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운_김승영_김태균_노동식_박성수_박소영_박용석 방명주_이명호_이이남_정광호_정서영_프로젝트 그룹 옆[엽]
주최/주관 / 경기도미술관 후원 / poog
관람시간 / 평일 10:00am~08:00pm / 주말 10:00am~10:00pm
경기도미술관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667-1번지 2층 기획전시실 Tel. +82.31.481.7007~9 www.gmoma.org
내일의 나와 대면하는 일, 오늘의 쉼 ● 우리 몸의 근육들은 휴식하기 위하여 하루 평균 여덟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 단 한 가지 근육만이 이 불연속성의 법칙에서 제외되는데 그것이 바로 심장근이다. 이 근육은 일생 동안 쉬지 않고 박동한다. 그렇다면 이 근육이 절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근육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휴식할 것이다. 심장의 비밀은 그것이 두 번의 박동 사이의 아주 짧은 한 순간 동안 휴식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서 심장의 휴식, 잠, 바캉스는 분산되어 가지고 그것의 노동과 긴밀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다. ● 심장처럼 노동하라, 너무나도 재미있고 창조적이며 다양한, 그리고 특히 일상생활에 너무나도 잘 편입되어 있고, 노력과 성숙의 국면들이 너무나도 리드미컬하게 교차하는지라 그 자체 속에 휴식과 바캉스를 내포하는 그런 노동을 하라. (미셸 투르니에 『예찬』中) ● 영화 속 한 주인공은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미술관을 찾는다. 그리고 어떤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여간해서는 자리를 바꾸지 않는 상설전시실의 그 작품은 모나리자나 니케 여신상처럼 유명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은 기쁜 일이 있을 때나 마음이 스산할 때, 햇빛이 너무 좋거나 억수같은 장대비가 온다는 핑계로도 그것을 만나러 간다. 휴관일이 아닌 이상 언제나 만날 수 있고, 특별히 약속을 하지 않아도 늘 만나주는 친구인 셈이다. 어떤 마음으로 보는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건네고, 눈여겨보지 않았던 요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기도 한다. 오래 보고 많이 볼수록 새로워지는, 참 희한한 그림이다. 주인공이 그림을 닮는 것인지, 그림이 주인공을 닮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영화 한 편에 걸쳐 몇 번이나 등장하는 이들의 별스럽지 않은 조우는 조용하면서도 강하게 스토리를 끌고 가는 큰 축이 된다.
이런 이야기는 서양의 유명한 미술관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오늘날의 미술관은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공간일까? 현란한 문화상품들이 많은 사람들의 여가를 경쟁적으로 차지하기 위해 미디어를 타고 전파되는 요즘, '미술관은 테마파크와 경쟁해야 한다'는 명제는 한국에서도 유효한 일일까? 우리나라에 현대미술관이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된 것은 1986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990년대에 여러 사립미술관들이 잇따라 개관하였고 2000년대에 이르면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현대미술관 설립에 열을 올린 결과, 미술관은 그나마 가보지는 않아도 있는 줄은 아는 기관이 되기에 이른다. 그러니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미술관이란 불과 10여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신종 기관이고, 따라서 누구에게나 대체로 낯설고, 그러니 마음에서 멀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친구를 만나듯 작품을 보러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도 드문 일이겠고, 더더구나 그러한 미술관이 테마파크와 경쟁을 할 만한 처지도 아닌 것이 현실일 터다. ● 사실 미술관은 자연사박물관, 역사박물관과 함께 박물관이라는 커다란 영역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토록 광범위한 영역을 담고 있는 박물관도 본래는 도서관과 더불어 인류가 남긴 다양한 종류의 유산들을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었다. 기원전 3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 학문연구 기관 '뮤제이온Museion'은 바로 이러한 박물관과 도서관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문명의 역사가 길어지고 축적된 지식과 정보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박물관과 도서관은 큰 맥락에서 분리되었고, 미술관을 포함하는 박물관 영역은 인류에게 '의미있는 사물'의 집결지가 되어왔다. 특히 미술관은 그 '의미있는 사물' 중에서도 예술이라 칭하는 것들의 종착역이다. 예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무언가 막막한 일을 접할 때, 더는 갈 길 없는 일을 마쳤을 때, 미술관 또한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 휴식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공급받는 재생의 공간이어야 한다. 테마파크와 경쟁하되, 현란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오히려 그 반대의 속도, 맞은편의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기도미술관이 새봄을 맞아 던지는 화두는 '쉼'이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던져지는 시대에, 목소리 하나를 보태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비우고, 버리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 이번 전시가 꿈꾸는 것이었다. 비집고 들어가 기어이 찾아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침묵의 힘을 느끼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무게를 가늠하며 스스로의 존재에 집중해보는 고요한 시간을 자신에게 선사하는 일, 고독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일, 그리하여 오늘의 나를 지나 내일의 나와 대면하는 일을 예술작품과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이번 전시 『쉼,』이 품고 있는, 이야기라면 이야기겠다. ● 사람들에게 '쉼'은 보통 여가생활을 통해 구현되는데, 여가라는 말의 기원이 되는 라틴어 '오티움(otium)'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doing nothing)'을 뜻하는 말이다. 쉼을 위해 굳이 뭔가를 권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더 정확히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말했던 '권태'에 관한 이야기가 아마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을 텐데, 그는 오히려 권태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말하면서 "사색가와 창의적 정신에게 권태는 행복한 여정과 유쾌한 바람에 선행하는 영혼의 잔잔한 고요"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권태는 무한정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이 아니라 새롭고 창조적인 노동을 내포하고 있는 휴식인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쉼은 뭔가 대단한 것을 결심하는 일이 아니다. 고요히 잠든 동물, 광합성을 멈추고 꽃잎을 접은 식물, 오로지 번데기 안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 동안 성충이 되어가는 애벌레, 이들 모두가 또 한 번 주어지는 하루의 운동을 위해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휴식의 중요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이듯,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매일매일 별스러울 것도 없는 휴식을 얻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휴식의 가장 적극적인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몸으로 옮기기 이전, 행동해야 할 그것을 잉태하는 시간이야 말로 니체가 말하는 권태이며,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 오티움'이 아닐까.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하였는데, 어떤 이에게나 존재하는 마음의 짐을 형상화한 '덩어리'를 잠시 내려두기를 바라는 박소영의 작품을 시작으로 두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지는 전체 전시의 도입부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을 설치해두었다. '쉼'이라는 낱말을 떠올릴 때 그 누구라도 가장 먼저 바다와 하늘과 숲을 떠올리듯, 마치 무조건반사와도 같이 휴식을 그 속성으로 내포하고 있는 자연을 예술가들은 과연 어떻게 작품으로 담아내고 있는가를 살피는 공간이다. 강원도 최북단 대진해수욕장의 고요한 바다를 담은 김태균 작가의 사진 작품, 나무와 사막의 풍경을 통해 익숙한 대상의 인식론적 결절점을 들춰내는 이명호 작가의 사진 작품과, 누구에게나 유효한 휴식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노동식 작가의 민들레를 형상화한 설치작품, 그리고 구름과 그 구름을 담은 하늘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바라다본 작가 강운의 작품이 일상의 노동에 지친 이들을 대신하여 새삼스레 자연의 아름다움, 자연의 고요함, 자연의 거기 있음을 말해준다. ● 태어나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이름을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내려놓은 영상이 작곡가 오윤석의 음악과 함께 전해지는 김승영 작가의 영상설치 작업 공간을 지나면, 일상의 휴식을 실천하는 집과 그곳에서의 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전시의 두 번째 공간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옛 선조들이 늘상 먼 곳까지 찾아 가기 힘들어 가까이 두고 보려는 마음으로 집안에 들인 산수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 이이남 작가의 영상작업과 일상적인 사고를 멈추게 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물을 보여주는 정서영 작가의 작품, 나무 한 그루, 기대 쉴 의자, 차 한 잔을 담백한 먹선과 '약엽(若葉)'이라는 고운 이름의 여린 잎색으로 그린 박성수 작가의 수묵화를 먼저 만난다. 또한 가족들이 함께 지어 나눠 먹는 따뜻한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작가 방명주의 부뚜막꽃 시리즈와 얇은 구리선들이 서로 잇고 기대어 있는 형상만큼이나 마음을 비우게 만드는 정광호 작가의 항아리, 오가는 길목에서 만날 때나 헤어질 때나 똑같이 나누는 평등한 인사를 건네는 박용석 작가의 작품, 아예 집 공간을 라인 테이프로 설치해 놓고 다시 한 번 가정을 떠올리게 하는 프로젝트 그룹 옆[엽]의 설치작품을 잇따라 만날 수 있는데, 이 작품 모두는 일상의 휴식에 대한 작고 낮지만, 울림이 큰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단언컨대 미술관은 집만큼 훌륭한 휴식의 공간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번잡한 여행에 지치고, 집이 너무도 익숙하여 그것이 휴식의 공간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면 미술관은 그 어떤 장소보다 크고 품 넓은 쉼터가 될 수 있다. 미술관은 그렇게 지치고 어려운 시절도, 기쁘고 즐거운 시절도 그저 묵묵히 함께 해줄 수 있는 친구이길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인생에 미술관이 그렇게 자리할 수만 있다면 미술관은 당신이 발걸음을 청할 때마다 니체의 권고처럼 "그대의 고독으로 돌아가 그대 자신의 길을 걸어라"라고 말해줄 것이다. 더불어 "심장처럼 노동하라"고도 덧붙여줄 것이다. 미술관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테마파크의 진정한 경쟁자가 되고 싶다. ■ 황록주
■ 부대행사 □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시간 / 평일 02:00pm, 04:00pm / 휴일 11:00am, 02:00pm, 04:00pm 전문 전시 안내사의 친절한 작품 설명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세요. □ 봄에 부치고 가을에 받는 편지 미술관에서 잘 쉬셨나요? 함께 다시 오고 싶은 분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세요. 나누어드린 엽서에 편지를 써주시면 9월에 보내드리겠습니다. □ 나는 이렇게 쉬었다 전시된 작품 속에서 쉬는 모습을 담긴 '인증샷'을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매주 베스트 포토 2장을 선정하여 기념품을 드립니다. 보내실 곳 : [email protected] (성함, 주소,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 쉬었다 가는 소감 관람 설문지에 후기를 남겨주시면, 좋은 글을 선정하여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Vol.20110415i | 쉼 (res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