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기억-사유의 숲

이운구展 / LEEUNGU / 李雲求 / painting   2011_0330 ▶ 2011_0405

이운구_땅의 기억-사유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1cm_2009

초대일시 / 2011_03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기억과 사유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 등의 생활체가 경험한 것이 어떤 형태로 간직되었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에서 기억(記憶, Memory)은 정보를 저장하고 유지하여 다시 불러내는 회상의 기능을 의미한다. 인간은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망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억은 학습, 사고, 추론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능이다. 사유(思惟)는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으나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을 말한다. 이운구의 "땅의 기억-사유의 숲"이라는 주제는 인간이 기억하고 사유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자연이 그 주체라는 것을 뜻하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기억과 사유를 뜻한다. 대지나 땅에 대한 생각들은 모든 생명체가 땅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인간만이 기억하고 사유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인 돌까지도 기억의 소자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시대의 화두인 환경과 생명이라는 근본적인 되물음을 하고 있다.

이운구_땅의 기억-사유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1cm_2010

채근담에"번화(繁華)는 한때의 꾸밈이요, 고적(枯寂)은 본디의 바탕이다." 물 마르고 나뭇잎 떨어져 바위가 앙상하고 언덕이 메말라야 비로소 천지의 참모습을 볼 수 있음을 뜻한 말이다. 겨울의 잎떨어진 나무에서 하늘땅 참모습을 볼 수 있으며 우리들 삶도 그러하다. 이운구의 "땅의 기억-사유의 숲"을 좀 더 접근해서 바라보면 벌거벗은 나무들 간의 관계와 꽉 찬 화면의 연결성 그리고 쌓인 낙엽들에서 고적(枯寂)함 보다는 번성과 풍성함을 더욱더 느끼게 한다. 잎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와 줄기에 사계의 변화를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하리라... 고적함과 번화함이 본시 같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운구_땅의 기억-사유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30.3cm_2011

이운구는 땅의 역사성을 나무를 통해 그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낸다. 대지위에 어우러지며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기억과 수많은 얘기들을 숲에서 풀어내고 암울한 억압의 역사를 담금질한다. 땅과 나무는 한 점 왜곡 없이 기억하리라는 것을 믿고 있기에 그의 근작인 나무의 연작들은 화면가득 숲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물질, 발전, 개발, 절대, 존재, 생명, 사랑,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지구 환경의 위기 속에 드러나는 반목과 재앙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모든 생명체의 삶의 터로서 대지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위에 피어나는 숲과 나무가 추구하는 "땅의 기억-사유의 숲"이라는 명제에서 해답을 찾는다. 이점이 바로 이운구 그림의 도정에서 드러나는 의식과 참여 그리고 명상이 결국 하나의 맥으로 흐르는 단서라 하겠다. 이전의 서문에서는"흙, 바람, 나무, 꽃, 사람을 생명의 세계로 불러들이고서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을 보면 화면 속에서, 화면을 규정하는 동사(動詞)의 세계 내에서 우주만물이 제 각각이면서 하나의 운행을 이루며 전체적으로 움터 올리는 적음(寂音)의 울림을 듣는 듯하다."고 하였으며, 이운구 스스로 작가노트에 "자연과의 조화로운 건강한 삶을 희구하는 근본적인 욕망의 표현"이라 쓰고 있다. 우주의 진리를 지혜로 풀 수 없으니 벌거벗은 나무와 숲이 그대로 진정한 우주의 형상임을 느끼게 한다. ■ 강구원

이운구_땅의 기억-사유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30.3cm_2011

지난 전시회의 어릴 적 농촌에서 보아온 정서를 바탕으로 한 흙, 바람, 사람, 식물, 꽃, 나무들이 등장하는 "땅의 기억"시리즈 작업에 이어 이번 작품들은 그 중 나무들의 군집 체를 소재로 신비함과 두려움까지 공존하던 숲에 대한 기억들과 명상적 사유를 통한 전시회를 준비해왔다.

이운구_땅의 기억-사유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30.3cm_2010

도심한복판에서 거처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를 그리며 그동안 나는 숲속을 천천히 걷고 쉼을 반복하며 번잡한 세상을 향한 분주함에서 잠시 멈출 줄도 아는 여유를 즐겼고 느린 걸음이 자기인식을 위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완된 각성의 경험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사물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를 새삼 느꼈으며 어떤 날은 숲 사이로 비추는 환영으로 인하여 연민의 감정에 그만 눈물은 흘리기도 하고 작금의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이나 단절, 불공정, 왜곡, 환경파괴, 비민주적인 행태들로부터 가지는 분노의 감정들로부터는 치유의 시간이 되었던 고통스럽지만 스스로를 위무한 작업의 여정이었다.

이운구_땅의 기억-사유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30.3cm_2011
이운구_땅의 기억-사유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30.3cm_2010

오늘날 프실로피톤의 탄생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문화의 산실로서 역할을 해온 숲과 자연을 단지 개척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다 보니 숲은 날로 파괴되고 소멸되어 감에 따라서 우리의 본성과 감성도 더 황량하게 메말라 가는지도 모른다. 나무와 숲을 자주 느끼고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의 잃어버린 정체성 회복과 정신적 심리적 질병의 치유회복과 동시에 자아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정화의례와도 같은 나의 나무그리기는 나무들의 개별적 상징들로 어울려진 플랙탈한 숲이 영원히 꿈틀대며 유지되기를 희구하는 바램이며 신명의 땅을 넘어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건강한 삶을 기원하는 근본적인 욕망의 표현인 것이다. ■ 이운구

Vol.20110330b | 이운구展 / LEEUNGU / 李雲求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