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원형

박수만展 / PARKSUMAN / 朴修萬 / painting   2011_0519 ▶ 2011_0525

박수만_짝퉁_캔버스에 유채_194×13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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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519_목요일_06:00pm

기획 / 광주신세계갤러리

관람시간 / 10:30am~08:00pm

광주신세계갤러리 GWANGJU SHINSEGAE GALLERY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49-1번지 신세계백화점 1층 Tel. +82.62.360.1630~1 department.shinsegae.com

잊혀진 꿈의 원형 만나보시겠습니까. ● 박수만은 내면을 탐구하는 작가다. 그는 대상의 겉치레와 디테일을 단순화 시켜놓고 내면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어가 작업한다. 그의 간결하고 재빠른 드로잉 솜씨와 원색에 대한 안목은 작업의 단단한 한 축이다. 잘 갈아진 명검을 사용하는 검객처럼 그 솜씨는 겉치레를 자르는데 유리하다. 내면의식으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인위적 화려함이나 복합구도는 자주 억제된다. 대상의 단순화가 세워지면 그는 그 안에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꿈이 내면을 통과하려면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벽을 몇 개 통과해야 한다. 에고ego와, 열등감으로 이루어진 그림자와, 본능적 감각 등으로 이뤄진 내면의 벽을 통과하고 나면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는 꿈의 원형을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꿈의 여행을 시작한다. ●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그는 내면의식에 깃든, 잃어버린 꿈의 원형을 하나 하나 분해하고 해체해서 캔버스로 옮겨내면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 시작한다. 그의 눈이 흐려지면서 내면을 응시하고 나면 그는 너무도 명료하게 그것은 순수며, 원초며, 야성이며, 낙원이라고 캔버스에서 외쳐댄다. 현대인이 너무 오랫동안 잃고 살아온 생명의 빛나는 본성이라고 소리친다. 우리는 모두 따뜻하고 어머니 자궁 안처럼 안온한 곳에서 태어났다고 깃발을 흔들어대는 것이다.

박수만_몸빼가 어울리는 사람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1
박수만_그 곳에 서다_캔버스에 유채_130×192cm_2010
박수만_너에게나를 보내다2_캔버스에 유채_130×193cm_2010

이처럼 그는 언제나 의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작업을 한다. 의식의 표피에서는 그림 그리지 않는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너무 몽환적이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꿈의 원형에서 소외된 사람이다. 이처럼 박수만의 작업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외롭고 아름답다.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곳은 언제나 한 지점이다. 그곳은 내면의 가장 부드러운 원시림이며 현대가 입혀지기 이전의 낙원이다. ● 박수만은 대학시절 에곤 쉴레의 그림을 만난 뒤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적 있다. 그토록 우울하고 그토록 그로테스크하면서 인간의 심연 바닥 까지 추적해낸 작품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역시 박수만은 어떻게 그림이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번쩍 눈이 띄었던 것이다. 불우한 드로잉의 천재 에곤 쉴레는 이렇게 말했다.

박수만_부유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0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예술은 모던할 수가 없다. 예술은 원초적이며, 영원하다.'

박수만_엮거리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0

역시 뛰어난 드로잉 솜씨며 내면의 심층을 드러내주는 면에서 박수만과 에곤 쉴레는 닮은 점이 있다. 하지만 박수만은 더욱 깊이의 내면의식으로 내려가 인간의 밝은 본성까지 끄집어 올려내 보여준다. 박수만의 의식기어변속 솜씨가 한결 능숙하다는 말이다. ● 피카소 역시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제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리는 것 같다.라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이는 '자신의 의식을 내면의 깊은 곳으로 기어 변속시키고 나서야 그림 그린다.'라는 말로 내게는 들린다. 예술가는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서 그 상처로 내려가서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업은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상처를 만나지 않고서야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 역시 그와 함께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것이다.

박수만_삶을 입다_캔버스에 유채_73×61cm_2011

예술가는 누구나 결핍감, 갈증 때문에 작업을 하며 그것은 상처가 상처를 치유하는 아픈 구도인 것이다. ● 박수만의 그림 앞에서 현대인의 상처를 눈치 채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정직하다. 모두가 공모해서 폐기처분해버린 꿈의 원형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는 사람은 박수만의 그림과 악수하는 사람이다. 현대인의 가슴에서 마모 되어버린 꿈의 원형을 복원해내 온갖 현대적 쓸쓸함과 불이익을 감당해내고 있는 박수만에게 우리 모두는 빛을 지고 사는 셈이다. 박수만의 상처는 아름다운 상처다. ■ 김현문

Vol.20110517e | 박수만展 / PARKSUMAN / 朴修萬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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