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5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공휴일_11:00am~07: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김준수-가브리엘의 어둡고도 환한 방 ● 최근 사진의 주요 테마로 신체가 등장한 것은 아마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인해서일 것이다. 정체성의 위기에 대한 자각과 소수그룹의 대두라는 현실과 맞물리는 한편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성중심주의적인 가치관의 퇴조와 붕괴가 결정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이전의 모더니즘이 인류의 정신과 이성을 고양시킨 프로그램(근대적 육체는 이성의 실현도구로써 통제의 대상이었다)으로써 신체를 상대적으로 무시하고 부인해 왔다면 포스트 모던한 현실 속에서 육체는 사회의 억압과 간섭을 직접 체험하는 장소이자 문화적 의미와 약호가 매겨지는 텍스트적 신체로 기능하고 있다. 오늘날 인간 육체는 섹슈얼리티의 정체, 인간의 성적 자유의 문제, 성의 정치학의 영역 확장 및 기능적인 사물이자 기호의 집합체가 된 추상적인 육체로 대두되었다. 사실 우리 몸은 일단 사회와 문화의 주어진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이 정체성이 부과하는 온갖 규범과 규율에 부대끼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몸은 각자의 고유하고 독특한 욕망구조를 갖는다. 이 다른 몸, 욕망에 대한 주목이 페미니즘운동이나 동성애 운동을 통해 표명되어왔다. 페미니즘이나 게이 운동은 단순히 소수의 인권과 라이프스타일을 주장하는 운동이 아니라 근대가 주장했던 인간상이 이성적인 서구 남성 중심, 이성애 중심으로 치우쳤다는 지적을 함과 동시에 생물학적 성이 사회적 성을 결정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페미니즘이나 게이 운동 등은 은폐된 채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기성의 관습적 사고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부당한가를 드러내는데 있다. 이는 근대적인 성 개념에 대한 회의와 문제제기이다. 근대의 역사는 육체에 노동이라는 개념을 달고 성의 역할을 구별지우는 의식형성을 통해 지배적인 남성 중산층을 중심으로 권력을 편성해왔다. 여성과 성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소수는 기준 이하의 존재로 치부되었던 것이 근대사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이나 게이 운동은 다분히 반근대적이고 탈근대적 경향을 띤다. '신권에서 부권이 지배하는 시대'로 완전히 전환된 19세기 이후 이 세상은 남근의 상징적 기표에 세뇌당한 사람들의 거대한 정신병원이라는 지적이며 이에 대한 반발이 페미니즘(하나의 성이 아니라 두개의 성), 동성애자(무한개의 성, 기존의 성 관념, 자아, 가족, 사회의 근본적인 해체주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남성과 여성이란 성별 속에서 강제적으로 이상화되어 있는 이성애적 정체성을 버리고 독자적인 자신의 성을 찾아나서는 남성 동성애자들을 본다. 이른바 커밍아웃한 이들도 있고 더러 음지에서 은밀하게 지내는가 하면 부당한 편견에 시달리거나 에이즈에 의해 격리되어 살고 있기도 하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남성동성애자들은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 것인가?
김준수는 오랫동안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환자인 '가브리엘'(세례명)이란 한 남자를 촬영했다. 이미 1996년도부터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를 찾아 이를 사진 안에 담았던 그는 2007년도부터 지금까지 가브리엘이란 한 남성을 관찰, 촬영해 온 것이다. 이 다큐멘트사진은 한 질병환자를 차갑게 추적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애정을 투사한다. 가브리엘이란 남자는 노동자생활을 하던 게이로서 10여 년 전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양성 판정을 받은 후 쉼터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한다. 그는 중학교 때 가출을 해 공장 일을 하며 어려운 삶을 살아왔지만 보통사람들처럼 꿈과 낭만에 찬 청춘의 삶을 보내왔던 이다. 그러나 그가 에이즈에 걸린 후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허황한 공포와 편견, 차별과 소외 속에서 그의 생은 거의 절망적이 되어 버렸다. 가족과 직장, 사회로부터 버려졌다. 오늘날 에이즈는 당뇨처럼 평생 약을 복용하고 그 수치를 조절하거나 생활수칙을 지키면서 공존하는 그런 병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는 과도한 오해와 무지, 편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가브리엘이 살고 있는 세상과 단절된 누추하고 어두운, 작은 방을 수시로 방문하면서 그의 일상을 차분하게 담았다. 이 사진은 비극적이거나 과장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다. 외부와 차단된 한 평 남짓한 방에서 한 남자가 보내는 무료함과 쓸쓸하고 적조한 삶이 드리워져 있고 병으로 인해 실명된 한 쪽 눈과 그로인해 기울어진 고개, 마르고 병든 몸이 힘없이 가라앉아 있다. 한쪽 눈을 실명해서인지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기운 채 살아간다. 그는 기울어진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나름 균형을 잡고자 한다. 그것이 그의 실존이다. 작가는 가브리엘의 방과 그의 모습 그 사이 어딘가에 가브리엘의 지난 날의 사진을 환등기로 투사한다. 환등기는 찰나로 사라지고 나타난다. 지난 날은 환각과도 같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어둠 속의 현재의 그와 밝음 속의 지난 날의 그가 있다. 환등기로 투사되는 과거의 이미지와 그것을 다시 촬영한 이미지는 단순히 이미지를 넘어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억과 추억까지도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다른 시공간을 한 자리에서 보여준다. 의식과 무의식, 현재와 과거가 기이하게 공존한다. 환등기 이미지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과 아련한 추억, 그리움 따위의 감정을 포용하는 더 큰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가브리엘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고 그것은 새로운 기억으로 가브리엘의 현재를 구성한다. 꽃무늬 커튼이 굳게 쳐진 어두운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는 이 생활보호자 주변으로 그의 지난 날의 추억어린 사진이미지가 잠시 환하게 반짝인다. 그 순간 어두운 방이 잠시나마 축복처럼 밝아졌다. 벚꽃이 가득 핀 나무 아래, 향원정 주변 벤치에, 도시의 야경을 배경, 여름철 바닷가를 배경을 그가 있다. 있었다.
그는 그 이미지 아래에 눈을 감고 누워있거나 혼자 주사를 맞거나 약병과 컵이 놓인 어지러운 바닥을 뒹굴며 보낸다. 그렇게 해서 이중의 가브리엘이 교차한다. 지난날의 가브리엘과 현재의 가브리엘, 에이즈에 걸리기 전의 건강한 몸과 지금의 병든 몸이 뒤섞인다. 그렇게 그는 지난 자신과 소통하고 말을 건넨다. 추억에 잠긴다. 우리는 그의 또 다른 주체와 몸들을 본다. 이 이중의 몸은 시공간을 넘나든다. 작가는 그의 몸을 빌려 에이즈환자이자 동성애자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재고하게 한다. 그 병은 일반 병과 동일하다. 그것은 당뇨와 유사하다. 그리고 가브리엘도 한 때 건강한 몸이었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으며 지금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주체로서 살아갈 자유와 인권을 가진 이다. 동성애자였던 가브리엘은 그 스스로 정체성을 추구하였을 것이다. 정체성이란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의 어떤 특성에 관한 사회적 정의이다.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야 할까에 대해 사회적으로 강제되고 또 생산되어진 일련의 규정들이 바로 정체성이다. 성적 정체성 역시 그렇게 주조된다. 정체성이란 현존하는 권력관계와 관련된 유동적이고 변동하는 하나의 실재적 현실에 불과하다. 따라서 성적정체성을 질문하고 자신의 주체적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시도가 동성애라면 그것은 단지 성적 기호에 머물지 않는 문제일 것이다. 비록 에이즈에 걸렸다해도 그가 찾으려던 성정체성을 우리가 외면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아니 그럴 권리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 박영택
Vol.20110505c | 김준수展 / KIMJOONSOO / 金準洙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