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이장욱
관람시간 / 11:00am~05:00pm
중국 북경 통조우구 송주앙 시아오푸춘 및 런주앙 팡용지에 작업실 Tel. +86.13521002357
지금 중국 현대미술작가들의 대부분은 시장성과 비평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한다. 하지만 팡용지에처럼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내면을 성찰한다.
산동성의 시골마을에서 자란 팡용지에는 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났다. 어린 시절 팡용지에는 말수가 적어 사람들의 걱정을 샀다. 하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연화(年画[참고] - 새해를 맞아 복을 기원하며 매년 초에 집집마다 거는 판화 혹은 채색화로 중국 각지방 특색을 가진 연화가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북경 유리창(琉璃窓)에 서 매년 새해마다 각지방 고유의 연화를 관광객 앞에서 목판화, 채색화 등으로 직접 제작하는 것을 보여주고 직접 구매도 가능하다.)에 흥미를 느껴 따라 그리면서 스스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과정[참고] - 중국 소학교 교육은 중국 한자의 특수성으로 인해 어문[중국어 및 문학]과 수학 위주의 교육으로 기타 체육, 음악, 미술 수업시간 조차 어문과 수학을 위한 시간으로 전용되고, 일반 공립학교들은 5학년까지 두 과목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문자를 알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와 중학교(우리의 중•고등학교 과정) 시절 중점과목 위주의 수업은 유•소년기 팡용지에에게 미술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유발시켜 말이 없던 시골소년에서 혁명적이면서도 내향적인 예술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은 아들을 위해 보다 낳은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큰 마을(县)로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이는 어린 팡용지에게는 본격적인 미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림을 하는 친구를 찾아 미술조(도시에서는 소년궁을 통해, 농촌 지역에서는 '조'라는 단위로 예체능교육을 배울 수 있었다.) 활동을 통해 함께 체계적인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학창시절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소학교에서의 유급 2번, 위태하던 중학시절 등 학교와 팡용지에가 생각하는 이상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 이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수님이 화가의 길을 인도해줄 거란 생각은 현실과 달랐고, 수업은 소련식 교육에 국한되었고, 미술사도 인상파까지, 도서관의 자료는 너무나 빈약했다. 대학에서의 러시아 교육방식을 거부하고, 서양미술에 심취해 있던 팡용지에는 지도교수로부터 기존 체제에 반하는 학생으로 지목되어 졸업 때까지 힘들게 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팔오(八五)미술운동[85신사조(New Wave)운동]이 시작된 85년 중국미술가협회 등 제도권에서도 모더니즘을 용인하는 태도로 바뀌었고, 같은 해 베이징과 라사(拉薩;시장[西藏]자치구의 주도)에서 열린 "로버트 라우센버그 전"은 독일식 표현주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영향을 받은 팡용지에는 대학 졸업과 함께 북경으로 나아가 미술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중앙미술학원 진수반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광고포스터를 그리는 일과 형과 친구의 도움으로 진학을 하게 된다.
중앙미술학원에서의 생활은 학업 수준은 높으나, 직업화가의 길은 스스로 개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처음 진학해서 6개월간은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었다. 2년간의 학교생활을 마침과 동시에 조소과에 천수관음상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조수로 일을 하면서 개방적 사고로 사물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고, 평면이 아닌 조각작업을 접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동촌(東村;원명원이 위치한 서쪽을 서촌이라 부른데 대해 동쪽에 위치한 따산좡(大山庄)을 동촌이라 했다.)에 있는 친구(서남미술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이었던 황청원)의 권유로 동촌에 머물며 작업을 하게 된다. 당시 동촌은 퍼포먼스 작가들의 중심지로 서촌과는 차이가 있었다. 쉬상(徐三), 롱롱(榮榮), 장후안(張洹), 마류밍(馬六明), 창신(苍鑫) 등의 퍼포먼스 작가들과의 만남은 이후 팡용지에 자신의 인간에 대한 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육체에 대한 의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1년여의 동촌 생활은 참으로 궁핍하고 힘든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다시 조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다. 저명한 조각가인 수이젠구어(隋建国)의 작업실에서 조수로 일하게 된 것이었다. 작업실이 있는 쌍차오(双桥) 부근으로 이사를 한 뒤, 조수 일과 작품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이때 맺은 인연은 이전 첫 조각 작업에서의 경험과 함께 이후 직접 조각 작업을 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학업을 위한 북경행 이후 동촌에서 서촌(圓明園)으로 이주 후, 아내의 출산과 원명원 해산으로 동바, 통조우 빈허 등을 거쳐 2004년에 송주앙에 정착하게 된다.
95년에 첫 개인전(표현주의와 민속적 화풍)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99년에 프랑스인인 Pierre여사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작가생활에 큰 전환점을 맞이 하게 되었다. 이후 지금의 화풍이 완성되었고, Pierre여사의 적극적 후원으로 작품성 및 상업적으로도 인정을 받아 유럽에서 주목을 받으며 작가로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주류를 이루던, "차이나 팝 아트", "차이나 키치" 등과는 다른,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지금의 화풍이 90년대 후반에 시험적으로 시작되어 2001년과 2002년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지금의 화풍이 완전히 자리 잡히고 나서 그림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직접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고, 이를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행동에 옮겼다. 조각을 병행하면서 변화가 발생했는데 감정표현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작품을 살펴보면 팡용지에, 그 자신은 정치나 사회적인 주제, 혹은 성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신에 자기성찰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현대미술은 기존체제에 대한 도전과 해체, 파괴, 타도, 혁명을 위해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중국사회에 무언가 건설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고 보았다. 물론 하루 아침에 이상적인 현대사회로 도약 할 수는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경제가 발전했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고, 국민 의식수준도 전반적으로 좀더 성숙해져야 한다. 팡용지에 작품에는 여성성이 강하게 들어난다. 풍만한 여성의 몸을 화려한 색상으로 강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채색이나 파스텔 색상으로 부각시킨다. 사람의 몸을 형상화한 조소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네발 짐승을 연상케 한다. 작품 속 작가의 누드 근성은 저속하거나 음란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느껴진다. 작품에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없는 만물의 공존을 꿈꾸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가 우주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작품에 반영된 동양적인 요소와 서양적인 요소에 관해 구분 지어 보는데, 팡용지에 작품에서의 동서양적인 요소는 차이보다는 동서양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WALL-E(2008년, DISNEY•PIXAR 사)"라는 영화에서도 나온 것과 같이 자연환경을 파괴한 후, 미련 없이 인류의 모태인 지구를 버리고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 안에서 문명이기에 의존에 게을러지고 퇴화하여 손발이 작아지고, 몸은 비대해져 자동화된 기계문명에 사육 당하는 것과 같이 ……, 영화가 아닌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먼 미래가 아닌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문제 일 것이다.
초기작품에 중국 당나라 미술의 특색을 많이 반영(동그란 여성의 얼굴과 작품 구석 구석에 삽입된 중국적 사물들)했던 팡용지에, 그는 이전보다 더욱 독창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현대를 계급, 인종, 종교 등의 차별을 허무는 화합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처럼 푸근한 여성의 이미지는 작가의 세계관이자 화합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어릴 때만 해도 공산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것이 있지만, 지금은 계급이라는 의미가 희석되어 무의미 해졌다. 물론 사회적 계층은 존재하지만 중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든 편견을 떠나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는 있다 할 것이다. ● 어느덧 중년이 된 중국 뉴웨이브 예술의 선구자들 중 일인인 팡용지에는 "예술 본연의 자세에 충실해야 한다." 고 입을 모은다. ■ 이장욱
Vol.20110516e | 팡용지에展 / Pang youngjie / 庞永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