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

Seekers of the future of memories   2011_0408 ▶ 2011_050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지원_남경민_도윤희_박지현_박진아 신미경_이광호_이동기_이동재_이이남_홍경택

입장료 / 3000원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 ● 전자·정보 미디어의 급속한 발전은 먼 과거의 공룡뿐 아니라 아득한 미래의 ET를 동시에 안겨주며, 모든 시·공간의 거리를 제거함으로써 우리의 생활방식뿐 아니라 감각까지도 바꾸고 있다. 무한히 확대되기도 혹은 좁혀지기도 하는 오늘날의 '현재'는 '과거'의 흔적과 '미래'를 향한 기대감 사이에서 더욱더 그 경계를 잃어가고 있다. 이제 역행할 수도 없고 반복될 수도 없었던 과거의 모든 시·공간적 경험과 기억은 지속적인 가능성과 변화를 지닌 실재가 되었다. '기억'이란 단순히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는 과정이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억은 매순간이 과거가 되어버리는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의식을 재구성해내는 방식과 이를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은 주관의 세계, 내면의 세계와 같은 사적인 지점으로부터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대중과 예술이 만나는 다양한 접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전시이다. 이는 곧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다가 불현듯 그 맛에 의해 연상된 추억의 환영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것처럼, 명명되지 않는 개인의 삶의 이야기들이 작가들의 섬세한 감성으로 재구성되어 '지금 여기에', 그리고 '미래의 어느 한 순간'에 살아있는 기억으로 존재하게 될 작품들을 만나는 자리이다.

김지원_맨드라미_리넨에 유채_100×100cm_2010 이광호_Cactus No.38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09
박진아_사다리 02_캔버스에 유채_230×170cm_2010 박지현_5.4mg_Burned incense holes and guache on rice paper mount on scroll_120×126.4cm_2010

도윤희는 드로잉과 채색, 바니쉬(vanish)의 레이어(layer)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박지현은 향으로 일일이 종이를 태우면서 만든 구멍들 사이로 시간을 초월한 듯한 신비함을 강조하며 자연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들의 작업에서 발산되는 자연적 느낌은 단순히 자연물을 상징하는 시각적 기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화면 위에 켜켜이 쌓인 반복적인 행위의 흔적과 지나간 시간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눈 앞의 현재에만 매몰되어 있는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의 질서와 순환적 시간을 기억하게 된다. 마치 베틀 위에서 실타래 사이로 북을 위-아래로 옮기는 반복적이지만 숙련된 작업을 통해 직공이 아름다운 천을 만들어내듯, 이들 작품에서는 지난 시간의 축적들과 신체적 행위에서 비롯된 묘한 감흥과 여운이 있다. 도윤희와 박지현의 작업방식과 결과물이 곧 기억과 시간의 흐름의 축적을 보여준다면, 박진아는 특유의 빠른 붓놀림을 통해 마치 우연히 포착된 일상의 한 단면과 불현듯 그 일상이 낯선 느낌으로 환기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작품을 설치하거나 전시를 준비하는 어느 한 순간의 장면과 같은 특별함 없는 일상의 모습은 오히려 삶의 순간 순간이 가져오는 미묘한 차이와 반복적인 리듬에 주목하게 한다.

도윤희_고삐가 풀린 저녁_캔버스에 연필, 유채, 바니쉬_212×141cm_2008

사실 기억은 개인마다 선별되어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집되기도 한다. 그 편집된 기억 가운데, 때론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주체의 욕망이 드러나기도 한다. 김지원은 맨드라미의 생동하는 꿈틀거림, 동물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자연이 주는 생성에서 소멸에 이르는 생(生)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여름 내내 이글거리다 이내 무너지듯 녹아 내리는 맨드라미의 색과 형태의 격렬한 소멸과정은 삶의 본능으로서의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anatos)를 은유하는 동시에 생의 극적이며 상징적인 순간들의 기억을 함축하고 있다. 이광호는 대상을 기념비적으로 확대하고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는 욕망의 본성을 그려낸다. 특히 선인장을 거대하게 확대한 이미지는 물이 없어도 대기의 수분을 빨아들이며 사막에서도 생명을 유지한다는 선인장의 강렬한 생존 본능을 환기시키는 한편, 남근적 아우라를 자아낸다. 이렇게 김지원과 이광호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안에 은밀하고 기괴하게 숨겨진 생의 욕망을 환기시킨다. 반면 남경민은 인간 내면에 감춰진 욕망을 마법적 환각으로 가득 찬 실내 공간을 통해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조용한 침묵과 부재, 적막감이 감도는 남경민의 실내 풍경은 상징과 알레고리를 동반한 오브제들-거울, 꺼진 초, 나비, 모래시계, 백합 등과 함께 기이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는 차가운 현실과 이성의 영역으로부터 소외되고 위장된 주체의 욕망을 은유한다.

남경민_내면의 풍경을 거닐다_리넨에 유채_112×194cm_2011
신미경_Translation_vase_비누, 피그먼트_24.5×19.8×19.5cm_2011

이렇게 현실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는 개인의 기억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반복과 수정을 통해, 문화적 차원에서의 기억을 형성해가게 되는데, 신미경은 비누를 재료로 과거 유물을 정교하게 복제하는 작업에서, 하나의 대상이 긴 역사적 시간과 문화적 문맥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즉, 비누의 닳는 속성과, '번역(translation)'이라는 제목의 융합은 원본과 모조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에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은유이다. 이와 유사하게 이이남은 옛 명화를 디지털 영상기술로 새롭게 재현시킴으로써, 문화적 창조물로서의 시간과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서는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 대가들의 작품으로부터 차용된 이미지들은 모니터 안에서 변형되고 서로 오버랩되면서 시간이 멈춘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현재 이 순간에 생동하는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이동재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쌀_100×100cm_2011

한편 이동기, 이동재, 홍경택은 오늘날 대중 매체를 통해 무수히 재생되며 대중의 의식 속에 끊임없이 각인되는 소비사회에서의 이미지 기억에 대해서 다룬다. 이동기는 과거 추억의 오락문화에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아이콘들로 가득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미지의 범람으로 가득 찬, 여러 층으로 겹쳐진 그의 화면에서는 어느 한 개의 이미지도 유별나게 강조되지는 않는다. 그 효과는 텔레비전의 채널을 연속하여 돌리거나 잡지를 빠르게 훑어보는 것과 같이,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어떠한 안내도 없이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주어지는 매스 미디어의 시각적 경험을 반영한다. 반면, 이동재는 그 시대의 아이콘, 즉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유명인의 특징적인 모습을 디지털 시대의 픽셀과도 같은 구성으로 새롭게 제시한다. 그가 선택한 인물의 모습은 각종 매체를 통해 무수히 재생됨으로써 대중의 의식 속에서 불멸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홍경택은 언뜻 보기에 찍어낸 듯 좌우대칭이거나 또는 패턴화된 화려한 화면과 아이콘들을 조합하여, 대중문화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유행에 대한 현대인의 강박증에 가까운 시각적 자극과 경험을 그려낸다. 이들 작가들은 모두 매스 미디어의 이미지 생산방식을 환기시킨다. 특히 이들은 예술과 상업의 영역으로부터 친숙한 소재를 함께 차용함으로써, 비예술적인 상업 미술의 영역에 포섭된 고급 미술의 영역과, 이 양자 간의 관계를 마치 모자이크처럼 재구성하는 대중문화의 시각적 영향력과 그것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홍경택_Library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60×72.7cm_2011 이동기_Marx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45.5cm_2010
이이남_노트르담 성당과 소치의 산수화_LCD TV_00:06:30_2011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서 기억은 단지 흘러가 버리는 것, 사라져버리는 것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된 흔적을 통해 잊혀진 모습을 의식 밖으로 되살리는 것이며, 바로 그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치 물이 담긴 사기 그릇에 형체 없는 종이 조각들을 넣으면 종이가 퍼져 윤곽이 생기고, 색이 선명해지면서, 제각기 다른 모양이 만들어져 꽃이 되고, 집이 되는 일본 놀이에서처럼, 기억은 축적된 과거의 시공간에 대한 무의식적 경험이 우연한 순간에 어느 한 부분을 통해 삶의 총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번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은 작가들마다, 각자의 내면에 각기 다른 빛깔과 형태를 갖고 흐르는 시간과 그 가운데 우연히 드러나는 특별한 기억들, 그리고 이를 서술해내는 스토리텔링의 기술을 만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예술의 감흥이란 단순히 지나간 옛 이야기를 복원하는 상상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현재의 파편들로부터 미래로의 소통방식을 열어나가기 위한 작가들의 열정 가운데 있다. ■ 김현경

Vol.20110421c | 기억의 미래를 좇는 사람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