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4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물성으로 구현되는 동양적 사유와 수묵의 새로운 표정 ● 작가 오송규의 작업은 전적으로 수묵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수묵이야 동양회화 전통의 적자로서 엄연한 무게와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근자에 이러한 본격적인 수묵 작업을 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는 전통시대의 산물인 수묵이 현대라는 새로운 시공과 맞닥뜨려 그 유장한 생명력을 시험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지하듯이 수묵은 대단히 오랜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진 풍부한 조형경험은 바로 동양회화 전통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전통과 현대라는 민감한 접점에 바로 수묵이 놓여있는 셈이다. 사실 수묵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다. 그것은 전통시대라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생성되고 발전한 조형체계로 이미 완성된 조형체계라는 것이 그중 하나의 인식일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풍부한 전통의 축적이 있기에 현대에도 여전히 재발견, 혹은 재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아무튼 수묵은 분명 현대라는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공에서 전통으로 대변되는 그 유장한 생명력을 시험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작가의 수묵작업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전제위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한 눈에도 그것이 전통적인 수묵과는 사뭇 다른 풍격을 지니고 있음이 여실하다. 일견 산수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나 그저 산수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무엇인가 마뜩치 않다. 마치 파도처럼 몰려와 무지개처럼 펼쳐지는 그의 수묵은 그저 산수라는 형상을 아우르는 도구적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방만한 수묵유희의 일탈로 치닫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작업은 수묵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물성에 대한 고도로 민감한 반응을 통해 수묵이 지니고 있는 내밀한 표정을 읽어내는 것이다. 언뜻 드러나는 산수의 형상은 그저 이를 수용해 내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다. 그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산수의 형상이 아니라 수묵으로 대변되는 고유한 물성의 확인과 이의 심미적 확장인 것이다.
전통적인 수묵관은 정신성을 강조한다. 즉 수묵을 조형의 수단이거나 표현의 재료로 인식하기에 앞서 특정한 사유와 사변을 전제로 한 정신적인 표현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성의 강조는 동양회화 특유의 가치관일 뿐 아니라 여타 표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수묵의 정신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수묵 자체가 특정한 정신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수묵의 정신성이란 그것을 운용하고 소화해내는 작가에 의해 발현되는 가치일 따름이다. 작가의 작업은 일단 수묵의 정신성, 혹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전통적인 방법들과는 사뭇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 그의 작업은 번짐과 스밈이라는 극히 자연스러운 물성을 십분 활용하고 극대화하여 조형을 구축해 간다. 물과 종이라는 기본적인 매재들의 특성을 용인하며 그것들이 스스로 이루어내는 결과를 수렴해 내는 것이 바로 작업의 근간인 것이다. 이는 대단히 섬세한 감성과 물질에 대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한 물성의 극대화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사변, 혹은 사유 등으로 해설될 수 있는 정신성의 발현에 앞서 물성의 오묘한 조화를 주목하는 셈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분명 물성을 전제로 한 기능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이를 통해 발현되는 그윽한 수묵의 심미이다. 번지고 스며드는 과정을 통해 구축되는 형상들은 오히려 풍부하고, 절로 이루어지는 변화속의 수묵은 더욱 자유롭다. 이는 물론 수묵과 한지가 지니고 있는 물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를 용인하고 수렴하여 조형으로 안정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안목과 선택에 의한 것이다. 옛 화론에서는 수묵의 요체를 "반은 인간이 이루고, 나머지 절반은 자연이 이룬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미묘한 경계와 접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재료의 물성을 십분 발휘케 하고 그것을 온전히 수용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최소한의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얼개이다. 이러한 물질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순응하며 조화를 추구할 수 있음은 이미 물성이라는 물리적인 성질을 벗어나 정신적인 것이 이른 것이다. 작가는 비록 수묵이 지니고 있는 물성에 대한 주목에서 자신의 작업을 출발하였지만, 그 궁극은 역시 수묵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인 것으로 귀결시키고 있음이 여실하다. 그것은 바로 수묵을 통해 드러나는 자연이라는 절대가치에 대한 순응과 조화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수묵은 대단히 오랜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진 풍부한 조형경험은 실로 방대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은 모두 혁명적 변화를 거쳐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며 그 생명력을 보전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수묵은 초기에 사물의 윤곽선을 규정하는 필선의 운용단계에서 오로지 선만으로 조형을 완성시키는 백묘에 이르게 된다. 이어 형상 자체를 흐트러뜨려 더욱 풍부한 여운과 변주를 가능케 한 발묵의 단계를 거쳐 삼라만상을 오로지 흑과 백의 단순한 구조로 개괄하여 표현하는 순수 수묵조형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과정 중 어느 것 하나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수묵이 동양회화의 전통이라 한다면, 그것이 전통으로 자리하기에는 이러한 부단한 변화로 점철된 모색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자에 수묵이 침체와 부진의 나락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혁명적 변화의 뒤를 잊는 획기적인 모색이 결핍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루한 전통제일주의는 오히려 전통의 발전에 저해가 될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역사적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라 여겨진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작가의 작업은 보다 심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의 작업은 비록 수묵이라는 전통적 매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반드시 전통의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수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 수묵의 근간을 이루는 필묵의 가치에 있어 그는 중봉에 의한 부드럽고 우아하며 유려한 선들을 배제하고 있다. 그는 물성과 물성의 충돌과 그 결과의 병열을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선들을 구현해내고 있다. 더불어 여백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조형으로서의 기능을 확인하고 확보하고자 함이 여실하다. 이는 분명 그가 찾아낸 수묵의 새로운 표정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 수묵으로 대변되는 가치는 기성의 교조적이고 경직된 기능적인 것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물성을 통해 구현되는 본질적인 것에 오히려 가까운 것이다. 작위와 무작위의 반복적이고 중첩적인 행위와 선택을 통해 구축되는 그의 작업은 분명 전통적인 동양적 사유에 굳건히 기반을 둔 것이다. 그가 기능이나 기법을 취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정신적 가치를 취하고 이를 물성을 통해 구현해 내고자 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역사의 발전이 언제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적응과 그 모색을 통해 이루어 졌듯이 현대라는 시공에서 그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시도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시도와 추구를 통해 역사를 건너는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확인할 수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김상철
작업을 하면서 항상 관심의 대상은 대자연이었다. 그중에서도 산과 숲 그리고 강은 작품의 주된 소재이다. 화면에 펼쳐지는 형상들은 자연에 대한 나의 축적된 이미지로 대상의 구체적인 표현보다는 함축된 형상의 이미지들로 자연의 장면 장면을 표현하고 조형화하려고 했다, 한 없이 검고 깊은 먹색들과 섬세한 담묵의 운용, 그리고 이들이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여백과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대비와 조화는 화면에 나타나는 선들의 번짐과 스밈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들로 검은 선과 흰 여백의 선들을 반복시킴으로서 단조로울 수 있는 화면에 변화와 긴장감을 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선들은 전통 동양화에서 나타나는 준법의 일종이라 볼 수 있으며 나의 작품상의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들이다 우리는 보여 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나는 가시적이고 설명되어지는 모습보다는 보여 지지 않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화면에 표현되어지는 형상들은 나에게 연상되어지는 자연의 상징과도 같다. 또한 이러한 단순한 형상들은 직접적인 감흥보다는 상상되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먹색이 단순히 검은색이 아니라 모든 색을 포함하듯이 나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것, 함축된 단순한 먹빛 속에서 여러 가지 자연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싶다. 먹빛에 스미어 자연 속에 거닐고 그곳에 노닐고 싶다. ■ 오송규
Vol.20110413e | 오송규展 / OHSONGGYU / 吳松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