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330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 김진택_문이삭_방선미_의주_진보은
관람시간 / 10:00am~06:00pm
국민아트갤러리 KOOKMIN ART GALLERY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2층 Tel. +82.2.910.4465 art.kookmin.ac.kr/site/fine.htm
B108 세나클(Cénacle)의 젊은 보호(Boho)들 ● 시대가 변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아라비아 숫자 네 자리의 카운트만 가지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며칠 전 "한 시대의 끝"이라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언급처럼 -이미 지나간-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라 칭송 받던 그녀의 죽음 역시 하나의 낡은 꼬리가 드디어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완벽한 징표이다. 20세기 번영하는 미국의 영광과 헐리우드 키드에게 쏟아지던 화려한 하이라이트를 상징하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Rosemond Taylor, 1931~2011)의 사망을 알리는 뉴욕 타임즈 부고 기사는 놀랍게도 6년 전에 이미 사망한 기자 멜 구소(Mel Gussow, 1933~2005)의 이름으로 게재되었다. 과거로부터 21세기로 전해진, 아이러니하게 너무 이른 뉴스 또한 이 에피소드에 곁들여진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안타깝지만, 전 근대적인 스캔들과 음모의 정치력, 입맛 짧은 강남 스타일의 배금주의에 휘둘리는 작금의 우울한 상황 하에서는 섣불리 우리의 미술이 새 시대로 진입했다라고 단언할 만한 자신이 없다. 부조리조차도 일상이 되어버렸던 낡은 세기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알리는 신호는 과연 어디에서 오고 있는 것인가? 그리하여, 진정 퇴행을 멈추고 다시 전진할 우리 미술의 신세기는 과연 그 첫 막이 언제 열리기 시작할 지는 결국 오래지 않아 드러날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 B108에서 꿈틀거리는 젊은 보호들의 세대가 주역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하나하나씩 뚜렷해지는 징후들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 다섯 명의 기대주가 함께 개최하는 2011년의 B108전은 국민대학교 대학원 입체미술 전공자들의 새로운 면모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또한 그들이 택한 예술가의 길에 초석을 놓는 장이자 잠재된 조형의 기량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로써 김진택, 문이삭, 방선미, 의주, 진보은, 이렇게 다섯 작가가 힘을 모아서 새로운 무대의 쇼를 준비한다.
이 젊은 작가들은 공교롭게도 그들의 작업의 내용을 스스로의 경험과 기억에서 끄집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정 먼저 소개하는 김진택은 어릴 적 모래밭에서 하곤 했던 두꺼비 집 놀이처럼 버려진 헌 유리 조각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창문으로 조립한다. 이전의 작업들이 조형적으로는 기하학적이면서도 가구처럼 쓰임새가 있는 작품을 만들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유리창 작업 역시 건축 공간 속에서 마주 작품들을 대하는 관객과의 관계를 달리 생각해 보게 한다. 수 십 년쯤은 되었을 법한 폐기된 낡은 창틀과 거기에 껴있던 깨진 유리 조각들을 따로 모아 적당히 모서리를 자르고 다듬어서 조립하여 한 장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으로 재창조한다. 새로운 창문은 숨겨진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틈이자 이어지는 공간의 좁은 통로이다. 한 편으로는 그 너머 더 큰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인식의 얼개이다.
문이삭의 작업 모티프는 조각난 하늘에서 시작되었다. 그에게 하늘이란 곤란에 처해 있을 때마다 머리를 정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틈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모두의 것이기에 누구만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폐기된 간판에서, 그리고 실사 출력으로 제작된 광고물에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의 색을 추출해낸다. 폐기물의 잘라낸 비닐 파편들을 자신이 미리 정한 이미지의 등고선이 표시된 지도를 본 삼아 바느질하듯이 짜집기해서 새로운 형태의 빛나는 하늘을 만든다. 완성된 그의 작품은 다시 처음의 간판이 그러하듯이 빌딩 숲 틈새로 올려다보는 하늘의 톱니 같은 가장자리처럼 요철이 연속되는 별 모양의 라이팅 박스로 탄생하였다. 그 아래에 서면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나타나는 한 무리 빛의 줄기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것을 올려다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이 보이며 그 틈으로 막혔던 숨을 내쉴 수 있는 틈을 발견하고는 이내 안도하게 된다. 이처럼 그는 잠깐이나마 치열한 사회에서 한 숨을 돌리며, 미루어두었던 것들을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를 바라고 있다.
머리카락 굵기의 아주 가는 철사를 굽히고 말아서 자연스럽게 형태를 생겨나게 하는 방선미의 작업은 일부러 꾸미지 않음의 미학을 보여준다. 미세하게 가느다란 철사라는 재료의 특성상, 이 작가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단순한 구형의 형태에 따르게 된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가볍지만 각 부분마다 밀도가 일정하지 않은 엉성한 섬유질의 질감을 갖게 된다. 거기에 빛이 가늘고 구불구불하며 마구 엉킨 선들의 표면에 떨어지고, 그 빛의 입자가 각기 미묘하게 다른 각도로 반사되며 엉키고 부딪힐 때, 매달린 구의 마구 엉킨 그림자는 본래 형태와 혼합되어 버린다. 이 작품은 철이라는 완고한 물질의 물성을 감성적으로 섬세하게 바꾸어 놓으면서, 표면장력을 상실한 액상 형태의 번짐을 재현하고 있다. 또한 중력에 의해서 아래로 쏠린 비누 방울의 형태이자, 그것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눈에 크게 들어오는 물방울을 확대해 놓은 듯하다.
의주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조형 언어는 비슷한 형태의 유닛들의 일정하게 연결되는 조합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 그의 동네를 길게 가로질렀던 회색 시멘트 담벼락을 병풍 형태를 빌어 다시 재현하려고 한다. 어렸을 적 의주가 살았던 신전 아파트와 그의 단짝이 살던 연두 연립 사이에는 500미터, 혹은 아주아주 길고 곧게 길을 따라 경계를 가로지르는 시멘트 담벼락이 있었다. 담은 많은 것들 사이에 놓인다. 그것은 단지 토지 소유의 차이뿐만 아니라 이념과 집단의 사이를 구분하고 분리하여 서로의 심리적, 정서적 거리를 벌려놓는다. 심지어 초상집의 병풍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도 사정없이 가른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그에게는 이것이 경계라기보다는 만남과 놀이의 무대의 뒷배경이 되었고, 넘기가 어려웠기에 아예 병풍처럼 접을 수 있는 담을 만들었고, 문과 다름없게 하였다.
추억과 결부된 비시각적 이미지를 선택하는 진보은은 어릴 적 자신의 키로는 깨끔발하여도 턱에도 닿지 못하였던 옹기에 대한 궁금함을 통해 상상력이라는 기제를 발동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터줏대감이라고 불리었던 커다란 항아리는 결국 곡식을 저장하는 용기였음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이다. 작가는 담기는 것의 형태와 냄새의 기억, 그리고 볼 수 없음에 대한 막막함을 깊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어둠에 잠긴 두려움에 대한 감각은 결국 소리 또는 냄새와 같은 비시각적 감각을 동원해야 확인할 수 있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된다. 작가의 터줏대감이란 결국 타인의 서랍처럼 아무도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분명히 땅 아래 묻혀있는 타임캡슐과 같은 것이다. 거기에 작가가 기억하는 체취, 불가해한 소리 등의 만질 수 없는 것들이 굳게 봉해져 있다. ● 세나클은 본래 19세기 초 프랑스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몇 명의 초기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성된 문학 동인을 일컫는 단어지만, 그 작은 무리들은 고전주의자들이 푹 젖어있던 전통적인 인습에 거세게 대항하는 낭만주의자들의 예술적 승리를 이끌었다. 이처럼 어둑한 지하 B108의 작은 다섯 멤버들이 말 그대로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시란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 그들이 만일 진정한 보호(Boho)라면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다짐 같은 종류일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다. ■ 최흥철
Vol.20110325e | B108 - 국민대학교 대학원 입체미술전공 제5회 정기展