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527_금요일_05:00pm
주최, 기획 / Art space LOO
제1부 / 경계와 유토피아 Boundary and Utopia 2011_0422 ▶ 2011_0522 참여작가 / 김영헌_사윤택_이상현_전채강_호야
제2부 / 꿈 속의 꿈 Dream in Dream 2011_0527 ▶ 2011_0626 참여작가 / 김현식_윤상윤_윤혜정_이샛별_이지연_임영선
아트스페이스 루 ART SPACE LOO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110번지 Park110 빌딩 Tel. +82.2.790.3888 www.artspaceloo.com
미술에서 보이지 않는 유토피아의 꿈을 이미지로 포획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선 지난 10년간 사람들의 영토는 현실을 넘어서 가상공간과 현실의 삶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IT 강국 한국의 면모는 한국인 개개인의 삶에도 반영되어 있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게 된 한국의 현대인들은 신기술들과 더 빠른 속도를 꿈꾸며 미래적 유토피아가 구현되고 있다는 믿음을 증식시켜 간다. 과연 인터넷과 교통망, 세계경제권으로 통합된 이 시대에 로컬리티라는 화두의 의미는 무엇이고, 아시아와 한국이라는 지역의 삶은 세계화된 이 시대에 어떤 모습을 가지는가? 마지막 이데올로기 분쟁지역 한국, 2011년 한국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어디에 존재하며 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는 어디일까? 우리시대의 작가들은 아시아와 한국이라는 로컬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어떻게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을까? 갤러리 Art Space LOO가 '유토피아 유감'이라는 주제로 엮는 두 개의 기획전에서 참여 작가들이 던지는 로컬적 유토피아에 대한 물음들과 상상력들을 느껴보기 바란다. 제2부 : 꿈 속의 꿈 Dream in Dream ● 21세기의 사람들은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킹,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타인들을 만나고 의사를 소통하고 생각을 증식시키며, 아바타를 통해 경험하고, 게임의 미션을 수행한다. 가상세계 속에서 주체의 대리자인 아바타는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에 위치한 또 다른 주체가 되어 가상세계 속의 꿈을 꾼다. 과연 아시아와 한국이라는 역사적, 지역적 특성을 가진 이 지역의 현대인들은 이러한 가상 경험의 변화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무의식이나 꿈, 가상세계 속의 상상력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어떤 형식과 시각적 요소로 표출되고 있을까? 두 번째 전시, '꿈 속의 꿈'에서는 꿈과 무의식, 가상세계, 유토피아를 작업의 요소로 다루거나 디지털적으로 생성된 이미지를 차용하며 가상성에 대한 상상력들을 드러내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김현식 ● 검은 빛에 가까운 깊은 청색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묵직함을 시원한 폭포수의 물줄기가 화면을 가로질러 흘러내린다. 물의 흐름은 속도감을 가지며 화면 구석구석을 굽이쳐 흐르기도, 때로는 그 안에서 다시 깊은 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흑단 같은 긴 생머리를 가진 여인의 뒷모습으로 알려진 김현식의 새로운 작품들이다. 김현식은 그 동안 레진 (resin)을 사용하여 2차원의 평면 속에 공간을 가두는 실험을 지속해 왔다. 여기서 이미지는 이러한 여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자 과정의 하나였다. 이번에 선보이는 「Illusion」에서 김현식은 시간과 공간을 한 화면에 압축해 보여주며, 이전의 작업에서 보탬과 더함을 합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작업을 선보임으로써 그가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박경린, 압축된 시간을 공간에 담는 현대의 장인, 2010」에서 발췌)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동서양은 평균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동양인은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self)를 전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서양인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를 전체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여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 (EDWARD HALL)은 이러한 차이를 '저맥락'사회와 '고맥락'사회로 설명 했다. 고맥락의 사회에서의 정체성이란 인간관계, 집단의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이 집단에 속할 수 있도록) IDENTIT를 공유하려는 의지를(교집합적의지) 말한다. 사람들은 점점 일반화 되고 있다. 미디어를 처음으로 대중 선동에 썼던 독일 나치의 아이디어처럼 그룹이 공유하는 정체성은 곧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룹이 형성한 패러다임을 위협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곧 정체성에 대한 거부나 권력에의 대항이기 때문에 개인의 Individuality는 점점 다듬어져 가고 일반화된 Identity만 남는 상황이 현대사회 구조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 윤상윤
그의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빠르게 지나치는 만남과 스침의 관계로부터 느끼는 낯섦에 대한 경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차와 도로, 건물과 사람들 사이로 빠른 흐름들이 넘쳐나는 도시, 도시 속 건물과 풍경의 표정을 포착하는 것은 현대도시의 속도와 변화에 따른 흔적의 기록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건물이다.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을 매일같이 보며 지나다 보면 그 풍경이 매우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무엇 때문일까? 세상의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순식간에 잊혀지고 생겨나듯, 도시의 흐름처럼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새로움의 충격들로 인해 스쳐 지나가는 잔상이 될 뿐이다. 이러한 낯섦에 대한 감정은 현대 사회에서의 피상적인 관계와 그 속에서 불안정한 존재로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면의 감정들을 자극하여 일탈을 꿈꾸게 하였다. 이러한 일상과 일탈에 대한 생각이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모티브이다. ■ 윤혜정
이샛별 ● 이샛별의 작품 속에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하나는 파티용품점에서 구입한 토끼나 여우가면을 쓴 모습으로, 다른 것은 아니무스(animus)를 연상시키는 중성적 존재로서의 자아이다. 이 둘은 거의 대부분 푸른색의 트레이닝 복장을 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두 개의 자아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주체와 작가의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물이자 충동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의미하는 도플갱어(Doppelganger)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완전한 인격이란 사실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인간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다중인격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요인일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샛별의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두 자아는 그가 지닌 많은 자아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태만, 흘러내리는 살」에서 발췌)
4년간의 유학생활은 나라는 작은 개인의 존재와 사회의 관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고, 난 작업의 과정을 통해 사진 속 익명의 수많은 타인들을 관계 맺어 가고 있다. 한편, 이 과정은 그 사람들을 통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해체된 새로운 공간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익명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몸 속의 한 세포처럼, 우주의 작은 부분처럼, 난 그들이 결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나의 상상의 공간 안에 존재하길 바란다. 이 상상의 공간은 중심과 주변, 개 인과 집단,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지역성과 글로벌 아이덴티티의 경계를 고민하며 펼쳐진다. 관조적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적으로 살피는 태도이다. 무심하게 담담한 듯 바라보는 시선에는 무엇 한가지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선의 강요'가 없다. 나는 그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임과 동시에 잠재적인 객체이고, 그 대상들은 잠재적인 주체인 것이다. ■ 이지연
임영선 ● 물질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삶의 평화를 만나고 있는 모습은 우리들에게는 이미 낯선 풍경이 되었다. 극진한 종교와 영성이 힘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초라하고 가난하지만 맑고 밝은 웃음과 순박한 심성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신에게 의탁하며 살아가는 그 무심한 이들이 몸에서,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완강함을 지닌 육체에서 모종의 무서움을, 깨달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그곳 어린아이들이 얼굴이 그럴 것이다. 아름답고 절대적인 자연 앞에서, 불모의 땅 앞에서도 신께 순응하며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작은 몸이 큰 바위 얼굴 같은 아이의 얼굴과 함께 한다. 작가는 티베트 아이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우리 들에게 보여준다. 선물처럼 안긴다. 그것은 티베트의 어린이들과 그곳 자연환경, 풍습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나 다큐멘터리적 시선은 아니다. 인간이 애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러나 지금은 망실되고 유실되어버린 어떤 근원적인 얼굴이자 그 얼굴에 깃든 마음을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얼굴을 만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박영택
Vol.20110527c | 유토피아 유감 - Art space LOO 개관기획展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