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의 사회학적 상상력

2011 금천예술공장 2기 입주작가 오픈스튜디오 & 기획전   2011_0519 ▶ 2011_0608

Julien Coignet_The continuous cities #11 LDN_폴리에스테르에 잉크드로잉_150×150cm_2009

초대일시 / 2011_0519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과 현씨_김동조_김영은+남상훈_김정옥_미하일 스튜라서(Michael Strasser, 오스트리아) 박능생_박얼+양숙현_백현주_베로니크 포치&아틸리오 토노(Veronique Pozzi&Attilio Tono, 이탈리아) 블릭만&다익스마(Blikman&Dijksma, 네덜란드)_애비게일 콜린스(Abigail Collins, 미국) 에프에프_윤가림_이병수_이호진_임흥순_정승_정정주 줄리앙 코와네(Julien Coignet, 프랑스)_태미 킴(Tammy Kim, 미국)

주최 /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금천예술공장

관람시간 / 10:00am~06:00pm

부대행사 ○ 오픈스튜디오 기간 / 2011_0519 ▶ 2011_0522 (4일간) / 10:00am~06:00pm   ○ 입주작가 20명(팀)의 5분 프리젠테이션   ○ 한 공장 한 그림 증정식 2기 입주작가 김정옥이 천여 개 제조업체가 밀집한 금천예술공장 주변 산업체의 10여 곳을 방문하여 제작한 실내풍경의 드로잉 작품을 각 공장주에게 선물하는 "한 공장 한 그림 증정식"이 이루어집니다.   ○ 주민 도슨트 '예술공장 스캔들' 지역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으로 재미있고 쉬운 설명으로 작품들을 통한 예술가와의 만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금천예술공장 SEOUL ART SPACE GEUMCHEON 서울 금천구 독산동 333-7번지 Tel. +82.2.807.4800 geumcheon.seoulartspace.or.kr

이 도시의 사회학적 상상력 The Socialogical Imagination of the City ● 서울은 600년 역사의 '고도(古都)'임에도 6.25전쟁기(1950~53) 도시 전체가 거의 파괴되어 고궁(古宮) 외에는 남아있는 유적이 거의 없는, 사실상 새로 만들어진 도시에 해당된다. 또한 남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천 4백만이 모여 사는 거대도시로 현재도 지속적인 인구 유입을 통해 도시팽창이 진행되고 있다. 여러 곳에 다른 성격의 지역성을 구성하는 서울은 '현대미술', '영화' 등 하나의 특정 예술장르로 도시의 문화적 성격을 통합하거나, 특정 건물 또는 문화지구를 통해 도시를 상징화하기에는 문화적으로 복잡한 레이어를 지닌 곳이다. ● 이러한 연유로 서울 각 지역의 동질하지 않은 문화·경제적 특성을 분석하여 설계된 11개의 서울시창작공간 중 금천예술공장은 1970년대 이래 산업화 뒤에도 여전히 출판, 철제산업 등의 제조업 분야가 활성화한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예술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고유기능 외에도 '공업지역'으로서 낙후한 지역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이 시설의 입지로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이 제고되는 '공적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임흥순_사적인 박물관_아카이브&인스톨레이션_가변크기_2011

2009년 10월 개관한 금천예술공장의 1기 입주작가의 활동성과 보고전에 해당되던 『풍부한 무질서 The Rich Disorganization』(2010.8월)는 여러 나라에서 모인 시각예술가들이 이방인의 시선에서 '금천'이라는 도시공간을 어떠한 방식으로 독해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牛)시장과 공구상가, 가리봉공단의 기억이 혼재된 서울 서남부 일대를 조명하던 『풍부한 무질서』전의 다음으로 기획된 『이 도시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1970년대 이래의 급격한 산업화 뒤에도 끊임없는 인구유입과 도시의 확장을 거듭하는 독특한 거대 도시 '서울'로 그 물리적 조명범위를 넓혔다. ● 여기서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밀즈(C. Wright Mills, 1916~62)가 말하는 '거대한 역사적 국면이 다양한 개인들의 내적 생활과 어떤 관련을 갖는가'를 이해하는 구조적 사고능력에 해당된다.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한 예술가들이 3개월에서 1년 남짓 정주하는 '이 사회를 소재로 삼는 것'(사회적 상상력) 이상의 '비판적 상상의 과정'을 통해 이 도시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어떻게 지적(知的)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구성해내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도시를 독해하는 예술가는 결국 이 도시의 일원이며 이 도시의 내적 역량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업을 통해 이 도시 스스로의 사회학적 상상력 수준을 점검하는 동시에 대안을 내보자는 것이다. ● 이들은 2000년대 초 도시에 대한 제도화한 지식과 개발논리에 저항하고자 했던 도시현장연구의 휴머니즘 섞인 주장들 즉 "살고 싶은 도시, 삶을 배신하지 않는 공간, 원주민을 위한 개발"등의 일련의 도덕률과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공공성'을 이슈로 삼은 것이 아닌 '어떠한 미술적 형식으로 이 도시를 제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Abigail Collins_Azimuth_설치_150×100×130cm_2009

2009년「월남에서 온 편지」를 비롯 '개인의 일생'과 '역사'의 양자 간 관계에 천착한 임흥순(1969~)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미술관과 박물(博物)의 시각적 형식을 빌어 온다.「사적(私的)인 박물관」은 그가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한 2010년 말부터 8주간 금천지역 19명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미술워크숍 「○○수다스러운」의 연속작업에 해당된다. 이들은 임흥순이 아파트에 우편함에 배포한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예술공장 인근 아파트 주민부터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 전문적인 예술강좌를 기대했던 학부형까지 다양하다. 「사적인 박물관」에 전시되는 주부 8명의 개인수집물은 미혼시절 아끼던 소품에서 결혼사진, 아버지의 경제적·심리적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 뒤에도 계속 획득되던 자격증 등 지극히 개인적 것에 해당된다. 임흥순은 이 유물(遺物)들을 통해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 속에서 그 세대의 '보편적인 역사'가 어떻게 각인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려 하였다. ●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도시에 퇴역군인들이 어떻게 정착하는가'라는 '군인'과 '도시'의 관계를 천착해온 미국의 에비게일 콜린스(Abigail Collins, 1986~)는 의정부, 포천, 용산 등 수도권에 주둔한 여러 미군 군대를 방문하며 군인들과 인터뷰 그리고 군부대 시설의 기록을 시도했다. 그녀는 앞서 미국의 이라크 파병을 비롯 여러 참전 군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들이 고국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이미 구축된 구조물과 공간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 그리고 반대로 어떻게 이러한 공간들이 참전군인들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집중해왔다. 한 집단의 사람들이 어느 한 공간에 정착하려 할 때, 그들은 공간을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변형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물질적 조건에 복종하거나 적응하기도 한다. 상황이 기억에 새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상황은 도시 안에서 형태로 구성된다. 마찬가지로 도시 그 자체는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의 장소로서, 이 집단 기억은 그 집단성에 의해 공간의 변형을 만들게 된다.

이병수_희망찾기_디지털 프린트_각 70×53.2cm_2010

위치(location)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GPS, 모바일 기기 등)는 현실세계에서 사회학적 상호작용을 발생시키고, '장소'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위치 기반 미디어 아트(locative media art)는 도시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장소성 상실과 소통의 부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려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행보를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기대하지 않던 지름길이나 숨겨진 지역에 대한 기억, 지식들이 공유되는 것이다. ● 이병수(1980~)의 「Chasing Hope in Seoul」은 '희망'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여 자전거로 이동하며 추적하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GPS에 입력한 단어 '희망'에 의해 검색된 서울시내의 상호들-'희망세탁소', '희망주점', '도서출판 희망' 등-을 매일 한곳씩 찾아 떠나 돌아오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기획의도에서 "희망을 생각하기에는 개인의 삶은 너무 가혹하며 오히려 '이상'에 해당하는 단어가 아닐까"라고 언급한 이병수는 '희망'을 바라며 세워진 가게 또는 희망을 찾아 방문한 손님에게 (수건의 본래 용도처럼 누군가를 감싸주거나 땀을 닦는 등의) 위로이자 선물로서, 작품명인 "Chasing Hope in Seoul"이 인쇄된 수건을 목적지에 도착하여 마주치는 이들에게 전한다. ● 전 세계 여러 도시들의 실제 지도를 이용한 거대한 데생 시리즈를 전개해온 줄리앙 코아네(Juilen Coignet, 1979~)는 3월부터 금천예술공장에 체류하며 하루 8시간의 강도 높은 작업을 통해 서울의 지도를 이용한 「Continuous cities #15 SL」를 완성하였다. 줄리앙이 이번 신작의 작업과정에서 밝혀낸 서울의 특징으로, 그가 거주하던 파리와 같은 유럽의 대부분의 도시들보다 거대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한편으로 유럽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도심'을 중심으로 발전된 모습을 띄는 반면 서울은 여러 개의 존(zone)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센터를 선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줄리앙은 이렇게 유럽의 지도와 달리 서울의 지도에서 드러나는 다른 형식으로 인해 서울에 관한 데생이 무척 흥미로웠음을 밝힌다. 실제 지도를 바탕으로 그려졌음에도 창작과정에서 도시 내부의 각 구역 간 거리는 완전히 재구성됨으로써 완성된 작품은 실제 도시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한다. ■ 김희영

에프에프_Flying frint_비디오, 웹 아카이브_가변크기_2011

도시 속으로의 항해 Navigation into the Urban Space ● 금천구 독산동의 옛 인쇄공장을 매입해 시각예술의 창작과 확산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여 2009년 10월에 개관한 금천예술공장은 '글로벌미학과 로컬의 지역성을 실험하는 국제 레지던시이자 공동프로젝트 스튜디오를 지향하는 신개념 예술공간'임을 자임하고 있다. 금천예술공장은 그 운영전략으로 첫째 창작환경조성(작가지원 및 육성), 둘째 지역주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의 실천(시민문화향유), 셋째 과거 노동집약적 제조업체가 밀집했던 이 지역을 문화예술이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바꾸는 노력(도시재생)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금천예술공장의 목표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창작스튜디오로서 작업공간의 제공에 만족하지 않고 입주예술가들이 공동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며 예술의 사회적 확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연계 교육프로그램과 커뮤니티아트 프로그램의 운영은 이러한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일 것이다. 이런 점은 금천예술공장이 입주예술가들을 매개로 국제교류를 강화함은 물론 예술가의 개인적 능력과 노력에 의해 달성하는 예술적 성취 못지않게 예술공장으로서 공공성을 담보하려는 비전을 지니고 있음을 반증한다. ● 금천예술공장의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예술'과 '공장'이 결합된 독특한 명칭은 이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에 대해 떠올리게 만든다. 예술공장이 자리하고 있는 금천구는 잘 알려진 바대로 1965년의 제1차 경제개발정책에 따라 조성된 한국산업단지공단 제2, 3공단이 위치하고 있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다. 과거의 수출주도형 제조업으로부터 현재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면서 제2단지를 패션디자인산업의 거점으로, 제3단지를 지식·정보통신산업전문단지로 육성하기 위한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나 경제성장이 생존이다시피 했던 시대의 부산물로서 주거지역과 소규모 제조업체가 밀집, 혼재한 기형적 환경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지역은 늘 문화낙후지역이란, 지역주민으로서는 달갑지 않고 불쾌하기조차 한 말을 들어야할 만큼 문화로부터 소외돼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디지털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양산업이 된 재래의 인쇄공장을 인수해 창작스튜디오를 만든다고 할 때 이 지역에 입주해 있는 업체나 주민들의 일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중소규모 공장이나 주거공간들로 포위된 이 장소가 주민들의 삶과 전혀 상관없는 '예술의 요새(要塞)'이자 주변의 부산하고 활기 넘치는 현장으로부터 유리된 고독하고 어떤 경우 주민들에게는 '무용지물의 유토피아'처럼 보일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금천예술공장은 이 지역에서 익숙한 용어인 공장을 명칭으로 채택함으로써 예술을 '그들만의 고고한 영역' 속에 유폐시키기보다 예술생산의 사회적 확산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직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기에 이르지만 커뮤니티아트의 실천을 통한 협업과 소통의 노력은 금천예술공장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즉 도시재생과 균형발전이 정책적 차원에서 입안, 실천될 수 있는 하드웨어 중심적, 도시개발적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커뮤니티아트와 지역주민 교육프로그램 등은 소프트웨어 중심적, 주민친화적 프로젝트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금천예술공장은 이를 위해 입주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고,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Erika Blikman_New Neighbours_디본드에 C프린트_각 50×50cm_2010

문제는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과거 공공미술(Public Art)의 개념 아래 전개되었던 건축 속의 미술(Art in Architecture), 공공장소 속의 미술(Art in Public Space), 도시재생을 위한 미술(Art in Urban Restoration) 등이 대체로 오브제 중심의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을 특징으로 한다면 커뮤니티아트는 결과 자체보다 참여와 소통, 그리고 무엇보다 연대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예술가 또한 절대적 위치에서 결과물을 산출하는 생산자로서가 아니라 예술의 침투와 확산을 매개하고 촉진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아이디어 제공자이자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에 중심을 두어야할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결과를 예측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재래의 예술적 성취, 즉 미적 탁월성이란 비평의 기준과 부합하리란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의 노력이 예술을 '상아탑'에 가두지 않고 사회화하는 한 방안이란 점에 대해서 마땅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금천예술공장이 지역경제를 활성화와 무관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문화와 예술을 제조, 전파, 확산하는 거점이 되기 위해 이 공장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는 물론 입주예술가들이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더 많은 고민과 지속가능한 아이디어를 개발할 때 경제효과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옥_조양문화사_장지에 채색_20.5×27cm_2011

● 금천예술공장이 입주예술가들의 보고회라 할 만한 오픈스튜디오를 위해 '이 도시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예술적이라기보다 학술토론회를 연상시키는 다소 건조한 제목을 단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나는 '도시 속으로의 항해'로 해석하고 싶다. 이때 항해란 19세기 말 파리 거리를 활보하던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나 이 도시의 산책자(Flaneur)를 여행객이나 구경꾼과 다른 새로운 개인의 탄생이란 맥락에서 '도시인상학(Physi ognomik)'이란 역사철학적 방법론을 제시한 벤야민(Walter Benjamin)이 파악했던 근대도시와 다른 공간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자동차를 타고(자연스럽게 시선은 버스나 승용차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제한된다) 도시를 탐색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현대도시 공간과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보행자의 시선은 그의 보폭과 속도의 영향을 받고 시선이 도달할 수 있는 물리적 거리로 제한되지만 도시의 구석과 언덕 등에 이르기까지 그가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은 확대된다) 모두가 하나의 내비게이션이 될 때 도시의 구조는 물론 그 내밀한 속살까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망망대해에서 해로를 찾거나 거미줄처럼 복잡한 도로에서 목표지점을 정확하게 찾아가기 위해 인간이 개발해낸 도구이지만 넓은 도시지형을 작은 사각의 프레임, 그것도 평면 속에 펼쳐진 지도로서 제시한다. 그러나 도시 속으로의 항해는 GPS의 중계를 통해서, 그것도 이미 프로그래밍된 지도에 의존해 길을 찾아가는 기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확장과 변형이 가능한 지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도시독해(Urban literacy)'의 방법으로 볼 수 있다.

Tammy Kim_Meeting of Beings_석고판, 나무, 페인트_244×244×244cm_2008

나로서는 아직까지 예술공장 입주예술가에 대한 사전연구를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자격이 없지만 코아네(Julien Coignet)의 지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드로잉이 도시 속으로의 항해에 대해 설명하는데 하나의 참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금천예술공장이 마련한 프리젠테이션에서 그는 먼저 파리와 디종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 주변풍경부터 보여주었다. 그것은 그가 주변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였고, 그가 여행한 도시의 지도는 물론 도시의 복잡한 도로망을 몇 개의 색깔로 이루어진 선으로 도식화해놓은 지하철노선도 등을 보여주었을 때 그가 스스로 하나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도시를 탐색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결과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안토니오 필라레테(Antonio Filarete)가 스포르차(Sforza) 가문을 위해 설계한 이상적 도시 '스포르진다(Sforzinda)'를 복잡하게 재연한 듯한 방사형의 평면구성이지만 그것을 그려가는 과정 중 작가 자신이 '감각의 측량사'가 되어 도시를 독해하고 평면 위에 그것을 기록하고자 했음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코아네의 이 익숙하면서 낯선 지도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1988년 제프리 쇼(Jeffrey Shaw)가 발표한『읽을 수 있는 도시(The Legible City)』란 작품을 떠올렸다. 이 작품은 관객참여형의 인터액티브 설치작품으로서 의미를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이 작품을 통해 맨하튼(Manhattan), 암스테르담(Amsterdam), 칼스루헤(Karlsluhe)와 같은 도시 속을 항해하도록 만든 것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관객이 자전거에 앉아 핸들 부위에 장착된 모니터를 보며 페달을 밟으면 앞에 놓인 스크린에 도시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실제 도시구조를 조사하여 제작된 도로는 물론 골목까지 탐사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건물은 작가가 디자인한 글자(letters)와 텍스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읽을 수 있는 도시'이자 제프리 쇼에 의해 해석된, 더 나아가 가공된 '가상세계 속의 도시'이지만 도시 속으로의 항해란 차원에서 충분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코아네의 작품 역시 도시 속으로의 항해를 즐겁게 누리고 있는 작가의 호기심이 낳은 결과이다. ● 더욱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코아네가 중세시대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는 고지도로부터 현재의 서울지도는 물론 수선전도(首善全圖)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그의 관심이 도시형성과 팽창의 역사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나는 도시로의 항해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도시로의 항해는 단지 도시공간 속으로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역사, 생태, 지리적, 지정학적 조건,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와 다양성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작동할 때 보다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코아네란 한 작가의 태도와 작품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으나(그것은 입주작가 모두를 언급하기에 나의 뇌의 한계용량이 너무 작은 탓이기도 하다) 입주 작가들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발현될 때 도시를 읽고자 하는 노력이 사회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넓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넓고 기능적인 지도는 아니라할지라도 자기만의 독특한 지도를 지니고 도시공간 속으로 침투할 때 도시로의 항해가 그동안 무심히 스쳐 지났던 장소와 그 속에서의 삶을 '발견'하도록 만들고 또한 그것을 외현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최태만

Vol.20110519b | 이 도시의 사회학적 상상력 - 2011 금천예술공장 2기 입주작가 오픈스튜디오 & 기획전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