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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52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5:0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1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또 다른 너의 존재" 두 번째 움직임, "너의 정원" ● 나는 사진가로서의 최종 목표는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연을 담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볼 수 있는 그냥 정지 되어 있는 자연으로만 보여 지는 자연, 즉 우리 눈으로 보면 즉시 알 수 있는 자연이 아니라, 긴 시간동안 변화와 작용으로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이다 그것은 너의 모습을 말하며, 우리들 모든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자연을 찍을 수 없다. 또한 자연은 내가 보여주려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페인트를 담는다. 페인트를 자연현상처럼 충돌을 시키면 물적(物的) 현상처럼 서로 대립적인 모습을 형성 한다. 그리고 담는다. 즉 혼돈 속에 생성되며 소멸되는 자연현상의 움직임을 담는 작업이다. ● 변화와 작용의 모습, 즉 동 시간에 생성과 소멸은 끊임없는 반복 순환적이며 새로운 생을 위한 준비이며 모습이다. 생을 위한 자연현상은 혼돈 속에 허우적거리지만 생성을 위한 공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의 사회 속에서도 서로를 허용하는 내적인 모습이나 외적인 모습을 가릴 것 없이 멈추지 않고 우리는 지속적인 변화와 작용이라는 근원적인 자연원칙에 갇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 ● 특히 나의작업은 대상에 대한 본질을 담으려 했으며 정적인 대상보다는 동적인 대상에서 세상의 존재로서 사실적의미를 찾고, 사실적 존재를 부여한 움직임에 대한 진정한 존재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나의 사진에서 보여 지는 움직임은 대상의 존재에 대한 해석이지만 사유적인 행위는 작가가 동시간의 움직임에 대한 연관성을 확장하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존재한다. 이번전시인 "너의 정원"은 우리들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모습이 숨겨져 있지만 숨겨지지 않는 모습으로 그대로 드러내려 한 것이다. ■ 이호영
이호영 - 진정한 자연의 시공간 ● 이호영의 사진은 흡사 물감의 질료와 붓질의 흔적만으로 이루어진, 비대상적인 추상회화를 보는 듯하다. 외형만 봐서는 그대로 그림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진이다. 그는 추상회화의 표면을 촬영했나? 아니다. 그는 추상회화를 떠올려주는 물질의 표면을 찍었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찍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찍을 수는 없다. 사진은 레디메이드이미지다. 그런데 이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런 물질의 표면을 연출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았다. 물질과 함께 퍼포먼스를 한 과정, 그 결과의 어느 한 순간을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출현한 이미지는 물질들이 서로 섞이면서 자아내는 격렬한 혼돈의 상태이자 자연법칙에 의해, 물질의 속성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취의 기록이다. 그는 일정한 틀에 특정한 색채를 지닌 페인트를 쏟아 부었다. 그 페인트가 흘러내리고 뒤섞이면서 페인트 자체가 지닌 성질과 자연의 보이지 않는 여러 힘(시간과 중력 등)이 작용하고 충돌하는 과정이 멈춰진 어느 한 순간이 고정되었다. 페인트를 자연현상처럼 충돌시켜서 이른바 서로 대립적인 모습, 즉 혼돈 속에 생성되며 소멸되는 자연현상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이런 연출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진 속에 담긴 장면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장면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여러 상황을 상상하게 해주는 한편 팽창과 분열, 터짐과 확산, 생장과 소멸 등등을 어렵지 않게 유추시키는 이미지다. 흡사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생명체 같기도 하고 우리 몸의 내부를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다.
작가는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연의 시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작업의 목표라고 말한다. 자연은 정지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생생불식 하는 존재다. 그것은 생성적이고 수시로 변화를 거듭하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 고정된 찰나를 건져 올리는 사진으로는 그 변화를 거듭하는 자연의 속성과 이치를 보여주기 어렵다고 본 그는 긴 시간 동안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페인트를 가지고 연출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혼돈 속에 생성되며 소멸되는 자연현상의 한 모습이 얼추 사진 안으로 호명되었다. 따라서 이호영이 연출해 찍은 사진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자연관)을 물질의 힘을 빌어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페인트라는 물질은 쉽게 보이지 않는 자연의 속성을 가시화하면서 서서히 흐르고 퍼지고 합쳐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페인트가 뒤섞이는 과정이 자연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러한 물리적 과정을 보편적인 자연현상과 그대로 접목시킬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자연의 비가시적 속성과 힘을 연상시키는 데는 효과적이라고 보았기에 작가는 이 장면/사건을 촬영했다. 근작에서는 나비이미지를 합성해서 페인트가 짓는, 물리적 현상이 짓는 이미지와 마주보게 했다. 그러는 순간 그 둘이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조응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어쩌면 페인트는 물활론적으로 생명체가 되고 자연이 되어, 온갖 존재가 되어 출현한다.
모든 사건들이 생겨나는 궁극적인 이유를 부유(富有), 일신(日新), 생생(生生)으로 해석하 는 것이 유가이고 망발(妄發)로 해석하는 것이 불교이다. 도가는 이를 자연으로 해석한다. 이호영은 그 도가적 해석인 자연에 동의한다. 반면 필자는 불교의 망발에 더 기운다. 그러나 '자연'으로 해석하거나 '망발'로 해석하거나 모두 아무런 원인 없이 저절로 그러하다는 뜻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자연은 그런 존재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역시 그렇다. '나'라는 생각은 분별하여 아는 능력에 기인하고, '나'의 인식은 그 자체가 바로 분별이며, 이 분별이 '나'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만물은 원래 '나'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감각이나 인식작용이 있는 모든 생명들은 각자의 기능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성하며 모두 '나'와 동류이지만, 지금 '나'의 눈에 '나'이외의 사물들이 '나'와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나'의 인식은 전도된 것이고, 참된 모습은 아니며, 마음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중국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의 사상이나 행위가 어떻게 나의 생명과 완전히 융합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의 생명과 우주가 어떻게 융합하여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일 것이다. ● 동양미술은 언제나 인간과 자연, 인위와 무위, 법칙과 혼돈 사이에서 유동했다. 생성적이고 변화무쌍한 외계를 고스란히 정지시켜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었고 서구미니멀리즘 처럼 사물 그 자체가 미술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예술은 항상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거나 줄타기를 하거나 틈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림 역시 자연처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유동적이며 시간의 힘과 자연법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그것과 부단히 일체를 꿈꾸거나 조화로운 어떤 상황을 갈망해왔다고 본다.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었을 것이다. 나이 생명과 우주가 어떻게 융합하느냐가 미술/예술의 문제이기도 했을 것이다. ● 이호영은 사진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연의 시공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 자연은 고정되고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그런 자연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변화와 작용으로 수시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닌 존재다. 자연은 사실 혼돈 덩어리다. 자연과 그 속에 갇힌 인간 역시 지속적인 변화와 작용이라는 근원적인 자연현상과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유동하는 것이 자연이고 생명이다. 결국 작가는 대상에 대한 본질을 담고자 하며 따라서 정적인 대상보다 동적인 대상에서 세상의 존재로서 사실적 의미를 찾고 있다. 그의 사진은 그런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다. ■ 박영택
Vol.20110527d | 이호영展 / LEEHOYOUNG / 李昊英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