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을 위한 밤 A Night for Transfer

윤민지展 / YOONMINJIE / 尹旼芝 / painting   2011_0607 ▶ 2011_0629 / 일요일 휴관

윤민지_이동을 위한 밤-2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0

초대일시 / 2011_0607_화요일_05:00pm

런치토크 / 2011_0617_금요일_12:00pm 미술체험 / 2011_0625_토요일_03:00pm * 프로그램 참가신청 www.shinhanmuseum.co.kr < 정보마당 < 교육행사 < 신청하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SHINHAN MUSEUM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공항, 어두움, 하늘 그리고 추상적 면들 ● 공항이 있다. 시간은 황혼에서 새벽까지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도착한 비행기들과 또 다른 시간대로 날아가는 비행기들이 한 공간에 머물러 있다. 날아오는 것들과 떠나가는 것들은 이 장소의 바깥에서는 어두운 공간의 점, 불빛들로 나타난다. 거대한 밤하늘과 텅 빈 활주로, 그리고 거대한 동물들처럼 어둠 속에서 매끈한 유선형의 윤곽을 드러내는 비행기들이 있다. 인물들은 잠시 이곳에서 조우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곧 알 수 없는 먼 장소들로 흩어질 것이다. 이들은 거대한 창문을 통해 그들이 곧 날아오를 어두운 공간을 응시하거나 대합실의 높은 천장 아래에서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보곤 한다. 여기에서 세계는 출발지와 목적지, 그리고 시각들로 표기된다. 전광판이 없다면, 이보다 더 고립된 곳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공항은 도시보다 하늘에 더 가깝다. 그것은 추상성의 경계에 있는 장소인 것이다. ● 윤민지는 공항을 그린다. 2007년부터 약 3년 간 그가 경유한 인천, 동경, 싱가폴, 암스테르담, LA, 뉴욕, 런던, 두바이의 공항들이 그림의 소재가 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항상 어두운 시간대의 공항을 그린다는 것이다. 어두워진 이후의 공항에서는 그것이 바깥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불빛들이 사라진다. 공항 건물의 실내를 제외하고는 활주로의 유도등만 남기고 모든 불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물을 통해 바라본 바깥의 공간은 칠흑 같은 어두움이 지배한다. 건물의 불빛과 비행기 주변의 조명들은 마치 어둠 속의 흐릿한 얼룩들처럼 은은하게 사물들을 비춘다. 작가가 그리는 그림들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을 유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새벽을 그린 그림에서조차 화면의 상당부분을 짙은 검은색에 할애한다. ● 희미한 조명과 어두운 배경, 그리고 검은 실루엣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환기시키는 것은 인공적인 무대다. 물론 아무 무대를 다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극적인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인물들의 배경으로 보이는 공간을 규정하는 것은 일상적인 예를 벗어나는 커다란 면이다. 공항의 높은 천장, 단조로운 회색의 벽면, 이상하리만치 거대한 창문, 광활한 활주로와 어둡고 텅 빈 하늘, 등은 일상적 존재의 삶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 이 공간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회화의 장소들 가운데 이렇게 커다랗고 텅 빈 면을 지니고 있는 인공적인 장소들은 많지 않다. 대표적인 또 다른 공간은 극장과 수영장이다. 극장의 스크린은 간혹 텅 빈 커다란 면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곧 이어질 재현의 시간이다. 그것은 의미들로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장소는 커다란 수조에 물이 담겨 있는 수영장으로, 사람들은 그 앞에서 물의 의미에 생각하는 대신 그 안으로 몸을 담근다. 공항의 면은 주로 하늘이거나 커다란 건물의 천장, 유리벽면이다. 이 공간 역시 수영장의 물처럼 구체적 의미를 띠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중립적(neutral)이다. 인물의 배경으로 제시되는 이 인공적이고 단순한, 커다란 면들은 비극의 핵심적인 조건 즉, 세계가 개인들의 의지를 초월하는 미증유(未曾有)의 상태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신(神), 혹은 물질적 무관심으로 채워진 세계이다. 인간의 근원적 고립을 야기하는 이 면으로부터 비극이 비롯된다. 두 번째는, 장소의 원격성(remoteness)이다. 공항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도시 외곽의 동떨어진 장소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공항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곳이다. 과거의 항구와 달리, 이곳이 접하고 있는 것은 바다가 아니다 (물론 바닷가에 많이 위치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공항은 관념적으로 기술적으로나 하늘과 접해 있다. 육지 안의 섬과 같은 이 장소가 제공하는 추상성으로 인해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일상의 사건들로부터 분리된다. 사람들에게 닥친 일은 허공으로 들어 올려지거나 그곳으로부터 내려오는 일이다. 공항은 이 두 가지 사실 사이를 경유하는 과도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일종의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심리적 전환 같은 것이 길고 느리게 공항을 지배한다. 아마도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시간을 이에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까지의 모든 기억들을 정리하고 전혀 다른 시간대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공항이 만들어내는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사람들을 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게 하고, 스스로 침묵 속에 빠져들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공항은 모두를 혼자로 만든다.

윤민지_이동을 위한 밤-3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0
윤민지_왜 이렇게 긴긴밤은 또 잊지못해 새울까_캔버스에 유채_60.5×72.5cm_2010

윤민지의 그림에서 검은색은 다른 모든 색들과 섞인다. 장소의 시간대가 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검은색은 몇 가지 독자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우선, 윤민지는 붓의 터치를 평면화함으로써 넓은 면을 상대적으로 중립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감의 밀도에 의해 화면에는 붓의 흔적들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약간의 흔들림을 야기하는 이 붓자욱들로 인해 넓은 면에는 미세한 번짐 혹은 얼룩 같은 것이 남게 된다. 회색의 건물이나 바깥의 푸른 하늘에서조차 붉으스름한 갈색이나 녹색의 어렴풋한 계조가 발견되곤 한다. 그러나 전체 화면의 주조(主調)는 엄격하게 중립적이고 무거운, 혹은 차가운 감정을 압도적으로 강조한다. 밝은 면으로 이어지는 경계에서 이러한 색의 혼조는 좀 더 격렬한 형태를 띤다. 수평적이고 빠른 붓의 움직임에 의해 검은색과 강렬한 붉은색 혹은 푸른색 등의 대비가 화면에 속도감을 부여한다. 빠른 붓질은 대상의 일시적 포착, 시선의 움직임, 덧없는 조우 등을 환기시키면서 부유(浮遊)하는 공기의 흐름을 포착해낸다. 검은색은 붓의 움직임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그것은 화면의 구석구석까지 시간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두 번째로, 이러한 검은색은 미술의 역사 속에서 몇 가지 참조들을 떠올린다. 그 가운데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와 에드루샤(Ed Ruscha)가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검은색이 차지하는 면은 생략과 단순화를 강조한다. 1942년 작 「Nighthawk」는 어두운 바깥과 밝은 실내를 역광을 통한 대비로 보여주고 있다. 이 밤풍경에서 보이는 날카로운 경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밝음과 어두움의 역전은 윤민지의 실내풍경에서 보는 기하학적 면의 분할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에드루샤의 1963년 작 「Standard Gas Station, Amarillo, Texas」의 검은 하늘과 건물의 밝은 면들, 그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조명과 전체적인 역부감의 구도 역시 윤민지의 그림 속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구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어두운 면의 사용은 붓터치를 이용한 전계(轉階, gradation)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세 번째로, 검은색은 화면을 극적 공간으로 만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화면에서 밝은 면은 부분적으로 조명이 비춰진 장소이거나 아니면 창문 바깥에서 들어오는 새벽의 여명, 혹은 황혼이다. 빛은 한낮의 전면적인 사실성 대신 인공적인 연출을 연상시키는 흐릿하고 추상적인 면들이 된다. 이 면들을 만들기 위해 검은색이 사용된다. 검은색은 기본적으로 무대이며, 여기에 드리워진 빛은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암시하는 추상적인 장치이다. 그 무대 위로 인물들이 오가고 시선들이 움직이며 침묵과 지연(遲延)이 화면을 지배한다. 이제 곧 누군가가 첫 대사를 말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이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회화는 그 이전의 지점에 머물러 있고, 아직 인물들에게는 조명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 윤민지의 작품들 가운데 특이한 연작이 있는데, 바로 활주로 바닥을 그린 것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느리게 주행(taxi)하는 구간의 바닥을 그린 듯한 것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비행기의 불빛에 의해 빛을 받은 화면 아래쪽의 바닥에 쓰인 사인(sign)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바닥에는 활주를 위한 지시 대신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못해 새울까', '돌이킬 수 없는 줄도 모르고', 혹은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와 같은 노래 가사 같은 문구들이 멀어져 가는 원경 속에 어렴풋하게 나타나 있다. 회화에서 단어의 기재(inscription)를 사용한 예들은 수없이 많다. 그것이 시각적 요소이건 개념적 요소이건 이러한 단어들의 사용은 회화적 요소로서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다.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나 에드루샤의 경우, 단어의 사용은 작품의 형식을 지배한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이미지를 생산하며 뒤샹이 말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색채'(invisible color), 혹은 그 이상의 것이 된다. 윤민지의 작품에서 이 문장들은 비행기의 현창(舷窓)에서 내다본 어두운 공간에 투사된 심리적 파편들일 수 있다. 동시에 이것들은 이 공간이 만들어내는 알 수 없는 얼룩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활주로의 어둠은 거대한 이드(Id)처럼 무의식의 바다를 이룬다. 그것으로부터 무엇이 솟아오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 그것은 이제까지 지상에 나를 붙잡아 놓았던 상념들의 잔상을 마지막으로 표시한다.

윤민지_준비의 시간_캔버스에 유채_100×72.7cm_2011
윤민지_ 깨지못한 밤_캔버스에 유채_100×72.7cm_2011

윤민지의 작품이 지니는 극적 성격은 특정한 내러티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분할에서 비롯된다. 그의 화면은 단적인 비례의 불균형(disproportion)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미니멀리스트 무대미술의 대가인 로버트윌슨(Robert Wilson)의 공간에서 역-투사(Rear Projection)을 이용한 무대화면 전체의 색면효과를 떠올릴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무대 위의 인물들은 어두운 실루엣으로 정지되어 있는 반면 거대한 붉은색 혹은 흐릿한 푸른색의 장방형 빛이 거대한 공간을 채우곤 한다.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 연작이나 「A-S-A」, 「T-A-1」과 같은 작품들의 장면은 윌슨의 「성 세바스찬의 순교」, 「햄릿」, 「파우스트」 등의 무대를 연상시킨다. 화면의 과도한 여백은 모두 심리적 심연에 할애된다. 그것은 인물들의 내면과 등가적인 존재로 바뀐다. 그러므로 여백의 면은 생산하는 면이다. 윤민지는 이 면을 회화적인 면으로 고수한다. 그것은 조금씩 움직이는, 거의 정지되어 있는 면이며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의 재현적 영역이 의존하고 있는 면이다. 회화는 동영상과 달리 하나의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진과 달리 구체적인 시공간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 즉 그것은 영원히 정지된 시간이자 불특정한 시공간을 다룬다. 이것이 회화적 추상성의 본질이다. 그것은 특히 회화가 재현하고 있는 것이 사실적인 대상일 경우 더욱 강조된다. 단(單) 프레임인 유화가 시간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것의 내부에 존재하는 비-시간적 요소들, 즉 면(面), 빛, 분할, 그리고 비례를 이용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서 영원함에 대한 감정이나 절대성에 대한 예감 등을 추출하는 것은 그것들이 정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정지를 선택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 회화적 장소는 세 가지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 모티브로서의 장소, 회화적 장소, 그리고 감상자 안에서 생산된 것으로서의 장소. 윤민지의 장소인 '공항'은 흔히 '헤테로토피아'적인 장소로 분류된다. 즉 '비-장소'(non-lieu), 경계, 통로, 닫힌 공간(espace clos), 비-자본주의적 장소, 전환부 등이 그것들이다. 윤민지의 공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미셸푸코가 언급한 '다른 장소들' 혹은 '타자적 장소'로서의 '헤테로토피아'가 있다. 우리는 그의 분류들을 통해 공항이 복합적인 헤테로피아의 원칙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공항은 수많은 권력과 해석의 형태들이 수시로 자리를 바꿀 수 있는 극장과도 같은 공간이면서, 동시에 감옥처럼 허가에 의해 개방과 폐쇄가 이루어지는 통제된 공간이며 동시에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허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과거의 항구처럼 꿈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동시에 치밀한 감시와 전율의 잠재성을 내포한다. 아마도 과거의 항구와 오늘날의 공항은 바다와 하늘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헤테로토피아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헤테로토피아로서의 '회화'가 있다. 회화적 장소는 '동굴'로부터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헤테로토피아로 남아있다. 그것은 일루젼과 연관된다. 그러므로 회화가 공항을 재현하는 것은 그것의 타자성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언급이 된다. 세 번째는 회화적 장소와 관련된 것으로, 바로 검은색 혹은 추상적 면의 장소성이다. 윤민지의 회화 속에서 의식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이 면의 장소성은 감상자의 시각적 경험 안에서 헤테로토피아를 생산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의 작품에서 '다른 공간', '공간의 타자성'은 회화의 공간, 회화의 타자성으로옮겨적을 수 있다. 회화가 그리는 것은 공항이 아니다. 그것은 장소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소는 회화의 본질이다. 윤민지의 회화를 구성하는 본령은 이 회화적 장소들에 있다. 때로 그것은 어둠이고 때로 그것은 흐릿한 하늘이다. 다른 말로, 추상적 면들인 것이다. ■ 유진상

윤민지_나눌수 없는 밤1_캔버스에 유채_162.2×112.1cm_2011
윤민지_향하여_캔버스에 유채_100×72.7cm_2011

이동을 위한 밤 A Night for Transfer ● 나는'공항'이라는 특정 장소에서 경유를 하게 되면서 마주친 장면들을 토대로 작업하고 있다.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변화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이 공간에서는 출발지의, 또 목적지의 것도 아닌 잠시 부유하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 현대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로서의 건축과 기구를 통하여 물리적인 변화, 이동을 꿈꾸는 공항은 지구에 발을 내려 살아가는 한 생물체로서 가지는 저항력이 극대화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결과임에 불구하고, 그 안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모습은 애잔하다. ● 매우 공적인 공간 안에는 매우 사적인 기다림이 있다. 국가와 국가사이의 경계라는 장소적 특성과 그 기다림조차도 도착과 출발,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사이경계에 있는 듯하다. 낮의 선명함으로부터 피한 개인의 온전한 시간, 심연으로의 자유로운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밤. 그 누구도 방해받고 싶지 않을..혹은 누구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밤. 많은 것을 품고 있으면서도 가려주고 있는 밤에 나는 이동한다. ■ 윤민지

Vol.20110607a | 윤민지展 / YOONMINJIE / 尹旼芝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