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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516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아트힐 GALLERY ARTHILL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996-3번지 대우월드마크 102동 3층 Tel. +82.31.203.3646 www.arthill.co.kr
색채의 진동 - 경계의 흐름 ● 현란하게 유동하는 색채들이 눈부시다. 작가적 상상의 색채들은 우리의 눈과 몸을 평면의 화폭 속에서 삼차원의 색채 세계 속으로 빠져 들게 한다. 그 색채들은 평면 속에 고정 되어 있지 않고 떨림과 울림으로 진동한다. 마치 색들이 스스로 생성하는 것처럼. 나무와 바위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불완전하다. 우리의 의식 속에 고정되어 있던 나무와 바위는 삼차원적 색채의 진동으로 인하여 불완전한 형상으로 나타나있다. 나무와 바위의 이미지와 색채들은 우리의 고정된 인식체계 밖에 있지만 우리는 완전하게 그것들을 인식한다. 왜 그의 색들은 고정된 형상들을 해체하며 진동하여 흐르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진동하는 그의 색채들은 가상과 실재, 구상과 추상의 경계지대를 유영한다. 여기에서 작가 조영재가 선택한 것은 빛과 파동에너지의 세계이다. 빛과 파동에너지의 운동이 사물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단순한 상상의 색채라고 단언하기에는 그의 색들의 강도(Intensity)가 아주 깊다. 세계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지대인 제3의 공간은 넓이가 아니라 깊이의 정도로 파악되어진다. 이 지점에서 그는 빛과 파동에너지의 세계를 매개로 하여 제3의 창조적 공간인 경계지대를 진동하는 삼차원의 색채와 불완전한 형태의 자연물들로 드러내고 있는 것뿐이다. 세계를 파악하는 본질적인 척도는 깊이의 정도, 즉, 색채의 강도이다. 그의 색채들은 진동하여 떨림과 울림으로 우리의 몸속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우리 몸에 전달되는 감각들은 그 어떠한 주관적인 감성도 개입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다. 절대적 객관의 세계를 향하는 경계지대는 작가의 개성(Persona)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 객관의 세계는, "회화란 재현할 모델도, 더해주어야 할 스토리도 없다"라고 단언하며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호평하는 들뢰즈의 사유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컨의 작품들에서 그가 주시한 것은 구상적으로 드러나는 신체의 형태와 색채들의 회화적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존재론적 공간으로 형태와 색채들의 관계들 사이에서, 내부와 외부, 가상과 실재,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드러낸다. 베이컨의 신체의 이미지는 조영재에게 있어서는 나무와 바위의 이미지로, 즉, 인간의 감각에서 자연의 감각으로 대상이 확대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철학적 사유는 동일하다. 제3의 창조적 공간인 경계지대는 경계와 경계들 사이를 흐른다. 경계들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다층의 세계를 이룬다. 마치 들뢰즈의 주름접힘과 같이. 세계와 나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단순한 경계지움은 아닌 것이다.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 하는 것이 미술의 목적이라고 파울 클레는 이미 오래 전에 말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하여 우리는 아직도 무지하다. 현실의 일상들은 여전히 보이는 세계 속에서 고정되고 정형화된 질서들로만 이해되어지도록 강요한다. 자연 속의 바위가 백년에 한 번씩 숨 쉰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편견과 오해로 치우친 관념과 질서들에 관하여 작가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화폭 속에서 드러낸다. 삼차원적 색채의 진동과 함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경계 지대를 유영하는 제3의 공간 속에서 우리의 의식이 흘러가도록 이끌고 있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운동한다. 기운생동(氣韻生動). 예술은 생(生)하는 것이고 생(生)하게 하는 것이다. ■ 김미희
문득 다가옴 ● '붉은 꽃을 본다. 점점 주위는 붉은 빛으로 물들어 나의 몸마저 붉은색이 된다. 결국엔 꽃은 사라지고 붉은 빛만 남는다.' 빛은 소리 없이 '파동'으로 다가와 '입자'로 물체를 형성한다. 그 물체는 다시 파동으로 돌아간다. 매 순간 나의 오감을 자극하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나의 순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되지 않은 물체는 파동으로 존재하며 모든 것들의 근원이다. 내가 선택한 대상은 점점 가시적 형태를 상실하고, 나의 기억과 경험을 동반하여, 내재된 파동으로 변화 한다.
나의 하루 ●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밤에 열어 놓은 작업실 창밖으로 지난 봄 손에 잡힐 듯 커져 다가온 벚나무 잎들과 가지를 본다. 새로 태어난 눈을 집중하여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찾는다. 벌써 노란 잎들이 떨어져 하나 둘 새벽의 습기로 납작하게 붉은 보도블록에 붙어 있다. 하늘거리는 푸른 잎들은 마치 침묵의 노래를 하는 것 같다. 언젠가,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되 길 기도하며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나무 ● 우리는 사회적인 현상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지...... 다행이 아름다운 자연과 좋은 사람들 속에서 피폐해졌던 몸과 마음이 평화를 찾았다. 좀 더 큰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사물에 내재된 에너지를 화면 속에 입자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조영재
Vol.20110516b | 조영재展 / JOYOUNGJAE / 曺永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