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聞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차가운 시선展   2011_0406 ▶ 2011_0506 / 일요일 휴관

노순택_테라스하우스힐스테이트에 북조문단 파견 뜻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09

초대일시 / 2011_0406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 노순택_박재동_서평주_연미_이광기_전채강_조혜경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대안공간 충정각 ALTERNATIVE SPACE CHUNGJEONGGAK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360-22번지 Tel. +82.2.363.2093 www.chungjeonggak.com

1957년부터 매년 4월 7일에는 국내 모든 신문이 휴간을 하고 매년 그 해의 신문 표어 발표 및 한 주 동안 신문주간으로 명명하여 각종 기념행사를 한다. 왜? 그날이 바로 신문의 날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인터넷산업의 가파른 성장 곡선을 타고 대안언론이 수두룩한 이 시대에서 인쇄매체인 신문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 신문이란 대중매체를 통하여 정기적으로 대중의 정신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앎의 수단으로, 과거에는 우리가 세상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가장 정직하고 직접적인 매체로 각광받아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신문은 그 뒤에 가려졌던 혹은 숨기고픈 진실들이 거대한 디지털 정보망에 의하여 진정성의 여부를 떠나 매 시간 색출되며 대중에게 공신력을 잃어가고 뉴스가치를 상대적으로 박탈 당하고 있다. 그 뿐 만이던가. 정직한 시각은 오히려 신문이라는 매체를 거치며 왜곡될 때도 있다. 물론 갑론을박 다양한 토론과 주관적인 견해는 퍼스널 미디어와 소시얼 네트워크의 물결을 타고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논쟁의 시발점과 팩트는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객관성이 결여 된 불투명한 진실 공방이 각양각색의 대중매체를 통 해 시시때때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54 번째의 신문의 날을 맞이하는 이 순간, 신문의 자유와 품위, 사명과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신문매체가 지니고 있는 초월적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정보를 자의든 타의 든 그저 수용하고 인정하고 있는 대다수의 대중.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한 조각의 폐 종이 또는 생활 수단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신문지. 그리고 여기에 정치가 뭐고 사회 이념이 뭐고 사실이라고 보여주는 것에 팔짱을 끼고 새로운 상대적 가치를 찾으며 해석의 자율성을 외치는 예술가들이 있다. 『新 聞_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차가운 시선』전 에서는 이들과 함께 허위와 사실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신문을 통한 세상 읽기의 오류를 예술적 시각으로 조명한 작품들을 만나본다. 또한, 본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개개인이 수용하고 해석하는 신문의 역할과 범주, 그리고 신문에 결부할 수 있는 예술성 등이 내포되어 있는 작업을 폭력성과 얽힌 다양한 철학적 담론과 연결시켜 풀어나가 본다. 신문이라는 무거우면서도 진지해 질 수 밖에 없는 소재가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어떻게 해체되고 재탄생 되는지 지켜봐 주길 바란다. 『新 聞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차가운 시선 』전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점과 형식이 재미있으면서도 쓴맛이 동시에 베어나는 전시가 될 것이다. ■ 이은화_안나경

노순택 - "사진의 우둔함은 무고하지만 해석은 위험을 수반한다." ● 한반도에 작동하고 있는 미국 정보망의 모습을 다시 역으로 추적하는 작업을 통해 현대판 미디어 풍경화를 표현한 작품 「얄읏한 공」으로 우리에게 쓴웃음을 제공한 노순택 작가. 그는 이번 전시에서도 다양한 주체에 의해 미디어가 끊임없이 폭력과 감시의 도구로 반복을 거듭하는 과정을 풍자하고 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페이퍼저널리즘이 갖고 있는 대중에 대한 원론적 권력과 시각적 폭력성은 일종의 불문의 헌법이자 지극히 당연시되는 사회적 생리이다. 이에 다소 즉물적으로 부딪히며 담아낸 흔적이 엿보이는 노순택 작가의 사진은 감춰진 이면을 들춰내는 블랙저널리즘의 성격을 무겁지 않게 담아내며 지배와 주체의 사이를 재­공식화한다. 벤야민이 신화적 폭력을 통해 지배 권력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처럼, 작가는 목적과 필요에 의해 생산되는 사진매체를 통해 상징적 투쟁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제 3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권력의 주체를 이동시킨다.

박재동_한통노조만평_10×10cm_1995

박재동 - "만화에 대한 신뢰" 만평 속에 묻어나는 희로애락 ● 본 전시에서는 한국 시사만화의 지평을 넓혀준 박재동 화백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했었던 시사만화 시리즈의 일부를 선보인다. 사회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해학적인 유머를 만화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낸다. 이는 독자들이 사회의 현실을 좀 더 쉽게 직시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그마한 사각형 속에 대중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며 부조리한 권력이 남용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평주_슈퍼 팔짱_신문에 아크릴채색_29×16.5cm_2010

서평주 -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 진실과 거짓의 진정한 한판뜨기! ● 아비투스는 Habit(습관)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 사회적 환경에 따라 길러지고 내면화된 성향 체계이다. 반복적이고 주입적인 학습효과에 따른 사회화된 주관성으로 말미암아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진 현대인들에게 신문이란 매체는 더할 나위 없는 초월적 폭력의 매개자이자 상징으로 다가온다. 미디어 아비투스를 방불케 하는 사회의 언론을 이용한 무분별한 폭력은 개인에게 물리적인 피해는 물론 심리적인 피해와 타성에 젖은 이성만을 생성한다. 뿐만 아니라 데리다에게 있어 폭력의 개념은 윤리와 상징, 질서, 권위와 형식, 법과 정치 등 그 모든 것이 폭력의 상징적 범주에 속한다고 하였다. 또한, 권리와 정의의 실현과정에 있어 순수성이 과할 경우 더욱 심각한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경고하였다. 서평주 작가의 작업은 과연 정당한 권위의 폭력인 게발트(Gewalt)가 존재를 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이에 작가는 미디어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역이용하여 신문 지면에 덧그림을 그리고 기사를 다른 내용으로 바꿔 재가공하며 기존의 시각적 이미지와 텍스트를 조작하는 방법론을 택한다. 서평주의 작품에서 재구성된 사건사고의 이미지들은 일종의 데리다가 말하는 정의로운 것들의 개입으로, 다시 말해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을 시각적, 언어적 조작을 통해 새롭게 각색 및 규정지으며 새로운 미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미_scanned baekryong island_신문에 드로잉_56×38cm_2010

연미 - 연미, 내 작업은 신문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 신문을 가지고 현실을 재보도 하는 작업을 하는 연미 작가는 의도적으로 짜 맞춰진 앵글에 담긴 피사체의 요란함이나 노골적인 정치구조 및 담론을 피력하는 미디어의 횡포로부터 개념의 연성화를 탈피하고자 한다. 작가의 관심사는 특정 신문에서 보도하는 내용 보다는 오히려 기사를 배제한 시각적 이미지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권력 현상에 주목한다. 따라서 텍스트는 가려지고 이미지를 회화적 느낌으로 덧입히며 획일적인 메시지 수용에 따른 공공권을 소멸시키고 해체한다. 그녀의 작업은 자기생산을 지속적으로 행할 때 폭력과 권력은 보편적인 것으로 무력화된다는 아렌트의 폭력론을 연상시킨다. 다시 말해 절대자의 모습과 행동을 특정화시키거나, 또는 함축된 의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텍스트를 배제하거나 실체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음으로 신문이 지닌 권력을 무력화시키며 '시시한 폭력'으로 만든다. 또한 연미작가는 전시 공간을 비롯하여 공공의 장소로까지 그 전시 영역의 범주를 넓혀 2010년경 강남과 홍대 일대에서 직접 재생산한 신문 작업들을 가지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대안공간 충정각에서도 역시 신문 퍼포먼스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광기_인식(認識)_부제-2011년 3월 4일_단채널 영상, HD_00:04:28_2011

이광기 - 거듭되는 미디어 검열, 그리고 인식의 부재 ● 사람은 태어난 환경과 그를 둘러싼 현실에 자의적으로, 또는 반복적인 학습 효과에 의하여 적응하게 마련이다. 생존을 위한 타율적 적응은 식민지화된 신체와 정신을 길러낸다. 반복적이고 엇비슷한 사건사고의 홍수 속에 반응은 무뎌져간다. 그 와중에서도 이따금씩 구미를 자극 하는 기삿거리가 존재하는데, 이광기 작가는 이를 영상을 통해 신문의 사건사고 위에 가려진 진실과 대중의 입장에서 신문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위트있게 드러내고 그 속의 부조리한 현상을 꼬집는다. 이광기의 인식의 부재(2011)에 등장하는 현직 최고위 공무원의 태도나 정부의 행동은 사실여부를 떠나 '거듭나는 새로운' 면모를 국민들에게 부각 시키는 것이 아닌 선택되고 가공된 정보에 의한 새로운 식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진실공방이 만연한 상태에서 미디어에 노출되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 개인의 목소리와 시각을 드러낼 수 있는 창구인 네티즌 문화에 의하여 걸러지고 다양한 의구심을 낳게 된다. 이광기 작가는 이런 사회현상을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건을 희화화 시키고 그 사건을 통해 확장되는 대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전채강_Today's issues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8

전채강 - 오늘의 이슈: 도시와 환경 사이의 긴장감? ● 전채강 작가는 자연의 물리적 현상을 거스르는 인간의 탐욕과 정복욕구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해체된 관계를 다루는 작업을 한다. 한강르네상스나 4대강 공사 등으로 크게 회자되고 있는 자연파괴행동은 방치해 둘 수 없는 논리적 난점이자 실재이다. 이러한 아포리아적 특성을 지닌 현상을 마치 신문 이미지 스크랩하듯 캔버스에 여러 이미지를 조합하여 새로운 사고의 풍경을 기록자의 관점에서 표현한다. Today's Issues Series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신문매체가 지닌 보도성을 빌려 의미 있는 우연적 조합을 꾀한다.

조혜경_Stream of Time_연필, 젯소, 종이에 콜라주_35.5×55.5cm_2002

조혜경 - 그녀, 기억을 걷는 시간에 빠지다 ● 조혜경 작가의 작품은 신문이 남기는 기록성과 가시성을 바탕으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시간을 박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재료는 신문지를 포함하여 오래된 종이, 미술관 전시 티켓, 상품의 포장박스 등이다. 처음에는 나름대로의 특정한 목적을 띄고 소유한 것이었음에도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버려지는 오브제로 변모하는 시간의 흔적을 조형적 방법으로 찾고자 하였다. 신문, 전단지, 티켓 등의 종이매체에 기록된 날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그 시대에 벌어졌던 사건이나 이벤트 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징적 언어로 변한다. 이렇게 시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일련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변하여 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이율배반적인 특성을 반추한다. ■ 이은화_안나경

Vol.20110406g | 新 聞-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차가운 시선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