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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리젠테이션 / 2011_0420_수요일_06:3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형식이 내용을 잠식할 때 ● 황지희는 단어, 문장, 관용 어구를 이용해서 그것을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인 『나는 너보다 무겁다』에서는 7가지의 말이 등장하며, 그 말들로부터 각기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그녀가 선택한 말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다른 상황으로 변모하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드러낸다(말을 하나의 조형으로 고정했기 때문에 쉽게 해석되어 버리는 난점도 있다). 의미를 고정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뇌에 찬 말 대신에 가볍지만 유쾌한 말들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원래부터 말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오해의 여지가 있고, 불완전하다는 것이 이 전시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 먼저 말이 형상으로 전이된 작업을 보자. 말을 개념이나 철학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말 자체를 단순하게 형상으로 구성한 경우이다. 이에 해당하는 작업을 '우물안 개구리', '내가 흔들리다', '나 여기 있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전시장에 놓여 있는 탕을 이용한 설치 작업이다. 탕은 우물로 전이되고, 그 우물 안에는 개구리의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구리라는 단어만 놓여 있다. '내가 흔들리다'는 '내'라는 글자로 탈바꿈된 수많은 조각들로 구성된 모빌이 천장으로부터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사람이 건드리면 움직이게 되는 그래서 '내가 흔들리다'라는 의미가 발생한다. '나 여기 있어'는 수없이 많은 '나'라는 글자가 벽면에 옹기종기 붙어 있다. 그것을 관객이 봐주는 순간 의미가 발생한다.
이와 다른 층위에서 의미가 발생되는 작업들이 있다. '성공의 가계도', 'The Color'. '신문을 구토하다', '나는 너보다 무겁다'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관용어를 바탕으로 '성공'은 의인화되어 '성공이'의 가계도가 그려진다. 'The Color'작업에는 흑인은 하얀색으로, 백인은 검정색으로 된 단어를 붙어놓고, 바로 옆에 '흑인은 하얗다'는 파란색으로, '백인은 까맣다'는 붉은색으로, 그리고 그 다음은 '흑인은 하얗다는 파랗다'는 노란색으로, '백인은 까맣다는 빨갛다'로 노란색으로 등, 기존에 구분된 의미가 아닌 색에 따라 정의되는 의미이다. 백인/흑인을 나누는 이분법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그렇게 나누는 것조차 의미 없음으로 만들어 버리며, 색깔로 정의되는 의미가 나열된다. ● '나는 너보다 무겁다'의 '나', '너'라는 단어가 쓰인 플라스틱 조각은 원래 무게가 동등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저울'에 올라가는 순간 '나' 쪽으로 기울어진다.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파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또 '신문을 구토하다'는 '신문을 구독하다'는 의미를 '구토하다'라는 수행으로 바꾸어 버린다.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 아닌 구토하기 위해서 신문을 마구 씹어댄다. 몇 달간 입 안에서 씹어댄 신문지는 바닥에 널부러진다. 침이 샘솟으며 질겅질겅 씹어대는 영상(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클로즈업된 입술과 이빨 사이에서 씹히는 신문지는 '신문을 구토하다'라는 단순한 의미 이전이 아닌 다른 층위에서 의미화되는 지점을 마련한다.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감, 섬뜩함을 유발한다)의 바닥에는 수없이 씹고 뱉은 '구토'의 잔해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이 작업은 다른 작업과 달리 말과 형상의 관계를 넘어서 있는, 그래서 좀 더 다른 층위로 읽혀질 여지를 남기는 작업이다.
7개의 설치 작업들은 하나의 주제를 갖지는 않는다. 개별 작업들은 각자의 의미를 만들어 내고, 말을 이용한 조형작업이라는 형식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묶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아직 이 형식에 더 방점을 두고, 말이나 글들을 찾아내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말-장난이나 말-놀이는 그렇게 머리를 굴리지 않더라도 쉽게 의미화되는 유쾌한 지점이 있다. 그런데 전시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는 말이나 형상들이 명확해 보이고, 선택한 말들이 쉽게 해석될지 모르지만, 작가는 그 말들이 주는 의미를 고민하고, 고정할 수 없는 것을 고정하는 순간, 그 의미 때문에 자신이 늘 미끌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이것은 관객에게 전이되는 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아마도 작가는 이 유쾌함, 그리고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다시 미끌어질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을 계속 풀어내면서도 의미의 결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작업을 병행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신양희
나, >, 너 로 배치된 이것은 꼭 나와 너라는 존재에 대해 모든 결말을 내 버린 듯 하다.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 나는 너보다 크다(?) 나는 너보다 많다(?) 나는 너보다 무겁다(?) ● 사실은 어떤 미친 자의 망상에서부터 출발했을지도,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르는 그저 하나의 문자 배열에 불과하다. "나" 는 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지도, "너"는 네가 아니라 나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너를 통해 어떤 이는 '나는 언제나 우선이고 1등이지'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는 뭔지 모르지만 자신이 "너" 라고 느끼고 작아지는 듯한 열등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말이라는 것은 늘 각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쉽사리 판단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는 그에 대한 오해도, 이해도, 분쟁도 책임지지 않는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 황지희
Vol.20110416e | 황지희展 / HWANGJIHEE / 黃智熙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