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52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4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비정형의 얼룩으로부터 파생된 이상향, 유사낙원 ● 송태화는 전작에서 동물 형상을 소재로 하여 인간 내면의 감정 상태를 유비적으로 표현했었다. 동물 형상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반드시 어떤 특정의 동물을 지칭하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설핏 동물 형상을 닮아 있을 뿐, 사실은 알 수 없는 비정형의 얼룩이나 그저 유기적인 덩어리로 환원된 몬스터에 가까운 것이었다. 동물 형상과 몬스터는 다르다. 동물은 그 정해진 형태가 있지만, 몬스터는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다. 몬스터는 말하자면 현실 속 동물이 아니라, 상상력이 만들어낸 감정상태의 이미지이다. 감정 상태를 유비적으로 표현한 것. 몬스터가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듯 감정 역시 그렇다. 그 형태가 비결정적이고 우연적이고 임의적이고 열려져 있는 것. 그러면서도 그저 막연하게 감정 상태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 작가의 그림에서 몬스터는 말하자면 욕망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비정형의 유기적인 덩어리나, 심연에서 부유하듯 어둠 속에서 부각되는 알 수 없는 형상이 이렇듯 욕망의 화신으로서의 몬스터를 효과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전작에 나타난 요소들의 상당 부분을 계승하고 변주한다. 이를테면 비정형의 얼룩이나 암시적인 형태와, 우연적이고 임의적인 형태, 그리고 동물 형상과 상상속의 동물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무의식의 풍경, 내면 풍경 내지는 심리적인 풍경으로 지칭할 만한 지평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비정형의 얼룩으로부터 파생된 세계.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작가는 먼저 캔버스나 종이 그리고 때로 합판 등의 화면에다 비정형의 얼룩을 조성한다. 얼룩은 짙게 칠해진 부분이 있는가 하면, 소지의 질감이 드러나 보일 만큼 엷은 부분도 있어서, 짙은 부분과 엷은 부분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비정형의 덩어리를 이룬다. 여기에 더러 수묵의 선염(번짐 효과)을 연상시키는 질감이 가세된다. 그 얼룩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이러저러한 형상들이 떠오른다. 일종의 연상 작용에 힘입어 때로 엷은 얼룩 위에다, 그리고 더러는 얼룩과 얼룩 사이의 빈 여백 부분에다 그렇게 머리에 떠오른 형상들을 덧그린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비정형의 얼룩과 얼룩 사이에 무슨 세밀화를 연상시키듯 정치하게 묘사된 형상이 어우러지고, 얼룩과 형상을 외곽에서 싸안고 있는 가장자리 화면의 여백이 대비되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 이 일련의 그림들에서 작가는 그리기와 찍어내기, 회화와 판화의 프로세스를 하나의 화면에다 중첩시킨다. 주로 종이를 소지로 한 그림에선 판화의 프로세스가, 그리고 캔버스 작업에선 드로잉의 회화 과정이 두드러져 보인다. 판법으로는 그림의 성격에 따라서 여러 기법이 동원되는 편인데, 동판화에서의 부식기법과 아쿼틴트, 콜라그래프, 그리고 단독 그림을 위해서 목판화 기법이 차용된다. 부식기법과 아쿼틴트 기법은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의 음영이 감도는 얼룩을 효과적으로 조성하게 해준다. 그 얼룩이며 질감 그대로 펜 드로잉에 의해 정치하게 묘사된 형상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콜라그래프 기법은 일상적인 오브제를 직접 차용하는 형식으로서, 오브제 고유의 질감 그대로를 찍어낼 수가 있다. 이렇게 얻어진 질감이 비정형의 얼룩의 일부로서 포섭되고, 그려진 부분과 대비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화면에 풍부한 질감을 연출한다. 작가는 나아가 콜라주 기법을 부분적으로 차용하기도 하는데, 콜라그래프 기법이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 적용된 경우라 하겠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콜라그래프 기법이 오브제의 질감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콜라주 기법이 오브제의 이미지를 얻기 위한 점이 다르다. 이 일련의 판법과 화법이 서로 스미고 이끌면서 그 질감이나 표정이 풍부한 회화적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 ●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 과정은 기계적이기보다는 유기적이고,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이고, 계획적이기보다는 우연적이다(계획적인 우연성?). 얼룩 자체가 이미 비결정적인 형상이며 비정형적인 형상, 열려진 형상이며 암시적인 형상을 일정정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런 얼룩의 비정형적인 형상성은 이미 전작에서 일정부분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얼룩의 비정형성과 무의식의 비정형성이 서로 연동되고 있는 것. 그래서 작가의 그림에는 얼룩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형상에서 마저 이 비정형성이 암시적인 형태로 확대 적용된다. 알만한 형상이 낯선 형상으로 변형되고 있는 것. 그 이면에는 일종의 우연성과 자동기술법과 자유연상기법이 작동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상호간 이질적인 계기들이 유기적으로 연동된 세계, 이를테면 판법과 화법이, 비정형의 얼룩과 세밀화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세계, 유동적인 세계, 흐르는 세계의 비전을 열어놓고 있는 것. 정리를 하자면 작가의 그림은 비정형의 얼룩으로부터 파생된 무의식의 세계를, 그 비전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민화의 차용과 변용. 작가의 그림은 비정형의 얼룩이 조성된 부분과 그 얼룩을 외곽에서 감싸고 있는 여백이 대비되는 형식을 띤다. 자연스레 모티브는 얼룩 부분에 집중되는데, 그 얼룩이 흡사 수묵화로 그린 산수풍경을 떠올리게 한다(나중에 살피겠지만, 작가는 여백 한 가운데 부유하듯 떠 있는 그 풍경을 일종의 섬으로 가정한다). 작가는 그 얼룩 위에다, 그리고 더러는 얼룩 사이에다 그림을 그려 넣는데, 때로는 붓으로 그리고 더러는 펜 드로잉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다. 붓으로 그린 그림이 얼룩과 유기적으로 연장되고 있다면, 일종의 세밀화의 방식을 따른 펜 드로잉은 얼룩과 대비되면서 일정한 장식성과 함께 그림을 읽는 맛을 더한다. ● 그 풍경은 흔히 산세가 중첩되면서 전개되는 형태를 띠는데(엄밀하게는 작가의 상상력이 얼룩으로부터 찾아낸 형태), 작가는 대개 봉우리에 해당하는 부분에다 굽이진 노송과 함께 정자를 포치하고, 하늘에는 학이나 봉황 그리고 까치와 같은 새를 부양시킨다. 그리고 뭍에는 뭍 동물들을, 바다에는 물고기나 거북 같은 수생동물들을 위치시킨다. 그 동물들 중에는 알만한 것들도 있고, 용이나 봉황 같은 신화적인 동물들도 있다. 특이한 것은 이 동물들과 식물 모티브들(이를테면 죽순과 연밥)은 물론이거니와 노송과 정자 역시, 그리고 나아가 이 모티브들을 배열하는 방법마저 한눈에도 전통적인 민화의 작화방식을 떠올려준다는 점이다. ● 정리를 하자면, 작가는 민화의 전형적인 모티브들을 광범위하게 차용해 와 그림 속에다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단순한 이미지의 차용을 넘어 서사마저도 차용되는데, 이렇게 차용되고 변용된 모티브와 서사를 마치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그림 속에다 숨겨놓고 있다. 이를테면 까치와 호랑이의 해학과 풍자, 관재를 상징하는 잉어, 하늘로 승천하는 용, 부귀를 상징하는 봉황, 그리고 장수를 상징하는 모티브들이다. 전통적인 모티브들을 현대적인 문법 혹은 자기 식의 문법에 맞춰 재해석한 것이다. 민화 그대로 그림 속에 들어와 있다기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각색되고 개작된 형태로 변형된 경우란 점에서, 그리고 일정정도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그려진 그림이란 점에서 일종의 초현실주의의 변주가 읽혀진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민화는 그 이면에 민초들의 소망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작가는 어쩌면 현대인의 무의식적 욕망을 반영한 일종의 신민화도를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꿈꾸는 섬. 작가가 자신의 근작에 부친 주제다. 그림에서 화면의 가장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허허로운 여백은 그대로 내면의 바다 혹은 무의식의 바다를 형용하는 것 같고, 화면의 가운데 조성된 얼룩은 그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 같다. 작가의 그림은 말하자면 의식의 수면 위로 건져 올린 무의식의 편린들이며, 일종의 내면풍경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그 섬이 꿈을 꾼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섬 하나쯤 간직하고 있다.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감행하게 해주는, 현실로부터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해 줄 것 같은 섬. 그 섬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하고, 자기반성적인 과정으로 귀결되고, 자기연민에 감싸이게 한다. 섬은 곧 저마다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섬의 본질은 고립이고 고독이며 자기폐쇄성이다. 그 섬에다 작가는 민화의 이상향이며 유사낙원을 이식해놓고 있다. ■ 고충환
Vol.20110525b | 송태화展 / SONGTAEHWA / 宋泰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