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국민체육진흥공단 경주사업본부 기획 / 아트레시피
관람시간 / 수,목_10:00am~06:00pm / 금,토,일_10:00am~07:00pm / 월,화요일 휴관
스피돔 갤러리 SPEEDOM GALLER 경기도 광명시 광명6동 780번지 광명돔경륜장 4층 Tel. +82.2.2067.5488 speedomgallery.kcycle.or.kr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답을 구해온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 '무엇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가?' 서점가에 행복론에 대한 책이 넘쳐나고 대중 매체에선 달변가들이 너도나도 행복 바이러스 전도에 열을 올리는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현대인들에게 그 길이 더 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행복은 이론이나 말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마음에 관한 것이기에 더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 ● 다만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단상이나 주장이 제 각각 다를지언정 그 바탕에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맥락은 대개 비슷하다.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인에서 비롯하거나 타인과 함께 하기 마련이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슬픔은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던가. 절대적 경지에 오르려는 구도자가 아닌 이상 우리 세속적인 인간은 홀로 행복하기 어려운, 지극히 사회적인 존재이다. 단언컨대 행복은 관계다. ● 전시 '오 해피 데이!'는 이 같은 관계 만들기의 행복을 논한다. 가깝게는 가족에서 멀게는 옷깃을 스치는 인연에 이르기까지, '홀로' 아닌 '함께'가 연출하는 작은 드라마를 사진 작품으로 보여준다. 여섯 명의 사진작가들은 무릇 행복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기 보다는 우리 주변의 관계에서 비롯된 일상성에서 행복의 조건을 발견한다. 특히 스스로를 엄격한 관찰자로 분리시키지 않은 채 개입된 시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이들의 시각적 행복론은 작가 개인사에서 출발함으로써 남다른 진정성과 호소력을 발산한다.
우선 서대승의 연작 「Korean Pregnant Women」. 첫 작가로 그를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가장 근원적인 관계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을 눈앞에 둔 만삭의 여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의 작품은 여자에서 어머니로의 변화에 주시한다. 그러나 예의 모성에 초점을 둔 임산부 사진과 달리 누구의 엄마가 되기 직전의, 아직은 독립된 인격체인 '그녀'를 조명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존재 근원을 생각하게 한다. 이미 꽃은 지고 열매를 맺는 순간에 놓인 예비 어머니에게 어느 누구도 아름다움에 대한 속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대신 관심은 잉태된 열매에 쏠린다. 그리고 그녀의 정체성은 모성에 의해 희석된다. 인생에서 가장 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공공연히 말하지만 결국 애들은 엄마 손으로 키워야 한다며 모성을 의무화하는 우리네 사고방식을 꼬집기라도 하듯 작품 제목의 'Korean'이 예사롭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서대승은 작가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시도로 환희와 고통, 설렘과 두려움, 책임과 구속이 교차하는 임산부들의 형용모순의 심리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이기 이전에 다른 누군가로부터 비롯된 존재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이제 새 생명이 태어난다. 김동현은 아이가 탄생하여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피투된 존재가 그 자체로 얼마나 경이롭게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는 지 기록했다. 그는 신생아를 품에 안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아이는 사회가 키운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굳이 가족이나 친지가 아니면 어떠하랴. 사진 속에서 아기를 매개로 연결된 사람들은 이 소중한 생명을 위해 배려의 손길을 선뜻 내민다. 유모차가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 행인, 해맑은 아기 얼굴에 연신 미소로 화답하는 동네 할아버지, 아기 이유식을 위해 가장 싱싱한 채소를 골라주는 이름 모를 점원 등 꼽자면 끝도 없다. 이 작은 존재가 만들어내는 흐뭇한 행복 풍경 속에서 김동현은 그 공동체적 배려에 감사를 표한다. 한자어 그대로 치자면 모성은 어머니만의 전유물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사회에서 그와 비슷한 모성을, 아기를 성장시키는 또 다른 젖줄인 공동체의 모성을 발견함으로써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희망을 결코 저버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성장.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한 빛나는 행복의 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덧없는 바람에 한번쯤 빠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현자는 그 순간을 정지시키려는 듯 카메라 앞에 자녀들을 세운다. 그 성장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아이들과 함께 사진 만들기」 연작은 자연스러운 몸짓과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낸 어린 자녀들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자녀의 성장 과정에 따라 10년이 넘도록 연작 작업을 해오면서 성실하게 성장 일기를 기록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던 이 꼬마 녀석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자 작가 정현자를 의식하는지 이어진 작품 「16세」에서는 사뭇 경직된 얼굴로 응한다. 아아, 16세. 엄마로서 정현자의 시선조차 거부할 만한, 아니 잠시 거부해도 될 나이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자기 성찰의 시간까지 덤으로 얻었다. 그의 작품이 그저 여느 가족의 사진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 바로 우리 모두의 성장 일기임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나서야, 다시 말해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유년을 인식하게 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놀이 방법을 애써 기억해내야만 한다는 것은 정말 희한하지 않은가. 양재광은 지금도 눈만 감으면 손에 잡힐 것 같은, 정체성의 원형이라 할 만한 어린 시절 기억들을 어린이의 놀이를 통해 더듬는다. 일정한 플롯에 따라 어린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 아닌 놀이가 돋보이는 「상상놀이 - 아빠는 이왕표」와 「청계천 동화」는 마치 영화에서 스틸 컷을 뽑아내기라도 한 듯 자못 서사적이다. 작가는 삶의 구석구석을 놀이로 변화시키는 어린이들의 재간에 의도 이상의 것을 담아낼 수 있었다. 더욱이 여섯 컷 단위로 스토리텔링화된 그의 작품은 가히 프로세스 예술(process art)이라 할 만하다. 작업 과정에서 아이들이 누린 행복이야말로 사진으론 환원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므로.
한편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종선은 여기에 동물을 더한다. 인도나 티벳 등 세계의 오지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작업을 해오고 있는 그는 사진가에 대한 세인의 직업적 환상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듯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사람과 동물의 각별한 관계를 포착한다. 가축이건 애완용이건 용도에 따라 길들여진 동물이라곤 하지만 가족의 일원인양 취한 당당한 포즈는 그들의 범상치 않은 행복의 유대감을 뽐낸다. 무엇보다 외지인 작가가 들이댄 카메라를 어색해하지 않는 눈치다. 그저 사진을 찍고자 하는 작가적 욕심을 위해 그들과 어울린 것이 아니기 때문일 터. 이 사진들은 작가가 그들과 진실된 소통을 나눈 짧지 않은 여정의 마침표 같은 것이다. 이종선에게 그들은 피사체가 아닌, 친구였다. 자신의 여행이 온통 동물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동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이끈다.
마지막으로 표세권은 한강이라는 장소 특정적인 공간에서 생기는 인간관계의 묘를 관찰한다. 서울 살면서 한강에 대한 기억 하나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 자의는 아니라도 누군가의 손에 붙들려 가봤을지언정 머릿속에 스냅 사진처럼 저장된 한강 둔치의 이런저런 풍경처럼 사람들이 한강에 오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운동, 마실, 야유회, 데이트, 그도 아님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홀로 한강을 찾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개인적 사연이 있을 터이니 논외로 하자. 표세권은 짝을 이루어 한강을 찾은 '두 사람'을 하나의 뷰파인더에 담는다. 그러다보니 이 두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본의 아니게 커플이 되곤 한다. 연인이건 친구이건 혹은 직장 동료이건 서로 한 쌍의 모델로 나선 것이 쑥스러우면서도 이 순간 연출되는 묘한 교감이 싫지가 않다. 한강이라는 곳이 지닌 장소의 힘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관계에 작은 행복의 파장을 남긴다. 작가는 이렇듯 익숙한 곳에서의 예기치 못한 관계 맺기의 탄생을 한강에서 발견한다. ■ 아트레시피
Vol.20110506d | 오! 해피데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