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주원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11_수요일_05:00pm
공 아트스페이스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2층 Tel. +82.2.735.9938
이주원의 '좀머씨 이야기'- 1. 프롤로그 ● 누가 다른 사람인가? 그는 언제나 낯선 타인으로서 오직 나와 마주 서 있을 뿐인, 그래서 그가 되돌아서거나 혹은 내가 등을 돌리면 더 이상 서로의 눈빛을 볼 수 없게 되는, 그런 존재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는 끝내 폐쇄 회로의 어느 한 구석에만 갇혀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세계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이며, 동시에 두 존재의 '다름'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열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예술가에게 다른 사람이란 자신과 전혀 무관한 존재일 수 없다. 오히려 예술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가장 첨예한 다름을 경험한다. 예술가의 세계는 하나의 투명한 거울과 같아서 그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듯이' 자신의 세계를 응시한다. 그 때 포착되는 풍경이야말로 자아의 동일성, 세계의 동일성이 아닌, 가장 생소한 타인, 전혀 다른 세계의 그것, 또 다른 자아인 것이다. ● 이처럼 자신의 모순된 분신인 또 다른 자아를 대면하면서 예술가는 비로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획득하게 된다. 일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안전하게 배양되어 온 친숙한 세계는 예술가의 눈을 통해 가장 생경한 세계로 자리매김되고, 이어서 그런 다름이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이미 견고한 성처럼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시나브로 고통에 젖게 된다. 세계와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부정의 뒤안길에서 예술가가 '조우'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주원의 색채 언어는 부정에 수반되는 알지 못할 불안감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만 가지 색상을 잉태한 태초의 색, 가물 현(玄)색에서 다시금 만 가지 색상을 출산시킬 줄 아는 이 화가는 우리에게 부정의 색깔들을 이야기 하려한다. LED라는 문명의 발광체에 감전된 현즉시색(玄卽是色)의 미학이 원시적 질감에 투사된다. 지금까지는 빛을 방출하던 물질, 발광 다이오드 LED(Light Emitted Diode)는 이제 거추장스런 자신의 거푸집을 벗어던지고 '확장된 차원의 빛' LED(Light of Extended Dimension) 그 자체로 변모한다. ● 바로 이 LED로 표출된 부정의 색상이 우리를 심란하게, 불편하게, 궁극적으로 '조울증 환자'로 만들어 버린다. 무거움과 가벼움, 비상과 추락, 의식과 무의식, 차고 이지러짐, 달이 뜨고 해가 지는 등 이 모든 극단의 경계와 그 사이로, 그 샛길로 이주원은 우리를 이끌어 들인다. ●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 안에서 '안락하게' 정주할 수 있지만, 동시에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태양을 향해 돌진하는 이카루스처럼, 삶을 탈주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길은 비상(飛上)으로의 열정으로, 자유를 향한 비극으로 얼룩져 있다. 그 길로 이주원이 나를 초대했듯이, 나는 그를 '좀머씨'의 길로 초대하고자 한다. '좀머씨'는 한평생 걷고 또 걷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는 평생을 죽음으로부터, 삶의 '중력'으로부터 도망쳐 다닌 슬프고도 아름다운 자유인(自由人)이다. 이주원의 색채언어는 '좀머씨'의 독백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2. '좀머씨'의 독백 ● 사람들은 나를 '좀머'(Sommer, 여름)씨라고 부른다. 혹자는 나에게서 '수도승'의 모습을 발견한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나는 동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그냥 평범한 아저씨일 뿐이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걷는 일을 지독히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의 걷는 행위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어슴프레한 여명을 뚫고 거처를 나서면 밤의 어둠과 낮의 하늘이 동시에 펼쳐지는데 그 장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비릿한 풀내음을 맡으며, 백주의 민둥산을 넘으면서, 호숫가에 비치는 노을을 뒤로 하며 쉼 없이 길을 걷는다. 걸을 수밖에 없다. 날 수만 있으면 당연히 걷는 것보다는 낫다. ● 아, 저기 저 나무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이 있다. 어린 내 모습이다. 나무 꼭대기에 기어 올라가 바람결 따라 살살 몸을 움직이며 날개 짓을 하고 있다. 그래, 바람 부는 날이면 좀 더 몸이 가벼웠더라면 학교 앞 동산에서 언덕 아래로 기분 좋게 날아다녔을 텐데... 언젠가 날아 볼려고 여러 차례 시도는 해보았다. 근데, 그 놈의 '중력' 때문에, 내 뒤통수에 상처만 남겼다. '비행'(飛行)은 매번 실패로 끝났지만 나무 타는 데는 귀신같았다. 나무 위에서 나만의 '자유성'(自由城)을 탄탄하게 구축해 놓았다. 부모님 잔소리 들을 필요도 없었고, 배고플 땐 빵도 먹고, 자유낙하법칙을 떠올리며 아래쪽을 향해 시원스레 오줌을 누고, 콧노래를 부르며 지는 석양을 오랫동안 지켜보기도 했다. 땅에 있는 사람들 눈에는 이미 오래전에 져버렸을 해를 나는 오랫동안 눈에 간직했다. 돌이켜 보면 효과면에서 다소 떨어지긴 하였지만 나무위의 생활은 날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 한 살을 더 먹으면서 몸무게도 불었고, 키도 성큼 자라서 더 이상 날 수 있거나 가벼운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새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근데 가느다란 두 개의 바퀴위에서 계속 움직인다는 것이 맘대로 되지 않았고, 셀 수도 없이 길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생각으로만 바퀴를 조정하는 일은 너무나 아찔하고 위험한 시도이었음을 처음 깨달았던 것이다. 무수한 추락 경험 끝에 마침내 난 자전거와 한 몸이 된 고수로 거듭났다. 손을 잡지 않고 타기, 손을 잡지 않고 커브길을 돌기, 정상상태에서 회전하기, 급브레이크로 방향 바꾸기를 할 수 있었다. 자전거 타기란 날아다니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되었다.
근데 두 개의 바퀴가 아무리 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곳이 있다. 자전거 길을 벗어나기만 하면 도처에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협곡의 좁은 오솔길로 양쪽에 깎아지른 듯한 높은 산이 버티고 있고, 깊은 눈 사이로 외발 짐승만 통과할 수 있는 이랑길이 펼쳐져 있다. 하는 수 없이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는 늙은 자전거의 안장거죽에서 내려와 걸어 다니기로 했다. 그 이후 난 잠시도 쉴 새도 없이 걷고 또 걸어 다니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난 죽음이 너무 두렵다. 자는 것도 두렵다. 긴장을 놓는 순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죽음이 나를 데려가면 어떡하지? 내일 정오에 암바흐 호수길 벤치를 지나가야 하고... 저녁엔 작은 변전소 뒷길에 숨죽여 자라고 있던 너도 밤나무 잎사귀 향을 맡아야 할텐데... 죽음이 날 끊임없이 따라오고 난 "평생 죽음으로부터 도망 다녀야 하고 Leben lang auf der Flucht ... vor dem Tod"... ●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밀폐공포증 환자로 여긴다. 밀폐 공포증은 병이라서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는데... 근데 그게 정상이 아닌가? 중력이, 절망이, 추락이, 죽음이 나를 끌어내리고, 나를 무겁게 만들고, 나를 주저 앉히는데.. 이카루스처럼 날지 못할 바에는 걷고, 또 걸어가야 하지 않나? 기왕이면 지팡이라도 있어야만 빨리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사람들은 내가 걷는데 왜 자꾸 귀찮게 방해를 하는지 모르겠다. 불필요한 가식적인 인사를 하지 않나, 세찬 비 맞는다고 나를 그 좁고, 밀폐된 자동차 공간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지 않나, 정말이지 훼방꾼들이다. 그들은 내가 왜 걷는지, 걸어야만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내가 잠시라도 나무둥치에 걸터앉아 땀을 훔치고 있다 보면, 왠지 불안해, 자꾸 나를 붙잡아 둘려는 기운이 오싹하게 느껴진다. 중력인가? 과거의 기억인가? 즉음의 그림자인가? 순간 벌떡 일어나 다시 걷는다. 숲길도 걷고, 산길도 걷고, 자갈길도 걷고, 모랫길도 걷고, 눈길도 걷고, 빗길도 걷고, 안개길도 걷고, 뙤약볕길도 걷고, 고샅길도 걷고, 외길도 걷고, 비탈길도 걷고, 곧은길도 걷고, 진창길도 걷고, 언덕길도 걷고, 민들레길도 걷고, 호수길도 걷고, 밀밭길도 걷고... 이제 걷는 게 날아다니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되었다. ● 근데 이제 발에 힘이 빠지는 것 같다. 걷는 걸 중단해야 할까 보다. 아니, 아니, 아직은 아니다,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의 끊임없는 움직임은 모두 이 작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이번만큼은 제대로 날아보자. 이제, 나뭇가지도, 두 개의 바퀴도, 두 발도, 지팡이도 필요 없다. 오히려 비행(飛行)하는데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이자 두려운 그런... 그래, 깨어 있는 죽음으로, 죽어 있는 죽음 위를 날아가면 되겠다. 태양이 작렬하는 뜨거운 여름(Sommer)날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영원히 날아다닐 수 있는 거다. 마지막으로 간절한 부탁 하나..."그러니 나를 제발 좀 그냥 내버려 둬라! Ja so laßt mich doch endlich in Frieden!" ■ 성시정
Vol.20110511g | 이주원展 / LEEJOOWON / 李周原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