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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412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몽인아트센터 MONGIN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삼청동 106번지 Tel. +82.2.736.1446~8 www.mongin.org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몽인아트센터는 2011년 4월 12일부터 5월 22일까지 정수진의 개인전『입체•나선형 변증법: 정수진 개인전』을 마련합니다. ● 이번 전시는 회화, 즉 시각언어의 고유함에 대한 정수진의 오랜 생각들이 인간 의식과의 변증법적 작용을 통해 순환적인 다차원을 이루어가는 형상의 모습으로 캔버스 위에 드러나는 과정들을 보여줍니다. 끝없는 상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수진의 화면은 특정 내러티브나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피하고 순수한 형상 자체를 시각적으로 바라보려는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시각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끌어들인 방법론이 바로 전시의 제목인『입체•나선형 변증법』이고, 그려진 모든 것은 이러한 변증법적 작용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결과물로서의 회화 작업을 통해, '본다'는 것, '본다'는 것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입체 변증법, 피라미드 변증법, 나선형 변증법: 궁극의 본질을 향해 열린 통로 정수진이라는 작가를 강하게 각인시킨 2000년의 개인전『뇌해(腦海)』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원근법이 사라진 듯한 공간, 중력마저 벗어 던진 듯한 공간을 부유하는 인물들과 사물들, 반복되기도, 혹은 해체되거나 파편화되기도 하며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물들이 끝도 시작도 없이 읊조리는,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이야기를 들으려 귀를 기울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정수진의 화면이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도, 그 어떤 상징이나 은유를 위한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것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화면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관람자들에게 정수진은 화면을 마주하고 서서 그저 '보라고'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은 비밀스럽고 불가해한 이야기를 풀어내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색채와 형태가 전달하는 고유한 것, 시각 언어의 고유함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계이며 가시적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느끼는 모든 체험은 여기서 이루어진다. 현재,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형태로건 물질성과 함께 체험된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이나 사물의 물질적 환경 안에서 경험하는 것. 그런데 그 장소나 인물, 사물이 가진 물질성은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가진 견고함일까?" (2006년 작가 노트 중에서) ● 『뇌해』를 선보이던 즈음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정수진의 오랜 질문은 여전히 그의 작업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으로 제안된『입체•나선형 변증법』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작가 스스로가 고민하고 정리해온 '시각 논리'를 회화의 형태로 전개하기 위해 끌어들인 하나의 방법론으로, 순수하게 시각적인 하나의 이미지로서의 회화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정수진은 이 '입체 변증법(피라미드 변증법 혹은 나선형 변증법)'을 '무(無)가 유(有)가 되는 과정'을 거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이 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논리라고 정의한다. 정수진에게 있어 회화는 우리 눈 앞에 드러난 세상의 질서가 적용되는 이 세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이 인간의 의식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듯이, 회화도 인간의 의식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시각 논리'를 구성하는 전제가 된다. 회화의 경우, 이러한 비가시적인 인간 의식은 색채와 형태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가시화되어 하나의 시각적 결과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다양한 조합의 과정에 작용하는 것이 바로 입체 변증법인 것이다. 결국, 끝없는 상상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캔버스 위에 구현된 정수진의 작업은 어떤 특정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혹은 무언가를 은유하거나 상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피하고 순수한 형상 자체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결과물, 즉 색채와 형태가 순수하게 화면 위에서 만나 화면을 구성해가는 논리를 드러내는 과정 속에서 도출된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수진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그리고 그 작업을 구축하는 이 복잡한 방법론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정수진의 언급대로 이해한다면, 그의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형상들은 작가 정수진의 의식이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차원을 드러내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정수진은 형상이 캔버스 위에 나타나는 과정을 다시 인간의 의식에 적용하면서 이를 해탈(解脫)에 이르는 인간 의식의 변화에 비유한다. 그리고 하나의 커다란 결론에 다다른다. 회화, 즉, 색채와 형태로 이루어진 다양한 표현의 결과물은 '신'이라 불리는 '무한함'을 측정하는 도구 중의 하나라는 결론. 그렇다면, 무수히 반복되는 입체 변증법의 과정을 통해 무한함에 조금씩 다가서게 되는 것, 이것은 결국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궁극적인 본질을 향해 열린 통로로서의 회화를 희구하는 것일까? 가시적인 세계가 제공하는 물질성의 견고함에 대한 정수진의 회의(懷疑)는 결국 보이지 않는 궁극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노력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다시 그의 그림 앞에 서서 그저 그림을 바라본다. 여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수진을 화면을 읽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그저 바라본다면, 그의 불가해하고 매력적인 캔버스는 나에게도 궁극의 본질을 향해 열린 통로를 보여줄 것인가? ■ 몽인아트센터
Vol.20110412f | 정수진展 / CHUNGSUEJIN / 鄭秀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