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원 desire

박대조展 / PARKDAECHO / 朴大祚 / mixed media   2011_0512 ▶ 2011_0609

박대조_desire_화선지에 프린트 후 금분으로 드로잉, 배면조명, 칼라변환_150×1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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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512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스탄자 GALLERY STANZA 서울 서초구 잠원동 46-10번지 신영빌딩1층 Tel. +82.2.514.6678 www.stanza.co.kr

1. 아가야 달맞이 가자. ● 어린아이는 동.서양의 영원한 철학적,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어린이를 우리의 스승으로 부르고 싶다 했으며, 가스통 바슐라르는 어린시절을 향한 몽상은 근본적 이미지들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했다. 불경의 정수인 화엄경에서는 선재동자를 드러내 지혜를 찾아나서는 구도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아이의 세계는 철학, 종교, 문학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는 이상계의 모범으로써 은유되고 있다. ● 박대조가 작업하는 세상의 아이들 또한 어린아이의 동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작가는 어린이에게서 절대적인 미를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자(老子)는 도(道)의 상태를 무위(無爲)이고 자연(自然)이라 하였는데, 그 도를 보는 마음을 현람(玄覽, 통찰력을 지닌 지각 또는 거울)이라 했다. 그 현람을 노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라 하였는데, 이러한 자연에 합치되는 아이의 본성은 박대조에게 감정이입의 대상으로서 조형화된다. 그의 아이들은 고발적이고 폭로하는 성숙한 아이로써 재탄생되고 있다. 세계의 본질을 관조하는 오묘한 거울로서의 아이의 눈은 인간의 욕망으로 빚어지는 재앙과 공포를 응시한다. ● 아이의 동공 속에 입혀진 전쟁, 지진, 기아와 같은 인류의 대재앙들은 아이의 웃음, 아름다움, 자연, 생명을 위협하는 문명의 잔인한 폐해들로 드러난다. 사실, 그의 작품은 "동자(童子)란 사람의 처음이고, 동심은 마음의 처음이다. 동심(童心)이란 진심(眞心)인데, 세상이 혼탁한 것은 다욕(多欲)으로 인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근원이다”라고 말하는 이탁오(李卓吾)의 『분서(焚書)』에서 그 철학적 내용과 상응되고 있다. 그 욕망이 불러온 진상을 눈에 넣은 아이들은 현대를 증명하는 아이, 그 실체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거울로서의 어린아이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인류가 저질러 온 총체적인 위기와 난관에 관한 증거이자 경고이며, 강한 어조의 고발인 것이다. ● 티없이 맑고 작은 아이들의 세계는 작가의 화면에서 거침없이 드러난다. 아가야 나오너라의 홍난파의 달맞이 동요가 흐르는 듯하다. 온통 이 세상이 아이들의 웃음과 아이들의 희망으로 가득한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아이는 작가가 희구하는 세계의 본질이며, 이상계를 대표하는 하나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근작들에게 보여주는 염원이나 human & city 시리즈에서는 종교적으로 승화된 아이들과 성스러운 힌두교, 불교의 발원지라 불리는 성산(聖山) 카일리쉬가 있는 히말라야의 자연을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작가가 희구하는 세계의 구체화된 모습들을 찾아 나서고, 이를 화면으로 제시하고 이해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 그러나 박대조는 이상계의 형상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현상계를 증명하고 이상계의 본질로 드러낸 어린아이들은 정신이 이미 훌쩍 커버린 어른아이들이며, 이들은 고독하고 슬프다. 그가 이상계로써 새롭게 만난 네팔의 아이들조차 그들의 검은 빛 눈동자에는 문명을 관조하는 슬픔과 고독이 들어 있다. 따라서 아이로 은유하는 기쁨과 순수는 욕망과 파괴와 대립되고 있다. 작가의 대립과 화해는 화강암에 사진을 음각하는 작업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돌이 물의 근원, 생명의 근원과 같은 영원성과 자연의 대표물이라면, 사진은 영원에 대립하는 순간성과 현대문명이라 볼 수 있다. 이로써 작가의 작품은 재료에서 내용, 내용이 표출하는 감정의 층위들에 이르기까지 반어와 역설들로 섬세하게 구조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모순(Irony)으로 드러내는 박대조 예술의 방법이라 하겠다.

박대조_desire_화선지에 프린트 후 금분으로 드로잉, 배면조명, 칼라변환_150×120cm
박대조_desire_화선지에 프린트 후 금분으로 드로잉, 배면조명, 칼라변환_150×120cm
박대조_염원 16_Transparency, 입체렌즈, light-box, change-color_76×110cm_2010

2. 디오니소스적 황홀경(ekstasis)과 망아(忘我) ● 그가 화강암에 인류문명을 고발하는 아이를 새기고, 라이트 박스에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듯 한 인형을 넣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그 폭발하는 시선과 죽음과 같은 생경한 공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놀라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순수한 아이에 관한 기대치에서 벗어나는데 있다. 그 광기로 가득한 아이가 보내는, 실재의 눈빛을 뛰어넘은 존재의 시선은 관자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마치 바다의 폭풍과 같은 격정이 일고 난 후 마법의 세계에 다다른 것처럼, 승화된 신비와 고요함에 이르게 된다. 그 강한 어조의 시선은 인간이 갖고 있는 물컹하고 냄새나는 욕망의 덩어리를 남김없이 도려내고 씻어낸다. 이로써 우리는 흡입하고 무한 확장해 나가는 인간이 앓고 있는 욕망의 실체를 추출해 내고 체험하게 된다. 이 시선은 치부를 드러내고 베껴져 우리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대면하는 것은 당혹스럽고, 비밀스럽고 그리고 두렵기까지 하다. ● 해맑고 투명한 아이에게서 그토록 광기로 가득 차 분출하는 시선의 성취는, 두 개의 감정을 혼용시키는 박대조의 예술세계가 성취한 문학적 성과라 하겠다. 아이의 시선에서 오는 피할 수 없는 아우라는 이바노프(Vyacheslav Ivanov)의 상징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황홀경(ekstasis)과 닮아 있다. 감정이 폭발하고 격정의 상태로 이른 엑스타시는, 사실상 존재의 본질을 깨닫고 대상과 합일(合一)되어 가는 무아경의 상태라는 것이다. 신과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표현이 광기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대상을 관찰하고 이미지화하는 단계의 몰입하고 승화된 감정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엑스타시는 인간에게 초월적인 자유와 무한한 생명력을 부여하기도 하며, 치유와 자기 정화를 경험케 하기도 한다. ● 사실, 엑스타시의 경지는 작가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장자 철학의 중심사상과 닮아 있다. 『장자』에는 좌망(坐亡), 심재(心齋)를 통해 주객합일(主客合一), 물화(物化)에 이르는, 예술적 관조의 과정들이 드러난다. 이러한 관조를 장자는 망아(忘我)라 하고 있다. 나를 잃어버린 황홀한 경지는 자기 정화의 단계를 거쳐 현상계를 초월하고, 성스러운 단계에 다다른 상태이다. 적막하기 까지 한 광폭한 시선의 응시는 작가가 아이의 시선 처리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투시하고, 지극히 고요하고, 성스러운 순간의 조형적 완성인 것이다. 이는 석굴암의 본존불에서도 드러나는 미적체험으로써, 폭풍 같은 두려움과 적막한 고요함이 공존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동심의 어린아이와 '관조하는 아이'는 자연과 욕망과의 대립의 조형화이며, 폭발하는 시선의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고요한 미적관조에 의한 승화라 하겠다.

박대조_염원 16_Transparency, 입체렌즈, light-box, change-color_76×110cm_2010
박대조_Desire_3D lens, transparency in light box, change color_84×110cm_2011
박대조_염원 8_Transparency, 변환렌즈, light box, change color_68.3×110cm_2010

3. 제단위에 핀 꽃 - 이마고 Imago 에 관하여 ● 박대조 작가가 망아의 경지에서 보는 미적 관조(사실, 창작태도와 동일)에는 디오니소스적인 황홀경이 내재하고 있는 폭력적인 죽음이 동시에 공존한다. 인도의 시바(siva) 신(神)이 생명과 탄생의 신이자 동시에 죽음의 신인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근작의 가면(mask) 작업들은 이러한 죽음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로 보인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의 미라에는 화려한 가면들이 씌어져 있는데, 이 가면은 죽은 자의 세계와 살아 있는 자의 세계를 연결하는 물리적인 끈으로서 작용했다. 즉 가면은 이마고(Imago)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근자에 보여주는 가면은 죽은자에게 덧씌우는 의식의 하나로써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자연, 생명 그 안에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존재의 성찰, 현대문명에 관한 경고, 인류의 멸망을 목전에 둔 외로운 인간에 관한 일종의 제의(祭儀)로 확장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제의에는 신성한 아이의 맑고 깨뜻한 동심과 그들의 웃음이 제물로 바쳐진다. 사실, 그의 이마고의 시작은 라이트박스 속 인형 시리즈들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가면과 인형은 생명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가시화이며 생에 관한 변형체이며, 또한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이마고의 형상들인 것이다. ●자연의 대재앙으로써 인류의 멸망은 하나둘씩 가시화 되고 있다. 그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는 작가는 화강암위에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바치고 제사를 올리는 제의를 모색하고 있다. 문명 속에 아이들은 양식된 아이들이며 강제된 아이들이며 갈 곳 잃은 연약한 아이들이다. 그에게 있어 우주이면서 자연이며 그의 이상계인 순수한 아이들은 또한 현대문명의 비극에서 잉태된 문명의 폭력에 제물로 바쳐지는 봉헌물이며 희생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일관되게 관통하는 박대조의 예술적 아이러니이다. 문명에 바쳐진 신성한 피, 희생된 아이들에 관한 그의 이 끔직한 도발은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강열하다. 작가는 염원과 같이 기도하는 아이들을 드러냄으로써, 우주를 응시하고 대자연의 위협적인 힘을 경외하며 기도하고 성찰한다. 이것이 작가가 현재의 인류가 풀어나가야 할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영속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겸허한 자세인 듯하다. 현대문명이라는 축제 가운데 인류는 제단위에 벌어지는 신화속의 끔찍한 희생물이 아니라,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 박옥생

Vol.20110513g | 박대조展 / PARKDAECHO / 朴大祚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