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411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 Gallery Bundo 대구시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21세기의 지도제작자(cartographer) ● 돌이켜 보면, 내가 그랬다. 몇 해 전 베른트 할프헤르(Bernd Halbherr)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의 두 눈은 둥근 그 작품들처럼 동그래졌다. 그리고 작품 주변을 위성처럼 빙글빙글 돌며 구석구석을 살폈다. '오호, 신기해라. 어떻게 만들었을까. 독일 작가라는데 사람도 둥글둥글하게 생겼나?'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미디어 아티스트의 사진 연작이 공개되었을 때, 현대 미술에 잘 훈련되어 있는 많은 관객들도 흥미로운 작품 구성에 깊숙이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고전 미학에서 경탄(astonishment)은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대할 때 반응하는 가장 이상적인 첫 번째 단계였다. 놀라움이 있은 다음에야 관객이나 청중은 감성의 진폭만큼이나 진득한 이성적 작용을 스스로에게 보상하려했으며, 따라서 작품의 세세한 구조나 기교를 찬찬히 뜯어서 분석할 여지가 생겼다. 이제 현대 예술의 여러 양식은 경탄보다 분석을 더 강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렇지만 베른트 할프헤르가 펼쳐놓은 세계는 경탄과 분석을 적어도 대등한 비율로 맞춰놓고 있다. 미술의 영역에 뒤늦게 합류한 사진은 현실계를 가장 완벽하게 재현하지만 동시에 개성 없이 밋밋하게 묘사하는 장르였다. 예술로서의 사진이 가지는 이와 같은 근원적 모순은 테크놀로지의 진전에 따른 기기 보급으로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승인 기준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사진 예술 앞에서 더 이상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고, 그 현상이 가리키는 의미나 작업 과정의 비법에만 관심을 가진다.
이렇듯 도도하게 고양된 관객의 안목 앞에서 작가들은 적당히 풀기 좋은 철학적 암호들을 사진 속에 배치하며 영리한 콘템포러리 아티스트로 살아남을 건지, 아니면 미추의 어느 한 부분을 우직하게 이끌어내어 전위의 반대 편, 후위 예술의 수호자로 버틸 건지 고심하게 된다. 이 양자택일의 중간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항상 있어왔다. 내용은 익숙한데 형식의 새로운 베른트 할프헤르의 작업도 그렇다. 나는 그 작업이 미술 제도에 작가가 타협한 건지, 기든스(Anthony Giddens)의 수사적 표현처럼 제3의 길을 뚫은 건지 아직 판단이 잘 안 된다. 사진과 같은 평면적인 시각 예술을 어떤 작가들은 입체 작품으로 변형하려 애쓴다. 또 어떤 작가들은 형태를 모호하게 바꾸어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예컨대 사진을 모자이크처럼 잘라서 다시 이어붙이거나, 틀을 만들어 그 위에 사진을 붙여서 조각 작품처럼 완성하기도 한다. 베른트 할프헤르는 그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시도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이 세상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직접 촬영한 이미지를 스튜디오에서 극단적으로 분할하고 재배치하여 완성되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의 작업은 사진 컷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 편집에 더욱 가까운 기술 위에서 실현된다.
그의 작품에 피사체가 되는 대상은 주로 자연의 경관이나 도심의 인공물이다. 그 모든 곳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볼거리다. 그런데 작가는 그것을 마치 마법사의 구슬 속에 맺힌 천리안의 신통력처럼 둥글게 빚어내고, 옵아트의 편집증적인 입방체 패턴처럼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그 곳들은 대부분 장소성이 옅어진다. 이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곳을 다녀가며 사진을 찍을 때 되도록 그 현존성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한다. 베른트 할프헤르는 그 반대다. 아니라면, 애당초 그는 한 장소가 가지는 지리학적 의미에 앞선 그곳의 물리학적 시간과 공간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작품을 구성하는 온전한 플레임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각각 한 시간 이상을 카메라와 마주한다. 그의 큰 키에 이르지 못하는 삼각대 높이에 긴 시간 동안 엉거주춤하게 렌즈를 응시해야하는 일은 고역일 것이다. 작가는 삼차원 공간이 허용하는 360도 반경 속의 모든 지점을 카메라를 축으로 전부 포착한다. 그때 날씨나 사람들의 요동은 촬영의 어려움이 된다. 작가에게 장소로부터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폭은 그리 크지 않으며 그 한계 속에서 모든 것은 카메라에 기록된다. 이는 예술적 허구를 창조(creation)하는 행위라기보다 지리적 사실을 기술(descript)하는 지도 제작 과정과 흡사하다. 작가는 170년 전에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도를 조금씩 만들어갔던 것처럼, 더 이상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는 지금, 지구본과 종이 지도를 대신하는 또 다른 의미의 지도를 완성하려는 야심가일지도 모른다. ■ 윤규홍
Vol.20110412e | 베른트 할프헤르展 / Hernd Halbherr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