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5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경인미술관 Kyung-In Museum of Fine Art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 2전시실 Tel. +82.2.733.4448~9 www.kyunginart.co.kr
The Beyond 안과 밖의 경계, 그 너머 ●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창밖에서 바람이 분다. 비 오고 바람 부는 일은 언제나 유리창 너머의 일이다. 볼과 몇 밀리에 불과한 유리창이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짓는다. 작가는 몇 겹의 창을 통해 세상을 내다본다. 마음의 창, 카메라 파인더의 창 그리고 건물의 유리창, 이렇게 겹겹의 창을 투과하여 바라보는 세상은 늘 저 너머 The Beyond, 즉 현실 저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한번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친 기억을 갖고 있다. 하도 맑고 깨끗하여 유리가 없는 줄 착각하고 통과하려다 심하게 부딪친 기억 말이다. 경계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없는 듯 투명하다고 해도 유리창의 안과 밖은 엄연히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만큼이나 확연하게 다르다. 눈으로는 뻔히 보이지만 나갈 수 없고,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는 벽이다. 바라볼 수는 있지만 나아갈 수 없게 하는 유리를 통해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중첩시킨다.
서울 강남 빌딩 숲, 그 유리창의 숲에서 일하는 작가에게 유리창 너머의 세상은 익숙한 일상이다. 그는 유리창 안에서 치열하게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늘 저 너머의 세상을 내다보며 그리워한다. 유리창은 그에게 세상풍경을 고스란히 비추어주지만 동시에 한 발자국도 내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탈을 허용치 않는 벽이다. 즉 안에서 밖을 관조할 뿐, 직접 비를 맞거나 바람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의 사진들에서는 현실과 합일되지 않은 꿈의 파편들이 보인다. 사진 속에는 작가 자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하고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니의 여전한 모습도 거기 있다. 이는 그가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것이 저 너머 밖의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안쪽 세상이었음을 암시한다. 빗방울에 흐려진 유리창으로 들여다본 작가의 내면에는 비가 내리고 있고, 가볍게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작가의 내면이 보인다. 그의 손가락은 짐짓 밖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실은 안쪽을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시절 유리창은 세상을 동경하게 만드는 눈이었다. 그 때는 시선이 밖으로만 향하던 시절이어서 갈등과 회의에 시달릴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고부터 그것은 보이지만 넘어설 수 없는 단절의 의미로 다가왔다. 월급쟁이에게 유리천정은 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올라갈 수 없는, 갈증과 단절의 의미였다. 그가 통일전망대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그러한 작가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러나 지난해 3월에 어머니를 여의고부터 그에게 유리는 단절을 넘어서 가까이 가고 싶은, 경계를 넘어 세상에 손을 내미는 의미로 발전했다. 작가는 항상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어머니의 사진을 어느 날 문득 유리창에 붙이고 촬영한다. 그 작품에서 그의 어머니는 언뜻 창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생전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어머니를 통하여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무너지면서 비로소 작가는 자신의 속 깊은 안쪽을 세상에 내놓기에 이른다. 이는 작가에게 유리창의 의미가 더 이상 경계가 아니라 안과 밖이 만나는 지점으로 합일되었음을 뜻한다.
인류가 최초로 건축물에 창을 내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소통의 의미였을 것이다. 사진가가 카메라의 파인더라는 창을 들여다볼 때 이것 또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감추고 싶은 내면이라고 말하지만 드러내고자 하는 의식이 없다면 카메라를 들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인생의 반환점에 들어선 40대 중반의 작가 이희두, 그가 쉽사리 드러낼 수 없었던 깊은 속내, 여리고 아픈 부분까지, 그 섬세한 떨림과 울림까지 표현해낸 것은 앞으로 그가 유리창 밖의 세상에 주저 없이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결의로 보인다. 유리창 밖으로 나가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며 더 적극적으로, 더 직접적으로 세상과 대면할 때 그의 사진이 어떻게 변화할지 흥미롭다. ■ 윤세영
THE BEYOND ●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채광을 위해 천정에 유리창이 달려있었다. 난 가끔 하늘이 보고 싶을 땐 따스한 방바닥에 누워 유리천정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이젠 불혹의 나이를 지나갈 무렵에 다시 한번 유리천정이 생각이 났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도시인의 일상엔 유리천정보다는 사방이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반복되는 일들로 고단해 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바쁜 일상에서 잠시 짬을 내 유리밖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을 수 있을까? 그들에게 유리창은 어떤 의미일까? ● 잠시 따스한 볕이 드는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는다. 얼마 전까지 나에게는 유리천정은 보이지만 올라갈 수 없는 도시근로자의 푸념 섞인 자조의 대상이었다. 유리창은 보이지만 갈 수 없는 가로막혀버린 단절의 의미였다. 헌데 지금 이 순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들로 가득차 보이는 건 왜일까? 고개를 들어 유리창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시절 따스한 방에 누워 유리천정으로 보았던 그 하늘이 다시 내 가슴에 들어와 앉는다. 얼마 전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따스한 젖무덤이 유리창너머에서 나에게 손짓을 한다. ● 첨 전시를 기획하면서 무슨 얘기를 할까 무엇을 찍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고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유리창. 내 주위에 흔하디흔한 그 유리창이 어린시절 유리천정과 대비되면서 잊고 있었던 내 마음의 심상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이제 그 결과물이 보여지게 된다.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하지만 사람들 가슴에 유리창너머 따스한 봄볕을 맡으며 잠시 상념에 잠길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 싶다. ■ 이희두
Vol.20110502a | 이희두展 / LEEHEDOO / 李羲頭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