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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展 / LEEYOUJIN / 李有珍 / sculpture   2011_0406 ▶ 2011_0423 / 월요일 휴관

이유진_Pieta_합성수지에 페인트, 황동_140×170×115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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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1_040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인 GALLERY IHN 서울 종로구 팔판동 141번지 Tel. +82.2.732.4677~8 www.galleryihn.com

변성된 육체와 관념의 유보 ● 이제까지 이유진 작가의 예술적 관심은, 조각으로 연출한 변성된 육체(denatured bodies)를 통해서 기존의 시각적 문화 제반(諸般)에 심리적 파동을 끼치는 자기 역량의 치열한 시험에 있었다. 몇 개의 계기가 기억에 남는데, 무기나 날카로운 것, 생명에 상흔을 남길 수 있는 치명적 물질, 금속성의 차가움, 곤충의 섬뜩함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정반대의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와 만나서 미묘한 마력을 수여하곤 했다. 바로 여체의 형상이 통상적으로 수여하는 부드러움의 아름다움, 생명의 잠재태(潛在態), 고요함 등의 이미지가 공격적 성향을 지닌, 정반대 이미지와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반된 이미지가 만나서 상충하며, 조절되는 시각적 에너지 파동의 세기가 얼마나 되는가를 측정하는 것보다, 이유진 작가가 어째서 이 대립항의 이미지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혼미한 충격을 주려 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유진 작가는 2007년부터 실제 주변 사람들의 인체를 주조(鑄造, casting)하여 자기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니까, 2007년도부터 2011년이 되는 최근 5년 동안 자기 일상의 지인들의 작품에 투입된 셈이다. 여기에 이유진 작가는 니켈이나 금과 은을 다루는 아주 특별한 금속학(연금술이라 불러도 좋다)의 기술을 보유한다. 주조된 주형에 전혀 다른 형질의 금속이 마치 한 몸처럼 이식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일상의 지인들, 특히 여성들이 지녔던 태초의 몸 형상은 현실초월적이며, 압도적으로 무섭되, 만인으로부터 쉽게 인지되길 거부하면서도, 성애적 매력을 발산하는 이질적 속성으로 탈바꿈한다. 바로 일상의 흔한 사람들, 즉 실재(實在)들이 외부로 힘을 강하게 뻗치는 가운데, 다시금 특수한 의미체계로 형질변경(形質變更)되어 그 의미를 해독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한다. 즉, 이유진의 다수의 작품들은 예외 없이, 특수 형상이 지닌 외세적 확장의 힘과 수렴적 의미가 밀고 당기는 게임을 한다.

이유진_Olympia_합성수지에 페인트, 황동, 천_70×63×140cm_2009
이유진_Venus_합성수지에 페인트, 유리, 거울_185×90×180cm_2009

일반적으로 '사유 존재의 구속성(Seinsverbundenheit)'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외부세계나 인간내면에 관해 생각하는 주체는 그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토양으로부터 제약을 받는 숙명을 타고났다는 뜻이다. 물리, 이공계에 중국인과 독일인이 나뉠 수야 없겠지만, 인문학계과 문화계에서는 각각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역사의 처지에 따라 각기 나름의 성격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에는 흑인종, 백인종, 아랍인종이라는 각각의 고유한 '구속성'을 초월해서 서로 통용될 수 있는 심미적 기제(aesthetic mechanism)가 구현된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예술이 지니는 의미는 각자의 감상하는 인격에 의해 여러 개, 심하게는 일파만파로 확장되거니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의 농도가 숙성되어 역사화되기도 한다. 즉, 예술의 의미는 이제껏 세간에 존재하지 않던 발상을 과감하게 발현시킴으로써 전문인과 대중의 인식을 동시에 확장시키거나 감성에 파문을 일게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나아가 최고의 예술이 지닌 의미란 것은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작가, 즉 예술가의 인생과 그 예술가가 펼쳐서 개진시키는 예술세계가 이율배반하지 않고 표리일체 할 때 나타나는 숙연한 감동이다.

이유진_Venus_합성수지에 페인트, 황동_180×65×60cm_2009
이유진_Venus_합성수지에 페인트, 황동, 유리, 큐빅지르코니아_55×63×150cm_2011

우리는 육체와 영혼을 구분 지어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구분할 수 없는 한 몸일 것이다. 예술작품의 육체는 겉모양, 즉 형식(form)일 것이다. 또한 예술가의 기량일 것이다. 반대로 예술작품의 영혼은 작품이 지니는 내용, 그리고 예술가가 살아온 삶 그 자체일 것이다. 이유진의 작품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최초의 단상은 형언할 수 없는 채도의 붉은 색의 입체감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기운과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질감, 그러면서도 여체로부터 느껴지는 안온한 안심이라는 여러 개 엇박자의 공감각이 주는 거센 조수(潮水)이다. 이 거센 느낌은 작가의 삶에서 유리되지 않은 구체적이며 간절한 자기 표현이다. 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냈고, 90년대 도미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영위하며 학위를 받았다. 이유진 작가는 한국판 메카시즘이 종용하는 스테레오 타입적 관념에 젊음을 보내다, 이내 포스트모던이나 해체적 전위 일색의 미국의 예술 풍경을 목도하게 된다. 억압과 자유 분위기라는 상반된 경험은 10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억압, 압제, 위축, 강요의 시대 분위기에서 열린 미감, 자유, 창의, 수용의 사회 분위기로 역전되는 해방감은 기쁨인 동시에 혼란이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밀려드는 이 자유감은 과거 한국의 분위기와 정면충돌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 여성의 몸으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며 표현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무한자유에서 나오는 창의적이며 참신하고 세련된 서구의 작품들이 눈앞에 몰려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자기 것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들었다고 한다. 이유진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는데,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동시에 울림이 큰 말이다. 바로 한비자(韓非子)가 남긴 말로 "탁월한 잔재주는 바보스러운 정성만 못하다"는 문구이며, 그 원문은 "功詐不如拙誠"이다. 한국이 여행 및 유학 자율화가 된 1985년 이래로, 서구의 신문물을 익히고 돌아온 수많은 예술가들을 보면서, 그들이 다만 서구의 표면을 흉내 내는 일에 자기 업을 삼는구나 하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많다. 시대유행에 어긋나는 감이 있다손 치더라도 독창적인 그릇에 자기의 삶과 자기 의지를 담는 일은 훌륭한 일이다. 자기 인생을 분리시킨 채, 자기 감각이 아닐진대 남의 감각을 훔치는 것은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공사(功詐)"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유진 작가가 마네킹이라는 쉬운 방법을 쓰지 않고 고된 중노동을 요구하는 실제 인물 캐스팅의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그래야 여기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어떤 공감각에 적합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어떤 공감각이란 섬뜩함이다. 친근함이다. 친근해서 오히려 낯설고 초현실적인 느낌이다. 무서움이다. 경이로움이다. 그러나 편안함이다. 이런 느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바로 한반도의 샤머니즘의 세계이다.

이유진_The Nike of Samothrace_합성수지에 페인트, 황동, 유리_220×119×110cm_2009

이번 전시회에서 이유진 작가는 피에타, 비너스의 탄생, 올랭피아, 니케 여신 등 서구 미술사의 도상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 철저하게 신화화되고 상식화되어 굳어버린 이미지들을 이유진 작가 특유의 공감각적 파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우리 편과 적(敵),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좌와 우와 같이 우리를 멍들게 하는 이치관념(二値觀念)은 정치나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 속에도 엄존한다. 이유진은 아름답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한, 그렇게 굳어버려 우리 뇌리에 박힌 미의 전형을 해산시킨다. 그리스의 신화, 성서의 이야기, 서구 역사상의 에피소드들이 부지불식간 우리를 지배했다. 그런데 이유진 작가의 조각을 보고 있노라면 저 장대한 서구의 관념들이 꼭두나 벅수 혹은 장승이 가진 샤먼적 힘과 만나 전혀 새로운 양태의 에너지로 거듭나 우리를 뒤흔드는 것 같다. 2005년의 승려 만해(萬海)의 시구에 파리를 붙이는 과감함이나 항아리 속에 몸을 숨기던 쥐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여체의 등에서 나오는 흉기의 아찔한 미감은 사유의 경계를 벗어난 대상과 조우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이유진 작가의 제스처는 기존의 가치나 체계에 맹목적으로 항거하려는 것보다 자유로운 사고의 틀로써 세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자는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것까지 아우르려는 태도, 여기에 이유진 작가의 작가정신이 펼쳐진다. ■ 이진명

Vol.20110407f | 이유진展 / LEEYOUJIN / 李有珍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