들 개념은 공간에 대한 어떤 효과나 차이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재현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을 포괄하는 기하학은 없으며, 단지 지엽적인 차이의 드러남만이 존재한다. 구현모의 작품은 항상 연기될 뿐인 차이에 주목한다. 그의 사각뿔은 고정된 재현의 개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살아있는 용법으로서의 재현을 지향한다. 집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은 사각뿔의 다양한 양상이 실험되는 장이다. 집 관련 드로잉은 전시장 내부에 설치될 작품부터 타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건축적 규모로 확장될 수 있는 발상들이 담겨있다. [번개 집]처럼 안팎의 경계를 무너뜨린 예는 방안에서 비가 오는 [비 집], 달이 있는 [달집], 구름이 있는 [구름집] 등이 있다. 아래로 연기가 흐르는 [굴뚝 집]은 중력이 반대로 작동한다. 작품 [바다 집]은 방에서 방으로 건너려면 바다를 건너야 할 정도이다. 그의 드로잉들은 사면이 계단으로 이루어져 고대의 신전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 [계단 집]처럼 건축적 스케일로 확장될 수 있다. 집의 이미지는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말했듯이, '우리들의 내밀한 존재의 지형도'로 여겨진다.

구현모_구름집_종이에 연필_30×24cm_2010

또한 집은 자아의 연장으로, 외부로 뻗어나갈 시공간의 기본적인 질서로 간주 될 수 있다. 집은 자아라는 소우주의 확장이고, 대우주의 질서를 또 다른 차원에서 축약한다. 그래서 집은 '우주창조가 반복되는 신성한 공간'(엘리아데)으로 간주되어 왔다. 구현모의 작품에서 집은 삶이 전개되는 일상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상징적 우주를 이룬다. 이러한 중첩된 차원 속에서 낯섦과 익숙함 간의 역학이 전개된다. 그의 작품이 출발하곤 하는 집은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파생된 낯선(unheimlich) 체험을 하게 한다. 영상작품이 주를 이루는 전시의 부제인 '사각 뿔'은 카메라나 사람의 눈으로 보여 진 장면 속에 투명하게 드리워진 공간의 덫을 상징한다. 그는 주어진 공간에 대한 시점 간의 차이를 일상 속에서 흔히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잡아낸다. 그는 정교하게 짜여 진 계획보다는 '생활 라인에서 발견되는 것의 묘미'를 찾는다. 빈틈없는 계획이 요구되는 설치작품과 달리, 영상은 대부분 주어진 풍경의 시점을 담는다. ● 전시장 바닥에 난 네모 굴 위에 전등이 돌아가고 아래 마을은 마치 공습당하는 듯한 작품 [a strange night](2008), 축소 모델의 마을 내부로 카메라 차가 돌아다니고 찍은 장면이 모니터로도 나오는 작품 [faktum village](2008), 종이 박스 안을 찍은 화면을 박스 바깥에 상영하여 영상 속 인형과 구조물이 낯선 도시의 단편처럼 다가오는 작품 [karton] (2008) 등, 영상과 세트가 조합되는 작품은 작품 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구멍을 통해서도 보고, 맨눈으로도 보고 카메라로도 보게 하는 등, 작가는 작품으로 들어가는 여러 통로들을 마련한다. 이러한 영상설치 작품은 축소모델로부터 기인하는 사실적 환영 보다는 표현주의 영화 풍의 기괴한 느낌이 압도적이다. 그의 컴퓨터 폴더 안에 저장된, 수년간 찍은 수백 개의 영상이 작품의 원천이 되며, 대부분 특별한 가공 없이 그대로 사용한다. 포착된 장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서사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구현모_달집_종이에 연필_30×21cm_2010

스쳐가는 하나의 장면처럼 보이는 것에 내재된 또 다른 시각, 그리고 그 시각에 대해 예기치 못한 깨달음을 주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시간적 차이와 연관된 공간 지각은 이 전시의 많은 작품에 관철되어 있다. 영상 작품 [alley](2011)는 작업실 근처의 카페에서 찍은 작품으로, 별다른 장치 없이 일상 속에 숨어있는 다차원적인 시공간을 잡아냈다. 여기에서 시간은 서로 다른 라인을 타고 제각각 흘러가며,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깔대기를 함께 통과한다. 스테인레스 문틀과 앞 건물의 유리 등에 서로 반사되어 보이는 거리의 풍경이 친숙함을 벗어나 어지럽게 다가온다. 분명 현실의 한 장면이지만, 골목에 유입된 것들은 여러 공간 속에 편재한다. 가령 그 골목으로 사람이 한명 지나가면 최소 세 번 나온다. 또는 하나의 행위가 세 번에 걸쳐서 나온다. 세 시점, 즉 세 시간적 차이가 한 순간에 농축된다. 연출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의 선택이 질서 지워진 일상의 이면의 카오스적 측면을 드러낸다. 적절한 시점의 선택은 일상을 잘 틀 지워진 관객의 눈높이에서 펼쳐진 하나의 무대처럼 변모시킨다. ● 영상 작품 [stage](2008)는 강변의 산책로 아래에 설정된 카메라의 시점을 통해, 광대무변하게 펼쳐진 하늘을 배경으로 화면 기저 면을 지나가는 자전거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창출된 시야는 화면이 크지 않아도 보여 지는 틀을 무한대로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건물 사진이 바람에 날리면서 피사체가 되었던 건물의 실재가 잠깐씩 들추어지는 영상 작품 [wind] (2008)는 현실과 가상 사이에 설정된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시각적 트릭이 있다. 그림이 그려진 이젤을 창문의 틀과 중첩시킨 르네 마그리트의 실험이 떠오르지만, 회화와 달리 실시간으로 진행된다는 차이가 있다. 구현모에게 현실은 가상적인 면과 실재적인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무대 같은 발견적 가치를 지닌다. 작품 [blau](2009)는 구름 낀 하늘같은 장면이 무대 막처럼 서서히 걷히면서 그 뒤로 줄줄이 널린 빨래들을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최초의 이미지는 하늘도 아니고 무대 막도 아닌 그저 앞줄에 널린 빨래조각의 하나임이 밝혀진다. ● 그의 작품에서 카메라는 대개 고정되어 있고 풍경이 움직인다. 움직임이 내재된 풍경을 선택한 작가의 시선 자체가 작품인 것이다. 코끼리 열차를 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 [Forest](2009)는 숲이 한참 보이다가 이어서 흐릿한 사람이미지들이 이어진다. 속도의 차이는 숲 위로 지나가는 것들을 투명하게 만든다. 변치 않는 자연을 배경으로 숱하게 그곳을 스쳐지나갔을 인간 행렬처럼 보인다. 그것은 보다 긴 주기를 가지는 자연과 그렇지 못한 역사의 대조이다. 작품 [weinglass](2007/2010)는 물이 담긴 포도주 잔을 달리는 기차의 창가에 배치하여 창밖에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풍경들의 소용돌이를 보여준다. 바깥 풍경이 거꾸로 잠겨 빙빙 돌아가는 모습은 계속 펼쳐지면서도 동시에 계속 말려 들어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서정적 장면은 찻잔 속의 폭풍 같은 것이 된다. 작은 컵에서 시간이 가속도를 내며 소용돌이친다. 이 작품은 출발과 도착점을 가지는 기차 같은 선형적 매체 내부에 무수한 시공간의 루프가 잠재해 있음을 알려준다. ● 작품 [decalcomanie](2010)는 카메라가 놓여 진 창이 위로 올라가면서 생겨나는 독특한 반사면을 담았다. 올라가면서 대칭의 중심 면으로 건물은 사라지고 나중에는 하늘만 남는 다. 실제풍경과 창문 사이의 선은 없어지지 않지만 나중에는 구름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현전했던 공간은 어디론가 통째 삼켜진다. 그것은 대립과 차이 자체가 구별불가능해지는 어떤 차원(현존)으로 이동한다. 작품 [decalcomanie]가 시점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공간의 변화를 다룬다면. 작품 [fenster](2007)는 고정된 공간 뒤로 흐르는 시간의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서 움직임의 환영을 발생시킨다. 지붕을 넘어 저 멀리 하늘나라로 가고 있는 듯한 남자는 건물이 보이는 유리창 위의 그림으로, 배경의 구름이 계속 움직이면서 생긴 착시이다. 집에 있는 창문 위에 드로잉 해서 찍은 이 작품은 무거운 짐을 들고 정처 없이 떠나는 이방인의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구현모_글뚝집_종이에 연필_32×23cm_2011
구현모_글뚝집_종이에 연필_32×23cm_2011

작품 [pfotenhauser strasse](2007)는 눈 오는 거리를 캔버스로 삼아 끊임없이 변화하는 추상화를 보여준다. 지나는 차 때문에 화면 가득히 잡힌 줄무늬가 계속 변화한다. 작가는 풍경 스스로가 만드는 그림을 잡아냈을 뿐이다. 약간의 장치를 가미함으로서 날 것의 현실은 잘 조율된 예술작품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작품 [moonlight](2009)는 제목과 동명의 곡에 맞춰 달 이미지 앞에서 긴 다리로 춤추듯, 건반 치듯 움직이는 거미를 포착했다. 작가는 별다른 편집이 필요 없는 실시간의 영상이 거미의 춤으로, 또는 연주로 변화시킨다. 구현모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그의 작품에서 시간성은 절묘한 순간의 선택문제 뿐 아니라, 지속의 문제, 즉 들뢰즈가 영화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시간이 지각으로 주어지는 경험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데이비드 노만 로도윅의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에 의하면 지속은 선형적인 것도 연대기적인 것도 아니다. ● 오히려 지속은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향한 열림이 매 순간마다 중단되지 않음을 상정한다. 순간이 운동의 움직이지 않는 단면을 제시하는 반면, 운동은 그자체가 움직이는 단면이다. 지속을 이해한다는 것은 시간의 공간화에 해당하는 운동보다는, 오히려 공간의 시간화에 해당하는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다. '시간의 형식, 또는 시간의 순수한 힘'(들뢰즈)이 긍정됨으로서 재현적 사고에 전제된 고정된 진리의 개념은 위기에 처해진다.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는 재현과 영화적 시각을 반대로 놓는 들뢰즈의 시각을 강조한다. 저자에 의하면 '환영(illusion)의 재생산은 환영의 수정이기도'하다. 구현모의 카메라 역시 영화적이다. 그것은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중단 없이 질적으로 변환하는 열린 전체로 대상들을 엮어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재현의 제한을 풀어헤치고 끝없는 운동을 제공하는 쇼트들을 생산한다. 그의 사각뿔에 내재된 고정된 중심은 없지만, 중심이 없는 상태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 이선영

Vol.20110609k | 구현모展 / KOOHYUNMO / 具玄謀 / installation.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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