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601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도진_김선경_김일완_김지영_박선영a_박선영b 박수진1_박수진2_박재철_백승주_송춘호_송효주 신승민_신희원_안민성_윤재호_윤혜진_이재림 이지영_임성빈_정동균_정준영_조석현_진혜주 차영미_최대규_최신혜_최호준_한세정_허정은_황지혜
기획팀 / 이정헌_진혜주_백승주_정동균 홍보팀 / 박선영b_송효주_윤재호_황지혜 전시팀 / 정준영_정동균_송하경
관람시간 / 10:00am~06:00pm
경인미술관 Kyung-In Museum of Fine Art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 6 전시실 Tel. +82.2.733.4448~9 www.kyunginart.co.kr
오른쪽 뺨을 맞고도 왼쪽 뺨을 내밀만큼 당신은 사랑하십니까? 늘 가슴저리지만 입에 담으면 유치찬란 하게만 느껴지는 말. 사랑... 당신은 사랑하십니까?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밀만큼 사랑하십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당신을, 당신에 대한 비판을 온전히 사랑하십니까? 행복하세요? ... 행복하세요. 당신은 행복하세요... 한강에서 왼쪽 뺨을 맞아도 홍대서 오른쪽 뺨을 맞을 수 있도록. 당신... 행복하세요? 그럼... 나는 행복한 것처럼 보이나요? 나는... 행복하세요? ...행복한가요? 단지 꿈인가요? 나만을 너무 사랑하거나 나를 너무 사랑하지 못하는 꿈. 사랑!...
2011년 도어陶語 기획전시 『오른쪽 뺨을 맞고도 왼쪽 뺨을 내밀 만큼 당신은 사랑하십니까? 』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전시 형식에 있습니다. 전시장 한 편에 작품을 전시하고 다른 한 편엔 롤링페이퍼 식의 작가 비평란(개인당 3절 크기)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롤링페이퍼는 작가노트, 관객노트, 다른 작가노트, 경매 최저가로 구분됩니다. 우선 작가가 자신의 롤링페이퍼란에 작품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형식 없이 자유롭게 적어놓습니다(컨셉이든 이야기든, 어떤 생각이든). 관객이 들어와서 작품을 쑤욱 둘러보고 맘에 들거나 들지 않는 부분에 혹은 갖가지 느낌에 대해 자유롭게 그 작품의 롤링페이퍼란에 가서 적는 겁니다. 또, 다른 작가노트란엔 다른 작가들이 해당 작품에 대한 느낌을 적습니다 (분명 작가의 입장에서는 다른 시선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경매란에는 작가가 희망하는 최저가를 써놓고 전시가 끝날 때까지 가장 높은 가격을 적은 사람에게 판매하는 겁니다. 작품과 비평이 동시에 전시되는 것입니다. 경매까지 치면 판매까지 동시 진행되는 거죠. 그리고 우선 희망 작가에 한해서이긴 하지만 경매 수익금의 일부는 아프리카(우간다 쿠미)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건립을 추진 중인 "꿈꾸는 아프리카 도서관"(대표 정은혜) 에 기부됩니다. 욕심이 과하기도 하지만 작품과 작품내용, 비평, 판매, 사회 환원까지를 한꺼번에 전시 형태로 진행시키는 게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컨셉입니다. 주제의 비중 또한 거대담론의 거짓 흉내내기를 지양하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을 지향합니다. 주제와 전시형식을 다시 요약하자면 사랑이란 감정에서 여러가지 인과를 벗어나 근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지를 주제에서 찾고 사랑의 반대감정인 미워하는 마음에 대해 비난이 될 수도 있는 비평(작가들은 비평에 감정을 싣고 만다.)으로 전시 형식적인 면에서 깊이 통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작품판매를 경매를 이용해 실험합니다. 나아가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한 비생산적인 작품활동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건립을 위해 사회환원 까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2011년 도어 전시『오른쪽 뺨을 맞고도 왼쪽 뺨을 내밀 만큼 당신은 사랑하십니까? 』는 2009년 도어 정기전인『12月 왼손으로 그린 봄 - 나의 生必品』展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왼손처럼 나에 속해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혹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거꾸로 보기였습니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의미 존재를 익숙하지 않은 시각 곧 다르지만 틀리지 않은 의미체계로 다가섬으로써 삶에 있어서 무엇이 보다 소중한지를 되새김 하고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방향성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자 했던 전시였습니다. 2부 격인 이번 전시는 사랑에 관한, 곧 행복에 대한 바로보기입니다. 사랑에 관한, 어쩌면 유치 찬란한 얘기입니다. 사랑, 소망, 평화 중에 제일이 사랑이란 말이 너무 당연해서 잊어버렸는지 세상에 사랑은 널렸지만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사랑하면 행복한 걸 모두가 느낍니다. 불안이 함께 하기도 하지만(생과 함께하는 죽음처럼) 따스합니다. 정말 유치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영위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사랑하고 행복하고 따뜻한 충만함을 느끼기 위한 행동이라고 자위하면서도 정작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꺼려지는 게 좁게는 한국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정말, 완전 사랑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때에야 '사랑해' 라고 말할 용기가 조금 생길 정도로 우리의 현재는 암울한 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행복해?" 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급 당황하게 됩니다. 노련하게 나의 행복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경력 즈음 되는 지금에서도 먼저 드는 건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일까? 입니다. 아무리 힘든 역경 속에서도 네 일을 할 수 있기에 너는 행복한 거 아니냐는 회사원 아님 노동, 농업, 수산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물을 때 저는 (슬픈 표정으로) 장황하게 아니라는 설명을 할 뿐입니다. 너희들처럼 톱니바퀴 속 처지라고... 그리고 다시 한번 스스로도 묻습니다. "당신은 사랑하고 있습니까?" ... '행복하니?' 이 질문은 우리에게 제일 큰 행복일 수도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직업을 고려해서도 저희가 가져야 하는 첫 번째 사명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네요.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던지는 겁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한가요?... 몇몇이 될 지 모르는 관객 여러분에게도요...
"자기만 너무 사랑하거나 자기를 사랑하지 못할 때 그 마음은 참 힘이 들다." ● 정헌은 사랑을 진화생물학에 빗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진화적 산물일 수도 있다는 관점을 잠시 얘기합니다. 동균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혜주는 'give & give' 같은 거라고 말합니다. 정헌은 극단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지만 현재 전혀 그렇지 않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말합니다. 사랑과 행복. 미워하는 마음들. 동균은 내가 보는 것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이며 나를 비추는 부분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승주는 우리가 애잔하게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혜주는 받는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 말이죠. 변색된 사랑과 집착. 승주는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얘기합니다. 너무나 아플 것 같은. 혜주는 아주 조그마한 사랑을 얘기하며 아침에 아내가 끓여주는 녹차라떼에 행복을 만끽하는 사랑을 떠올립니다. 비교하기에 익숙하고 비교당하는 것에 무감각해진 사람들. 사랑들... 비난하며 자신이 높아지는 듯한 착각 속에 살며 거대하고 위대한 사랑만이 흔히들 사랑이라고 얘기합니다. 그 자체로 직관적인 사랑, 첫눈에 반한 사랑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직관이란 무수한 경험에서 나오는 찰나의 판단이라고 정헌은 얘기합니다. 혜주는 사랑하는 그 시각, 그 순간을 얘기해보자고 합니다. 승주는 사랑하는 시간, 사랑하는 동안을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행복을 느끼는 시간들. '...이런 게 다일까? 이게 사랑인가?...' 사랑의 범위를 좁혀보려 했지만 터무니 없다는 것을 한참 만에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 합니다. 싫으면 아예 안 본다. 미워하는 건 사랑의 일부. 동균은 뜬금없이 완성된 컵에 박혀버린 점( LCD의 불량화소 같은)을 보며 계속 보면 정이 가고 예뻐 보인다는 느낌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싫은 행동들이 미운 것. 이기적인 것들. 아무 감정도 없다. 무관심. 진화의 반대말은 도태가 아니라 멸종. ...미워할 마음도 없는 것이 사랑의 반대말. '이런 걸까?' 혜주는 갑자기 작업에 대한 열정 같은 거라고, 다시 사랑에 대해 얘기합니다. 열정이 사랑 같다고. 정헌은 열정은 사라지지만 구조화시킬 수는 있다고 얘기합니다. 순간 혜주가 외칩니다. "사랑의 생필품!"
사랑이란 의미가 너무나 광대해 범위를 좁히려 했지만 각자의 사랑은 그 수보다 더 많아서 어느 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엔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건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거고 또한 거울에 비친 거라 얘기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제일 심한 반응은 무관심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현실은 내 행복을 찾기에도 벅차 모두가 서로에 무관심합니다. 서로가 사랑해야 하는데도요. 사회는 조장하고 개인은 어쩔 수가 없다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그래도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비판 자체가 현대 미술의 자궁이었으니까요. 그럼 정말,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우리를 미워해 보자는 게 전시의 방식입니다(비평은 비난의 얼굴을 할 때가 많으니까요). 사랑하면서 살기에 벅찬 현실에서 우리가 찾는 사랑은 무엇이고 행복하기 위한 방식은 무엇일까요? 사랑에 대한 반대 감정으로 미워한다?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에너지량은 같은 거라 결론지었습니다. 종이 앞 뒷면처럼... 뒤집기 쉽다기 보다는 서로가 함께 한다는. ● 여기서 작품 비평란을 끌어와 봅니다. 좋은 부분도 있지만 듣기 싫은 평가가 더 엄밀한 잣대를 들이댄 것, 소위 제대로 된 비평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약이 입에 쓰며 달콤한 것들이 결과적으로 몸과 마음을 쓰리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감정은 사랑을 전제로 하며 행복을 희망하고 있는 감정이다. 반대로 사랑하는 감정은 지속될 수 없으며 권태롭기도... 간혹 불안한 미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상태가 사랑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아니며 사랑하는 현재 또한 더욱 사랑하기 위한 꿈을 꾼다. 늘상 하는 '진정 사랑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행복하고 싶다!' 의 다른 말이며 예전에 혹은 처음에는 사랑하고 행복했었다는 추억이며 다시 그 감정을 되새기고자 하는 작은 시작이다. 열정은 작품에서든 사랑에서든 사라진다. 더욱더 강한 무언가를 찾는 중독자처럼 사랑은 어쩌면 더욱 강력한 자극을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익숙해지고 무뎌지기에... 행복이 무뎌지는 것에는 안타깝지만 슬픔에 무뎌지고 망각하지 않는 한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일종의 등가교환이랄까? 어쩌면... 아주 좁게, 사랑의 반대를 '이별'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훨씬 많은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지중지는 아니지만 만6년을 넘게 키운, 언제나 함께 했던 앵무새, 카카리키 '만순'이가 죽었을 때의 충격은 아주 작은 것일 것이다. 엄마, 아버지, 형제, 친구, 등등... 내 자식을 만나는 행복과 사랑보다 더 많은 이별들. 다시 열정에 대해 얘기해본다면 열정은 식는다. 반드시! 하지만 기억할 수는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컨셉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와 상통할 것이다. 나는 오래 묵은 정情이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던 순간들을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에 내포하고 있는 구조적인 감정이랄까. ● 다시 사랑이란 주제와 비평이란 전시형식에서 살펴보면 둘은 몸과 마음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몸보다 정신이 더 높은 위치라고 믿는다면 예전 이분법적 사고의 어리석음이다. 마치 흑백논리처럼 말이다. 비평이 싫은 감정, 일종의 사랑하지 않는 감정에 더욱 가깝다면 이것은 미래에 나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며 사랑 자체에 대한 작품은 사랑을 얘기하지만 분명 서툰 우리의 솜씨는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 더욱 가까운 비평을 불러올 것이다. 이 모든걸 옆 쪽에 제켜놓고 가장 중요하게 하고 싶은 말은 작품에서든 내 상황에서든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들을 배제 시키고 나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이번 전시 컨셉이다. 정말 유치 찬란하지만 진짜 사랑이 뭔지 생각하고 혹은 되새기며 진짜, 완전! 행복하자는 것이다. 행복은 비교되지 않는다. 작품이 결국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랑도 행복도 비교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정말 힘들지만) 우리는 비교되지 않는 사랑을 해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내 작품을 진정 사랑하는가 어느덧 두렵다. 비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칭찬은 조금만. 내 자식과 같은 작업인가? 버려지는 깨져버리는 작업인가? 당신의 자식을 깨트리며 쓰레기라고 버리는가? 우리는 정녕 그런 감정으로 작업을 하는가? 생활에서 우리는 그렇게 소통하는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세상과 타자들 속에서 우리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건 꾸준하게 의연하게 나 자신을 의심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진정 순수한 것일지도 모른다. 알 거 알면서 착하지 못하는 우리들처럼 사랑도 알 거 다 알면서 해나가기는 힘이 들다 그렇게 힘이 든 사랑을 우리는 하고 있다. 비난하지 않는다. 내 작품을 그저 사랑할 수만은 없으니까...
기획은 사랑이면서 작품설치 방식에는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에서 전시주제는 순수한 작품에 대한 의지이며 전시형식과 설치 방식은 이 세상이다.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리 온갖 제약과 비판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난조차 더불어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왼쪽 뺨을 내밀 각오로 원수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설치는 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점유한다.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열정이며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라고 생각하자. 개인적인 성향의 작품 크기와 전체적인 미를 고려하지 않는다. 설치 방식은 오로지 순수하게 작품과 도어陶語에 대한 애정도다. 여기 저기 이끌려가지 않는 자기애. 사회는 점점 시스템을 요한다. 익숙한 것에 대해 혹은 익숙해지는 것에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시각예술 단체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위치의 특권과 불이익을 모임의 애정도로 환원했다. 이것은 최소한의 룰이다 기존의 여타 단체전처럼 친목으로만 흘러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하거나, 기득권으로 만연하고 조직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최소한의 애정을 요한다. 과연 매정타 할 것인가? 누가 친한가? 결국은 몇몇으로 돌아간다. 조직에서 기득권은 반드시 주어지지만 우리의 기득권은 최소한의 열정이며 서로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다. 그곳에는 위아래가 없다. 위치에너지가 없다. 그저 수평적으로 동시에 똑같은 크기의 중력을 느낄 뿐이다.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만족감은 깔아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은 모습을 상기하고 자연의 웅대함을 삼차원적으로, 늘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점으로 보는 세상에 대한 경탄인 것이다. 높은 빌딩 위에서 내려다보는 개미들이 아니란 말이다. ● 나를 너무나 사랑하거나 나를 사랑하지 못할 때 사랑은 소멸한다. 여전히 추억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스멀스멀 피어올라 괴롭지만 현재에는 없다. 미래엔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작품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어느덧 익숙해지고 만연한 생각들에 정체된다. 사라진다. 세상에 익숙해지는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도 정체되는 것이리라. 온전히 내 작업을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큼 시간과 정성과 온 마음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크게 네 가지를 상정한다. 첫째는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사랑이 없는 것에 대한 각자의 시선이고 둘째는 전시 형식에서 비난까지 수용하고 설치 방식에서 전시에 대한 애정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셋째는 경매를 통한 판매 양식을 실험하는 것이며 넷째는 고난스럽기만 한 예술가들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며 비생산적인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경매를 통해 적극적인 사회환원을 하는 것이다. ● 우리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따스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있을까?' 를 생각하는 순간은 비교하게 되지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행복한 걸까?' 망각하는 신의 선물은 슬픔을 위한 거지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됩니다. 나는 행복한데 너도 행복하니? 너는 사랑한다는데 나는 행복한 걸까? 나를 너무 사랑하거나 나를 너무 사랑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행복한 걸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모두가 얘기하는데 '나의 사랑은 여기에 있는 걸까?' 최고의 사랑이 없듯이 사회가 조장하는 영화 속 현실의 사랑은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고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내가 최고로 따뜻한 순간이니까요. 비교하는 것에 익숙하고 비교당하는 것에 질려버린 세상입니다. 내가 따뜻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나의 행복을 찾기 위해 세상에 우리는 내던져져 있습니다. 이제는 삶을, 삶의 완성도를 누군가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행복 또한 교과서가 없다는 걸, 왕도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떠올려봅니다. 이 같은 우리를 힐난하는 말들에 우리는 우리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랑이 변하든 유지되든 애정이든 애증이든 사랑하는 마음의 원동력으로는 모두가 인정합니다. 애정은 행복하고 애증은 다른 사랑을 불러올 것입니다. 온갖 현란한 이유를 접어두고 거대 담론을 제켜 놓고 우리가 정말 행복한가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을 느끼며 작업하고 있는가?' 가 우리의 가장 큰 명제이니까요. 이유불문하고 현실의 힘든 점들에 소속감이나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동경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택한 이 어두운 현실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희망하는 것은 자유와 행복일 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작품은 갑甲과 을乙 만의 세상이 아니니까요.
사랑에 대한 추억이든 저주든 현재 상황이든 미래에 대한 희망이든 그리고 어떤 대상(동성과 사물, 생물, 우주, 세계까지)을 향한 사랑이든, 사랑에 필요한 요소든 저해 요소든, 없는 사랑에 대해서도 미운 사랑에 대해서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깊이, 다시 한번 끄집어내어 음미하고 그 마음을 새기십시오. ● 이것은 어떻게 말하든, 보이던 온전히 사랑에 관한 얘기다. 비교하기에 너무나 쉽고 비교당하기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비교하며 우위에 서는 착각에 빠지며 비교당하며 본래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비참하다. 나는 틀린 것이 아니며, 하위개념 또는 상위 개념이 아니다. 그저 다른 것이다. 완전히 틀린 것처럼 보이는 것도 epoche 의 과정에서조차 그저 많이 다를 뿐이란 걸 나는 깨달았으면 하고 우리 또한 알았으면 한다. 다시 말하지만, 믿기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이번 전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사랑에 대한 얘기다. 나를 너무 사랑하거나 나를 사랑하지 못할 때 사랑,... 참 힘이 들다. 나 자신을, 너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세상과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대한 질문들이며, 다시 따뜻하게 사랑하게 되기를, ...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되새김질이다. ■ 이정헌
Vol.20110605d | 오른쪽 뺨을 맞고도 왼쪽 뺨을 내밀만큼 당신은 사랑하십니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