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6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이상향의 이면을 그리는 작가 이경화 ● 이경화의 작품세계는 양극단을 넘나든다. 천박한 야욕들이 만연한 속세에서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타오를 수 없다는 절망이 그녀의 작품세계를 일면 음울하게 덧칠한다. 그녀의 작품이 흔해빠진 작품으로 추락하지 않게 된 힘은, 부단히 지속하는 그림그리기 작업이 우리들이 잊어버린 동경을 불러일으키며 희망을 살며시 비쳐주기 때문이다. ● 작가 이경화의 희망은 지극히 개성적이다.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비전이 필부필부와 다르기에, 그녀가 내밀하게 품은 고독은 붓이 가는 곳마다 여린 눈물처럼 투명하게 화선지에 맺힌다. 일찍이 그녀는 전작에서 한없이 푸른 개울에서 혼자 헤엄치는 잉어의 찬연한 아름다움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은 종국에 절대적인 고독과 동무할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일찍이 예고하였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녀의 작품세계를 이어온 맥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새로운 문제의식을 끌어안으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의 가죽이 부끄러워서 가릴 옷도 필요 없고, 표범 같은 야수를 보고서도 흠칫 겁을 내지 않은 채 정답게 마주서있고, 온갖 나무와 꽃들은 시들 걱정 없이 한없이 푸르기만 한 세계가 작품마다 장엄하게 그려져 있다. 낯설게 하기 기법처럼 파라다이스의 행복을 강조함으로써, 되레 그녀의 작품세계 속 비현실성이 돌출된다. 대중이 반길 만한 온갖 소재를 덕지덕지 배열하며 공허한 아름다움을 양산하는 그림들과 달리, 그녀의 그림 속 충만한 세계의 조화로움은 그림 밖 세상을 차분하고 비판적으로 응시하는 힘으로 귀결된다. 황홀한 백일몽을 꾸고 난 뒤의 황폐한 자조처럼, 작품 속 이미지와 세상이 천양지차라는 점을 이내 깨달으면서 감상자들은 망연자실하게 한숨을 쉬게 된다. ● 화선지 밖 세상에서, 인간들은 온갖 치부를 은폐하기 위해서 두꺼운 의복을 껴입으며, 갈수록 사나워져 가는 세상에서 인간과 동물은 정복과 살상을 거듭하며 매섭게 눈을 치켜뜨고 있고, 혼탁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꽃과 식물은 매연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생명을 상실하며 썩어가고 있다. 섬세한 화가의 눈으로 세상의 모순과 추함을 상시적으로 목격하며 그녀는 그림을 통해 잊힌 기억들을 소환한다.
총체적인 지상낙원에서 이탈된 슬픔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결핍감을 풀어내려 한다. 그러나 오래 전 떠나왔던 태곳적 기원으로 당도하고 싶은 바람과, 향수를 복원하려는 진중한 시도는 결국 난항에 빠지고 만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가운데, 인간들에게 버려지고 망각된 공간에서 꽃이나 풀과 더불어 존재하는 조각상의 이미지는 자못 인상적이다. 실제 인간이 살았더라면 그녀의 그림처럼 완벽한 세상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체념을, 깨지고 헤진 조각들을 통해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인의 모습을 모사한 조각상들은 꽃과 어우러져서 이상화된 조화를 여지없이 뽐낸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가 화석화된 존재로 굳어버린 인간의 형상을 자연 속에 배치한 시도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간의 육체가 딱딱하게 굳어서 영원히 침묵할 때에야 비로소 물화일체가 되어서, 휘황찬란한 미를 발산할 수 있다는 주제의식은 웃을 수 없는 코미디처럼 서늘한 냉소를 흩뿌린다. ● 더불어, 작품 속 조각들은 문학 장르의 액자소설처럼 그녀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채로운 층을 형성해준다. 누군가가 빚어놓은 작품이 그녀의 작품에서 제재로 활용되듯이, 곧 그녀의 작품도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패러디되거나 메타텍스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피에르 바야르는 그의 대표작 「예상표절」에서, 선구적인 작품들은 동시대보다 오랜 시간 후에 등장할 작가들의 작품을 예상해서 '표절'(영향과 수용을 뜻하는 비교문학적 현상에 대한 수사)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주장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먼 훗날 오로지 예술작품과 동식물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디스토피아를 그녀는 품고 있을까. 마치 인간이 절멸된 세상에서 짐승들이 구사할 만한 표현을 인간인 그녀가 일찌감치 예상표절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경화의 작품은 무궁무진한 해석가능성을 제시하며 다의적인 감상을 허용한다.
혹자들은 이경화의 작품세계가 전통적인 회화에서 크게 변모하지 않았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새로움에 대해서 게걸들리듯 현혹되는 한국 미술계의 세태 속에서 정작 새로움이 눈에 띄지 않듯이, 그녀는 강박관념에 빠져서 유행을 좇지 않는다. 그녀는 은밀하고 고요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시곗바늘을 수동으로 움직일 뿐이다. 고유한 주제의식을 끈질기게 동양화의 화폭에 담아내는 성취를 보노라면, 그녀를 평범한 작가 중의 하나로 국한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일단 그녀는 아름다움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풀어내는 낭만주의적인 미학관을 따름으로써, 회화가 궁극적으로 선사하는 감동과 화사함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그녀는 반전을 시도한다.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뒤범벅된 이미지를 강렬하게 처리함으로써,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세를 바라보게끔 이끈다. 여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공간배치도 기실 그림 밖 세상이 침묵으로 수놓아진 여백으로 깔린 것이기에 공간감을 확장시킨다. ● 아직 젊디젊은 작가가 닿을 수 없는 세상을 동경하며 새롭고 낯선 시공간을 사유하는 시도는 진기하기까지 하다. 모든 작가들은 살아가면서 절박하게 맺힌 문제들을 그리기 작업을 통해서 풀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진정 아름다운 가치는 현실에서 결코 실현되지 않기에, 백일몽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냉소를 그녀는 극복하며 한 결 같이 아뜰리에에 칩거해왔다. 설령 다다르고 싶은 세계에 못내 이르지 못해도, 희망을 설계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세계를 위해 정진하는 작가의 시도는 여러 방면으로 실현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르러야 할 세상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시도로 보인다.
이경화의 그림은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거창한 구호 없이 허문다. 그녀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평면감이 두드러지면서 상대적으로 입체감이 약한 편이지만, 곳곳에 의도적으로 입체감을 살리는 기법을 구사함으로써 새로운 동양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 그녀의 그림에는 기실 동서양의 신화와 고전미술이 잔잔히 녹아있다. 파라다이스를 상실한 모티프와 같은 서양의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녀는 전통 민화 속 평면적인 무릉도원을 새롭게 탈바꿈하며 이질적인 두 문화에 대한 자신의 사숙을 조화롭게 증명하고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 짓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 지금, 그녀는 두 문화를 마구잡이로 합치는 방식을 지양하는 대신에 자신만의 깊이로 두 문화의 장점을 적재적소에 끌어내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 범상치 않은 주제의식을 표현하려는 난해한 시도를 시종일관 이어가는 과정에 변모와 실험이 기분 좋게 수놓아져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며 위안과 행복을 얻을 것 같다. ■ 박정준
Vol.20110602i | 이경화展 / LEEKYUNGWHA / 李京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