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미술

2011_0409 ▶ 2011_0625

개막일시 / 2011_0409_토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난영_김대홍_김성연_김성철_김정민_김한나_류진우_박상호_박주현_변대용 사타_새람_서평주_이광기_이선경_임국_임종광_임지빈_정만영_정혜련_최규식

전시기획 / 이영준_KAF전시기획위원회

전시연계 교육프로그램 ① 곰이 되고 싶어요 ② 소리 이야기 재료비_1,000/2,000원

관람시간 / 화~일요일_11:00am~06:00pm / 단체_사전예약필수(화~금요일 오전만)

KAF킴스아트필드 KIMS ART FIELD 부산 금정구 금성동 285번지 Tel. +82.51.517.6800 www.kafmuseum.org

'가벼움'에 대하여 ● 나에게 있어 '가벼움'이라는 단어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 계기는 밀란 쿤테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 때문이다. 1984년에 발표된 이 책은 체코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이다. 흥미롭게도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랑'의 불가능성, 그리고 이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쿤테라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존재의 피할 수 없는 '가벼움'을 옹호한다. 그래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존재의 가벼움'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가벼움 자체가 피할 수 없는 '존재의 한계'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위 김난영_지니의 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아래 이선경_얼굴_종이에 콘테 ▷위 이광기_커뮤니케이션_단채널 비디오_00:09:14 ▷아래 서평주_키스_신문에 아크릴채색

삶 그 '무거운' 짐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는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다 아는 너무도 유명한 구절이다. 하지만 인간의 무거운 짐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이상'과 관련되어있다. 더 나은 삶, 더 훌륭한 인간, 유토피아, 보편적 사랑, 종교적 관점으로 보자면 더 충실한 신앙인 등 이러한 미래의 가치는 인간을 무겁게 만든다. 현대사회를 냉철하게 통찰했던 발터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1940)은 근대의 시간은 '미래'를 위한 시간 즉 '메시아적 시간관'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모더니즘은 끊임없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죽인다. 현재를 죽임으로써 다가올 미래는 '구원'이자' 유토피아'라는 관점이 모더니즘의 궁극적인 시간관이라 주장하며 이를 넘어서는 방법을 사유했다. 그래서 미래의 '이상'을 위해 현재는 늘 '의무'를 다해야하는 '무거운'시간으로 점철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 '무거움'은 미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너무나도 폐쇄적인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미술은 오히려 더욱더 무거움을 가중시키는 역사 - 그것이 의미가 있든 없든 - 를 발전시켜나가게 된다. 이에 대한 구구한 설명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필요하진 않아 보인다. 오히려 모더니즘의 근간이 되었던 키워드들, 예를들어 예술의 순수성, 미적자율성, 예술 정신에 대한 숭고함을 떠올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위 사타_yellow house #8_디지털 프린트 ◁아래 김한나_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_캔버스에 오일 파스텔 ▷위 김성연_어떤 화가_종이박스에 아크릴채색 ▷아래 김정민_똥개_미송합판, 우레탄도장

'가벼움'에 대한 자각 ● 얼마전 어느 철학자의 초청강연회를 간 적이 있다. 그 강연의 주제는 '사랑'이다. 강연의 논점을 거칠게 정리하면 인간에게 있어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고 제도나 도덕 그리고 윤리에 힘입어 '힘겹게' 사랑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속 깊은 성찰이 내재해 있다. 좀 더 강연의 내용을 서술해 보면, 인간에게 있어 '보편적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민족, 국가, 특정한 집단 등에 대한 사랑은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적인 의미로 보면 그저 '전이'된 대상일 뿐 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천국, 과거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환상, 19세기 말 프랑스인들의 일본에 대한 관심 등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전이가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개인의 사랑에 있어서도 그 개체의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부분대상 혹은 부분욕동이 일어난 것일 뿐이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의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인간의 한계적인 조건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환상을 속절없이 벗겨내고 나면 초라하게 남는 '인간의 조건'이 살을 드러낸다. 마치 리요타르(J.-F. Lyotard)가 거대담론(Metadiscourse)의 허구를 지적하고 '작은 이야기'(Petit recit)에 주목해야함을 주장하며 포스트 모더니즘의 논의를 촉발한 것처럼 인간존재의 근본적인 속성, 바로 이러한 '작은 것'에서 어쩌면 '실재'를 발견할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은 것'들은 과거 무겁고 웅장한 것의 그늘에 가려진 '가벼운' 존재들이다. 이제 지식이 추구했던 '진리'와 권력이 지향했던 '정의'를 바라봤던 시선들은 우리주변의 사소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미술이라는 것도 역사의 산물인지라 최근의 흐름은 이러한 '가벼움'에 대한 속 깊은 성찰을 시도하는 많은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작품들은 미술이 가졌던 권위를 허물거나, 이를 비틀어 풍자하기도 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금기시 되었던 성을 말하기도 한다. 꿈이나 기억 등을 주목하며 현실을 변형하거나 왜곡하는 것에도 서슴이 없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 인류가 20세기 말에 와서야 기필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깊이 자각했기 때문이다.

◁ 변대용_수상한 미키_합성수지에 자동차도색 ▷위 김성철_작업의 시작_세라믹 ▷아래 정혜련_wonderfulworld2010_나무, 가죽

가벼운(?) 작가들 ● 이번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을 '가벼움'이라는 개념에 포섭한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가벼움'이라는 것 자체가 고정된 의미망을 형성하기보다는 상대적 가치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 해석의 편차가 너무도 큰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들 작가들에서 발견한 가벼움의 의미들은 이러한 것들이다. 먼저 김난영은 80년대부터 줄곧 성이라는 주제를 다루어온 작가이다. 예술에 있어서 성은 늘 논란의 여지를 품고 있는 주제였고 금기시되었다. 엄청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지금도 솔직히 노출의 형태는 자유로워(?) 졌지만 정작 '성'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이번에 출품된 김난영의 작품은 명품지갑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남성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나뭇잎들은 여성의 성기를 닮아있으며 열쇠는 남근을 상징하듯 하늘을 향하고 있다. 과거 소비사회에서의 성의 상품화를 적극적으로 개진했던 작가의 작품을 유추해 볼 때 이 작품역시 물신주의와 소유의 본질이 남근적 속성 속에 있음을 은근히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무릇 '소유'와 '지배'는 역사적으로 남성적 '버릇'이었으며 이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정혜련은 '가죽'이라는 소재로 역사적인 건축물이나 인물 혹은 놀이공원 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권력을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이나 지나간 영광을 재현하는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정혜련의 작품 속에서 가느다란 실로 겨우 형태를 유지할 따름이다. 과거의 역사에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던 수많은 결과물들이 결국 '환상'이었으며 여전히 우리는 그 역사물들을 새로운 '환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가가 형상화하고 있는 놀이공원은 이러한 '환상'이 가장 현실적으로 구현되는 처소이다. '현실'과는 철저하게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이 욕망의 공간은 놀랍게도 현실과 훨씬 닮아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김성연은 포장지로 만들어진 화가의 형상을 보여준다. 우스꽝스러운 화가는 포장지에 싸여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예술과 자본의 물음은 여전히 풀기 힘든 숙제이자 딜레마이다.

◁위 정만영_눈으로 듣기_스피커, mp3플레이어외 혼합재료 ◁아래 새람_말을 비꼬다_레진, 우레탄 페인트도색 ▷위 임종광_마!_레진에 도색 ▷아래 김대홍_43개의 지우지 못한 문자 메시지가 있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사용한 나의 전화기_이동전화기, 충전기에 혼합매체

최규식은 아름다운 나비 한마리를 형상화 했다. 조명과 함께 빛나는 이 신비로운 나비를 작가는 '호접'이라 명명하고 있다. 호접은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깨서는, 자기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호랑나비가 꿈에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 이야기에서 나왔다. 이 경구는 '실재'를 굳건하게 믿었던 서구철학의 반성적 성찰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대목이다. 사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것은 어쩌면 다가갈 수 없는 '무엇'이며 우린 단지 이것이 '현실'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몽환적으로 그려진 최규식의 '호접'은 현실과 욕망이 응축된 상징물처럼 보인다. 임지빈과 변대용은 둘 다 대중문화나 소비사회의 코드를 자신의 작품에 접목하고 있다. 맥도날드와 프링걸스가 이종교배된 임지빈의 형상은 우리의 음식문화를 변형시킨 거대한 자본의 상징물을 패러디하고 있다. 또한 변대용은 한국 팝아트의 맥락에서 매우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작가이다. 작품의 맥락이 어디에서 종결될지는 알 수 없지만 문명과 인간의 상처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김정민은 '기억'에 주목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기억의 단편에서 끌어낸 형태들은 때로는 동물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하지만 의자와 동물이 결합되거나 배설물과 동물이 하나가 되기도 한다. 정교하게 계산되어 조합된 이 이미지들은 마치 자신의 실재를 찾아가듯 기억을 더듬어 간다. 그 기억 속에는 욕망과 휴식, 공격성과 억압 등 다양한 무의식적 기제들이 작동하고 있다. 또한 사타역시 자신의 체험이나 기억의 한순간을 사진으로 재구성한다. 그의 사진들은 일종의 몽타주처럼 낯선 이미지들이 충돌하며 새로운 의미들을 생성해 내다. 이선경은 자신의 미묘한 심리적인 변화를 화폭에 쏟아내고 있다. 상징계의 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의 자신과 깊은 내면에서 스며 나오는 자신과의 불일치에서 근거하고 있는 불화와 불안을 그린다. 무의식이나 꿈은 기본적으로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파편적이며 불연속적이고 내러티브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선경과 김정민 그리고 사타의 작품은 유사한 맥락을 구성하고 있다. 반면 김한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토끼는 일종의 전이된 대상이다. 한나는 토끼가 되고 토끼는 한나가 되기도 한다. 한나와 토끼는 각각 개체가 되기도 하고 동일인이 되기도 한다. 한나는 토끼를 통해 자신을 구현하기도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한나와 토끼의 관계는 단순한 캐릭트아트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동일시의 맥락, 혹은 욕망대상으로서의 '무엇'으로 보여진다.

◁ 정만영_무거운 추(錘)가 가벼운 그림을 그리다_철, 혼합재료 ▷위 박주현_고흐의 방_나무주걱 ▷아래 임지빈_노예(프링글스 아저씨는 사실 감자튀김을 좋아해)_합성수지에 자동차도료, 나무

김대홍은 문명의 이기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속성과 자신의 일상을 교차시키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너무도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세련된 도구들은 조금씩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고 심지어 생각의 형태를 규정해 버린다. 김대홍은 어쩔 수 없이 문명화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지연' 혹은 '유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전화를 받거나 문자를 쓸 때마다 통증이 오게 만든 단말기를 통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상기시키는 작업으로 말이다. 작가의 자각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에는 이데올로기가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류진우는 어렸을 적 자신의 기억을 재현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성적 호기심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나 탐닉했던 놀이 등 과거의 기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특이한 국면은 이러한 주인공들이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익명화함으로써 경험을 일반화하고 확장시킨다. 임국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가볍다. 그의 화면에 들어오지 못할 것들은 전혀 없어 보인다. 자신의 일상, 취미, 순간적인 감흥, 뉴스의 단편, 혹은 아무런 의미 없는 형상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임국은 가벼워진 미술의 최대 수혜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서평주는 미디어의 권위를 조롱하며 자신만의 뉴스를 재구성한다. 어쩌면 언론만큼 우리의 삶과 생각의 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없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람들은 서평주의 신문을 더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의 뉴스에는 MB와 가다피가 부적절한 관계로 묘사되고 김정일과 자유의 여신상이 함께 스포츠를 즐긴다. 정만영은 중력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치를 설치하였으며 박주현은 고호의 작품을 패러디하고 있고 박상호는 실재를 담아내는데 가장 용이한 매체인 사진으로 가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새람은 개인의 상처와 언어와의 상관관계를 통한 흥미로운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임종광은 일상적인 사건의 한순간을 묘사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작업을 보여준다. 김성철은 현대사회의 이면들을 특유의 섬세한 설치작품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이광기는 언어와 소통의 관계를 유쾌하게 비튼 영상작업을 하고 있다.

◁위 박상호_보헤미안 마을-란츠후트B.D._페이스마운트에 피그먼트 프린트 ◁아래 류진우_Oil Shock_레진 ▷위 최규식_호접_혼합재료, LED ▷아래 임국_쿵_캔버스에 유채

가벼움에 대한 변명 ●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성과 역사, 무의식과 개인적인 심리, 유희적이고 심미적인 태도, 언어와 소통의 문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등 다양한 작품의 주제의식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심각한 주제들을 재치있게 넘기는 작가들의 뛰어난 순발력과 기지를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그 가벼움 뒤에 숨겨져 있는 의미들을 만나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한층 '가벼워'진 시대지만 우리들의 의식은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무겁다. 아직 우리의 시선이 세속으로 충분히 내려앉을 만큼 가벼워 지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우리 스스로가 어쩔 수 없이 모더니즘의 산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너무 멀리 와버려 뼈 속 깊이 '버릇'이 스며들었는지 모르지만, 언젠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대면 할 수 있도록 우린 충분히 가벼워 져야한다. ■ 이영준

Vol.20110407j | 가벼운미술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