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519_목요일_06:00pm
주최 / 파이낸셜 뉴스_fnart space
관람시간 / 화~토 10:00am~06:00pm / 일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에프앤아트 스페이스 fn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동 157-78번지 2층 Tel. +82.2.725.7114 www.fnart.co.kr
몰입의 순간 ● 무엇에 신경을 뺏겨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시간은 하루에 과연 몇 분이나 될까? '몰입'이란 간절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쏟아 붇는 시간이며 그 순간 주위를 둘러싼 공간, 시간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잊게 되는,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예술행위 자체가 이러한 몰입의 행위이며 순수한 행위 그 자체만으로 충만한 최적의 상태를 말한다. 드로잉은 생동하는 사유와 몰입의 행위가 만나는 가장 원초적인 시간이고 관념의 형태가 시각화되는 태초의 순간이다. 이에 현대예술에서 드로잉은 보다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개념으로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 1976년 뉴욕 근대미술관 드로잉 집의 본문을 집필한 바니즈 로즈(Bernice Rose)는 드로잉의 기능에 대해 "드로잉의 기능과 역할, 표현 방법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로잉은 대체로 두 가지 개념, 즉 화가의 사고가 가장 지성적인 매체로 회화, 조각, 건축의 기초적인 통제를 한다는 개념과 작가의 아이디어와 형상이 직접적이고 자연스럽게 그래픽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가장 개인적인 매체라는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드로잉에서 몰입의 순간은 개인의 관념이 형상화되는 사건의 탄생이고 불완전한 표면의 무한한 세계이기에 물리적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 드로잉에서 또한 재료가 가지는 물성은 인간의 총체적 감각에 관여한다. 만지는 순간 지각되는 촉각, 표면과의 마찰에서 생성되는 질감, 그려지는 과정에서의 시각적 자극, 작품의 텍스트를 통한 청각, 그리고 후각을 자극하는 본연의 향 등은 온전히 물성과 행위자만이 영위하게 되는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영역을 만들어 낸다. 몰입의 행위는 이러한 절대적인 영역 안에서 극대화된다. 『몰입의 순간』의 참여작가 유승호, 차영석, 허윤희 모두 재료가 가지는 매체적 특성과 물성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한다. 이들이 다루는 재료는 잉크나 흑연 혹은 목탄 등이다. 유승호의 잉크는 날카롭고 차가운 성질이 종이와 흡수되어 번지거나 마르면서 서로 반응하는 '착색'의 과정을 수반한다. 차영석의 작업에서 흑연은 형상을 구체화하기도 하고 의미를 해체시키는 매체로서 작용하는데 차고 정직한 성격을 드러내며 정신적인 중립을 재현하는 적절한 재료가 되었다. 허윤희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목탄의 성질은 투박한 질감, 부드러운 표면의 풍부한 표현능력을 드러내며 무질서적인 긴장감을 담고 있기에 매력을 더한다. 이들은 서로가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재료가 가지는 물성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를 연결해 주는 정신적인 매체로 이해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유승호, 차영석, 허윤희는 모두 반복적인 제스처를 통해 재료의 물성을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대화 시키고 있는데 특히 노동집약적이고 밀도 있는 화면 구성이 몰입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유치한 언어유희를 이용해 고정된 시지각을 세련되고 위트 있게 비트는 유승호, 사적으로 수집한 일상의 사물들에 대해 사회의 그물망 안에서 지각되는 의미를 해체하는 차영석 그리고 개인의 내면을 형상의 메타포로 풀어내는 허윤희의 작업에서 표현요소와 사유의 확장을 몰입의 행위 안에서 구현해 내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와 작품 사이에서 영유되었던 사적이고 독립된 영역을 관람의 태도에서 공유해 보고자 하며 진정한 내적 통찰이 이루어 질 때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진 진정한 몰입의 순간을 만끽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김소희
● 「쉬-」, 「우수수수」, 「으-씨」등은 유승호 작가의 작품제목이다. 입에서 가볍게 발음되는 짧은 의성어는 화면 안에서 점처럼 찍히고 무수히 반복되어 풍경이나 수묵화의 전경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무심코 바라보던 수묵의 풍경은 가까이서 보면 언어의 놀이로 이루어진 허상의 이미지이다. 우리는 언어로 세상을 말하려 하고 이미지로 세상을 재현하려 하지만 언어와 이미지의 재현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과연 진실일까? 작가는 보편적 전달 매체로서의 '언어'와 재현으로서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충돌시켜 고정된 시지각의 틀을 위트 있게 비틀면서 과연 '본다는 것'과 '재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반문하고 있다. 작품을 이루는 발성의 기호들은 작가의 반복적 제스처를 통해 청각적 전달과 시각적 전달을 더욱 극대화하였다.
● 차영석이 그려내는 정물들은 우리 삶 깊숙이 그리고 너무나 친숙히 뿌리 박힌, 흔해 빠진 사물들이다. 치밀하고 세밀한 연필작업을 통해 재현되는 이러한 사물들을 그는 '건강한 정물'이라 부른다. 작가 개인의 취향에서 수집된 사물들은 사회의 그물망 안에서 각기 다른 사회성을 투영하고 있으며 작가는 치밀하고 수공적인 세밀화 작업을 거쳐 철저히 이를 해체시키고 있다. 아주 작은 점으로 찍히는 흑연의 검은 심은 형상을 구체화하는 최소한의 단위로 무수한 반복의 제스처를 통해 사물을 파편화하는 동시에 물성을 극대화 시킨다. 한 화면 안에서 산발적으로 무질서하게 하지만 정적으로 배열된 사물들은 이러한 집요한 행위를 거치며 질서 있게 파편화 되었다.
● 허윤희는 개인의 내면과 일상의 감정을 응축된 화면 안에서 재현한다. 소소하고 깊은 감정의 바다에서 출렁이는 개인의 내면의 이야기는 목탄의 거친 질감과 투박한 표면 위에 날것의 감각 그대로 투영된다. 장면의 레이어(layer)를 만들 듯 한번 그어진 목탄의 무게감은 그리고, 지우고, 덧바르는 과정 속에서 겹겹이 그 흔적을 쌓는다. 이렇게 기억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머무른다. 거친 목탄의 물성과 극적인 내면의 감성이 충돌하며 그녀의 작업은 완성된다. ■
Vol.20110521c | 몰입의 순간-유승호_차영석_허윤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