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513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수요일 휴관
씨드 갤러리 SEED GALLERY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교동 9번지 아주디자인타워 1층 Tel. +82.31.247.3317 blog.daum.net/gallerymine
기억의 變奏변주 ● 기억은 변한다? 아니 기억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한다고 해야 적확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학교 운동장이 그렇고, 눈 섶을 헤치고 꺼내온 김장김치 국물에 말아 먹던 국수 맛이 그렇고, 동네 형들 따라 다녔던 천엽(川獵)을 아들놈과 해봐도 그렇고, 젊은 날 열광했던 음악이 그렇다. 학교 운동장은 더 이상 커 보이지 않고, 김치국물에 말은 국수도 온 몸을 적시듯 감칠 맛나지 않고, 천엽의 수선스런 맛도 덜하고 음악은 더 이상 내 몸을 쥐어짤 듯 감동적이지 못하다. 세월과 더불어 풍경이 변하고, 인습이 바뀌고, 나의 마음이 변했다. 길지않은 세월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이처럼 많은 것들이 변모된 기억의 한 복판에 지난 시절 어려웠지만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면서도 풋풋해지는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동심 마져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었음을 지각하면서 씁쓸해지는 시간이 있다.
오유미 작가는 60-70년대 척박한 시대에 무심코 부르던 강아지의 별명 '해피'에서 그 시대 삶의 고단함을 벗어나고 싶어하던 서민들의 염원을 찾아내고, 풍요를 넘어 과잉의 시대인 지금, 오히려 빈곤과 소외, 결핍을 염려한다. 오유미의 작품은 시시콜콜한 생활 잡담이 으로 이루어진 잡지의 기사를 오리고 붙이고 모아서 우리에게 친숙했던 '해피'를 부활시킨다. 해피는 내 친구이고 엄마의 친구이고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이기도 했던 우리의 반려자 인 것이다. 세월을 훌쩍 넘긴 모노톤의 일일 연속극처럼 무채색의 잡지 기사로 만들어진 해피를 통해서 우리는 퇴색한 추억속의 시절을 깃는다.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했지만 마을의 구성원이기도 했던 '해피'는 우리 집에도, 이웃집에도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해피'가 행복하라고 이름을 불러 주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해피! 이리와 해피!'를 부르며 '나는 행복해.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자신의 염원을 '해피'를 통해 욕망 했던 것은 아닐까? '해피'는 목줄에 매어 자유롭지 못하다, '해피' 앞에는 비어있는 밥그릇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영문으로 만들어진 HAPPY를 발아래 두고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해피'는 다름 아닌 그 시절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한편 지금의 '해피'는 명품과 킬힐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이 '해피'를 휘감고 있다. 이제 '해피'는 그토록 행복해하고 싶었던 욕망을 이룬 것인가? 알 수없는 불안과 소외를 킬힐 아래에 감춰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동심을 흥분시키고 꿈을 만들어 주던 그 많던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김범준 작가는 자신의 성장과 더불어 어린 시절 상상의 세계를 주름잡던 동화속의 영웅들의 변모를 찾아 나선다. 자신을 괴롭히는 톰을 지략으로 물리치는 제리를 보면서 재미와 통쾌함을 넘어 약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키우고 강자에 대한 저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교육받았고, 불의에 맞서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을 보면서 세상에 대한 정의감을 자연스럽게 학습 받았다. 그러나 그런 기억의 피안에는 교육과 오락을 통합한 거대 기업 디즈니와 국가가 연루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밥도 잊고 보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의 기저에 맹목적 애국주의, 백인우월주의, 성차별, 신식민주의, 보수우익 성향 등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일례로「알라딘」의 남녀주인공은 백인의 외모를 닮은 반면, 악인들은 전형적인 아랍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랍계 어린이들이「알라딘」을 보면 자신들은 악인의 자식인 것이다. 더빙 역시 주의를 기울여 보면 디즈니의 주인공들은 미국식 표준영어를 쓰는 반면, 악인들은 외국어 억양이나 빈민가 흑인계 말투를 사용한다. -인용-헨리 지루(Henry A. Giroux)의「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The mouse that roared : The Disney and the End of Innocence)」 -류병학인터뷰-" ● 김범준에게 슈퍼맨은 더 이상 지구의 수호자가 아니라 박스 테이프에 깔려 납작해지는 가여운 존재일 뿐이며, 톰은 제리를 괴롭히는 악당이 아니라 반사적 대응을 넘어서 공격해 오는 제리로 인해 [젤리]를 제리로 알고 공격하는 정신 분열증 피해자인 것이다. 작가 김범준의 동심을 사로 잡았던 기억은 더 이상 없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기억들은 시절이 변하고 감동의 이면을 지각하게 되면서 변주하게 된다. ■ 갤러리 씨드
Vol.20110507f | 기억의 變奏변주 - 오유미_김범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