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원 My Garden

여경섭展 / YUEKYOENGSUB / 呂景燮 / mixed media   2011_0520 ▶ 2011_0619 / 월요일 휴관

여경섭_A Couple and Garden_종이 컷팅_112×82cm_2011

초대일시 / 2011_0520_금요일_06:00pm

스페이스 씨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ㅅㅅㅅl SPACE SSEE 대전 중구 대흥동 223-1번지 2층 Tel. 070.4124.5501 cafe.naver.com/spacessee

여경섭이 초대하는 풍경, '나의 정원' ● 여경섭은 먼지를 이용한 작업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의미를 지닌 장소를 선정하고 그 공간을 사진 등을 이용하여 구성한 다음, 거기에 청소기에 걸러진 먼지와 생활의 잡다한 부스러기, 그리고 소소한 소품이나 사진들을 사용하여 꾸미고 설치해 놓고, 그것을 다시 사진으로 찍은 작업이 그것이다. ● 한 공간에 쌓인 먼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공간에서 흘러 지나간 시간의 퇴적물이며, 그 공간에 머물러 호흡하고 사고하고 판단하며 행동한 사람들의 흔적이다. 그러한 공간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결정이 이루어진 곳일 수도 있고, 사회적, 혹은 문화적으로 유의미한 현상이나 전환이 야기된 곳일 수도 있으며, 단순히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무대일 수도 있다.

여경섭_Brother and Garden_종이 컷팅_112×82cm_2011

작가는 그 공간이 어떠한 곳이든 간에 그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쌓이고 담긴 장소라는 점에 주목한다. 역사적인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혹은 어떤 사회·문화적 전환이 이루어지기까지, 혹은 외형상으로는 특이할 것 없는 일상의 삶이 진행되는 배후에, 드러나지 않은 이면들이 교차하고 그 흔적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소소하고 사적인 관계로부터, 감정의 교류, 치부와 음모, 협상과 거래, 나아가서는 그러한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거쳐 왔을 또 다른 많은 공간들에서 묻혀온 또 다른 관계의 흔적들이 묻어 있음을 의미한다. ● 이렇게 먼지라는 매개물을 통해 그가 어떤 공간을 파악하고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관심, 그러니까 세계에 대해 그가 작가로서 관심을 표명하고 발언하는 길(방식)이다. 먼지라는 것은 어디를 막론하고 편차 없이 일정하게 쌓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먼지의 성분은 한 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의 긍정적 요소로부터 왔을 수도 있고, 반대로 부정적 요소로부터 왔을 수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이 사회에 야기하는 결과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으며, 또한 개개인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 먼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고하고 판단하며 행동한 결과물로서의 먼지는 균질하고 안정적으로 쌓이지만, 먼지를 만든 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이 늘 사회를 안정적이고 공정하며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것이 여경섭이 세계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순조로워 보이는, 혹은 그렇게 보이도록 조작된 사회 이면의 부조리, 부정의, 불합리, 모순과 같은 것들을 들추어내고 상기시킨다.

여경섭_In My Gard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5×19cm_2011

이번 전시에서 여경섭은 이러한 먼지와 사진을 이용한 이전이 작업과는 매우 동떨어진 재료와 형식의 작업을 보여준다. 색을 입힌 종이를 칼로 세밀하게 오려낸 평면과 설치, 그리고 캔버스에 단색 선묘로 그린 그림들, 그리고 비디오작업 등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선 먼지작업에서의 관심사나 사회나 외계에 대해 그가 작업을 통해 관계 맺는 방식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 먼저, '종이 투각'은 꼼꼼하고 세밀한 칼질로 오랜 시간 노동을 투여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는 핵심이 되는 모티프를 화면 전체에 드로잉한 후, 그것을 칼로 새겨 나간다. 한데, 그 새기는 과정은 단순히 윤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핵심 모티프를 장식하듯 다양한 형태의 꽃이나 잎, 줄기를 가진 식물 형상을 윤곽선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리하여 화면 전체는 무수한 잎과 꽃, 줄기로 가득한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경섭_Monk and Garden_종이 컷팅_112×82cm_2011

그러한 한편으로 모티프와 관련이 있는 사물이나 어떤 행위 중에 있는 인물들을 자그마하게 문양처럼 곳곳에 새겨 넣는다. 이에 따라 핵심 모티프는 결국 그 윤곽이 모호해지며, 식물과 작은 문양들을 이루는 윤곽들과 뒤섞이고 교차하여 화면에는 레이스 천처럼 가는 선들만이 남게 된다. 결국, 핵심 모티프도 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고, 작은 모티프들 또한 숨은 그림을 찾듯 주의를 기울여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면을 그는 '나의 정원'이라 부른다.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곳에 그가 발견하여 채집한 이러저러한 이미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그의 정원인 것이다.

여경섭_My Gard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5×45.5cm_2011

여기서 기본이 되는 핵심 모티프는 작가의 관점이나 사고를 반영하는 제작 당시의 관심사이다. 문화적, 예술적, 혹은 사회·정치적으로 다중적인 의미를 가진 대상인 것이다. 작가는 그 대상을 새기는 과정에서 그 대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관념을 형상화한 사물이나 연관이 있는 대상을 새겨나간다. 그러한 사물이나 대상에는 핵심 모티프를 직접 연관이 있거나 상징하는 것들로부터, 작업실을 오가며 차 속에서 듣는 방송이나 집에서 보는 뉴스, 또는 인터넷에 오른 사건들에서 채집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 먼지를 이용한 작업이 그러하듯, 종이를 새긴 작업에서도 작가는 자신이 채용한 중심 모티프와 거기에 연관된 작은 이미지들을 통해 사회와 관람객에게 발언을 하고 있다. 화면 위로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발견하는, 작가의 관찰자적인 시각에 의해 채집되어 그의 정원에 초대된 이미지들은 제각기 핵심 모티프와 관련하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이나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작가의 사유나 반응들과의 연관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경섭_My Garden_종이 컷팅, 설치_2011

한편으로 그는, '평면 투각'에 등장하는 작은 이미지들과 유사한 형상을 역시 윤곽으로 새기고, 가늘고 길게 구불구불한 선으로 연결하여 쌍으로 늘어뜨린 설치작업을 보여준다. 이렇게 쌍을 이루는 이미지들은 그가 일상 속에서 그때그때 포착한 시사적인, 혹은 그의 생각을 상징하는 사물들이다. 서로 다른 수많은 형상들이 늘어선 공간 속에서, 관람객은 그의 정원에 초대된 손님처럼 작가의 관념과 사회에 대한 생각들 속을 거닐며 작가와 대화하듯 자신의 생각을 교환하며, 작품, 그러니까 이미지들과 자신만의 또 다른 관계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여경섭_My Garden_종이 컷팅, 설치_2011

작가는 이와 같은 두 가지 형식의 작업을 캔버스 위로 옮겨 놓기도 한다. 정원을 가는 붓으로 직접 그리기도 하고, 두개의 연결된 이미지를 새겨 붙이는 방식이다. 이는 그가 이제까지 다양한 조형방식, 즉 드로잉, 자연 속의 설치를 포함한 만들기와 깎기에 의한 입체작업, 그래픽 기법이 가미된 영상작업, 사진작업 등을 시도해온 것에서 확인하듯, 그때그때 다루어지는 작업의 주제와 조형형식에 내재한 또 다른 가능성이나 의미의 발굴을 위한 시도라 할 것이다. ● 그러한 점에서 이번에 함께 전시되는 두 점의 영상작업 또한, 여경섭이라는 작가가 걸어온 조형의 흔적과 자취를 확인하는 동시에, 다양한 형식을 통해 꾸준히 지속되고 제기되어 온 관심사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 박정구

Vol.20110521i | 여경섭展 / YUEKYOENGSUB / 呂景燮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