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感

성구展 / SEOUNGGU / 星九 / painting   2011_0510 ▶ 2011_0531 / 월요일 휴관

성구_2009. 5_캔버스에 유채_64×117cm_2009

초대일시 / 2011_052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오뉴월 Space O'NewWall 서울 성북구 성북동 51-2번지 Tel. 070.4401.6741 onewwall.wordpress.com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국내 미술계는 '회화의 위기', '회화의 종말', '회화의 출구' 등과 같은 문구를 사용하며 회화의 견고했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형예술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 추상이라고 주장한 대표적 순수주의자 그린버그(C. Greenberg)가 「모더니스트 회화」라는 글을 발표한지 40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사람들은 이제 회화는 과거의 재현양식, 전통적이고 낡은 재현양식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회화, 그 중에서도 특히 추상회화는 모더니즘 회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평면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21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회화는 형상과 서사를 강조하는 흐름 속에 위치해야 한다고 이야기되었다. 회화의 위기와 모더니즘 회화의 위기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회화의 향방을 구상회화로 한정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회화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과거의 노파심 섞인 논의들이 삼만 여 년 이상 지속된 회화의 역사를 쉽게 흔들 수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빌헬름 보링거(W. Worringer)가 말했듯 외계 현상으로 야기되는 인간의 커다란 내적 불안에서 생긴 결과로서의 추상충동이 지성의 개입을 배제한 본연적인 필연성으로 기하학적 형식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추상회화는 흥분과 불안, 그리고 유동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새로운 유효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에 영향을 받는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 2차원의 화면 위에 시간성을 초월한 시각적 표현을 구현하는 회화의 힘, 그리고 비가시적인 대상을 가시화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표현방식으로 존재하는 추상의 독자성은 여전히 건재하다.

성구_Amnesiac_캔버스에 유채_128×138cm_2009

박성구는 추상회화로써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들을 매개로 감각의 소통을 추구하는 작가다. 그는 작품과 관객의 대면만으로는 불충분하여 언어적 설명이 덧붙여졌을 때에야 비로소 내용이 이해되는 미술 또는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이 동반됨으로써 작품에 대한 경험이 완전해지는 미술을 '지양'한다. 그는 조형예술의 원천이자 핵심인 점, 선, 면, 그리고 가시성의 근원인 색채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의 본질을 최대한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이들 요소를 통해 감각, 감정, 나아가 감동이 작품과 관객 사이를 관통하기를 바란다. 그의 작품에는 어떠한 구체적인 형상도 드러나지 않는다. 의도나 내용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어떤 무엇이 '감각'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어떤 무엇은 작가뿐 아니라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일상이기도 하고 인생의 전환기로 작용하기도 하는 사랑, 분노, 두려움, 기대, 기쁨, 슬픔, 그리움, 불안, 동요 등의 감정에서 기인한다.

성구_Over_캔버스에 유채_127×182cm_2011

그는 작업에서 '무정형, 무규칙, 무의미'라는 슬로건을 중요한 지침으로 삼는다. 이는 작품이 의미하는 바가 있지만 그 의미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캔버스 내에 어떤 규칙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그 규칙을 규정할 수는 없으며, 작품에서 어떤 정형이 드러나는 듯해도 작품은 그러한 정형을 포함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의성을 바탕으로 한 기호들의 연쇄인 말은 실제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미끄러지기만 할 뿐 정확한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 리듬, 멜로디, 화성의 세 요소로 구성되는 음악과의 소통에는 따라서 언어가 불필요하다. 때로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형상과 서사를 배제한 조형의 기본 요소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각은 소통되고 교환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작업이론의 바탕이다. 한편 그의 장인적인 작업 과정은 작품이 순간적인 흥미의 대상이나 자본주의적 상품으로서 전락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작가로서의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제작된 상태로 판매되는 캔버스를 구입하지 않고 스스로 캔버스의 크기를 정해 목재를 주문하고 틀을 만든다. 아교나 젯소칠이 된 상태의 캔버스천을 구입하지도 않는다. 작품에 따라 어울리는 천을 골라 틀에 씌우고 8회 정도의 밑칠을 하는데, 틀에 직접 천을 씌우고 바탕칠을 하는 시간 동안 작가의 몸은 캔버스의 사이즈에 길들여진다. 신체가 캔버스의 크기에 익숙해져서 화면 안에 드러나는 제스처 또한 그 스케일에 적응될 때까지 그는 자신의 몸을 단련한다.

성구_Slash_캔버스에 유채_64×117cm_2011

최근 작업에서 그는 캔버스의 모서리 부분에 바탕칠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캔버스가 하나의 오브제로서 보이게 될 때 연극성과 시간성을 경험하게 만듦으로써 회화의 삼차원적인 특성이 강조되는 것을 경멸했던 모더니스트 이론가들의 입장에서 비롯된다. "벽에 고정된 캔버스를 회화로 간주해버리는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회화로 보는 것과, 한 작품에 대해 그것이 그 질을 의심할 수 없는 과거의 회화와 비교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일은 전적으로 서로 다른 경험"이라고 말했던 마이클 프리드(M. Freid)의 이론에 그는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그는 작품의 물리적인 특성이 회화의 조건이 되는 작품이 아니라 조형적 아름다움과 그 소통 가능성으로서 작품의 존재성을 획득하는 회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소통 가능성은 일차적으로 작품과 작가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내구성에 대한 고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유화물감의 특성이 작품과 작가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한다는 점에서 그는 유화를 고집한다.

성구_Maddish_캔버스에 유채_110×240cm_2010

2000년대 초반, 그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모든 조형 요소의 시작인 점으로부터 출발하여 확대된 점으로서의 원에 집중했다. 이후 점이 이동한 흔적이자 반복, 대칭, 균형, 조화 등의 조형원리를 나타내는 선에 대한 실험을 거쳐 점 또는 선이 확대되어 만들어지는 면을 탐구했고, 2000년대 중반에는 올오버페인팅(all-over painting)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방식을 단계적으로 거치지 않고 그를 둘러싼 환경, 상황, 공간, 시간, 여건 등에 자신을 자연스럽게 맡겼다. 이는 인위적, 계산적으로 찍어내듯 작품을 제작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담고 있으며 우연성을 필연성의 토대에 위치시키는 철학 이론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성구_Yellow & Red_캔버스에 유채_124.5×140cm_2010

이번 전시는 2009년 이후 최근까지 진행한 작업들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화면 안에 공존하는 점, 선, 면의 요소들은 개별적으로 지각되지 않고 서로가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무수한 점이 모여 만들어진 선, 이 점과 선이 만드는 면은 점이자 선이고 동시에 면이기도 한 상태로 존재한다. 빨강과 노랑이라는 색은 그가 생각하기에 따뜻한 감정의 성향과 강도를 가장 잘 드러낸다. 이 색상의 관계성을 탐구한 작업 Over(2011), Yellow & Red(2010), 이전의 올오버페인팅과의 연결 지점에 있는 벽(2007), 내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사적 감정을 몇 개의 선 또는 원을 포함한 낮은 채도의 색면으로 표현한 Maddish(2010), Slash(2011), 상징적 인물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시작한 2009. 5(2009), 그리고 형상이 없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사각형, 원형, 타원형의 부분들이 조합되어 있어 형태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Amnesiac(2009)까지 이번 전시는 그의 지난 10여 년 작업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성구_벽_캔버스에 유채_81×118cm_2007

역사는 합법칙성에 의해 선형적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 때로는 궤도를 벗어나는 비선형의 어떤 경향을 좇아 복고(復古)하기도 하고 회귀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타파해야 할 장르로 인식되는 모더니즘적 추상회화에 여전히 사람들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느끼고 열광한다. 순수예술주의나 예술절대주의로서의 추상회화가 아닌, 감(感)을 복원하고 본질적 시각 경험을 회복시키는 방법으로서의 회화를 추구하는 그의 작업은 소통과 해석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확장시키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고 있다. ■ 스페이스 오뉴월

Vol.20110509d | 성구展 / SEOUNGGU / 星九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